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한응목사

[스크랩] <3.18.주일낮설교> 너희가 나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

(우)340-901    충남 예산군 삽교읍 창정리 183-1번지
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041)337-4865, Fax(041)338-4865, H.P 011-452-4865
홈페이지 : www.amospark.com  &  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  park043@hanmail.net
*************************************************************************************
     2012.3.18. 주일 낮예배 설교문
         【사순절 넷째 주일】
본  문 : 마태복음 20 : 20 - 28
제  목 : 너희가 나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
찬  송 : <새>336, 339, 341, (353) 439, 461.
복음송 : 쓴잔(128)

 

 

       할렐루야!!
       항상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주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이 시간 충만하게 임하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도 지난지 오래고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났지만 지난주간에는 꽃샘추위가 한바탕 우리들 가슴까지 떨게 만들고 지나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농촌에서는 바쁜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남쪽 섬진강 포구에는 매화꽃이 만발하였다는 꽃 소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넷째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님께서 이 주간에 겪으신 일들을 생각하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종교 개혁적 전통에 따라 전통이나 의식보다는 말씀에 근거한 "오직성경"이라는 원칙을 가장 중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교회는 역사와 현실이라는 두 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 두 면의 만남은 항상 전통이나 의식의 창조라는 역사적 산물을 만들어 왔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한국교회의 역사적 산물로 전통이 된 새벽기도회는 50년대 까지는 별로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거의 전통이 되어버린 우리 한국 교회가 만든 역사적 전통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순절특별새벽기도는 그 의미를 한 번쯤 되새겨 볼 만합니다.
        "우리들이 해마다 지키는 이 사순절 기간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당하신 죽음과 고난을 명상하며,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새롭게 하는 계절입니다, 교회전통으로 이 사순절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훈련의 기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경건 훈련이란 기도 생활과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 일, 그리고 금욕생활과 구제의 생활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이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의 훈련을 하기에 참으로 적절한 계절입니다.
       구체적으로 금식하며, 특히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를 갖는 일과 말씀을 명상하며 주님의 흔적을 생각하는 일, 그리고 자기의 것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하기에 유익한 계절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님게서는 3년간의 공생애의 기간을 마치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의 때가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수난을 당하실 것과 그리고 고난을 당하신 후에 다시 부활을 하실 중요한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그 뜻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말씀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혀 다른 생각들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왕국이 성취가 되면 권세가 자기들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재빠르게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인 살로메가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청을 합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임금이 되신다면 자기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를 주님의 좌우편에 앉혀 주실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주님의 나라에서 대왕의 다음가는 권력 자리에 앉혀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우스운 일은 이 말을 들은 다른 열 명의 제자들이 모두 분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이와 같이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안 하는데 김칫국 먼저 마신다’ 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고난을 당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 물로 주신다고 하였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정권을 잡고 임금이 될 줄로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새로운 왕정을 수립하시고 자기들은 모두 한 자리씩 하는 생각뿐이었지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최후의 길이라고 하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는 두 가지의 주님의 질문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 질문은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그의 어머니인 살로매에게 한 질문이지만 오늘도 우리들의 심령 속에 들려오는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이 예수님의 질문에 우리들은 어떻게 뭐라고 대답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이 시간 깊이 생각하면서 함께 주님의 뜻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1. 주님께서는 “무엇을 원하느뇨?” 라고 물으셨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과 함께 3년간이나 동고동락 하였고 특별히 다른 제자들보다 더 사랑 받는 제자였습니다. 변화산에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비밀까지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진정한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구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구한 것입니다.
        인간들에게는 크고 작건 간에 소원이 있습니다. 소원이 크면 클수록 큰일을 하고 소원이 작으면 작은 사람 밖에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원이 거룩하면 거룩한 사람이 되고 소원이 악하면 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소원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원과 이상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비로소 성취를 할 수가 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모세에게 소원을 묻는다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 고 물으실 때에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대하1:9)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여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당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가 병 고치기 위해서 찾아왔고, 구경하려고 찾아왔고, 하나같이 올바른 소원이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예수님께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아뢰어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구하여야 하겠습니까?

 

(1)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2)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받기를 구하여야 하겠습니다.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3)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합니다.

