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기막힌 새벽7. - 김동호 목사
어떻게 항상 기쁠 수 있는가?
신앙인들의 가정에 가장 잘 걸어 놓는 말씀 중에 하나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 - 18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좋아하며 또한 자신의 삶이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사람이 늘 기쁠 수 있으며 언제나 감사만 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마음속에 작은 회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가 팔이 부러졌는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하나님께 ‘하나님 팔 부러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를 하였답니다. 옆의 사람이 듣고 팔 부러진 것이 무엇이 감사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냥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으니 무조건 그렇게 기도한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럴 때 머리나 허리를 다치지 않고 팔만 부러진 것이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오른손을 다치지 않고 왼손을 다치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 마음도 다 귀한 믿음의 마음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좀 억지다(?)싶은 생각이 없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성공하는 때도 있고 실패라는 때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일이 잘되는 때도 있고 잘 안 되는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성공하면 기쁘고 실패하면 슬프며 일이 잘되면 감사하고 잘 안 되면 감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렇게 나타나는 현상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일에 성공했다고 그것이 늘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통하여 성공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때 우리는 진정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해도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아니하고 제 뜻대로 그 성공을 이용해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 성공은 오히려 자신의 삶을 망치게 하여 결국 그 때문에 실패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하여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큰 근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성공했기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실패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는 괴로운 것일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괴로운 가운데서도 실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깨달아 그것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면 이는 단순한 실패가 아니고 오히려 삶의 기회가 되어 더 큰 성공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진정으로 감사와 기쁨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도 바울과 같이 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알게 되어 항상 자족하며 ‘언제나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기쁨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 만사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살면 높은 산에 살아도 또는 거친 들에 살아도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과 같은 축복을 받습니다.
기쁨과 감사는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주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4편 7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내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충성할 때보다 더하나이다” 아멘.
쉬지 않고 기도하여 세상만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되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 바울과 같이 언제나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주께서 마음에 두신 기쁨으로 이 세상을 천국으로 사는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고난과 부르짖음
어느 교회에 여러 해 동안 시무하시던 목사님이 교회를 사임하시는 등 어려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갑자기 사임을 하시게 되자 그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200여 명의 제직들이 모였습니다. 보통때 불과 20여 명의 제직들이 참여하던 것을 생각하면 거의 모든 제직이 다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교회의 비상을 인식하고 어려운 때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기 위하여 외부에서 강사까지 초빙하여 특별새별기도회까지 열었었고 새벽마다 교인들이 가득가득 차서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보통의 경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교회의 중직자들이 묘여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교회는 회의를 하기보다 특별새벽기도회를 열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문제에 대처한 결과 그 교회는 어려운 문제를 잘 넘길 수 있었고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되어 당회로부터 모든 교인들의 믿음이 더 돈독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요즈음 우리 한국 교회는 기도보다 회의를 더 잘하는 교회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의 어려운 일은 회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풀어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의 문제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면 고난당한 것이 유익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만큼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 때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그것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언제나 고난을 당하여야만 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은 좋으나 그 응답을 받기 위하여 언제나 고난을 당하기 전에 미리미리 하나님께 부르짖는 생활을 한다면 고난 없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위에서 이야기한 교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그 교회는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새벽기도회도 잘 모이지 않았고 제직회를 열어도 잘 모이지 않던 교회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자 그 교회와 교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새벽기도회도 열심히 하였고 제직회와 당회로도 열심히 모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미리 열심히 새벽기도회도 하고 제직회나 당회도 아주 성심성의껏 잘 하였다면 그와 같은 고난 없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교회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매맞고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소에 잘해서 매를 안 맞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고난당한 후 부르짖지 말고 미리미리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고난을 예방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어 편안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편안할 때 기도하면 어려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나 편안할 때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려울 때만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평생 고생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왕에 기도하면서 살아야 한다면 편안할 때 기도하기를 시작하여 평생 편안한 삶을 누리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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