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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날마다 기막힌 새벽4. - 김동호 목사

 

 

 날마다 기막힌 새벽4. - 김동호 목사

 

  한쪽 귀를 막은 사람

영락교회 집사님 한 분이 포천에 있는 땅 10여 만 평을 기도원 부지로 기증하겠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인천에서 백화점을 경영하던 분이었는데 후에 백화점 내에 교회를 세우고 그곳에서 장로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포천의 땅과 맞닿아 있는 곳이 골프장으로 개발되면서 땅값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17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장로님의 사업은 아주 최악의 상태로 오늘 부도가 날 것인가 내일 부도가 날 것인가 하며 초조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때였습니다.
교회에 그 땅을 기도원으로 기증하겠다고 한 것은 말로만 하신 것이었고 공식적으로 등기를 이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로님은 이 땅을 팔아 부도도 막고 사업 자금으로도 써서 사업을 살리고 기도원 땅은 다른 곳에 사 드리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다급한 처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쪽 마음에서 ‘등기를 이전했든지 안했든지 간에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였으면 이미 하나님의 땅이지 내 땅이 아니지 않은가? 땅값이 올랐다고 그것을 내 땅인 양 내가 팔아서 쓴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셈이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그 장로님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결국 장로님은 기도 끝에 그 땅을 등기 이전하여 교회에 넘기고 말았습니다. 자기는 부도를 만나 도산할 것을 각오하고 말입니다. 그것이 89년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이후에 그분이 망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이름날 만큼 크게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불과 6년밖에 지나기 않은 지금 그 장로님의 백화점은 일년 매출이 1,300억 원 정도 되는, 그 지역에서는 가장 장사가 잘 되는 백화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장로님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분한테 들은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는 하나님께 헌금하고 바치는 일이 좋아서 사업이 어려워 부도의 위기에 있으면서도 어음을 끊어서 헌금을 하곤 했다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에 목사님으로부터 헌금을 해야 할 일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샐까 봐 한쪽 귀를 막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하고 싶어서 한쪽 귀를 막으며 사업을 위해서도 어음을 끊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왜 어음을 못 끊으랴 생각하고 어음을 끊어 헌금을 한 장로님. 나는 그 장로님이 지금보다 백 배 천 배 더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나는 하나님도 같은 마음이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한쪽 귀를 막을 마음이 없습니까?

나머지는 내가
며칠 전 안산에 있는 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그 교회의 목회자는 저와 절친한 관계에 있는 분으로 나보다는 몇 년 연상이시지만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하고 졸업한 동기 동창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존경하는 목사님입니다. 2년 전 부흥회 강사로 우리 교회에 초청하여 집회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품앗이(?)를 한 셈이었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면서 오히려 나 자신이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는데 목사님이 당신 교회의 장로님 한 분을 자랑하는 이야기에 참으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장로님은 건축업을 크게 하시는 분인데 그분은 모토는 ‘나머지는 내가’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헌금을 작정하고 해도 예산에 미달할 경우 그 나머지는 자신이 채워 놓겠다는 정신으로 교회를 섬기신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도 교회가 무슨 헌금인가를 하고 그 헌금이 예산대로 다 됐는가를 알고 싶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장로님이 목사실에 들어오셔서 “목사님, 예산대로 잘 됐으니 나가서 식사하십니다.”하더라는 것입니다.
벌써 계수가 다 끝났는가 하고 의아해 했더니 “만일 모자라면 제가 나머지는 다 헌금할 터이니 걱정 말고 나가서 식사합시다.”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 장로님의 이야기를 아주 자랑스럽게 하셨고 나는 은근히 배아파(?)함 들었습니다.
벌써 여러 해 전 그 교회가 교회를 건축할 때 당시 예산이 8억 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8억 원을 목표로 건축헌금을 했는데 막상 작정된 헌금은 4억 원밖에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장로님께서 나머지 4억원을 헌금하였다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건축하고 번 모두를 헌금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그 장로님의 사업을 축복해 주서서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때부터 장로님은 ‘나머지는 내가’ 하는 정신으로 교회를 섬기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작정과 결심은 장로님이 하시고 그 뒷감당은 하나님이 하시는 구나.’
그 교회는 주일날 장년만 3천 명이 모이는 큰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하는 일의 나머지를 부담한다는 것은 보통 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큰 부담도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지기로 결심하면 그것을 감당하라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나도 ‘예산대로 다 되었으니 목사님 나가서 식사합시다.’하고 팔을 잡아끌 장로님과 목회를 하고 싶다면 그게 너무 과한 욕심입니까?

