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최일환목사

[스크랩]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면/창18:1~15/2006년 10월 15일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면
창세기18:1~15
2006년 10월 15일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2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지나가지 마옵시고
4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5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 이다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리라
9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오.
13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설교: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기회들이 우리 앞에 찾아오지만 우리는 그것이 기회인줄 모르고 지나치고 살고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차이점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기회로 받아들여 붙잡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그것을 기회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시32: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했습니다.
이 말은 기도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은 홍수가 넘치더라도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고 하십니다.
갈6:10에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루에도 수많은 기회들을 부여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기회를 기회로 알지 못하여 지나쳐 버리거나 무시해 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오늘도 여러분이 교회에 나오신 것은 하나님을 예배할 기회를 잃지 않고 찾아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일부 성도님들은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여 이 기회를 포기한 것입니다. 또는 이 예배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예배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도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한 족장으로서 그가 거느리는 사람만 해도 장정만 300명 이상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가족, 식솔들을 합하면 아마도 1000여명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태양빛이 작열하는 정오시간에 장막 문 앞에 앉아 휴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 앞에 사람 셋이 장막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 곧 달려가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몸을 땅에 굽히고 요청합니다. 성경을 그대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저는 여기서 정말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이렇게 낮은 자세로 그들을 대접하려고 했을까?
손님 대접하는 중동지방의 풍습 때문일지라도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그들이 하나님과 천사 일행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성경에 해석과는 맞지 않습니다.
히13:2“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한 말이 바로 아브라함의 이 사건을 두고 한 말씀이기에 아브라함이 그들이 처음부터 천사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은 그토록 자기 장막 앞에 나타난 손님들에게 저자세를 가졌던 것일까요? 그것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는 그들을 대접하며 섬길 수 있었을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영성 때문입니다.
영성은 병고치고 방언을 말하고 환상을 보고 남다른 능력을 가는 것이 영성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영성입니다.
성경은 성도의 경건생활중에 꼭 갖추어야 할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라고 되어있습니다.
디도서 1: 7~8절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골로새서 3:23~24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은 수직적인 관계만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수평적인 관계의 중요성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섬세하고 자상하게 배려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입니다.

영성에서 나온 겸손함이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쉽게 대하지 않고 귀하게 대하도록 만든 열린 눈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게 복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나요?
1. 그는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내게 찾아오는 사람은 겉으로는 사람의 모습을 입고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곧 주님이 보낸 천사들이고 하나님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히 나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으로만 여겨 귀찮게 여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기회를 놓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들이 어떤 모습의 형태로 여러분에게 찾아오실까요? 거지 형태로, 또는 허름한 형태, 남루하여 가까이 가기 힘든 상태, 노인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최후 심판대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마25:34~40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간에 주님은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찾아오십니다. 주린 자로, 목마른 자로, 나그네로, 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부담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깨어 있다면 부지중에 하나님과 천사들을 대접하는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영성이 잠들어 있다면 그것을 귀찮은 일로, 관심 없는 일로 지나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손님 대접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하라고 교훈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모를 보고 내게 이익이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를 계산기 두들기지  말고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길이 되고 하나님을 삶 속에 깊이 모시는 통로가 되는 것임을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2. 그는 천사들을 기쁨과 감사로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의 접대를 보여 정말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난리를 피웁니다.
6절로 8절을 보세요.
6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리라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얼마든지 종들을 불러 시켜도 될 일인데 당신이 직접 뛰어다니면 난리를 피웁니다.
특별히 8절 하반 보면 음식을 접대하면서 그들 옆에 모셔 서있습니다. 마치 종이 주인의 식탁을 대접하는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이 입장에서 보세요. 얼마나 감동 받겠습니까? 예의를 갖춘 지극정성의 자세, 비용이 문제가 아닙니다.
기쁨과 감사, 자원하는 헌신 봉사, 이것이 하나님과 천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아브라함의 헌신! 아브라함의 섬김! 봉사! 이것이 결국 그를 복된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를 감동의 시대라고 합니다. 고객이 감동하지 않으면 절대로 돈은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감동에는 꿈쩍도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교회들도 성도들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도들을 감동시키기 보다는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아무리 성도들을 감동시킨다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면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감사, 감격이 충만한 섬김, 이것은 아브라함의 예배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천사인줄 모르고 섬겼으나 이것은 예배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이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예배,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헌신이 이루어지면 놀라운 결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결과가 무엇입니까?
예상치 못한 약속과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 헌신을 통해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마음이 상당히 복잡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께로부터 자녀가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지 벌써 24년이 지났는데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을 힘도 없었고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져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경험과 지식으로 볼 때 자녀를 낳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첩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고 그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난 자녀가 진짜 약속의 자녀이지, 이스마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마음이 몹시 초조했습니다. 초조하다 못해 이제는 자포자기 상태였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때, 이제는 내 힘으로는 안 된다 할 그때 주님은 그를 찾아와 약속을 확인하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홀로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힘쓰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안 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라가 왜 웃었겠습니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시기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가 막혀 웃은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봤을 때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은 의외로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그네를 지극정성으로 대접할 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해결해 달라고 요청도 안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러기에 내 문제에만 집중하고 집착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자세는 잘못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문제보다 손님 접대에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정성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열왕기 하 4장에 나오는 수넴 여인을 보세요. 
그도 섬김으로 복 받은 여인입니다. 엘리사 선생님을 지극정성으로 접대합니다. 선지가 자기 동내에 오실 때마다 머무실 집을 마련합니다, 침대와 책상을 준비합니다. 그러니 엘리사가 그의 섬김에 감동을 받아 구하지 않은 아들을 선물로 줍니다.
이 외에도 엘리야를 대접한 사르밧 과부, 예수님을 접대한 마르다 마리아, 바울 사도를 접대한 루디아, 복 받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뛰어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 행할 때에 우리의 당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를 동지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십니다. 소돔성과 고모라 성에 대해 하나님이 알려주십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뭐 때문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감동시킨 것이고 결국 자기 조카 가족도 살리는 복을 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동 받기를 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감동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감동시키면 하나님은 우리 삶속에서 정말 놀라운 사건으로 우리를 감동 시킬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일은 무엇일까요?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