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감추려는 사람들
마태복음28:1~15
2006년 4월 16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28:1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 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28: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28: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28: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28: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
28: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28: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28:11 여자들이 갈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28: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28: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28: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28: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설교:
제 고등학교 친구에게 제가 전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자기는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했더니 성경에서는 일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뭐가 이해가 안가냐 했더니 ‘예수님의 동정녀 마리아 탄생’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홍해 건넌 사건’, 그리고 ‘베드로의 물위로 걸은 사건’, 그리고 ‘나사로의 부활 사건’,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사건’ 같은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엄마 뱃속에서 양수 속에서 10개월 있다 나온 것은 믿어지냐 했지요. 그랬더니 그거야 자기가 살아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네가 어릴 때, 알지 못할 때 먹이고 입히고 사랑을 베푼 것은 기억나느냐 물었더니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랬기에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알기는 잘 안다. 네가 기억도 없는데, 어찌 그렇게 잘 믿냐? 네가 주어온 자식인지 남의 자식인지 어찌 아냐 했더니 그것은 사랑을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다고 믿지 못하겠다는 것은 더 어리석은 짓입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할 때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도우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놀라운 기적과 그 사랑과 그 은혜를 우리 인간의 머리로 다 이해하려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여러분! 개미가 인터넷을 알겠습니까? 개미가 사람의 사랑을 이해 할 수 있겠습니까? 개미가 사람의 핸드폰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개미가 아닐 것입니다. 개미가 아니라도 100년전 사람들이 오늘날 다시 살아나서 이 세상을 살아보라 하면 살 수 있을까요? 텔레비전, 전화기, 핸드폰, 인터넷, 증권, 아파트, 비행기...... 그때 분이 이해가 될까요? 아마도 정신없어서 미칠 지경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이 이해 안 되는 것은 우리의 인간의 한계 때문이지 성경이 비과학적이기 때문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로 이해가 안 된다고 부정하려고 하고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냥 안 믿어진다고만 한다면 다행입니다. 그것을 부인하고 감추려하고 조작하려고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역사와 하나님의 역사를 애써 부인하거나 감추려 하는 사단의 역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두움과 사망 권세를 잡고 있는 사단은 죽음으로 우리를 얽어 매려하나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 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망이 끝이 아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단은 죽으면 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고 그 부활의 복음을 막고 감추려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그런데 엄연한 부활을 부인하고 그 부활을 감추려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믿지 못해서 감추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행동이 악하고 죄악으로 들어날까 봐 감추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의 몇몇 사람의 행동을 보세요. 그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그의 행동을 살펴보면 오히려 부활은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1. 대제사장의 행동을 보면 부활은 확실합니다.
대제사장, 그는 무덤 옆에 파수꾼 세웠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실 동안 여러 번 부활을 예언하셨습니다. 심지어 제사장들이 알 정도로 여러 번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파수꾼을 세웠습니다.
마태복음 27장62~66절을 보세요.
27:62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27: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27: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27:65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27:66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대제사장들은 믿었습니다. 겉으로는 도난을 우려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혹시 부활하면 다시 죽이도록 하려고 군인을 배치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은 확실한 것입니다.
