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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삼환목사/진리 안에 사는 사람 (요한3서 1:2-4)

김삼환목사/진리 안에 사는 사람 (요한3서 1:2-4)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재판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모
든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로마총독에게 예수를 넘겨주면서
십자가에 못 박기를 강요하였습니다. 그때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한 이야기가 몇 가
지 요한복음 18장에 나옵니다. 유대인의 제사장이 너를 내게 넘겼다 너의 죄가 무엇
이냐 네가 무엇을 했느냐. 그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럴 것 같으면 천군 천사들이 나를 지켰을
것이고 오히려 너희들이 멸망을 당했을 것이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
다. 그때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너를 왕이라고 해서 여기에 넘겼는데 그러면 너는 왕
이 아니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 말처럼 내가 왕이다 내가 이 왕 때문에
이 땅에 왔다 그러나 나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러 왔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
를 듣느니라. 그때 빌라도가 진리가 뭐냐고 묻습니다. 도대체 진리가 뭐냐 이런 질문
을 합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진리를 찾은 경험도, 진리에 대
한 고민도, 탐구도, 노력도 없었던 지도자입니다. 출세 성공만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
지 않고 자기 권력에 오직 우상처럼 숭배하며 살아온, 자기자리 만을 지키기 위해 수
단방법 가리지 않았던 사람인 것입니다. 많은 정치가의 길을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
중에 역시 빌라도도 그런 류에 속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가
뭐 그렇게 중요하냐, 자신이 지금 죽게 되었는데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오히려 이
말 속에는 비웃음 소리가 가득히 담겨져 있습니다.

  너는 지금 죄로 말미암아 고소를 당해 죽게 되었는데 진리가 먹여주고 살려주느냐
진리가 너의 문제를 해결하느냐 나를 보아라 진리가 없어도 내가 얼마나 출세하고
잘 사냐. 빌라도는 진리에 대해 비웃었습니다. 진리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진
리를 따라갈 수 있는, 진리의 주님이 앞에 서셨지만 그는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이거
나 겸손하지 않고 진리를 짓밟고 진리를 무시하고 진리의 주님을 유대인들에게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진리를 짓밟는데 대해 마음이 괴로
웠는지 나가서 손을 씻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무시하는 자는 진리의 심
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날마다 외우는 신앙고백에 예수
님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
리를 모르는 죄, 진리를 비웃고 진리를 내려다 보로 진리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죄값으로 그 자신이 버림을 받고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 이 세계 역사 속에 아니 우리 나라에도 얼마나 권력이 전부인 줄 알
고 자기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또 그 아래 맹종하던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많은 사람
들이 진리를 따라가는 수많은 주의 종들을 얼마나 짓밟고 비웃고 욕하다가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오히려 본인들이 여지없이 짓밟히는 이런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영원하고 살아있으며 진리는 완전하고 거룩하
며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하고
진리를 귀히 여기며 진리 앞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은혜 받은
사람이요 존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사도 요한이 성도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이렇
게 내가 늘 기도하겠다 이것은 부모의 마음이고 본인의 우리의 소원이고 또 모든 주
의 종들이 성도들을 향하여 날마다 비는 축복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는 정말
건강이 귀합니다. 건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우리가 건강의 축복을 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도 병들면 그는 온몸
이 힘을 잃어버리고 부끄럽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매일 오늘도 몸이 아픈 분들을 위
해서 기도를 했습니다. 저에게 기도를 받으러 옵니다. 늘 웃던 분도 힘있고 큰소리
치던 분도 병이 들었다 하면 벌벌 떱니다. 수술을 앞두고 안 떠는 분이 없습니다. 정
신병자 외에는 다 떨게 되어 있습니다.

