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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상한 방법으로 먹이십니다/왕상17:1~7/2006년 5월 28일

 

이상한 방법으로 먹이십니다.

열왕기상17:1~7

2006년 5월 28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목사 설교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7: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7: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17: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17:5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17: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17: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설교:

저는 평소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식사하러 차타고 멀리 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기 위해 십분 이상 움직이면 싫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점심 식사하러 차타고 한 시간을 갑니다. 그러면 가는데 한 시간 먹는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 도합 3시간을 써야 합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도 일용할 양식을 먹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고백하는 주기도문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을 나와서 광야를 지날 때 자그마치 40년 동안을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어 먹이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도 들판에서 말씀 듣느라 배고파 허기진 백성들에게 떡 5개,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굶주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특별히 당신이 쓰시는 종들에게는 반드시 먹을 것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 한사람을 꼽으라 하면 엘리야를 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병거타고 승천한 불의 선지자입니다. 그의 인적 사항을 좀 살펴보면 그 이름이 보통 이름이 아닙니다.

“엘리야” 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에서부터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은 대게 부모가 지어주기에 그 부모도 대단하신 분입니다. 길르앗의 디셉 지방 사람으로서 북쪽 왕국 이스라엘의 최고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선지자로 세워졌을 때는 북왕국 이스라엘은 극심한 우상숭배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아합이라는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바알신 아세라신을 섬기는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 왕을 향해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는 자신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릿 시냇가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한 방법으로 엘리야를 먹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날라다 먹였습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다가 거기서 시냇물이 마르자 하나님이 그에게 시돈 땅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거기서 한 과부를 통해 먹이시겠다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그냥 시키는 대로 갑니다. 시돈 땅 사르밧, 거기는 이방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한대로 가서 연약하기 그지없는 한 과부의 공궤를 받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엘리야를 먹이셨을까요? 왜 하필이면 까마귀요, 과부일까요? 이스라엘에 그렇게 사람이 없었을까요?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교훈하시고 있습니다.


1. 하나님 명령에 절대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 명령에만 순종하면 먹이신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절대자로 섬기기에 그분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이해가 안 되고 수용하기 어려운 명령이라도 무조건 순종합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방주 지으라는 것 말도 안되나 순종했더니 온가족을 살렸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떠나라 했을때 떠났고 아들 바치라 했을때 무조건 순종했더니 쓰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결국 순종을 통해 기적은 나타납니다.


1절을 보세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이 얼마나 어려운 선포입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그대로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엘리야를 죽이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숨으라고 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숨으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차라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하셨다면 말이 될 것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노라.”

그러나 하나님은 숨으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높은 산성이나 멀리 도망가서  숨으라가 아닙니다.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랍니다. 그곳은 엘리야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러면 아합 왕이 금방 찾을 것 아닙니까? 거기 가서 숨으라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야는 명령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엘리야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먹이십니다. 까마귀입니다.


까마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짐승입니다. 이 까마귀는 썩은 고기도 먹고 잡식성이기에 농민들의 농산물을 망쳐놓는 조류입니다. 오합지졸의 오합이 까마귀를 말한답니다. 그들은 지도자는 없지만 절대로 음식은 포기하는 일이 없는 짐승입니다. 그런데 그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먹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짐승의 본능까지도 통제하시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양식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시냇가조차도 물이 말라버렸습니다. 물 없이는 도저히 살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또 다른 곳으로 가라하십니다. 그곳은 사르밧입니다. 사르밧은 아합의 고향 시돈과 가까운 곳입니다. 그리고 더욱이 이방 땅입니다. 그러니 갈수록 태산이라고 더 어려운 곳으로 가라고 명령합니다. 그것도 거기 사는 부자가 먹여 살린다는 것도 아닙니다. 과부, 남편을 잃고 오린 자녀와 외롭게 사는 여인이 먹여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말이 안 됩니다. 그러기 어떻게 즐겁게 갈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부자나 권세자도 아닌 과부를 통해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어떤 희망도 어떤 명분이나 당위성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곳은 가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은 아합의 고향과 가까운 곳으로 호랑이 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그곳 사르밧은 그릿 시냇가로부터 약 120㎞, 약 300리 길입니다. 적어도 6일은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그는 그래도 명령을 받듭니다. 그래서 그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왜 하필 사르밧의 과부일까?”

