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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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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22. 주일 낮예배 설교문
【부활 후 제3주일】
본 문 : 요한복음 21 : 15 - 19
제 목 : 예수님의 세 가지 질문
찬 송 : <새>212, 321, 323, 324, 341, (461)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평강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어느새 4월도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온 산야를 아름답게 물들이던 봄꽃들이 핀 자리에는 새순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24:32절 말씀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고 하시면서 마지막 말세에 대한 준비를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들은 이와 같이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그날을 준비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오늘 말씀은 지난 주일저녁 예배의 말씀에 계속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비롯하여 야고보와 요한, 도마, 나다나엘, 등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라” 고 하시므로 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다음, 손수 고기와 떡을 구워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느라고 허기지고 지친 제자들을 따뜻하게 먹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일곱 명은 모두가 믿음이라고는 한 푼 어치도 없이 곤두박질을 쳐서 옛날로 돌아가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온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3년 전 처음 주님의 부름을 받고 주님을 따라 나서던 때가 엊그제 갔고 또 그때의 그 열심과 그 믿음은 오간 데 없이 타락하여 버린 제자들에게 주님은 다시금 불러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탈진하여 지쳐 쓰러졌을 때 하나님은 그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불러 다시금 능력을 주시고 사명을 주신 것처럼 지금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주님은 새롭게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지금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일곱 명의 제자들처럼 지치고 낙심되지 않았습니까? 브엘세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지쳐 쓰러진 엘리야와 같이 여러분의 믿음이 지금 탈진되지 않았습니까? 갈릴리 호숫가에 베드로를 비롯하여 일곱 명의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새롭게 불러 사명을 주시는 주님을 이 시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을 만나서 새로운 사명을 받고 능력을 받아 새롭게 출발을 하여야 합니다. 호렙산의 엘리야와 같이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새롭게 용기백배하여 새 출발을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수님은 손수 떡을 굽고 생선을 구워서 모두가 아침 식사를 마치자 심각하게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장차 베드로가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예수님이 없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한 마지막 다짐이었습니다. 또 이 질문을 받은 베드로에게는 마지막 신앙고백이며 또한 마지막 관문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취직을 하려고 어떤 회사에 응시를 하든지 대학교를 가려고 하면 소정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① 먼저 서류를 제출하여 서류 전형을 거칩니다.
② 그 다음 필기시험이든지 실기 시험을 봅니다.
③ 마지막으로 면접을 합니다.
사람들이 어느 회사를 들어가려고 할 때든지 또는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할 때 1차 시험, 2차 시험에 합격이 되었다가도 3차 시험인 면접에서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마지막 관문인 면접시험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 앞에서 면접시험을 본다면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우리들은 항상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 앞에서 한다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실수도 하지 않고 또 범죄도 하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에서 예수를 잊어버릴 때 우리는 실수도 범죄도 저지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관문을 잘 통과를 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낙제를 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수고가 헛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세 번 모두 같은 질문을 하였지만 그 의미는 모두 다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질문을 하나씩 생각하면서 이 시간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1. 첫 번째 질문입니다.
(요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베드로야! 하고 부르지 않고 시몬아! 라고 부르셨습니다. 시몬이란 베드로 이전의 이름입니다. 왜 예수님이 시몬이라고 불렀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 안에 있을 때에 베드로지 예수 떠나면 한 개의 자연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을 지나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 말씀에 저마다 한마디씩 대답하기를 “선지자라고 합니다. 엘리야라고도 합니다.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왔다고도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라고도 합니다. 또는 새로 나온 선지자 중의 한사람이라고도 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다시 묻기를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고 물으시자 기다렸다는 듯이 베드로가 대답을 하였습니다.
(마16:16-19)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시몬의 이와 같은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칭찬하시던 주님! 그에게 반석이란 베드로 이름을 주시던 주님이 왜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불러야만 했겠습니까? 베드로의 상태는 지금 베드로가 아닙니다. 3년 전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기 전 시몬이 되어 있습니다.
① 베드로는 주님을 죽는데 까지 라도 따라가겠다고 하였으나 따라가지 못하였습니다.
② 베드로는 주님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고 하실 때에도 잠을 잤습니다.
③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도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④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야바의 뜰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날 이른 아침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할 때 믿지 못하였습니다.