  건강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또 우리가 형통하고 잘 되는 것 중요합니다. 모든 일이
잘 되고 부족함이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이게 우리의 소원이요 모든 인류가 바
라는 우리의 꿈이요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말씀합니다. 그것은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위의 삶이 또 있습니다. 참 기쁨은 어디 있습니까? "네가
진리 안에 행한다 하니 내가 이것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즐거운 중에 더 큰 즐거움, 예 오늘 우리가 내 자신이 최고의 삶은 진리 안에 사는 삶
이요 우리 자녀들이 우리가 바라는 바는 진리를 따라가는 삶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게 잘 크고 또 공부도 지금까지 하나님이 잘하게
해 주셔서 공부 잘하고 모든 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으로 그의 장래를 믿
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평안을 주고 그것이 나에게 소망을 주는 것 아닙니
다. 얼마 전에 미국에 가 있는 우리 막내가 전화를 했어요. "아빠 나 새 학기를 앞두
고 일주일 동안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올 거예요 전화하지 마세요 일주일 동안 기
도하고 올 거예요" 나는 참 기뻤습니다. 성적보다, 출세한 것보다 기뻐요. 높은 지위
는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도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을 얻어도 잃을 때가 있지만 진리는
잃지 않는 것이고 진리는 영원한 것이고 진리의 길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기도한다
고 하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가 더 즐거움이 없습니다.

  참으로 내 마음이 기뻤던 것은 이 아이는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오므로 아무 유
익은 없겠지만 그러나 영원한, 멀리 있는 것을 잡는 것이고, 앞에 있는 것을 잡는 것
이 아니라 내세의 것을 잡는 것이고, 지금이 아니라 장래를 위한 길이요, 보이는 것
을 위한 길이 아니라 신령한 삶을 위한 길이요, 먹고 마시는 동물적인 욕구를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내 마음을 치료하고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내 영혼을 돌보는 그
런 길고 갔으니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먹고살기 위하여만 살아서는
이것은 빌라도의 길인 것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
라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처럼 살 수
는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는 것도, 모든 봉사하는 것
도 우리는 내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는 마음, 물론 그로 인
하여 우리가 하나님 전에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궁극적인 목적은 진리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따라가고 진리를 얻고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주의 전에 나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진리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진리를 사모하고 진리를 존경하
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크고 아름답게 짓고 또 이 교회가 편해서 이 교회에 나
와서는 안될 것입니다. 적은 교인,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다
할지라도 진리를 따라가는 삶은 거룩한 삶이요 영광스런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의 주님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진리를 위하여 사시고 스데
반이나 사도 바울이나 모든 제자들이 진리를 위해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진리 안에
서 진리를 귀히 여긴 삶 들 이었습니다. 잘 입거나 잘 먹거나 잘 살지 못하였지만 그
들은 태양같이 빛나게 되고 영원히 빛나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어려움은 다른 어려움이 아닙니다. 정치는 정치가가, 백성은 백성,
기업은 기업가대로 오늘의 유익을 위해서 빌라도 같이 살아가는데 문제가 있습니
다. 더 잘살고 더 잘입고 더 잘먹고, 내 이런 삶의 문제만 없으면 그런 것 조금은 괴
롭기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밀어주는 사람이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가 찾는 사람, 찾는 길, 우리의 오직 바라는 것들이 진리에 매력을 얻고 진리를 따라
가는 길이 아니라 육을 위한 길이요 일시적인 세상의 향락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기둥은 진리의 기둥이요 진리의 집이어서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다 일순간에 빌라도와 같이 그의 의
자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의 주님이십니
다. 요한복음 14장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는 "내가 진리를 증거하러 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수
많은 진리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
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요한복음 14장 17절, 15장 26절, 16장 13절에 말씀하
고 있습니다. 진리의 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임하지 아니하는 것이고 누구나 받
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를 귀히 여기고 진리를 따라가고 진리 앞에 순종하는 사
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이유가 성령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듯이 누구나, 아무 곳에서나 가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는 없습
니다.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가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 앞에 지금 서 있고 진리 앞에 앉아 있는 것입
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에
게 가르쳐 주신 이 진리는 철학적인 진리도 아닙니다. 자연과학적인 진리도 아닙니
다. 도덕적인 진리, 학문이 가르쳐 주는 그런 진리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추
상적이거나 명상적인 그런 지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보편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일
상적인, 우리의 생활에서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그런 반딧불 같은 그런 진리가 아니
라 영원한 진리요 절대적인 진리요 참된 진리인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
이 따라가는 이러한 진리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철학적인 진리는 끊
임없이 인간의 문제를 더 어렵게 해 주고 오늘날까지도 철학은 인간에 대해서 어느
것 하나도 답해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어디를 가야합니까? 인생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이
숙제는 남아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이 모든 진리
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인간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진리도 대답할 수 없
습니다. 죄의 문제, 영혼의 문제, 내세의 문제, 천국의 문제, 지옥의 문제, 자녀의 문
제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 생사에 대해서 이
세상의 진리는 대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대답
하시고 이러한 문제 앞에서 확실하게 답을 해 주고 해결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빌라
도는 그까짓 진리 그런 진리 자기도 많이 들었다 그까짓 진리 그게 살려 주냐, 예수
님에게 이렇게 조소하였습니다. 로마는 헬라를 정복했기 때문에 헬라의 철학을 로마
사람들도 다 영향을 받아서 모이면 모두 철학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변증만 끊
임없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고 그 문제는 자기의 삶에 조금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지도자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플라톤은 '모든 신비, 인간의 문제를 밝혀주는, 모든 것을 명백하게
보여 줄, 신으로부터 한 말씀이 오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고백했습니다. 막연하게나
마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이런 사변으로나 철학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고
백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끝없이 가도 인간의 길은 보이지 않고 좁고
더 좁습니다. 어떤 길도 문제는 점점 더 좁아지게 되고 어두워질 뿐입니다. 우리 주
님만이 우리의 문제를 대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대답하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세의 문제를 해결하고 죽
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마귀의 문제를 해결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
게로 오라" 고 했어요. 그 만이 우리의 빙산을 녹게 하며 잔잔한 호수로 인도하여 주
시고 칠흑같이 어두운 우리의 앞날을 시온의 대로로 영생으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합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아무
소망이 없는 우리에게 생명의 봄이 되게 하시며 사망에서 우리를 생명으로 옮겨 주
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한 발걸음마저도 어떠한 발걸음이라도 실족
하지 않게 그는 우리를 동행해 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내 모든 형편을 다 아셔
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 마음에는 위로와 소망과 평안과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삶에는 새 소망을 주셔서 열심을 주시고 정직하게 하시고 부지런하게 하셔서 우리
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
는 참 진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의 주님
이십니다.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대로 그런 길로 가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는 귀
신을 내어쫓고 오병이어를 오천 명을 먹게 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시면서도 자
기 집 하나를 짓지 않으셨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다 고치시면서 병원하나 만들지 아
니하고 주머니에 돈 하나 채우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권력을 다 가질 수 있
는데도 어떤 권력도 탐내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십자가를 짊어지시
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면서 채찍에 맞으셔서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운명
하셨습니다. 그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
의 문제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십니다.

