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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앙의 고수와 하수/롬15:1~4/2007년 12월 2일 주일 설교

신앙의 고수와 하수
로마서15:1~4
2007년 12월 2일 장안중앙교회 주일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설교:
제가 아는 목사님 중에 바둑을 잘 두시는 분이 계십니다. 저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바득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바둑을 아주 즐기십니다. 노회 교역자 수련회 때 저녁시간에 다른 친구 목사님과 바둑을 한번 두기 시작했는데 밤을 꼬박새면서 두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분에게 도전하는 목사님은 초보인 것 같은데 처음 시작할 때 검은 돌 9개를 바둑판에 깔고 시작하는데도 그 목사님을 이기질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9점을 먼저 깔고 시작하면 게임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끝판에 보면 매번 집니다. 제가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왜 9점이나 깔고 집니까?” 그랬더니 그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저분은 고수라 그렇고 자기는 초보자라 그렇답니다. 워낙 고수기에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장기는 길을 좀 압니다. 그런데 장기판에서도 고수와 하수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고수는 길이 보입니다. 그리고 네 다섯 수를 내다 볼 수 있는 사람이 고수입니다. 그러나 하수는 한두 수밖에 내다보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잡으려 합니다. 그러니 이길 수가 없습니다. 고수와 하수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신앙에도 고수가 있고 하수가 있습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는 “생활의 달인” 을 보다 보니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그 달인들은 남들이 감히 따라 하지 못하는 실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달인이라고 불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몇일전에 한번 보니 “신문배달 달인”, “접시딱기 달인” “달걀 깨기의 달인”이 있고 “고무신을 만드는 달인”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그경지에 도달하려면 남다른 노력이 있었습니다. 자기 일에 머리를 쓸 줄 알고, 그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모두가 자기 하는 일을 즐기면서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보면서 우리 신앙에도 고수가 있고 하수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앙생활, 아무나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도 고수가 있고 하수가 있는데 누가 신앙의 고수일까요?

신앙의 고수가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고수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신앙의 고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떻게 해야 신앙의 고수가 될까요?
1.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절 말씀을 다같이 봅시다.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강하다는 말은 “성숙”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어야 영적으로 강한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나요?

1)제일 먼저는 하나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모르면 절대 고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내게 뭘 원하시는지, 하나님은 뭘 싫어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당신을 계시한 성경 말씀을 올바로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숙한 사람, 영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니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이를 살아 계신지 죽었는지 모르겠다며 의심하는 사람은 하수입니다.

2)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내가 나를 모르고 산다면 어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 중에 우리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사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착각 속에서 자기를 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기를 과신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이는 자기에 대해 너무 비관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자기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수하고 그래서 실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고수들은 자기를 올바로 알고 삽니다.
우리는 두가지 측면에서 자기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부정적 측면입니다. “나는 죄인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또 하나는 긍정적 측면으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다. 나는 약하나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어 강하다. 나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이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도 알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그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으로 주님을 닮기를 힘쓰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의 고수입니다.

그러나 하수들은 자기를 모릅니다. 그래서 교만하기도 하고 덤벙대기도 하고 잘난 척하고 장담하기도 합니다. 성령체험 받기 전의 베드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부인할 지라도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장담했습니다. 그 장담은 참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지를 몰랐습니다. 죽음의 위협, 고난을 두려워해서 여인들 앞에서 나는 그 사람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사람, 그는 자기가 설마 그런 사람인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하수였는데 성령을 받고 난후 그는 성숙한 사람,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

3) 자기 사명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 사명에 목숨 걸고 사는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 영적으로 강한 사람은 자기 사명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명에 목숨 걸고 살아가야 신앙의 고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수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하수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로는 그는 새사람이 되었고 결국 고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사도행전20: 24절을 보세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런 고백이 고수의 고백입니다. 이런 고백이 멋있고 아름답습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도 고수입니다. 결국 신앙의 고수는 하나님의 인도를 알게 되고 그 인도하심에 맞게 사는 사람입니다. 

