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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 (빌2:14~16)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 (빌2:14~16)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

금년의 우리 교회 표어입니다. 이 표어대로 우리는 생명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생명의 말씀을 좇아서 살아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생명의 말씀을 밝혀서,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힘써 건져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시작합니다.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여기에 해서는 안 될 것 두 가지가 나옵니다. 원망과 시비입니다. 원망이 소극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라면, 시비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지적으로 따지는 태도입니다. 원망이 없어야 합니다. 시비도 없어야 합니다. 이 둘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시면, “모든 일을”이라고 했습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하면 안 됩니다. 가정에서도 불평이 사라져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불평이 있으면 안 됩니다. 사회 생활을 할 때도 불평 없이 해야 합니다.

불평은 타락한 인간의 병든 마음에서 나옵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저 불평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아담이었습니다. 아담이 타락하자, 그는 하나님에게 자기 아내 하와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하와를 아내로 주셨다고 불평했습니다.

불평은 다른 사람에게 전염이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악평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전염되어서, 온 이스라엘 회중이 다 함께 불평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불평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불평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불평을 미워하시며, 불평하는 자를 심판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정말 열심히 주를 섬겼습니다. 그는 온갖 박해와 환난 속에서도, 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해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빌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1: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바울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매임으로 말미암아, 그를 대신하여 더 많은 형제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복음 전파에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옥중에서 오히려 더 기뻐하며 더 감사했습니다.


빌4:11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경우에라도 불평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전천후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명령과 이유로 되어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4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평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 15절과 16절에서, 하나님은 불평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For our own sake).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다워야 합니다. 불평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빌2:15 이는 너희가 (1) 흠이 없고 (2)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3)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이는”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밝히는 단어입니다. 왜 우리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여야 합니까? 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하면 안 됩니까?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단어가 하나님의 자녀를 수식하고 있습니다. 첫째, 흠이 없어야 합니다. 둘째, 순전해야 합니다. 셋째, 흠 없어야 합니다. 세 번째 단어를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헬라어에서 이 세 단어는 모두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인 “알파”로 시작합니다. 뜻은 서로 상통하며 보완적입니다. 흠이 없어야 순전합니다. 그래야 책망 받을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흠이 있으면, 순전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책망 받을 것이 생깁니다.

갈3:26 말씀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흠이 없는 자녀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전한 자녀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녀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론은 자명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불평이 없어야 합니다. 불평하면 흠이 생깁니다. 불평하면 순전할 수 없습니다. 불평하면 책망을 받게 됩니다.


약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항상 말을 조심해서,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혀를 잘 지켜야 합니다. 혀는 손이나 발보다 훨씬 작습니다. 그러나 혀는 손이나 발보다 훨씬 더 큰 일을 저지릅니다. 혀로써 말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원망을 하는 것도, 시비를 거는 것도, 불평하는 것도, 거짓말하는 것도, 남을 모함하는 것도, 아첨하는 것도 다 혀가 하는 짓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것도, 남을 칭찬하며 격려하는 것도 다 혀가 합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말에 부주의해서 불평을 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흠이 있고, 순전하지 못하며, 책망 받을 것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로 끝이 나야합니다. 새 해에는 달라져야 합니다.


잠13:3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잠21: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


입과 혀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우리 입에 파수꾼을 세워서, 원망하는 말, 시비를 거는 말, 불평하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게 막읍시다. 말은 적게 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말을 하려면, 긍정적인 말, 감사하는 말, 복음을 전하는 말을 하도록 합시다. 

금년에는 우리 모두 말을 조심합시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입시다. 그리해서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서 흠이 없고 순전하며 책망 받을 것이 없도록 합시다.


둘째로, 불신자들을 위해서입니다(For the sake of the unsaved).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증인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불평하면 전도가 안 됩니다. 불평은 전도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불평이 사라져야만, 불신자들에게 제대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빌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오늘 본문은 타락한 세상을 가리켜서,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고 표현합니다. 딤후3:13 말씀이 밝히고 있듯이, 세상은 갈수록 더 악하여집니다. 한 세대 한 세대 지나갈수록, 세상은 더 어그러지고 더 거스르기 마련입니다. 