  제가 스위스에 가 보니 시계가 있는데 시계가 속이 다 들여다보여요. 차고 다니는
데 전부 안에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다 보입니다. 독일에 가서 벤츠 자동차를
보니까 자동차를 속을 다 보이도록 겉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참 신기합니다. 제가 그
런 여러 곳에 가 보았어요. 여러분, 인간의 속을 보여 주실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학
문이 지식이 철학이 우리의 속 우리의 실존 내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님의 사랑과 주의 능력만이 나를 보게 하고 너를 보게 하고 내
문제가 무엇임을 환하게 벌거벗은 것처럼 나를 드러내어서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바
울이 말한 것처럼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시
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비추어주시는 거울이며 주님만이 우리의
참 모습을 보여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진리의 주님이십니다.

  요사이 얼마나 X-ray가 발달해서 위 속으로 호스를 넣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것
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혈관 속으로 넣어서 사진을 다 찍습니다. 얼마나 이런 기술
이 발달했는지 모릅니다. 인공위성이 북한에 지금 미사일을 만들었다고 미국 신문
에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데서도 모르는데 미국에서는 다 알고 미사일을 지
금 어디에 새로 만들어 또 시설을 했다고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세상의 인간이 갖고
있는 지식이 이렇게 모든 것을 알면서도 자기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진리는 인간의 진리가
아닙니다. 주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가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
닙니다. 주님의 능력과 지혜는 너무 크고 높아서 측량할 수 없다, 깊고 넓은 하나님
의 지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있습니다.

