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상훈목사

[스크랩] 왕이신 예수님의 권세! (막1:12~20)

왕이신 예수님의 권세! (막1:12~20)


막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막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막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막1: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막1: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오늘 본문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내용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 전파의 사역을 시작하신 내용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네 제자를 부르신 내용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마가복음의 내용은 간결합니다. 예컨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사탄에게 어떠한 시험을 받으셨으며, 또한 어떻게 그 시험을 이기셨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사실만 기록할 뿐입니다.

또한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후, 곧이어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그 이전에 갈릴리 가나에서 첫 표적을 행하셨으며, 또한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마가복음은 다름 복음서에 있는 내용을 많이 생략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에서 로마인들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언제나 박진감 있는 행동을 중시했습니다. 그러기에 마가복음은 보다 간결하며, 생동감이 있는 묘사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은 왜 오늘 본문과 같이, 세 가지의 서로 다른 내용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을까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마가복음은 왕이신 예수님의 권세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 직후에 하나님은 친히 예수님을 만백성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때 성령 하나님은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기름 부음이 되신 것입니다. 또한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왕 되심을 공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왕으로서의 권세를 실제로 행하시는 장면입니다. 왕이신 예수님은 세 가지 영역에서 자신의 권세를 보이셨습니다. 첫째, 사탄에 대한 권세입니다. 둘째, 죄에 대한 권세입니다. 셋째, 죄인들에 대한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사탄에 대한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복음을 전파하심으로, 죄에 대한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 자신의 제자를 삼으심으로, 죄인들에 대한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을 온전하게 본받아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이십니다(12~13절).


막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그 때 하늘이 갈라지면서,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세움을 받으면, 곧이어 성대한 축하 예식이 거행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으로 세움을 받으실 때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그 곳에는 나팔소리도 없었습니다. 천사들의 노랫소리도 없었습니다. 성령님은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왕이 아니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시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왕들이 하는 식의 축하 행사도 없이, 성령님은 곧바로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곳도 유대 광야에 속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보다 더 깊은 광야 속으로 예수님을 몰아내셨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신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마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이와 같이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신 목적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시험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예수님을 시험하신 것은 아닙니다. 약1:13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를 아니하십니다.

이 때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사탄입니다. 그러나 이 때 사탄이 예수님을 임의로 시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 안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 때 하나님은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님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다”는 식의 강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마지못해서 광야로 가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전적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령님은 “광야로” 예수님을 몰아내셨습니까? 예컨대 예루살렘에서는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실상 이 때 사탄의 시험 가운데 하나는, 사탄이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뛰어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필이면 “광야”입니까? 광야는 아무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사탄을 이기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아무의 도움도 없이 혼자만의 힘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셔야만 했습니다.


막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다음의 질문에 차례대로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광야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며칠 동안 계시면서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사십 일을 계시면서.” 예수님은 누구에게서 시험을 받으셨습니까? “사탄에게.”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실 때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이는 예수님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이, 예수님 홀로 시험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결과는 무엇입니까?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먼저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는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왕으로 세움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예수님은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가셔서, 그 곳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시기 위해서, 왕으로 세움을 받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왕으로 세움을 받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가셔서, 고난 가운데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을 광야에 계셨습니다. 마4:2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 기간 동안 금식을 하셨습니다. 물론 사십 일의 금식이 예수님에 의해서 처음으로 행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출34:28에서는 모세가, 왕상19:8에서는 엘리야가 사십 일을 금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을 아무 것도 먹지 아니하시고 금식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고, 가장 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시기에, 예수님은 그와 같이 힘든 상태에서도 그의 대적인 사탄의 시험을 이기셔야 했습니다.

그러면 사탄은 예수님을 어떻게 시험했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탄은 예수님을 세 가지로 시험했습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모두 사탄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시험은 아니었습니다. 정반대로 사탄은 예수님이 낮아지지 못하도록 시험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로 만백성의 왕이지 아니하냐? 그러니 네가 굶어서는 안 되다. 돌로 떡을 만들어라. 너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너의 능력을 보여주어라. 너는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려야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니 내게 엎드려 경배해라. 그리하면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네게 주리라.”

이와 같이 사탄은 예수님이 스스로 낮아지지 못하도록 막으려 들었습니다. 사탄의 시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왕의 권세를 행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사탄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목적은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의 시험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세 번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번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셔서, 사탄의 시험을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을 때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계셨습니다. 들짐승은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사는 짐승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사람들과는 완전히 격리되어, 예수님만 홀로 그 곳에 계셨다는 뜻입니다.


신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사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암5:19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을 만나거나....


이와 같이 광야는 불뱀이 있고 전갈이 있는 곳입니다. 이리와 표범이 있으며, 사자와 곰이 사는 곳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위험하고도 외로운 곳인 광야에서, 예수님은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셨을 때의 상황은 첫 사람 아담이 시험을 받았을 때와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에덴 동산에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때 그들은 에덴 동산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 계셨습니다.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곳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사십 일을 주리셨기에,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든 상태에 놓여있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이기신 결과는 무엇입니까?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예수님에게 수종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빌어서 표현하면,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하신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마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님이 사탄의 시험을 이기시고 난 뒤에, 사탄은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어서, 예수님을 수종들게 하셨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기쁨을 전하면서, 그 동안 주리신 예수님이 드실 양식도 제공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사탄이 제안하는 유혹의 떡을 물리치고, 천사들이 전하는 신령한 양식을 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제안하는 그릇된 공명심 대신에, 천사들의 보필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제공하는 헛된 영광 대신에,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그리함으로써 왕이신 예수님은 사탄에 대해서 권세가 있으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귀신들을 쫓아내기도 하시고, 더 나아가 자기 백성을 사탄에게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우리도 얼마든지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며 사탄을 물리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울러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사역을 효과적으로 또한 능력 있게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딤후2: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날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깁시다.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주께서 귀히 쓰는 그릇이 됩시다. 우리 모두 거룩한 삶을 살아서, 주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입니다(14~15절). 

