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사자 세례 요한! (막1:2~8)
막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막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1: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막1: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막1: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막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근본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이신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리스도, 곧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가운데서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왕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시대를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지금도 그의 백성인 우리를 다스리시며, 우리에게 구원과 복과 평화를 풍성하게 내리십니다.
요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합시다. 그러면서 날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 기쁨으로 나아가며, 감사함으로 경배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왕이신 예수님보다 앞서 와서, 왕이신 예수님의 사자 역할을 한 세례 요한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이 세례 요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를 통해서 예수님의 왕 되심을 우리에게 밝히 보이고자 함입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인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로마인들의 개념으로는 왕이 행차할 때, 사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왕이 임하는 법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왕의 사자가 왕이 행차할 곳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왕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기에, 왕의 사자가 먼저 와서 왕이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왕의 사자 세례 요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세례 요한에 대한 예언입니다(2~3절).
막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우선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은 구약 성경 말3:1에서 인용되었습니다. 단지 3절 말씀만 구약 성경 사40:3에서 인용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은 마치 두 말씀 모두가 이사야서에서 인용된 것처럼 밝히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언급할 경우에, 그것들을 일일이 밝히는 것은 번거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을 기록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눅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킵니다. 구약 성경은 율법과 선지서와 그 나머지 모든 책들, 곧 성문서로 구분이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성문서 전체를 가리켜서 시편이라고만 칭하셨습니다. 시편이 성문서 전체의 대표적인 책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말라기서의 말씀과 이사야서의 말씀이 함께 인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둘 가운데 이사야서만 대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그 이유는 선지서 가운데서 이사야서가 가장 긴 책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의 원 저자가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서도, 말라기서도 그 원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사야의 입을 통하시든지, 말라기의 입을 통하시든지 그 내용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말3:1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막1:2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오늘 본문은 말라기서에 있는 말씀을 좀 다르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구약 성경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고, 신약 성경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오늘 본문은 우선 말라기서에 있는 말씀의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그런 후에 또다시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오늘 본문은 해석된 말씀을 왕이신 예수님과 그의 사자 세례 요한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 말3:1에 기록된 “내 앞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 막1:2에 기록된 “네 앞에”는 “왕이신 예수님 앞에”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말3:1의 “하나님 앞”이 오늘 본문 막1:2에서는 “예수님 앞”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사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막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여기서도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오늘 본문은 먼저 이사야서에 있는 말씀의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그런 후에 또다시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오늘 본문은 해석된 말씀을 왕이신 예수님과 그의 사자 세례 요한에게 적용했습니다.
여기서도 “여호와의 길”이 “주의 길,” 곧 왕이신 예수님의 길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의 대로”가 “그의 오실 길,” 곧 예수님의 오실 길로 바뀌었습니다. 이 또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막1:2~3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을 지칭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세례 요한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아울러 그가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이와 같은 질문들을 한번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막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막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오늘 본문 2절에서 세례 요한은 “사자”로, 오늘 본문 3절에서는 “광야에 외치는 자”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은 2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왕이신 예수님 앞에 보내심을 받아 왕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3절 말씀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외쳐야 했습니다. 첫째, 그들에게 주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둘째, 왕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사40: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기에 왕이 행차할 때, 왕의 사자가 했던 일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왕의 사자는 왕의 길을 점검해서, 장애가 될 요소들을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낮은 곳은 돋우고 높은 곳은 낮추어서, 왕이 지나가기 좋도록 모든 길을 평탄하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은 왕이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왕의 사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그는 사람들에게 죄악으로 굽은 그들의 마음을 회개하고서 곧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의 사자로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오늘 본문의 목적은 세례 요한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왕 되심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왕으로 강림하신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새 시대를 활짝 열어주신 것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가복음을 살펴보면서, 죄악으로 굽은 마음이 점차 곧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왕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시고,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왕이신 예수님을 날로 닮아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둘째로, 세례 요한의 사역입니다(4~6절).
막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이제 드디어 왕이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한 왕의 사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는 요한의 출생 기록이 나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가랴였고, 그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습니다. 둘 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엘리사벳은 처음부터 잉태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요한을 낳게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모두 다섯 명의 요한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요한 이외에, 사도 요한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자 마가의 본명도 요한입니다. 베드로의 아버지도 요한입니다. 또한 행4:6을 보면, 사도들을 심문하던 무리 가운데 요한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 당시에는 요한이라는 이름이 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자로 보내심을 받은 요한을 다른 요한들과 구별짓기 위해서, 그를 세례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왕의 사자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대로, 그는 “광야에 외치는 자”로 예언된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눅1:80에 의하면, 그는 어릴 때부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실로 광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무엇을 외쳤습니까? 오늘 본문 4절은 그가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왕의 사자 세례 요한이 해야할 사역이었습니다.
오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마음이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죄 사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회개한다는 의미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본시 유대인들에게는 세례 예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정결 예식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밖에 나갔다 오면 물을 뿌렸습니다. 이와 같은 정결 예식이 유대인들에게는 전부였습니다.
단지 그 당시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만 세례 예식이 특별하게 행하여 졌습니다. 과거 이방인으로 살았던 더러운 삶을 깨끗하게 씻어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깨끗한 삶을 살겠다는 뜻으로 세례 예식을 행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때에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이방인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눅3:2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것은 결코 그가 임의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유대인들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전했습니다.