참 고수가 되려면
2. 신앙이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2절을 보세요.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신앙의 연약한 성도들이 누굽니까?
1)믿음이 없어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 어린아이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교회나 다 있습니다. 신앙의 하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연약한 성도들을 누가 섬깁니까? 강한 성도, 성숙한 성도가 섬겨야 합니다.

그들은 왜 어린아이로 분별력도 없고 가치 판단 능력이 없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無知(무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고 구원의 진리도 잘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무턱 대놓고 책망만 해서 될 사람이 아닙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섬겨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한살 어린아이가 똥을 쌌다고 두둘겨 패면 누가 잘못하는 것입니까? 그때는 똥만 잘 싸도 예뻐 보입니다. 그처럼 초신자들은 교회만 나와 주어도 기특한 사람들입니다. 거기다 대놓고 이거해라 저거 해라 그러면 탈이 생기는 것입니다.

2)그들은 매사가 自己中心的(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늘 격려 해주어야 하고 위해 주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하면 박수쳐주어야 합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특별한 관심을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합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으나 그래도 그렇게 해주다 보면 서서히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똥을 싸라 해도 안 쌉니다. 그때는 분별력이 생기고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분별합니다. 
그러기에 이런 하수를 섬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그런 자를 섬기는 사람이 고수입니다.

여러분도 옛날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옛날 내신앙, 주일이 주일인지도 분별 못하고 십일조를 떼먹기를 밥먹듯 했고 집안 볼일 생겼다고 “목사님 나 다음 주에 못 나와요” 당당하게 말하고 가면서도 그것이 어린아이 짓인 줄도 모르고 지냈잖습니까?
그런데 목사도 그런 성도에게는 아무런 말 하지 않고 “잘 다녀오세요.” 합니다.
그런데 좀 성숙한 교인인데 그렇게 말하면 제가 그냥 넘어가질 않지요.
“집사가 돼서 주일도 안 지키고,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복주시겠어, 왜 신앙생활을 그 따위로 하는 거야” 하고 야단을 치지는 못하지만 만약 그런 야단을 맞았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경계를 해야 합니다. 

왜요? 아무에게나 그렇게 야단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책망을 들어도 분별이 가능하고 순종이 가능한 사람, 그런 야단을 맞아도 달게 받을 사람만이 그런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신앙의 고수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하수들을 섬겨야 하고 하수들에게 본을 보여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니 책망 할 수밖에요. 

참 고수는 
3.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신앙생활은 취미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시간 나면 교회 나오고 시간 안되면 못나오는 정도로는 하나님께 기쁨을 줄 수 없습니다. 신앙의 고수들은 고수 수준에서 놀아야 합니다. 하수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수준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앙생활의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신앙의 하수들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기기쁨”입니다.
왜 신앙 생활하느냐? “자기만족”을 위해 합니다. 그리고 복을 받기 위해 합니다. 자기 가정, 가지 자식, 자기 건강, 자기 행복을 위해서 신앙 생활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수입니다. 고수는 달라야 합니다. 고수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유익을 얻도록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우리를 고수라고 인정합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세요.
주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온갖 비난과 욕을 먹으면서도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3절을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할렐루야!
우리 주님도 한 번도 당신 자신을 위해 하신 것이 없습니다. 오직 당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 온갖 고난과 고초를 견디어 내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비난합니다. 제사장,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정죄하며 비난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당신의 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자기만족을 위해 일하셨다면 당장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를 입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이 맡기신 구원 사역을 감당하셔야 하기에 묵묵히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고수들의 길은 힘이 듭니다.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고수입니까? 아니면 아직 하수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러기에 모두가 영적 고수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인정받는 고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고수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고수는 하수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고수는 하수를 사랑하고 돌봐주며 하수가 고수 되도록 돕고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고수라고 자만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면서 “그저 길을 좀 압니다.” 하면서 연약한 성도들을 이끌어 갑니다.

여러분들은 고수입니까? 신앙생활을 몇 십 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고수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만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내가 고수일까요?
마태복음20: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고수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고수는 항상 나의 신앙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각성하는 자입니다. 진정한 고수의 최선 요건이 겸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12:2을 보셔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우리의 참 고수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처럼 참고 그분처럼 견디어 영광의 면류관 받아쓰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출처 :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글쓴이 : 최일환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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