  어떤 강가에 살던 개구리 한 마리가 우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우물가에 있는 모
든 개구리들이 깜짝 놀라 모여들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네 저는 한강에서 왔
습니다. 한강? 한강이 어디 있냐, 요 옆에 있습니다. 한강이 커? 큽니다. 이만해? 이
보다 훨씬 더 큽니다. 어느 정도 크냐? 개구리가 한 마리 나와서 점프를 하면서 이 정
도로 크냐? 아닙니다. 그 정도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런
강이 어디 있어, 이 우물보다도, 이렇게 뛰는데 더 큰 강이 있어? 훨씬 더 큽니다. 개
구리 한 마리가 헤엄을 하면서 이 정도로 넓어? 이건 비교도 안됩니다. 나는 하루종
일 헤엄쳐도 끝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깊고 넓은지 모릅니다. 웃긴다 그런
강이 어디 있어, 개구리 한 마리가 배에 바람을 팍 넣으면서 이만해? 그 보다 훨씬
더 큰 물고기가 있습니다.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다 합해도 당할 수 없는 물
고기가 있습니다. 웃긴다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게, 개구리 한 마리가 양쪽 네 다리
를 쩍 벌리면서 이만해? 그보다 훨씬 더 큽니다.

  우물가에 있는 것으로는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이 땅
에 있는 어느 것으로도 하늘에 있는 진리를 설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진리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
은 땅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
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하나님의 큰사랑, 큰 은혜, 하나님의 영원하고 참된 진리, 그러므로 우리가 갖고 있
는 진리는 참 진리도 아니요 영원한 것도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어디 있습니까? 경제의 문제도 정치의 문제도 아닙니다. 오
늘 많은 사람들이 참 인간성 참 본질적으로 진리를 무시하고 살아가는 빌라도의 길
에 있는 것입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습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것
입니다.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무시하는 사
람은 진리이신 주님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것
같으면 그런 길을 걸어가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
는 것은 진리를 외면하고 살아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진리를 무시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우리의 삶을 우리
의 가정을 우리의 생활을 진리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할 때에
인물이 얼마나 예쁘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이 남편이, 이 아내가 진리에 대해 고민
하는 사람이냐 참된 것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는 삶이냐 이런 것은 그까짓 거 살면
되지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결혼은 하
는대로 무너지고 오늘 우리의 삶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기업을 하더라도 적어도 진
리에 대하여 고민하는 기업이어야 그 기업이 영원히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제게 존경하는 어떤 목사님이 계십니다. 정말 우리 교계에 가장 훌륭하신 분이십니
다. 며칠 전에 저하고 식사를 하고 제가 호텔에 모셔드렸습니다. 이 어른이 70이 넘
으셔서 80이 가까이 된 노인입니다.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제가 차로 모시고 가니까
목사님이 그래요. 김목사, 마누라 자랑하면 모자란다고 하는데 내가 평생에 마누라
자랑 하나 해야 되겠네, 우리 집 사람이 암이 걸렸네, 암 진단을 받아 죽게 되었는데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불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얼마 전부터 움직이는
데 첫 번째 있는 패물을 돈 될만한 갖고 있는 것을 전부 팔고 옷이든 뭐든 전부 팔더
래요. 그러더니 조금 불안해지는 것 같더래요.

  얼굴이 이상하게 근심이 있더래요. 그래서 몸이 아파 곧 죽게 되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는데 하루는 자면서 자기한테 이야기 하더래요. 여보, 내가 이 광주에 30
년 전에 내려올 때 하나님께 기도한 게 있었다는 거예요. 하나님 내가 광주에 와서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좋은 남편을 만나서 이렇게 좋은 주의 종의 길을 걸어가는데
내가 평생에 개척교회를 열 교회 세울 수 있도록 기도했는데 지금 30년 될 때까지 일
곱 교회를 했다는 거예요. 지금 이 세 교회를 못했는데 있는 것 다 처분하니 한 교회
는 도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미 내가 암이라서 얼마 못사는데 당신이 이걸
해결해야 되겠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래요. 생활이 어려운데도 돈을 받아가지고
다 쓰지 않고 조금씩 모아서 최대한으로 모아서 자녀들 교육시켜서 서울대학교, 일
류대를 모두 졸업시켜서 박사가 되게 하고 훌륭하게 교수가 되도록 하고 자녀들을
잘 길렀어요.

