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교회 이동원목사
지난 금요일 저의 집에 권사님 한분이 방문하셨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중에 저의 교회 섬기시는 다른 권사님 가정이야기를 하셨는데 아주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본인도이 자리에 계시고 본인에게 직접들은 이야기가 아니어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름다운 이야기이어서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권사님이 아들이 미국 유학중에 우리 교회가 시작하고 지원하는 코스타에 참석하여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드디어 박사학위까지 받고 귀국하여 삼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부모에게 와서 평양 과기대에 가서 봉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으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공부시킨 자식인데--공부하고 박사 받기까지 7억이나 들은 자식인데하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가정의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가정의 아버지는 변호사 출신이신데 이런 말씀을 아들에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 난 인생을 살면서 돈도 명예도 가져 보았는데 그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는데 너는 아마도 나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네 가는 길을 축복하겠다”
그리고 이 가정의 어머니 권사님이 북한 땅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한 1억을 모은 것이 있었고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기도했는데 아드님을 통해서 드릴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이런 가정이 축복받은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지난 시간 가정 공동체를 구성하는 부부관계의 비밀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가정은 부부관계만으로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가정은 가정생활을 영위하며 자녀를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제 가정 공동체의 또 하나의 중요한 구성원인 자녀와 부모의 관계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각자의 책임은 무엇이겠습니까?
1. 자녀의 책임입니다.
바울 사도는 두 가지로 자녀의 책임을 서술합니다.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순종은 어렸을 때 할 수 있는 것이고
공경은 자녀들이 좀더 성숙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경은 부모의 은혜를 깨달은 자녀들이 적극적으로 부모를 높이고 마음으로 기쁘게 해드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종이 외적인 상태라면 공경은 내면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경이 없는 순종은 결국 불완전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해야 할 이유를 또한 두가지로 지적합니다.
한 이유는 자연법 때문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옳다는 말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강조하지 않는 문화가 없고 이것을 강조하지 않는 종교가 없습니다.
이것을 자연법(natural law)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이렇게 행하다는 것이 마땅하다는 양심의 소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의 소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양심의 소리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부모가 만일 명하는 바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순종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예수 믿지 말라”고 하면 순종할 수 없지요. 이것을 순종하면 “주 예수를 믿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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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모든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골3:20에는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2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에 나누어 쓰여 졌는데 첫 판에1-4계명까지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하는 계명입니다.
두 번째 돌판에는 5-10계명까지 여기에는 소위 인간과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계명입니다.
그 첫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명령을 지킬 때에 자연법에 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divine law)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본문 3절은 두가지 약속을 합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잘 되는 것은 질적인 축복의 약속이고, 장수는 양적인 축복의 약속입니다.
저는 이 약속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지만 같은 삶의 조건에서는 분명한 축복의 약속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보모의 마음속에 자식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부모의 말을 따르면 우리의 삶은 보호되고 축복을 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7명의 자녀들을 훌룽하게 키운 웨슬리 목사의 부인 수산나는 “할수 있으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인생의 성공의 유일한 길입니다”고 했습니다.
2. 부모의 책임입니다.
바울사도는 역시 부모의 책임도 두 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접근이고
또 하나는 긍정적인 접근입니다.
먼저 부정적인 혹은 소극적인 접근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의 표현을 빌리면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결코 자녀에 대한 책임있는 훈련을 기피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훈련이 지나쳐 자녀의 삶에 대한 의욕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의 자녀 훈계의 목적은 행동의 교정과 교정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일어서 가도록 인도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부모들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징계할 경우 그것은 자녀 학대가 되고 자녀의 마음속에는 부모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올바른 징계와 잘못된 학대의 차이는 소위 책망이 끝났을 때 부모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이 있느냐, 분노하는 마음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다시 노력하겠다는 결심이 생겼느냐, 아니면 자포자기의 마음이 생겼느냐의 차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요즈음 많이 읽히는 치킨 수프(chicken soup) 스토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어느 대학생이 친구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막 영접한후 교회에 나가고 싶어 주일에 학교 길 건너에 있는 교회에 나갔다고 합니다.
이 대학생은 아직 교회 문화를 몰라 학교에서 입는 청바지 차림으로 머리를 길게 기른채로 교회를 갔더랍니다.
조금 늦게 갔더니 교인들이 꽉 차있어서 자리를 찾을 수 없자 학교에서 하는 습관대로 앞쪽으로 나가 중앙 카펫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여기 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있었고 이 젊은이에게 눈총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 교회에서 존경받는 80가까운 집사님 한분이 지팡이를 집고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
저런 학생은 우리 집사님께 야단 맞아 싸!
저런 젊은이는 한번은 혼나야 해!.