“어그러지다”는 “굽다, 바르지 못하다”라는 상태를 뜻합니다. “거스르다”는 의도적으로 굽게 만드는 동작을 뜻합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어그러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거스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동성애를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남자나 여자가 자기의 성을 순리대로 쓰지 않고 역리로 쓰려고 합니다. 어그러진 세대의 모습입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동성애를 합법화시킨 나라도 있습니다. 거스르는 세대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증인의 사명입니다. 지옥을 향하는 사람들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산다는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나 혼자 잘 먹고 나 혼자 잘 살겠다는 생각을 이기심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만 잘 믿고 나만 구원을 받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기적 신앙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전도의 기본적인 원리를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15절 마지막에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말씀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는 빛들로 우리 자신을 나타내야 합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예수님 밖에 있었을 때, 우리는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마5:14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합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들로 나타내는 것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빛을 비추는 것은 행실을 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원망과 시비는 착한 행실이 아닙니다. 빛의 자녀들에게는 불평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따라서 바르게 삽시다. 그래야 불신자들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됩니다.

전도의 첫 번째 원리는 빛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빛 된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도의 두 번째 원리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6절이 말씀합니다.  

 

빌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여기에 금년의 우리 교회 표어가 나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 구원의 방주로서, 우리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은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말씀,” “생명을 살리는 말씀,”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생명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며, 우리의 생명을 살리며,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합니다.

찬송가 200장의 가사입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맘에 용서와 평안을 골고루 주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풍성하게 합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있고,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불평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평하면, 내게 화가 있습니다. 반대로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습니다.

“너는 입을 열어 수다는 잘 떨면서도, 하지 말라는 불평은 잘도 하면서도, 어찌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은 한 마디도 전하지를 않느냐?”

이와 같이 주님은 책망하실 것입니다. 잠잠하지 말고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합시다. 생명의 말씀을 밝힙시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셔야 삽니다. 예수님을 믿으시면 삶이 풍성해집니다.” 이와 같이 입을 열어서, 예수님을 전합시다.

 왜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까? 첫째,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흠이 없고 순전하며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불신자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에게 빛들로 나타내며,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밝혀서 전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목회자를 위해서입니다(For the sake of your pastor).


불평하지 말아야 할 세 번째 이유는 여러분의 목회자를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엎드려서 절을 받으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목회자를 위하십니까? 그러면 원망과 시비를 없애십시오. 불평하지 마십시오.


빌2:16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일이 나옵니다. 바울은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내어쫓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을 붙잡아 관리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관리들은 바울의 옷을 찢어서 벗겼습니다. 그리고는 매로 많이 쳤습니다. 그런 후에 바울을 깊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의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습니다. 이와 같은 달음질과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선다면, 바울의 달음질도 또한 그의 수고도 헛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시비 때문에, 불평 때문에 빌립보 교회가 든든히 서지 못한다면, 바울의 달음질과 수고는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는 것을 방해합니다. 원망과 시비를 통해서입니다. 불평을 통해서입니다. 그와 같은 사탄의 장난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사탄의 하수인으로 쓰임을 받지 마십시오. 

그러면 왜 바울은 그의 달음질이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바랐습니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남은 목회를 좀 편안하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 하반부를 주목합시다.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물론 여기서의 자랑은 과시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과시하겠습니까? 바울의 의도는 장차 하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기쁨을 뜻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위하여 정성스러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빌4:18에 있는 말씀처럼, 그들은 그 선물을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로마의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그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고서, 물론 바울은 기뻐하며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와 같은 일시적인 기쁨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날”에 그들로 인하여 그가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날”이 나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주의 날”이 있습니다. 서로 간에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만 해당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달음질하고 수고한 대로, 그리스도께로부터 상을 받는 날입니다.


살전5: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살전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주의 날”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 곧 불신자들에게 해당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주의 날”은 불신자들이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벌을 받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날을 바라보면서, 달음질하며 수고합니다. 목회자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날을 바라보면서,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목회자를 여러분이 인정해주고, 그를 위해주는 길이 무엇입니까?


요삼1: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식사 대접을 받는 것보다, 선물을 받는 것보다, 목회자가 더 기뻐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목회자의 달음질과 수고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날에 목회자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오늘 우리는 주께로부터 말씀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받았으면,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해야 합니다. 원망과 시비를 없앱시다. 불평하지 맙시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흠이 없고 순전하며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불신자들을 위해서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 우리는 빛들로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대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합니다.

셋째로, 목회자를 위해서입니다. 목회자의 달음질과 수고를 헛되이 만들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날에 여러분으로 인해서 자랑할 것이 있게 하십시오.

우리는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 살아갑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맙시다. 주께서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든든히 붙듭시다. 그리고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생명의 말씀을 밝힙시다. 환하게 밝힙시다. 힘써 밝힙시다. 온 세상에 널리 밝힙시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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