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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겸손의 복(정필도목사)- 벧전 5장5절~6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 달라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게 되는 것은 물론 점점 교회 나오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며, 교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회생활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생활을 잘 해야 은혜를 받게 되고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돈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가정생활도 변하게 되고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밝게 만듭니다. 그러나 교회에 가끔 나올 뿐 도무지 교회생활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좀처럼 은혜 받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가정생활도 변화가 없고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도 변화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기독교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을 뿐더러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교회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교제하게 되며, 함께 봉사하고 일하게 됩니다. 이때 무엇보다도 먼저 가져야 할 덕목이 겸손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할지라도 사람이 겸손하지 못하고 건방지고 방자하고 무례하다면, 빛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에 빛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인데도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겸손은 가장 중요한 덕목인 동시에 가장 높은 덕목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겸손함으로 완성됩니다. 우리의 인격이 훌륭해지고 또 훌륭해지는 마지막 코스가 겸손입니다. 따라서 겸손한 사람은 인격의 최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그만큼 귀하고 복된 것입니다. 겸손 자체가 복이고 겸손함으로써 모든 복을 다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자가 받는 복은?
1. 겸손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어디를 가나 사랑 받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받으려면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살면 얼마 후에는 모든 사람이 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하면 더욱 사랑을 받습니다. 어디를 가나 겸손한 사람은 아름답게 보이고 뭔가 달라 보입니다. 그 사람의 외모를 보나 인격을 보나 학식을 보나 무엇을 보아도 분명히 잘난 사람인데 어쩌면 그렇게도 겸손해 보이는지,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더 훌륭해 보입니다.
특별히 여성들이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겸손해야 합니다. 누구나 여자라면 예쁘게 외모를 꾸미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외모에 치중하는 여성은 뭇사람들의 눈요기 감은 될지는 몰라도 사랑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받으려면 외모를 꾸미는 것보다도 마음의 단장을 겸손히 해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매사에 겸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겸손하다는 것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잠 11:2).
여자는 시집을 가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도 남편의 사랑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다른데서 사랑을 찾으려는 여자는 불행한 여자입니다. 여자는 항상 남편 앞에 머리를 숙이고 겸손하면 사랑을 받습니다. 남편 앞에서 잘난척하는 여자는 미련한 여자입니다. 손해가 많습니다. 남편 앞에서는 알아도 “난 잘 몰라요” 능력이 있어도 “난 당신 없으면 못살아요” 그저 남편을 하늘같이 높이고 당신 덕에 내가 평생 잘 산다고 겸손해보세요. 남자들이 날마다 안아주고 업어주고 발씻어주고 설거지해주고 다해줄 것입니다. 이런 아내를 위해 자기 목숨이라도 줄 것입니다.

 
2. 겸손하면 큰 실수를 범해도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사람은 실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살다 보면 잘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겸손할 뿐 아니라 자신이 큰 범죄를 했다든지 큰 실수했을 때 겸손한 마음으로 겸허한 자세를 보이면 상대방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고 용서 받게 됩니다. 다윗은 얼마나 겸손했습니까? 나단 선지자가 죄를 지적하면서 당신이 바로 그런 죄인이라고 말했을 때,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겸손하면 죄를 범했어도 용서를 받습니다. 살길이 열립니다. 고난이 오고 징벌이 와도 원망불평하지 아니하고 “내 죄를 생각하면 죽어 마땅한데도 하나님께서 이 정도로만 징계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겸손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 도리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한편 강도는 못된 인간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그러나 다른편 강도는 그 강도를 향해, “너나 나나 평생 강도짓만 했으니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마땅한 죄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다르다. 이 예수님은 의로운 일만 하셨다”라고 나무랐습니다. 이처럼 겸손했던 한편 강도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낙원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아합왕은 우상숭배를 심하게 하고 의로운 사람을 죽이고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엘리야를 보내 심판을 예고하게 했습니다. 이때 아합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저가 내 앞에서 겸비함을 인하여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21:29).
이와같이 여러분이 아무리 큰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와 엎드려 회개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긍휼히 여김을 받고 용서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 19:29을 보면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심판은 거만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해야 합니다.