또한 파수꾼들의 보고를 입 막으려 합니다. 파수꾼들이 되어 진 사실을 자세히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들의 보고를 받은 대제사장의 행동을 보세요. 그들은 놀라지도 않고 찾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군병들로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보고 받았지만 시체가 어디로 갔을지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예상했던 일이 벌어졌구나 하고 장로들과 함께 대책을 강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잃어버렸다하면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생기는데도 그들은 정확하게 보고합니다.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부활을 보고한 군병들에게 입을 막기 위해 돈을 주었다는 사실이 부활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만약 도난설이 사실이면 오히려 파수꾼들이 대제사장에게 돈을 주며 목숨만을 건지게 해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대제사장들이 군인들에게 돈을 주며 부탁합니다.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조작하라는 것입니다. 부활이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는 빌라도에게 처벌을 무마해주겠다 합니다. 대제사장들은 파수꾼들에게 돈을 줄 뿐 아니라 빌라도가 처벌하지 않도록 잘 말하여 주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도둑맞았다면 크게 화를 내면서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이 군병들을 모두 처벌하라고 빌라도에게 요구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처벌을 받지 않도록 해주겠다며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얼마나 사악한 짓입니까? 이것을 보면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파수꾼들의 행동을 보면 부활은 확실합니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시체 도난설은 전혀 부당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주님 무덤을 지킨 파수꾼의 보초근무는 허술하지 않습니다. 당시에 파수꾼들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적어도 4인 일조로 지키는 것이 관례이고 이 사안은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기에 수십 명이 동원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그들이 다 잤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에 시체 도난 설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설혹 잤다고 해도 깨우지 않고 훔쳐갈 수 없었습니다. 서서 졸았을 텐데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려면 여러 명이 동원되어야 하고 무덤 굴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을 굴려내는 데는 큰 소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파수꾼들이 그것도 모르고 잤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들이 자다가 시체를 도난당했다면 모두 영창감입니다.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것입니다. 왜요? 부활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것을 보아 그렇습니다. 당시에 군병들이 대제사장에게 돈을 받은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본문의 저자 마태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요? 추축컨대, 파수꾼 중 누군가가 후에 회개하고 이 사실을 사도들에게 알려주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잠을 잔 사람들이 어찌 훔쳐 간 것을 알까요? 그들이 정말로 잤다면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것을 어찌 알았으며 어떻게 그렇게 소문을 내겠습니까? 책임회피가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입니다. 그런데 단지 시체가 없어졌다고 제자들이 훔쳐갔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제자들 행동을 볼 때 부활은 확실합니다.
그들은 겁이 많았던 자들 입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갈 때 벌써 겁에 질려 도망쳤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죽은 시체를 훔쳐내려고 시도했을 리가 없습니다. 또 시체를 훔쳐내서 부활했다는 주장을 해서 그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주님의 부활 자체를 믿지 못한 자들입니다. 더욱이 무장한 자들에게서 무기 없는 제자들이 훔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들은 부활 소식을 들은 후에도 대제사장을 두려워하여 모일 때는 문을 잠그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요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이 확실한 것은 주님 제자들의 종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목숨 걸고 증언하였습니다.
세상에 거짓말을 위하여 투옥되고 또 순교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들이 훔쳐 놓고 그분이 부활했다고 목숨 걸고 외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제자들 12명중 가롯 유다를 제외하고 나머지 11명은 주님의 부활을 외치다가 순교했습니다. 만약 주님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놓고 그랬다면 그것이 기적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또 제자들이 절도죄로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에 살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그리고 심지어 대제사장 앞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들을 시체 유기죄나 절도죄로 잡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고 잡아다가 채찍질을 하였을 뿐입니다.
이외에도 부활의 증거는 수없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로마 군병이 창을 찔러 확인했으니 예수님의 죽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지금 시체가 없어진 것도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군병들이 도둑맞았다고 소문낼 것이 아니라 소문내지 말고 빨리 찾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한 것이 확실하므로 찾아보아도 찾지 못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몸을 쌌던 수의가 개켜져 있었습니다. 시체를 훔쳐 가는데 누가 수의를 벗겨 개어놓고 나갔겠습니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더 나아가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시신 도난 소문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믿는 사람이 자꾸 늘었습니다. 시체도난 소문이 70년까지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는 3000명씩 또 5000명씩 회개하고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처음에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고 다음에는 못 박으라고 외치던 사람들인데 지금 왜 자꾸 교회 안으로 들어오겠는가? 부활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려고 하지도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 부활을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생은 영으로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다시 오시면 우리도 주님처럼 새 몸을 입고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몸은 땅으로 영은 천국으로 갑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 몸은 홀연히 새 몸을 입습니다. 주님이 입으셨던 그 몸처럼, 주님이 살아나셨던 그런 몸으로 새 몸을 입고 살게 됩니다. 어떤 몸이냐 구요? I don't know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그 몸이 주님의 몸처럼 만질 수 있는 몸이요, 주님 몸처럼 구름을 타고 이용 할 수 있는 몸이요. 그 몸처럼 음식도 먹을 수 있는 몸입니다.
이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그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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