  그리고 그것만을 위해 산 게 아니에요. 거기에 또 하나가 있었어요. 진리에 대한 고
민, 진리를 위하여 날마다 절제하며 살아온 삶이 있었어요. 덜 입고 덜 먹고 덜 쓰고
하나님 앞에 늘 한결 같은 뭔가 고민하며 살아온 삶이었어요. 그냥 산 삶이 아니에
요. 이것이 가치가있는 거예요. 자녀를 잘 길렀으면 그건 거기서 끝나지만 그러나
이 사모님의, 이 여인의 아름다운 일은 진리의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
지 않는 거예요. 착하고 충성된 딸아 잘 했다. 진리의 주님이 맞이하여 주실 줄로 믿
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합니까? 그냥 먹고살고 자녀 교육시키고 좋은 대학
을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까? 적은 것이지만 진리가 우
리의 길을 인도하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물 속에 들어가는 다이버들은 깊이 들어
가면 동서남북이 어딘지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가리켜 주는 것이 있다
고 합니다. 이 곳이 어딘지, 너무 깊이 내려오니까 아무 곳도 알 수가 없지만 한 가
지 길은 물방울이 방향이라고 합니다. 나오는 물방울이 뽀글뽀글 올라가는 곳이 있
으면 그곳이 위라는 것을 알게 되고 위로 올라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세상이 넓어
서 정말 가기가 어렵고 방황하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어디에 길이 있는지 우리가 다
그게 그 길 같지만 그러나 진리의 지시는 분명히 있습니다.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구원의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우리가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점은 빌라도의 길입니다. 진리를 무시하고 진리를 짓밟고 혼합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가운데 헤겔이라는 철학자가 있습
니다. 헤겔의 철학의 중요한 것은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다'라는 이 문제가 바로 오
늘의 교회와 오늘 온 세계를 이렇게 혼란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학교 다
닐 때 헤겔의 철학에 대해서 '정반합' 도 사실은 이해를 못하고 그냥 공부를 했었습
니다. 우리가 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헤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아야 합니
다.

  왜 그러냐 하면 공산주의 사상도 헤겔에서 나왔고 오늘날 이 시대에 사실 이 혼란
한 뿌리도 헤겔과 연결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교회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
다. 헤겔 철학의 중심은 진리하고 하는 것은 언제나 변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언제
나 전 세계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이 진리는 발전한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
든 진리, 즉 사실이나 이론이나 사건은 하나의 명제를 부를 수 있는데 이 명제는 반
드시 반 명제를 또 산출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 지나가면 또 하나가 된다는 것,
그래서 하나가 되면 또 반 명제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또 합해진다 그래서 정반합이에요. 쉽게 말씀드리면 역사 속에서 예를 들
어 공화당이라는 새로운 한 당이 들어오면 한 당만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라는 거
예요. 새로운 이 당을 반대하는 정반이 또 생긴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새로운 반명
제 반대되는 당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이 둘이 항상 반대와 정으로 가느냐,
그렇지 않다라는 거예요. 어느 때가 되니까 합해져 버린다는 거예요. 공화당하고 민
주당이 뭐 지금 없어져 버리고 다 합해져 버리고 또 합해져 버리면 또 그냥 가느냐,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또 어느 반대가 또 하나 생겨지게 된다라는 거예요. 요사이
우리 나라도 다 섞여버리는 거예요. 신한국당은 전혀 다른 당이 만들어졌고 또 이 당
은 또 반명제를 또 만들어내어도 지나가면 또 섞여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십년 전의 비 진리는 지금 진리고 이십년 전의 진리는 지금 비 진리라는
겁니다. 지금 진리라고 하는 것도 앞으로 한 이십년 지나면 또 없어져버리는 거예
요. 또 새로운 반명제 하고 뭉쳐져서 또 새로운 하나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또하나.
학문이 다 그렇잖아요. 그러나 기독교마저 그렇게 보아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기독
교가 진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또 새로운 하나의 진리, 반대되는 것과 언제나 합해지
고 없어지게 되고 이렇게 된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하신 것이고 변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무
엇과도 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하 인간에 우리를 구원하실 이는 하나님이 보내
신 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이십 년 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천년
동아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는 기독교를 그렇게 혼합주의처럼 다원주의처럼 그렇게
섞어서 오늘 유럽의 교회는 다 문을 닫게 되고 미국의 교회들도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고 오늘의 교회도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진리를 잃어버리고 교인들이 방황하고 혼
란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을 이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할 줄로 믿습
니다. 많은 사람들은 꼭 교회에만 구원이 있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다 혼합주
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정반합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거야.
기도를 꼭 그렇게 눈감고 해야 되는가? 부모님이 아이들 불러 놓고 눈감아라 하고 주
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이렇게 우리는 혼합주의처럼 여러 가지로 합리적으로 해석
을 하면 안됩니다. 진리를 그렇게 해석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아야되고 기
도를 해야되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전부 다 진리를 흩트려
버립니다.

