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롬 8:11
우리는 지난주에 부활절을 지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부활하신 주님을 영적으로 만나고, 부활의 능력을 다시금 덧입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외에 또 하나 믿고 고백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사도신경은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의 몸의 부활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은 이후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불가지론입니다.
한 마디로 잘 모르겠다는 태도입니다. 대표적으로 유교를 들 수 있습니다. 공자는 죽음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도 모르는데 어찌 죽는 것을 알겠는가?”
둘째, 영혼불멸설입니다.
육체는 죽지만 영혼은 영원하다는 태도입니다. 대표적으로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몸은 죽지만 그 영혼은 영원히 살아있다고 주장합니다.
셋째, 불로장생설입니다.
일부 육체와 영혼은 모두 죽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대표적으로 도교를 들 수 있습니다. 도를 닦아 도인을 지나 신선이 되면 죽음을 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넷째, 윤회설입니다.
죽음 이후 다른 생명으로 되돌아온다는 태도입니다. 대표적으로 불교가 이렇게 주장합니다. 불교는 삼생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전생이고, 둘은 현생이고, 셋은 내생입니다. 여기서 내생은 윤회하거나 해탈하여 열반에 드는 생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는 어떻게 가르칠 까요?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성경에는 사람이 죽은 이후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답해 놓은 곳은 없습니다. 여러 곳에서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 말씀해 놓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종합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학적 작업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우리가 따라야 할 신학적 작업의 핵심이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의 뿌리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잘 소개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사후에 티끌로 돌아가서 썩어버린다. 그러나 불멸의 생존을 누리는 사람의 영혼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곧장 되돌아간다. 이신칭의를 얻고 완전히 성화된 영혼들은 가장 높은 하늘에 올라간다. 이들은 여기에서 광채와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서 그들의 육신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기다린다. 사악한 불신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지어지며 이들은 여기에서 큰 고통과 흑암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제 32장 [사람의 죽음 이후의 상태와 죽은 자들의 부활에 관하여]
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기초해서 우리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신앙고백에는 제 10장에서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나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거기서 그들은 빛과 영광 가운데서 마지막 날에 그들의 육체까지 완전한 구원을 얻을 날을 기다린다. 이와는 달리 예수를 믿지 않고 거역한 사람들의 영혼은 음부에 던지어져 고통과 절망 가운데 최후의 심판 날을 기다리게 된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 품에서 안식을 누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살전 4:1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한 마디로 예수 믿다가 죽은 사람들을 ‘자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다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하나님 품 안에서 마치 잠자는 것처럼 안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밤이 찾아오면 잠을 자다가 아침이 되면 깨어나는 것처럼, 죽음의 밤이 찾아오면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품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족을 먼저 하나님 품에 보낸 분들은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대로 말한다면 그분들은 잠자는 사람들입니다. 머지않아 아침이 오면 깨어나게 될 분들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실 분들인 것입니다.
몸의 부활
그러면 예수 믿다가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면 어떻게 부활하게 될까요?
빌 3: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러니까 주님께서 우리의 몸을 부활시키실 때 이 땅에서 살던 그 몸 그대로 부활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을 변화시키셔서 부활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을 변화시키시되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그 영광의 몸의 형체처럼 변화시키셔서 부활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차례 변화된 영광스러운 몸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 변화산에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부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때 모세와 엘리야도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둘째, 부활하신 후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부활하신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장차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변화된 모습을 두 차례 보여주신 그 모습과 같이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고전 15:49에는 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몸을 영혼의 옷으로 비유한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몸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과 같은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장차 우리가 부활할 때 입게 될 몸은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 몸과는 전혀 다른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장차 우리가 입게 될 몸을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과 같은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장차 부활할 때 입게 될 몸은 지금의 우리의 몸과는 전혀 다른 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몸의 다음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죽지 않는 몸입니다.
눅 20:3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우리가 부활한 후에는 다시는 죽음이 지배할 수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골 3: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성도들의 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신령한 몸입니다.
고전 15:44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신령한 몸이란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과 그 인격을 닮은 몸이라는 뜻입니다. 인격적으로 성령께 완전히 복종하며 하나님을 기쁨으로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몸을 말합니다.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않고 연약하여 흔들리지 않는 그런 몸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몸으로 부활합니다. 귀신처럼 영적 존재로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몸은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의지하고 살던 바로 이 몸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몸으로 부활합니다. 같은 영혼, 같은 자아, 같은 인격체가 다른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부활할 몸은 현재 우리의 몸과는 전혀 다른 몸입니다. 현재의 우리 몸은 흙에서 온 것이어서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장차 부활하게 될 몸은 더 이상 흙에서 취한 몸이 아닌 신령한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장차 부활할 몸은 결코 현재의 우리 몸을 기본 틀로 하거나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몸이 아닙니다.
그래서 장례 풍속에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그리스도인들은 매장을 선호했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자기가 묻혔던 그 무덤에서 부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장을 꺼려합니다. 몸을 불살라 가루가 되어 뿌려지게 되면 세월이 지나 그 몸의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경우 어떻게 부활하나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에 수많은 성도들이 화형으로 순교 당했습니다. 무덤도 없고 시신 흔적도 남지 않은 채 죽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신령한 몸으로 우리를 부활시키실 것이 때문에 전혀 걱정이 필요 없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부활할 몸은 최고의 몸입니다. 어떤 신학자가 오랜 세월 부활할 몸은 어떤 몸일까를 연구했답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이 예수님께서 33살의 몸으로 죽으셨고 또 부활하셨기 때문에 33세 시절의 몸으로 다시 부활한다고 했답니다. 나이 100세에 죽은 사람도 그 사람의 33살 때 몸으로 부활한다고 했고, 5살 때 죽은 아이도 장차 자라서 33살이 될 때의 몸으로 부활한다고 했답니다.
물론 근거 없는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몸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을 그런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장애우들은 그 몸으로 부활한다면 차라리 부활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병들고 늙은 사람들도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면 누가 부활하고 싶겠습니까? 자기 몸에 만족하지 못하여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 그 사람들도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한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형하는 분들 조금만 참으십시오. 괜히 큰 돈 들여 몸에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십시오. 큰 돈 들여 성형해 봐야 금방 또 망가집니다. 조금 있으면 돈 안들이고 최상의 몸으로 다시 부활할 텐데 뭐가 걱정이십니까?
부활 이후
그러면 부활한 뒤에는 어떻게 될까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장차 우리가 부활한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요일 3: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부활한 뒤 우리는 우리가 주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된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또 저 하늘에 계시는 우리 주님을 그 모습 그대로 뵈올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보상을 받게 됩니다.
계 21:3-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부활한 뒤에 하나님께서 일일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주시고 그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생과 수고를 친히 위로해 주시고 보상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계 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창 3:24에 나오는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 영생을 얻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룹들과 불 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던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여 영생을 얻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 뒤에 우리에게는 너무도 좋은 일들만 가득합니다. 이것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정말 큰 복입니다.
그래서 계 14: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믿는 성도들은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부활하여 주님 주시는 이런 놀라운 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은 이런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해왔습니다. 이 땅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왔습니다. 죽음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 뒤에 이렇게 좋은 일들이 준비되어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이 부활할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고 우리가 그 다음의 열매가 되어 부활하게 될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동안 예수 잘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죽은 뒤에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믿음을 고백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나는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리고 장차 부활한 뒤에 저 천국에 들어갈 그날을 소망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길이 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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