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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해를 복되게 사는 비법(4)/ 신8:1~10 / 2006년 2월 5일

새해를 복되게 사는 비법(4)- 낮추시고 채워주심

신명기8:1~10

2006년 2월 5일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8: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命令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蕃盛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廣野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試驗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衣服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懲戒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8: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敬畏할지니라.

8: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噴泉과 샘이 흐르고

8: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8:9 너의 먹는 식물의 缺乏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鐵이요 산에서는 銅을 캘 것이라

8: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沃土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설교:

어느 대학 졸업생이 한 회사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 사장이 면접 자리에서 의외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부모님을 목욕시켜드리거나 닦아드린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없습니다.’  청년은 정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의 등을 긁어드린 적은 있나요?’ 청년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등을 긁어드리면 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셨죠.’ 청년은 혹시 입사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정해진 면접 시간이 끝나고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사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세요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부모님을 닦아드린 적이 없다고 했죠? 내일 여기 오기 전에 꼭 한 번 닦아드렸으면 좋겠네요. 할 수 있겠어요?’ 청년은 꼭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취업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품을 팔아 그의 학비를 댔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그는 서울의 명문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학비가 어마어마했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 그가 돈을 벌어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할 차례였습니다. 청년이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일터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시니까 틀림없이 발이 가장 더러울 거야. 그러니 발을 닦아 드리는 게 좋을 거야.’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아들이 발을 씻겨드리겠다고 하자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내 발은 왜 닦아준다는 거니? 마음은 고맙지만 내가 닦으마.’ 어머니는 한사코 발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닦아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 오늘 입사 면접을 봤는데요, 사장님이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다시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꼭 발을 닦아드려야 해요.’
그러자 어머니의 태도가 금세 바뀌었습니다. 두말없이 문턱에 걸터앉아 세숫대야에 발을 담갔습니다.

청년은 오른손으로 조심스레 어머니의 발등을 잡았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까이서 살펴보는 어머니의 발이었습니다. 자신의 하얀 발과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앙상한 발등이 나무껍질처럼 보였습니다.
‘어머니 그동안 저를 키우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이제 제가 은혜를 갚을게요.’
‘아니다 고생은 무슨’ ‘오늘 면접을 본 회사가 유명한 곳이거든요 제가 취직이 되면 더 이상 고된 일은 하지 마시고 집에서 편히 쉬세요.’
그런 중에 손에 발바닥이 닿았습니다. 그 순간 청년은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어머니의 발바닥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의 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발바닥의 굳은살이 너무 딱딱해 청년의 손이 아팠습니다. 청년의 손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그는 고개를 더 숙였습니다. 그리고 울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새어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 또 삼켰습니다. 하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한쪽 어깨에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청년은 어머니의 발을 끌어안고 목을 놓아 구슬피 울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청년은 다시 만난 회사 사장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저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장님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셨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만약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어머니의 발을 살펴보거나 만질 생각을 평생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저에게는 어머니 한 분밖에는 안 계십니다. 이제 정말 어머니를 잘 모실 겁니다.’
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용히 말했습니다. ‘인사부로 가서 입사 수속을 밟도록 하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그 사장은 그에게 그런 시험을 치렀을까요?

그는 그의 능력도 알았고 그의 실력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간성, 사람을 대하는 대인관계가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실력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갖지 못한 능력이 있다고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인관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섬기는 능력이고 낮아지는 능력입니다.

아마도 그 사장님은 그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기에 그 부분에 대해 부족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님의 사랑이 어떤지를 알도록 그런 시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도 우리를 때로 시험하십니다. 그러나 그 시험은 몰라서 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를 몰라서 우리의 능력이 어떤지 우리 실력이 어떤지를 시험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과 형편을 다 아십니다.

그러면서도 시험하시는 것은 우리가 성숙하게 되기를 원해서입니다. 그 모습을 여러 곳에서 보여주십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독자 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 시험 왜 하십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것을 알기위해 그를 시험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몰라서 시험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창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 알았다는 것은 예전에는 몰랐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시지만 그럼에도 시험하십니다. 왜 아시면서 시험하실까요?

1)아브라함 자신이 그 자신의 신앙을 확인도록 하시고 그로인해 복이 임하였음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2)아브라함이 장차 일하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3)그리고 그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창22:16~18을 보세요.

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것이 메시야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더 큰 복, 너 놀라운 복을 주시기 위해 그를 시험하시고 그 시험에 합격한 그 믿음으로 복을 누린다는 약속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시면서도 아브라함 자신을 위해 시험하시고 복 주시기 위해 시험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곳의 시험이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입니다.

2절~3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왜 하나님이 아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한 달이면 갈 수 있는 편한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40년간 광야에서 보내게 하셨느냐?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얼마든지 큰 복을 누리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 복을 주시지 않고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뭘까요?

근본적인 시험 이유는 우리를 복되게 하시기 위함인데 그 시험의 내용이 뭐냐?


1. 낮추시기 위한 시험입니다.

