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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고
본문 - 고린도전서 1:26-31

본문 - 고린도전서 1장 26-31절(개역개정)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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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은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면 현세천국이 되지만 서로 미워하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서울의 어느 집에서 한 부부가 새벽 2시까지 싸웠습니다. 싸우는 소리에 생후 2달 된 아기가 깨어서 막 울었습니다. 아빠가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기에게 “시끄럽다. 이놈아!” 하면서 텔레비전 리모컨을 던졌는데 아기가 맞아 죽었습니다. 부부가 그 아기를 도봉산에 몰래 묻었는데 그것이 드러나 두 사람 다 구속되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결혼했는데 싸우니 지옥이 된 것입니다. 사랑이 없고, 은혜가 없으면 천국이 되어야 할 가정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보여주어야 할 사명이 교회에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미워하고 다투면 천국을 보여주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지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요즘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세상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교회의 부끄러움 들고 나오면 목사들은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보다는 하나님을 부끄럽게 했던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열이 있었습니다. 다툼이 심한 교회였습니다. 주의 종의 권위를 무시하는 교회였고, 성도들끼리 고소 고발이 있어서 세상 법정에도 섰던 교회입니다. 부끄러운 음행이 있어서 바울 사도에게 책망을 받았던 교회입니다.
   이렇게 부끄러운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고 잘난 척 하는 교만함이 가득했던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무 속이 상해서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했습니다. “너희 중에 잘난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 중에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너희 중에 능한 자가 어디 있느냐? 너희 중에 문벌 좋은 자가 어디 있느냐? 그런데 왜 잘난 척 하면서 자랑하느냐?”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택하심의 지혜를 말했습니다. 27,28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오늘 우리는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택하심의 지혜를 보면서 몇 가지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신 사람들이 약함을 지적합니다. 26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 중에는 지혜로운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미련하고 무능력하고 문벌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려면 먼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잡고 귀하게 써주십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능력의 손으로 붙잡고 위대하게 사용하시면 그 사람은 자기가 잘 나서 위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쓰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들어 쓰시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용하기를 원하는데 바울은 너무 강했습니다. 바울은 그 당시에 최고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최고 학부인 가브리엘 문화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교인 중에 바리새교인이었습니다. 열심이 특심이었습니다. 너무나 잘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을 쓰고 싶었지만 그대로는 쓸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대로 쓰셨다면 바울은 반드시 교만하여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메섹도상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을 꺼꾸러지게 하시고 장님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통해서 눈을 고쳐주시고 성령을 받게 하시고 난 다음에 그를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허락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사탄의 사자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바울은 말하기를 육체의 가시가 되어서 자기를 몹시 고통스럽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한 평생 선교여행을 하면서 사단의 가시 때문에 몹시 고통을 당하며 괴로워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이것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가시를 없애지 않으시고 바울이 기대했던 응답과 반대되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고후 12:7-10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깨달았습니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하여 지는 구나. 내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는구나. 그래서 내가 약할 그 때가 내가 강할 때구나’
   여러분! 우리는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내가 강하면 절대 하나님 의지 하지 않습니다. 내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혈기왕성하고 만사가 형통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약하고 병들게 되면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합니다. 그냥 있을 수가 없으니까 “아이고,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나님, 도와 주세요”하며 매달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약하니 강단에 설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쓰러지지 않고 설교하게 해주세요. 부끄러움 당하지 않게 해주세요.” 바울은 선교여행 할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병들어서 드러눕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 힘차게 걸어 다니면서 복음 전하게 해주세요.”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너무나 약했기 때문에 순간순간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힘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약합니다. 내가 약한 존재이듯 타인도 약한 존재입니다. 그가 어떠한 큰일을 해냈다 하더라고 그 사람 또한 약한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한국교계에서 주목 받는 분들의 실수와 허물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인터넷상에서 그분들과 관련된 부끄러운 이야기를 읽고 내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입니다. 그분들이 제가 볼 때는 대단한 분들인데 그분들도 약한 분들이기 때문에 실수하고 범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정말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서로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면 안 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판단되어지지만 정죄하기 보다는 그 사람도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약함을 통해서 그를 겸손하게 만드시고 그 겸손함 때문에 그를 쓰시게 되는 것입니다.