⑥ 그리고 베드로는 이제 갈릴리 디베랴 바다에 나와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타락한 시몬을 어찌 베드로라고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을 때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에 베드로지 예수 밖에 있을 때에는 베드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닐 때에 교인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지 교회를 떠나면 누가 교인이라고 부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수 안에 있어서 예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그러면 그렇게도 믿음 좋고 예수님께 칭찬을 듣던 베드로가 어째서 이렇게 타락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마지막 만찬을 마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마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고 하였는데 베드로는 깨어 있지 못하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시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마치 제방 둑이 처음에는 가는 구멍으로 물이 새다가 나중에는 감당 할 수 없이 되는 것처럼 베드로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지금 이 시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의 믿음의 제방뚝에 구멍이 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빨리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받은 은혜와 은사가 새나가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지금 빨리 막으면 막을 수가 있지만 그 구멍이 더 커지면 막을 수가 없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주님은 그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마10:37-38)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사랑하는 창정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물으신 이 말씀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2.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두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그의 낙심된 믿음은 회복되지 못하고 디베랴 바다에 가서 옛날의 고기잡이 생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밤새워 그물질을 하였지만 웬일인지 고기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지라” 고 하시므로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더니 큰 고기가 153마리나 잡혀 두 배가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시는 이 자리가 바로 3년 전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부름 받던 그 자리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지만 결국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주님을 만나 뵙고서도 제자로서의 생활을 다 버리고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다가 실패한 이 시간 주님이 찾아오셔서 두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실 때에 결코 베드로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당황하였습니다. 두 번씩 같은 질문을 할 때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두려움 앞섰습니다. 과거의 베드로는 “주여! 나는 주님을 제일 사랑합니다”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대답하기를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Yes my lord. you know I love you)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은 ‘네가 나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려면 많은 고통과 핍박과 괴로움이 있을 터인데 그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 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눅22:31-33)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와 같이 주님께 철석같이 약속을 한 베드로였으나 그 후에 베드로는 가야바의 뜰에서 불을 쬐고 있다가 작은 계집종이 “당신도 저 예수와 한편이다”라고 하는 말에 예수를 부인하였습니다. 그러기를 세 번,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26: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예수님은 이와 같은 어떤 핍박이나 환난과 괴롬을 당한다 할지라도 네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주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진정 주님만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 질문을 하십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대답을 얼른 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베드로는 이제 당황이 아니라 놀라고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베드로의 마음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근심하여 대답하기를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My lord you know everything. you know that I love you) 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세 번째 질문은 베드로가 앞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명을 완수하기에는 십자가의 순교를 당하여야 할 터인데 그래도 그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으며 죽음을 당하면서라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주님의 깊은 뜻이 들어 있는 질문입니다.
(요21:18-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과연 죽기까지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있습니까? 이 시간 주님은 그 대답을 원하십니다. 십자가 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 찬양대가 부른 찬송 한 절을 다 같이 부르겠습니다.
<찬송가 461장 1절>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
주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아멘>
외경 베드로행전 35장에 보면 로마의 황제 네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제 소탕령이 내려져서 로마 병정들이 이 잡듯 삿삿이 뒤지고 있어서 언제 베드로도 잡혀서 죽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베드로 사도에게 애원을 합니다.
‘베드로 사도님, 빨리 이 로마 성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사도님이 순교하실 때가 아닙니다. 만약 사도님이 순교하시면 이 많은 양떼를 어찌하시렵니까?’
베드로는 교우들의 강권에 따라 성을 빠져나가 탈출을 하게 됩니다. 새벽에 로마의 성을 몰래 빠져나가는데 앞에서 마주 오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는데 그 주님이 지금 베드로의 맞은편에서 오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라서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묻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버리고 간 십자가를 내가 다시 지고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로마 성으로 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목 메인 소리로 “주여 안 됩니다. 로마는 내가 가겠나이다.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되돌아 로마 성으로 돌아와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를 하였습니다.
<찬송가 323장 3절>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아멘
베드로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습니까? 바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또 다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죽기까지 십자가 지기까지 나를 사랑할 수 있느냐?” 여러분들은 어떻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고받은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으로 베드로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과 또 주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 사이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사랑’ 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느냐?” 는 질문은 오늘의 모든 인생에게 있어서 주님과의 관계에 가장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사랑 속에서 맺어지고, 사랑 속에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이 모든 인간 생활에 기본 동력이 되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확인을 하신 것이며 또 기독교의 복음 전파에 있어서 최대의 요건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자로 유명한 페스탈로치(Pestalozzi)는 말하기를 “인류의 모든 범죄 행위는 사랑을 잃어버린 절망의 부산물이다” 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데 이 ‘사랑’ 이란 낱말처럼 아름다운 명사는 없습니다. 또 이 ‘사랑’ 이란 단어보다 더 심오하고 불가사의하고 어려운 단어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고전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없는 생활은 무의미한 생활입니다. 사랑이 없는 인간관계는 지속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결여된 종교 생활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실 때에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계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는 진실 된 사랑이 있습니까?
그 사랑이 아직도 식지 않고 뜨겁게 벅차오르고 있습니까?
이와 같은 뜨거운 사랑이 없는 사람은 이 시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믿음으로 변화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사랑을 다시 찾아야 하겠습니다.
미지근하게 식어진 사랑이 다시 뜨거워 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시간 나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실 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담대하게 대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갈릴리 호숫가에서 베드로를 위시해서 일곱 명의 제자들을 다시 불러 잃어버렸던 믿음을 다시 일깨워 주시고, 다시 사명을 주시고, 다시 제자로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능력을 주신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도 잃어버린 믿음을 다시 회복하고, 주님으로부터 다시 사명을 받아, 이 세상 끝날 까지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한 가지 알려 드립니다. 저는 설교를 작성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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