  설교? 하나님 말씀이 아니야, 그건 목사 말이지 무슨 하나님 말씀이야, 축도? 그것
손들고 하는 게 아니야 왜 목사만 축복권이 있어, 다 축복권이 있는거야, 예수의 피?
다 똑같은 피야.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기독교만이 구원이 있
는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 누구의 이름이든지 이름은 마찬가지야. 이한열의 이름
으로 기도해도 되는 거야. 이순신 성삼문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얼마든지 되는 거야.
우리 나라의 목회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러한 사상에 갇혀 가지고 이러
한 길을 따라가는 분들이 목회자들 가운데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 호주 장
로교회 같은데도, 미국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목사님들 가운데 동성연애하
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왜 여자하고 남자하고 사는 것만 결혼이냐 하는 거예
요. 남자가 남자 사정을 잘 아니까 남자끼리 사는 게 사는 건 마찬가지지 않느냐. 영
원한 이 진리를 다 흔들어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정반합으로 다 만들어버리는 것입
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진리는 그렇기 때문에 지키
려면 진리 안에 살려면 상당한 고민을 해야되고 각오를 해야되고 철저하고 분명하
지 아니하면 진리를 지킬 수 없고 항상 이러한 혼합주의에 빠져서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자에게는 진리가 있을 수
가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심판 때에 남방여왕이 일어나 이 악한 세
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
니라"고 말씀하고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구약성경에 솔로몬이 지혜가 있을 때 이 솔로
몬을 만나기 위해서 시바의 여왕이 저 땅 끝에서 솔로몬을 만나기 위해 왔다는 거예
요. 얼마나 어려운 길이냐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직선거리로 1천 1백 마일이
에요. 자동차 타고 다니는 그런 시대가 아니에요. 계속해서 75일을 걸어 왔다는 거예
요. 학자들에 의하면... 그 길이 어떤 길이냐 사막입니다. 광야예요. 산이에요. 자동
차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흔들거리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그 더운 더위와 광야 사
막에서 75일을 시달릴 때 여자의 몸으로 얼마나 어려웠겠느냐는 거예요. 그러나 찾
아갔다는 거예요. 무엇 때문에? 진리를 찾아갔다는 거예요. 지혜를 얻으려고 갔다는
거예요. 오늘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 이렇게 가지 않고 사모하지 않습니
다.

  그는 왕복 150일, 5개월 동안 진리를 찾아 지혜를 찾아 땅 끝에서 예루살렘까지 갔
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진리를 지키고 진리 안에 살아가
는 것이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빌라도의 길, 앞만 바라보고 현재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은 진리를 무시할 수밖에 없지만 멀리 바라보는 사람은 진리를 소중
히 여기고 진리에 의해서 얻는 것은 어떤 희생이 있을지라도 대가를 지불하고 진리
를 얻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시바여왕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프리카 땅에서 솔로몬
에게 지혜를 얻으려고 왔다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그 믿음을 아프리카에 옮겨 심은
축복의 사람이 바로 시바의 여왕이 되어서 그 이후로 삼천 년 동아 지금 에디오피아
는 하나님을 믿는 나라로 복을 받아 6.25때 우리 나라를 지원할 정도로 복을 받은 나
라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조상이 귀한 조상입니까? 진리를 좇아가는 조상이 귀한 조
상들입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진리를 좇아서 고향을 버리고 저 대서양 바다를 건
너서 정처 없이 따라 갈 때 진리의 하나님이 그 길을 인도하셔서 오늘날 온 세계 인
류를 축복하는 복의 근원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조상이며 어떤 자
녀를 기르며 여러분은 어떤 기업이며 어떤 직장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에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 큰복, 영원한 축복은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하
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 하나라도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눈물 흘리며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언젠가는 진리의 열매를 거두는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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