 

        (마6:33-3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주님께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또 주님께서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도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2.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은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질문에서 하도 어이없는 대답을 듣고 다시 두 번째 질문을 하셨습니다.
       (막10: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이 눈앞에 놓여 있는데 3년이나 따라 다녔다는 제자들이 우의정 좌의정이나 꿈꾸며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는 이 제자들과 살로매를 그래도 주님은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이 질문에 두 사람은 “할 수 있나이다”라고 서슴치 않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우의정 좌의정이 되는 구두시험 정도로 착각하였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주께서 뜻하시는 「잔」과 「세례」를 그 당시 궁중에서 임금들이 받는 황금으로 만든 포도주 잔으로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쓰리고 쓰린 고통의「잔」이요 「아픔」과 「수치」의 세례로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막14:34) 라고 하셨고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 라고 하시고
       또한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50) 라고 하시며, 십자가의 쓰라린 고통의 잔을 불가피 해서 받은 것인데 그들은 대담하게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저들의 잘못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막10:39-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나의 마시려는 잔」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1) 주님의 쓴잔은 십자가의 고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인처럼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할 십자가의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눅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의 잔을 마신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고난의 쓴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포도주 잔을 주시면서「이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14:22절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한과 야고보는 이와 같은 주님의 뜻을 모르고 그 잔을 마시겠다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G.S> 쓴잔(128)
         주님의 쓴잔을 맛보지 않으면 주님의 쓴잔을 모르리
       주님의 괴로움 당하지 않으면 주님의 고통을 모르리
       주님의 십자가 져보지 않으면 주님의 죽으심 모르리 
       주님의 쓴잔은 내 것이며 주님의 괴로움 내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내보물이라 또한 그의 부활 내 영광이리라

 

       이 복음성가는 뇌성마비인 송명희 씨가 작시를 하고 95년 7월에 우리교회에 와서 간증 집회를 하신 당시 김석균 집사님이 작곡을 한 찬양으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찬양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주님의 십자가의 쓴잔을 체험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창정교회의 성도 여러분들도 주님의 쓴잔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쓴잔은 목숨을 대속 물로 주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성체를 희생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래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였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주님께서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실 때 그 주님의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하였던지 모르고 하였던지 “마실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을 하였기 때문에 야고보는 12제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순교를 당하였고 요한은 골고다 산상에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전에 “보라 네 어머니라” 고 마리아를 부탁하였기 때문에 그 후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평생 마리아를 모시고 피난을 다니다가 마리아가 죽은 뒤에 마리아를 에베소에 장사지낸 후 체포되어 지중해 가운데 있는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하여 그곳에서 순교를 당하였는데 12제자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하는 한마디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마5:34)고 하셨고 구약에서는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갚으라”(신23;21)고 하였습니다.

 

(3) 주님의 쓴잔은 남을 섬기는 잔입니다.

 

       본문 26-28절 말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섬김과 봉사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동안 섬김과 봉사의 일생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들도 이 섬김과 봉사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주님의 쓴잔입니다.

 

(4) 주님의 쓴잔인 십자가를 수치와 고난으로만 질 것이 아니라 감사와 영광으로 져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십자가는 가장 잔인한 사형의 방법이었습니다. 사형수들에게 가장 고통을 많이 주어서 그 고통 속에서 죽도록 하는 잔인한 사형방법입니다. 그 형틀의 십자가를 우리 주님이 지셔서 인류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십자가가 수치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에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요, 영광의 십자가요, 축복의 십자가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십자가가 높이 솟아 있고 또 요즘에는 십자가 목걸이도 걸고, 십자가 귀고리도 달고, 십자가 뺏지도 달고 다닙니다.

 


3. 주님의 좌, 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예비한 자들이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3절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너희도 나의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고 물으실 때 요한과 야고보는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을 하였지만 이는 예수님이 가셔야 할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혹 너희가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내가 가는 고난의 길을 가고, 나의 쓴잔을 마실지라도 나의 좌우에 앉는 영광은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 바임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의 쓴잔을 마실 수 있느냐?”
       여러분들은 뭐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비록 야고보와 요한과 같이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은 하지 못하더라도 “주님!!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 지시고 가신 골고다의 길을 나도 가겠나이다”라고 대답을 한다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장차 주님의 우편에 앉게 하여 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주님 가신 길(119장)
1.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길 지치신 주님의 음성

<후렴> 오 나의 주님 용서하소서 죄인 위해 고난 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 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2. 머리-에는 가시면류관 허리에는 굵은 창 자국
   손과-발목 다-찔리신 지치-신 주님의 모습

3. 나의 죄짐을 홀로지시고 피흘리며 걸어가신길
   우리주님의 그-모습은 참사랑의 주님의모습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요한과 야고보에게 하신 두 가지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마음속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그 말씀의 뜻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는 질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밤낮 수고를 하고 있습니까?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진정 주님께서 가신 골고다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아무쪼록 주님 가신 골고다의 십자가의 길을 주님 따라서 올라가는 성도가 되어서 주님의 쓴잔을 함께 마실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를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출처 : 박한응 목사의 설교나눔
글쓴이 : 아모스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