한마디로 겸손이라는 과목을 시험 치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반드시 치르시는 시험은 우리가 겸손한가 안한가를 시험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왜요? “이는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떤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를 알려 하심이다.”

마음이 어떤지를 시험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겸손하여 주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지 아니면 교만하여 순종하지 않는지 알아보신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곧 순종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겸손은/ 곧 순종이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든지 겸손한 자를 쓰시고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십니다. 그래서 스스로 낮추는 자가 복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했습니다.

또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할렐루야 


그러나 명심할 것은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오히려 대적하신다는 것입니다.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여러분 교만이란 단어의 뜻을 보세요. 驕慢은 ‘뻣뻣할 驕’ ‘거만할 慢’ 자입니다. 교만이란 뻣뻣하고 거만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누가 그렇게 될까요? 대체적으로 돈 있는 자, 권력이 있는 자, 그리고 남보다 더 많이 배운 자 가 그런 증세를 보입니다.

우리 동양 문화는 권위주의 문화입니다. 남보다 뭐든지 더 많은 것이 있으면 그것 가지고 뻣뻣하며 목에 힘줍니다. 돈 있는 자, 힘 있는 자, 배경이 든든한 자, 대부분 뻣뻣합니다. 싸우는 것을 잘 보세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뭐가지고 싸웁니까? 너 몇 살이냐? 너는 에미도 아비도 없냐? 하며 큰소리칩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이 멀리하십니다. 왜일까요? 교만하면 그 교만이 하나님께도 증세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시험에 합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 번 시험합니다. 그때마다 합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훈련시키십니다. 완전히 낮추시고 완전하게 돌리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시는 여러분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시험, 동일한 연단을 하십니다. 그 시험 과목은 겸손입니다. 우리를 철저하게 낮추시어 겸손하게 만들고 그래서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망신도 당하게 해보십니다. 욕도 얻어먹게 해보십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딱 집어 넣어보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내 전문분야에서 당하게 합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으로 건드려 보십니다.

그때 여러분이 합격하려면 겸손이라는 카드를 뽑으십시오. 그리고 낮아지심으로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시험을 받지 않으려거든 좋은 말 하실 때 말을 들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자식에게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할 때 어떻게 하십니까? 처음에는 좋은 말로 합니다. 그러나 좋은 말로 말할 때 안 들으면 그 다음은 골치 아파집니다.

하나님도 겸손해라, 겸손해라, 하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자기 잘나서 잘 나가는 줄 알면 매 맞습니다. 교만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아이들이 부모한테 거뜻하면 큰소리칩니다. 나 죽는다, 나 나가버린다. 요즘 교인도 그 모습입니다. 뭐가 조금 맘에 안 들면 “나 교회 옮긴다. 나 교회 안 나온다.” 아주 어린아이 신앙을 보입니다.

아주 호되게 맞습니다.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시험입니다.

3절~4절을 다시 보세요.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 삶을 인도하셨을까요? 심심해서일까요? 할 일이 없으셔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뭘요?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다.”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것을 적절하게 주시고 베푸시는 분이시다.” 이것을 위해 40년 동안 기다리신 것입니다.


왜 40년 동안이나 갔을까요?

그만큼 그 백성이 고집이 쎄다는 것입니다. 홍해도 갈라놓으셔서 건넜고 반석에서 물도 나게 하셨고 쓴 샘물을 마실 샘물로 바꾸셨는데 그런데도 그 백성은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날마다 만나를 먹이셨고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을 향해 원망 불평이나 털어놓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에 감사와 찬양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중에 그들보다 더 고집이 센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길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광야길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광야는 삭막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장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광야를 피해갈 수 없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광야를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철저한 사랑의 기반 위에서 이뤄집니다. 그럼 우리에게 광야는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요?

1) 광야는 옛것을 벗어버리는 곳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이는 신명기 8장 3절 상반부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상문화에 젖어 있고 그들의 신앙 구조조 우상숭배구조였습니다. 홍해를 건너가면 불과 2∼3주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40년이나 걸린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에 우상을 벗어던지고 하나님 백성답게 훈련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도 옛것을 속히 벗어야 합니다. 우상문화의 때를 벗어야만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40년 아니라 80년도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2) 광야의 은혜 체험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 광야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도 말씀을 통해 은혜를 체험하는 광야 기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믿음생활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먹을 것 넉넉하고 부족한 것 없습니다. 무사태평이고 환난 고난이 남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러기에 말씀으로 자신을 날마다 점검하지 않으면 쉽게 병에 감염됩니다. 그러기에 날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의 만나를 통해 채움을 받았듯이 우리도 하늘의 말씀의 만나를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은혜체험을 해야 합니다.

 

3)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곳입니다.
광야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물도 없고 농사지을 땅도 없습니다. 나무도 없습니다. 불을 땔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물도 주시고 구름도 주시고 불기둥도 주시고 날마다 만나도 내리셨습니다. 40년 동안 그들이 스스로 채운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6년도 한해가 복된 삶을 누리려면 1)하나님 앞에서 낮추십시오. 2)그리고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하시고 채우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신령하고 복된 가나안의 복과 기쁨과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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