구시와 골리앗
시편 7편은 다윗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한 탄원시입니다. 다윗은 그 시편에서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자신이 사자에게 뜯기듯이 고난에 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이 무엇 때문에 그리고 누구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시편 7편의 표제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는데 그 표제에는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하고 되어 있습니다.
구시가 누구인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가 베냐민 사람이었다는 것을 통하여 사울과 같은 지파의 사람으로서 사울에게 속해 있으면서 그러한 관계로 다윗을 괴롭혔던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시는 다윗에게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왕이었을 때라면 혹시 모르겠으나 다윗이 왕이 되었고 이미 몰락한 사울에게 속하였던 사람 구시는 다윗에게 별로 위협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구시의 말에 대하여 하나님께 ‘하나님이 나를 건져주시고 지켜주지 않으시면 저가 나를 살 처럼 찢고 뜯을 것’이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당당했던 다윗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찮은 구시 때문에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까? 다윗이 갑자기 겁쟁이라도 되었단 말입니까?
나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매우 중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 바로 다윗의 훌륭함과 위대함이 있었습니다. 만일 나였다면 시편 7편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시 정도의 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나는 하나님께 “걱정하지 마십시오. 구시 정도는 제 힘으로도 충분합니다.” 하고 말씀드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자기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승리할 수 있고 구시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골리앗도 이길 수 있지만 만일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구시에게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에 대한 다윗의 태도도 훌륭하지만 구시에 대한 다윗의 태도는 더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견고한 여리고 성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약한 아이 성을 무너뜨리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구시에게 패하는 일이 많습니다. 여리고 정복한 사람들이 의외로 아이 성에 패배하기도 합니다. 자만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에게도 승리하였고 구시에게도 승리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신은 신뢰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부러진 열쇠
수요일 낮예배 시간이 되어 설교하러 본당으로 올라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몇년 전에 사무실 문을 잠그지 않고 방을 비운 사이 도둑을 맞은 일이 있어 사무실을 나올 때마다 문을 꼭 잠그는 버릇이 생겨서 그날도 역시 문을 잠그기 위해 보통 때와 같이 열쇠를 자물쇠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아까 문을 열 때만 해도 잘 들어가던 열쇠가 끝까지 들어가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힘을 주어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을 잠그지 못하고 교회 사무실에 부탁을 하여 문을 잠그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문을 열기 위해 열쇠를 넣어 보았지만 역시 문이 열리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자물쇠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물쇠를 바꾸어야 되겠다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는 내 열쇠가 잘못되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혹시 열쇠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열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열쇠가 조금 휘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휘어진 것을 바로 잡았더니 열쇠는 언제 애를 먹였냐는 듯 쉽게 들어가고 문도 전처럼 쉽게 열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시편 17편 말씀을 읽었습니다. 시편 17편은 (다윗의 기도 )라는 표제가 붙은 시입니다. 나는 시편 17편을 읽으며 다윗의 기도에 대해서 묵상하고 그 말씀을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윗은 찬송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늘 하나님을 찬송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 17편에서 다윗의 기도하는 모습과 자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중에서도 첫째가 바로 1절이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정직함을 들으소서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정직함과 거짓 없음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어제 열쇠 때문에 고생했던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열쇠가 휘어지면 문이 열리지 않듯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정직하지 못하고 구부러져 있으면 기도도 이루어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늘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였기 때문이며 기도의 응답을 늘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기도의 응답을 늘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기도의 열쇠가 휘어지지 않고 늘 반듯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문을 열기 위해 늘 자신의 열쇠가 휘어지지 않았는지 살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편 17편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때에도 자신을 살펴본 후 자신의 기도 열쇠가 휘어지지 않았으니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나의 기도 열쇠를.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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