과부는 말 그대로 힘없는 부인입니다. 남편이 없음으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적어 삶의 여유도 희망도 사라진 사람이 과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부인에게 찾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순종을 보려고 하십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과부에게 율법과 전통과 체면과 두 손과 두 발을 들고 가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그분은 순종만 하면 채우시고 먹이시는 분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해가 되고 합리적인 것에 따르는 것은 순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비합리적인 것에 순종하는 것이 진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간혹 우리의 머리로, 우리의 생각으로 도대체 이해가 안 될지라도 그 명령에 순종하시고 따라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양식도, 앞날도, 자식도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순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내 방법보다는 하나님의 방법이 더 뛰어나고 위대하십니다.


2. 영적 전쟁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 역대 왕들을 살펴보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고 한 기록은 전부 우상과 관련된 왕들입니다. 아무리 정치를 잘하고 경제를 잘 운영해서 백성들을 잘 먹여 살렸어도 우상을 섬겼으면 악한 왕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들어 섬긴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복된 백성 되어야 합니다. 어제 이번 지방자치제 선거 후보자 홍보 책자를 살펴보았습니다. 정치인들이 제 아무리 훌륭한 경력을 자랑하고 능력을 자랑해도 하나님께 겸손히 머리 숙이는 자가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왜 하나님이 엘리야 편입니까? 왜 엘리야를 먹이시고 보호하십니까?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내말이 없으면 3년 동안 우로가 내리지 않는다. 3년의 가뭄, 그러면 이제 죽음 아닙니까? 만약 우리나라에 3년 동안 비 한 방울 안 내린다. 상상을 해보세요.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곧바로 죽음입니다.

왜 엘리야는 그렇게 선포했을까요?

우상을 섬기는 아합의 정권은 사단의 정권입니다. 그 악한 권세에게 3년 동안 우로, 비와 이슬이 안 내린다는 것은 아합 정권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것도 안됨을 알라는 것입니다.


저 북한 정권을 보세요. 김일성을 신처럼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처참하게 처형하니 하나님이 그냥두지를 않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나라는 지옥이다. 우상을 섬기면 심판이 이처럼 무섭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계지도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어느 나라가 잘살고 어느 나라가 못사나 살펴보세요. 왜 유럽과 미국은 잘삽니까? 그들은 백인들이라 머리가 좋았나요? 아닙니다. 하나님 섬기는 나라였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보세요. 과거130년 전에는 교회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나라입니다. 그러던 나라가 이제 동네마다 마을마다 보이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니 이제 백성들이 너무 많이 먹고 잘 먹어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십니다. 엘리야 때도 엘리야는 하나님 사람이 자기 혼자인줄 알았으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의 종들을 먹이시고 입히셨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루하루가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기에 담대하게 우상을 대적하시고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영적 전쟁은 승리와 패배만 있을 뿐입니다. 타협과 양보는 곧 멸망입니다.


3. 하나님이 생명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를 위해 목숨 걸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왜 하나님은 엘리야 편입니까? 왜 갈멜산 영적 전투에서도 하나님은 엘리야 편입니까? 엘리야에게는 우리에게 없는 특별힌 뭐가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분명 우리와 성정이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엘리야만을 도우십니까?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께 목숨을 맡기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 영적인 침체가 닥쳐 광야 로뎀나무 아래에 가서 주저앉았을 때도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그때 그는 죽어 버리지 않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때로는 넘어질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남들이 별 생각 없이 한마디 하는 것이 상처를 받고 낙심하고 좌절하여 살맛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입히시고 먹이십니다.


19장 4~5절에 보면 이번에는 주님이 천사를 보내시어 어루만지시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피곤하고 지치면 쉬고 먹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죽여주십시오. 하며 로뎀나무 아래서 잠만 잡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번도 이 못난 놈아 네가 선지자냐? 하며 책망치 않습니다. 그냥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져 주시고 먹이시고 또 먹이시고 자게 하십니다. 그 덕에 엘리야는 힘을 얻고 일어나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릅니다.

주의 일 하다가 지쳤습니까? 주의 일하다가 사기가 꺾였습니까? 그러면 실컷 주무세요. 그리고 배고프면 실컷 잡수세요.

제게 그래서 사달라면 실컷 먹도록 사 드리겠습니다. 주님도 우리가 힘든것 아십니다. 주님도 내가 낙심한 것 아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상한 방법으로 우리를 먹이십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치 마세요. 정말 힘들면 그냥 주시는 대로 먹고 마시고 쉬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힘을 주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냥 되지는 않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께 목숨을 걸었기에 가능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이 이해 안되는 명령을 하십니까? 그래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만물이 그분의 것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님께 목숨 걸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엘리야를 책임지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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