눅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눅3: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나는 왕의 사자로서,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뿐이다. 그러나 내 뒤에 왕이 오시리니, 그는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시리라. 그는 손에 키를 들고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시리라. 그리고서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와 같은 세례 요한의 외침에 유대인들의 마음은 크게 찔렸을 것입니다.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마음도 역시 죄악으로 물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막1: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그 당시 이스라엘은 크게 네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을 유대라고 불렀습니다. 그 위쪽을 사마리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위, 곧 제일 북쪽지역을 갈릴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요단 강 동편을 베뢰아라고 불렀습니다.
말하자면 수도 예루살렘과 그 인근의 유대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찾아왔습니다. 아무래도 그 곳에 모여 살던 사람들이 많았고, 또한 그 곳에서 세례 요한의 사역지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세례 요한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 “나아가다”와 “세례를 받다”가 모두 미완료형입니다. 이는 계속되는 동작을 뜻할 때 사용되는 시제입니다. 또한 여기서 “온”과 “다”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세례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마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눅3: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눅3: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이와 같이 그 당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다 세례 요한에게로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들이 이방인인 것처럼, 그들은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회개는 대부분 피상적이었고 위선적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왕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왕이신 예수님이 오셨다가 떠나셨을 때, 마가의 다락방에는 불과 백이십 명 정도만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야 어떠했든지 간에, 세례 요한은 왕의 사자로서 자기가 해야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왕이신 예수님은 자기의 사자로 보냄을 받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놀라운 칭찬을 하셨습니다.
마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말하자면 세례 요한은 아브라함보다도, 모세보다도, 다윗보다도, 엘리야보다도 더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왕의 사자로서, 그가 해야할 사명에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결과야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왕이신 예수님께로부터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막1: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여기에 세례 요한의 충성스러운 모습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입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먹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왕의 사자로서, 오로지 왕이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했습니다.
먼저 세례 요한이 입었던 옷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었습니다. 낙타 가죽으로 만든 옷이 아니었습니다. 낙타 털로 실을 만들어서 그것들로 짠 엉성한 옷이었습니다. 그래서 옷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허리에는 질긴 가죽으로 띠를 둘렀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것도 느지막하게 얻은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세례 요한은 얼마든지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옷을 입고 지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슥13:4 그 날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환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람을 속이려고 털옷도 입지 아니할 것이며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이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털옷을 입었습니다. 자기들이 참 선지자인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겉으로는 양의 옷, 다시 말해서 양의 털옷을 입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털옷은 본시 선지자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강림을 백성들에게 선포해야 할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털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털옷의 효시는 누구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왕하1: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선지자 엘리야는 털옷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이라고 불려졌습니다. 또한 그는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습니다. 엘리야는 승천하면서, 그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 뒤로 털옷과 가죽 띠는 선지자들의 전통적인 복장이 되었습니다.
말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이와 같이 하나님이 강림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자가 보내심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자는 선지자 엘리야였습니다. 신약 성경은 엘리야에 관한 구약 성경의 예언이 세례 요한에게서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눅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이는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 천사가 그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했던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온 자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선지자 엘리야와 같은 복장을 하고서, 선지자 엘리야가 사역했던 바로 그 곳에서 사역을 했습니다.
마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왕이신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 그가 바로 왕의 사자로 오리라 했던 선지자 엘리야라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왕의 강림을 선포해야 할 선지자 엘리야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세례 요한이 먹었던 음식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레11:22에 의하면, 메뚜기는 곤충 가운데서 예외적으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석청(石淸)이라 함은 벌들이 돌이나 나무 사이에 모아놓은 야생 꿀을 의미합니다.
메뚜기와 석청은 광야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은 제사장의 아들이었기에, 얼마든지 호의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나아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또한 군인들과 세리들은 좋은 옷을 입었고, 좋은 음식을 먹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의 겉모양에도, 또한 다른 사람들의 겉모양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오로지 자신의 사명에만 충성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이라는 칭찬을 예수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왕이신 예수님이 그의 백성인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세례 요한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위하여 충성합시다. 그리해서 세례 요한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에게서 큰 칭찬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세례 요한의 증거입니다(7~8절).
막1: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능력 많은 이라고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를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의 죄를 자복하며, 그에게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마21:26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눅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기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자기 뒤에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했습니다. 말하자면 자기는 왕이 아니라, 왕의 사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뒤에 오실 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했습니다.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당시에 이것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주인이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종은 몸을 굽혀 주인의 신발끈을 풀고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겨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물을 떠서 주인의 발을 깨끗하게 씻겨드려야 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지금 세례 요한은 단순히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기 위하여, 예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그는 왕 되신 예수님을 올바르게 증거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왕,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반면에 세례 요한은 왕의 사자일 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반면에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입니다.
막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 요한은 어디까지나 물로 세례를 베풀 뿐입니다. 그는 결코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어찌 사람인 세례 요한이 하나님이신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수가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예수님만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수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이위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바르게 증거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왕의 사자 세례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은 누구이시며 예수님은 어떠한 일을 하시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왕,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 보좌에 모심으로,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읍시다. 그리해서 먼저 우리 자신이 변화되고, 또한 세례 요한처럼 우리의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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