   

막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오늘 본문 14절은 그 다음절인 15절 말씀의 서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때는 “요한이 잡힌 후”입니다. 장소는 “갈릴리”입니다. 그 때 그 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전파하신 말씀은 15절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집니다.

먼저 때는 “요한이 잡힌 후”입니다. 여기서의 요한은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고 난 후에도, 한 동안 그의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헤롯 왕에 의해서 감옥에 갇히고, 결국 헤롯 왕에 의해서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투옥과 죽음에 대한 내용은 마가복음 6장에 나옵니다. 따라서 여기에 대해서는 그 때 가서 우리가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은 왕이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왕의 사자였습니다. 그는 자신과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태양이 떠오르면, 밤하늘을 장식하던 별들은 그 자취를 감추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은 그가 왕의 사자로서 해야 할 모든 사역을 완수했습니다. 이제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힘으로, 그의 사역은 끝이 났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는 쇠하여졌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흥하여지셔야 했습니다. 이미 세례 요한은 7절에서, 자기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자기 뒤에 오실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마침내 왕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오신 장소는 어디였습니까? “갈릴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광야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더 깊은 광야로 가셔서 사탄에게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성전을 깨끗하게도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예루살렘이나 유대에 머물지 아니하시고, 갈릴리에 오셨습니까?

예수님이 헤롯 왕을 두려워하셨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십니다. 또한 따지고 보면, 그 당시 갈릴리도 역시 헤롯 왕의 통치하에 놓여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4: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4: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마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사9:1~2에서 인용됨)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만큼 예루살렘은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메시야에 의한 복음의 빛은 먼저 이방의 갈릴리에 비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무엇을 전파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는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임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복음, 곧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을 그대로 전파하셨습니다.


요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말하자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분석해서, 그들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려고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으신 복음만을 순수하게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내용은 그 다음절인 15절이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막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전파하신 말씀이 두 쌍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쌍은 직설법으로 되어있습니다. 때가 찼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둘째 쌍은 명령법으로 되어있습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

먼저 예수님은 때가 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서, 이제 드디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갈4:4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이 임하면, 왕이 다스리는 나라도 임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오셨으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도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20장에서 말씀한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행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이 곧 죄입니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입니다. 아울러 복음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 곧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죄에 대한 권세가 있으십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의 죄가 사함을 받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막2: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지은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십니까? 죄를 회개하시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가 있으시기에,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지은 죄를 그대로 가지고 괴로워하지 말고,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자유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또한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순수하게 하나님의 복음만을 전파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말씀을 전하는 자나, 또한 말씀을 듣는 자나 모두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수하게 전해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세상의 허탄한 이야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 것을 요구했던 것처럼, 말씀을 듣는 자는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가려운 귀를 긁어주기를 요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을 전하는 자도 죽고, 말씀을 듣는 자도 죽고, 다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강단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전하게 전해져야 합니다. 그것만이 모두가 다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는 무슨 종류의 훈련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제자 훈련, 전도 훈련, 기도 훈련, 영성 훈련, 등등 이름을 다 들 수도 없을 만큼 종류가 많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이름의 훈련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저히 다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복음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만 늘 충실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이십니다(16~20절).


막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막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는 예수님과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그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갔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말을 통해서,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어부였기 때문에, 갈릴리 바다에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그들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그런데 이것은 왕이신 예수님만이 내리실 수 있는 절대적이고도 독특한 명령이었습니다. 

과거 그 어떠한 선지자들도, 과거 그 어떠한 랍비들도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하나님을 따르라,” 또는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라”고 명령했을 뿐입니다. “나를 따라오라.”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내리실 수 있는 명령이었습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시되, 그들이 지금까지 하던 모든 것을 온전히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시몬, 곧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가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오늘 본문 18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봅니다.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그 즉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과연 그들이 멍청하고 얼빠진 사람들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눅5:3 말씀처럼, 그들은 자기들의 배를 가지고 있을 만큼 당당한 어부였습니다. 눅5:10 말씀처럼 그들은 세배대의 두 아들과 동업을 할만큼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까? 예수님의 권세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권세가 주권적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왕이신 예수님은 죄인들에 대한 권세가 있으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죄인들을 불러서 그들을 변화시키시며, 그의 나라를 위하여 그들을 귀한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곧이어 세배대의 두 아들을 부르신 장면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막1: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막1: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여러분,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어떠한 사람들이었습니까? 막3:17 말씀처럼, 그들은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성깔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아무에게나 호락호락 쉽게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오늘 본문 20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그들은 아버지 세배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아마도 이 때 그들의 아버지 세배대는 몹시도 황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가 감히 왕이신 예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권세 앞에 모든 사람은 그대로 순복할 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에는 누구나 그대로 순종할 따름이었습니다.


막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죄인들에 대한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변화시켜서, 그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늘의 천사들이 아니라, 변화 받은 죄인들인 우리들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그 일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시되,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적절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딤후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진리를 전했습니다. 디모데는 자기가 들은 진리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전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들은 진리를 그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더 든든하게 세워져 나갈 것입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혼자서만 일하러 들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동역하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도, 또한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팀워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의 권세를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에 대한 권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죄에 대한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 대한 권세가 있으십니다.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본받아야 할 점들도 살펴보았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며,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합시다. 복잡하게 살지 말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고 삽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서 함께 일하는 것을 기뻐합시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을 그대로 본받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신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사역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