그런데 지팡이를 집고 천천히 앞으로 나가신 이 집사님은 이 학생옆에 오더니 지팡이를 접고 덜썩 학생곁에 주저앉아 이 학생에게 찬송책을 찾아 보여주며 함께 부르시고 기도할 시간이 되자 학생의 어깨에 손을 얹어 기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교인들은 그 집사님에게서 목사님의 설교이상의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배후에 어느 교인이 그에게 “집사님, 어떻게 그렇게 하실 생각이 났어요”하고 묻자 그는 웃으시며 “자식 기를 때 보니까 그렇게 길러야 하더라구요”대답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 말을 자녀들에게 훈계하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성경은 분명히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 양육의 적극적인 측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교양이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에 대한 학습이라면 훈계는 그릇된 태도에 대해 일관성있고 단호하게 교정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저는 솔직히 요즈음의 젊은 부모들에게는 이런 훈계의 교육이 방치되어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마도 전세계의 아이들중 가장 훈련이 없는 혹은 버릇없는 아이들이 한국 아이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시대의 한국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말씀을 통한 교육 훈련을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의 최선을 다한 기도와 교육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잘못 될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며 그럴 경우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따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고 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10년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올 때 저희가 제일 먼저 한일이 아이들과 의논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두 아들이 다 고등학교 재학중이었고 사춘기 시절 가장 민감한 때이어서 그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사실 아이들의 동의가 하나님의 허락이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은 예상과 달리 쾌히 허락하며 “아빠는 한국에서 더 보람된 목회 사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염려말고 나가세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대화에서 저희 아이들이 자기들이 동의하고 허락했음에도 고등학교에서 대학교 2-3학년 까지 부모님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고 정신적인 방황이 적지 않았는데 두가지 자기들이 부모님이 한국 나가시도록 자기들이 동의한 사실, 그리고 부모님의 지속적인 기도와 사랑, 그리고 어려서 부터의 말씀의 교훈이 아니었더라면 그 시기를 극복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희 큰 아들이 최근 주님과의 깊은 만남속에서 신학교 가기를 결정했고 대학 캠퍼스 동창이었던 한국인 그리스도인 자매와 금년 여름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에게 여러 차례 아버지와 자기의 관계에 대한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중에도 제 가슴에 남는 내용 중에 자기는 괜찮은 자녀라고 늘 생각해 왔지만 주님앞에서 자기의 깊은 내면을 바라보면 “자기는 사실 탕자였다”고 고백하며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편지를 쓰면서 지난 금요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다시 저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원문은 영어로 쓰여진 것입니다.)
“행복한 어버이날에 아빠와 엄마에게
아시다 싶이 미국에서는 어머니 날이 5월 9일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이 5월 8일인 것을 기억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무엇보다 먼저 어머니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일찍이 기독교 철학자 조렌 케엘케골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기를 출산하는 순간에 부르짖는 여인의 고통소리를 들어보라.
생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싸움을 싸우는 한 죽어가는 남자의 몸부림을 지켜보라.
그리고 이렇게 인생의 처음과 끝을 진지하게 바라 본 다음 나에게 인생의 기쁨이 무엇인가를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의 글을 통해 나를 낳아 주실 때의 어머니의 고통이 어떨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 기적의 출생,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을 남자된 제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카툴릭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를 높이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제가 어머니에게 얼마나 고통을 드렸는지 얼마나 기쁨을 주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저를 사랑해 주었고 소중히 여겨 주셨는지 제가 어떻게 다 이해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어머니 제가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안에 있는 모든 숨결을 다해 감사를 드리오며 제게 인생을 살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에 대해 그리고 제게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것에 대해 진정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아빠! 아빠가 나에게 이미 베풀어주신 그 모든 도움에 대해 어떻게 제가 다 글로 감사를 드릴수가 있겠습니까?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제가 어떻게 다 이해할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제가 저 자신의 아이를 갖게 되는 날 그때 비로소 조금은 그 뜻을 알게 되겠지요.
다만 이 시점에서 저는 아빠의 그 무한하신 희생에 대해 영원히 빚진 자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미국에서 공부할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무엇보다 제가 영어로 책을 깊이 자유롭게 읽을수 있도록 자극을 주신것에 대하여도 감사를 드립니다.
서구의 많은 지성사의 책들을 통해 인생의 위대한 신비들을 탐구하는 특권을 갖게 된 것을 인해 감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에게 기독교 신앙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무엇으로 감사 드려야 할지요.
이제 저는 저의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리의 위대한 문을 열고 본격적인 진리의 여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빠, 저는 요즈음 종종 아빠가 없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아빠가 제 인생에 부어주신 그 조건없는 사랑-그 사랑을 기억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을 고백드립니다.
끝으로 아빠, 진주와 저의 결혼을 허락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 결혼이 허락되기까지 인내해 주시고 이해해 주신 것도 감사드립니다.
진주를 저희의 한 가족으로 받아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제 제가 저의 가족의 한 부분인 것처럼 진주도 그렇게 느끼고 있답니다.
다시한번 저희의 결혼을 축복해 주시고 지지해 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시점에서 진주와 저의 결심은 다만 한가지- 부모님이 저희에게 그렇게 좋은 부모이셨듯이 저희도 좋은 부모가 되도록 준비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빠, 엄마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진주와 함께, 아들 황이가. 어버이 날에.“
<설교 적용 질문>
1. 본문에 의하면 자녀가 부모에게 할 도리는 무엇입니까? 자녀된 나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십시오.
2. 본문에 의하면 부모가 자녀에게 할 도리는 무엇입니까? 부모된 나의 어려움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십시오.
3. 각자의 가정이 좀 더 성경적인 가정이 되기 위해 무엇을 노력해야 할지를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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