3. 겸손하면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중의 사도요 매우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전서 15:10에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남보다 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모릅니다. 자기가 남보다 잘나서 잘된 줄 알고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자랑하고 교만합니다. 이런 교만한 사람을 향해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라고 책망하셨습니다(고전 4:7).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남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면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남보다 건강하다면 이도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남보다 성공하고 높아졌다면 이것도 내가 남보다 잘나서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날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언제나 생각하고 말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셨습니다. 빌립보서 2:5-8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얼마나 낮추고 낮추셨는지 마치 죄인이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처럼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빌 2:9-11). 이처럼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추신 예수님을 한없이 높여주셨습니다.

참 겸손은 다른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그에게 보내 네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들이 또 네가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 물었을 때에도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너는 누구냐라고 묻자, 세례 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또 묻습니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고 말합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답했습니다(요 1:26-27).
이처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예수님의 신발끈도 풀지 못할 만큼 주님의 종노릇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한 사람이라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이렇게 겸손했던 세례 요한을 예수님께서 높이셔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1:11).
예수님은 스승이면서도 종과 같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해서 제자들을 높이는 참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참 겸손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접하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칭찬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높이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높이기 위해서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높이십니다.
사울왕은 자신을 작게 여기고 겸손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마음이 강퍅해져서 악독해지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잠언 18:12을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4.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고 높이 들어 쓰십니다.
베드로전서 5:5을 보면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겸손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은혜를 사모합니다. 자신의 부족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들은 은혜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잘난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일 낮 예배를 한번만 드려도 괜찮다고 여기고, 자신은 신앙생활 잘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만한 사람들은 은혜를 받지 못하므로 영안이 어둡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허물과 죄악을 깨닫지 못하며 심령이 메마르고 그 마음이 지옥이 되어 삽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므로 영안이 밝습니다. 남들이 보면 훌륭해보여도 자기 자신이 볼 때에는 항상 부족하고 자신의 허물을 알기 때문에 더욱 더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귀하게 들어쓰십니다.
자랑스러운 한국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자익이라는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경남 남해군 이동면 탐정리라는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스스로 김제의 부자 집에 찾아가 머슴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아 그 자신은 물론 주인집까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그곳에 금산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주인 조덕삼과 머슴인 이자익 청년이 영수가 되어 교회를 받들었습니다. 교회를 맡았던 선교사는 여러 교회를 개척하다보니 이곳 금산교회에만 머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교사가 없는 날은 으례히 조덕삼 영수보다 설교에 능한 이자익 조사가 주일 설교를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1908년에 조덕삼과 이자익을 사이에 두고 장로 투표를 하게 되었는데, 투표 결과 이자익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곧 교회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졌습니다. 이때 자기 집 머슴이 장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덕삼 영수는 일어나 “성도 여러분! 참 감사합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서 봉사하기가 어려운데, 젊은 이자익 영수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어 섬겨서 교회를 부흥시킵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말에 교인들이 감동을 받아 그 다음해에 조덕삼 영수도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후 이자익 장로는 선교사의 추천으로 평양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의 총회장에 세 번이나 당선되었습니다. 한편 조덕삼 장로님의 겸손하고 훌륭한 믿음은 자자손손 계승되어 오늘날까지도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어느 군부대에 매 주일마다 성전 입구에 서서 장병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며 주보를 나눠주는 별을 단 장군이 계셨습니다. 계급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군사회에서 최고로 높으신 분의 겸손한 모습으로 인해 예배에 참석하는 장병들이 은혜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겸손한 한 사람 때문에 그 부대가 복음화되고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일군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겸손하게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겸손하면 하나님이 존귀히 여기시고 높이 들어 쓰실 줄 믿습니다.

출처 : 세계화 목회연구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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