2. 주님은 약한 우리를 강하게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 약함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27,28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성경에서 하나님께 붙잡힘 받아서 쓰임 받았던 인물들을 보면 다 약하고 실수가 많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약하고 실수가 많은 그들을 강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아브라함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허물과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친척인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가고 그곳에 거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와 같은 실수를 두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취하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쓰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쓰시고, 복의 근원으로 쓰시고, 열국의 아비로 쓰셨습니다. 백 세에 아들을 낳는 기적의 주인공으로 쓰셨습니다. 예수님 족보에 첫 번째로 이름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실수가 많고 허물이 많은 아브라함을 쓰신 하나님이 우리를 쓰십니다. 마귀는 우리를 정죄하지만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강하게 지혜롭게 사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여의도에 예배당을 건축할 때 재정문제가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너무나 힘들어서 자살충동까지 느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기적처럼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재정적인 문제를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하신 사람은 돈이 아주 많은 기업가가 아니었습니다. 뜻밖에도 아주 가난한 할머니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교회를 건축하는데 헌금을 하고 싶었지만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쓰던 놋그릇과 놋수저를 하나님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것을 드리면서도 너무나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성도들이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동을 받은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서 헌금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교회 건축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약한 할머니를 사용하셔서 여의도순복음 교회 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주님이 약한 우리를 들어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시는 뜻입니다.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똑똑해서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도와주셔서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우리가 잘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를 통해서 지혜나 강함이 나타날 때, 그때 ‘내가 대단하다. 내가 잘 났다. 내가 똑똑하다’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강한 사람입니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약한 내가 주님으로 강해졌구나. 미련한 나를 통해서 주님의 지혜가 나타났구나’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는 “여러분! 나는 약한데 주님이 나를 붙잡고 강하게 사용하셨습니다. 나는 미련한데 주님이 나에게 지혜를 주셔서 이런 일을 했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잘 해낼 때는 배후에 역사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의 큰 배 한척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배는 전쟁 중에 중대한 임무를 띠고 가는 것이었는데 가는 뱃길에 독일의 군함들이 처처에 지키고 있었습니다. 큰 위험이 따랐습니다. 영국 기선은 출발하기 전에 위에서 오는 지시를 기다렸습니다. 상부에서는 “무조건 앞으로만 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는 무전으로 연락하고 지시를 받아야지 절대로 선장 마음대로 앞으로 가든지 뒤로 가든지 하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 배가 미국을 향해 대서양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는데, 며칠 뒤에 적군의 함대가 가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무전을 쳤습니다. “적군이 가까이 있음 어떻게 할까요?” 그러니 대답이 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무조건하고 항해를 계속하라.” 항해사들은 얼굴에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그러나 명령이 떨어졌으니까 불안하지만 계속해서 미국으로 미국으로 향해 갔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미국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선장이 갑판 위로 올라와서 땀을 닦고 “� 컥�” 큰 숨을 내쉬고 있는데, 그 배 옆에서 뭐가 시커먼게 쑥하고 올라옵니다. 깜짝 놀라 보니까 영국의 잠수함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배가 오는데 잠수함이 곁에 바짝 붙어서 물속에서 따라왔기 때문에 상부에서는 염려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장은 그 잠수함을 못 보았습니다. 늘 두려워하면서 벌벌 떨고 있었는데 대서양을 횡단하는 내내 잠수함은 그 기선 옆에 물속에서 따라 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눈에 안보이시지만 우리 뒤에 숨어서 늘 따라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여 ‘아~, 내가 겨우 시련을 이겼다.’라고 생각하면 주님께서 옆에서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도와주어서 이긴 것이지 내가 아니었으면 네가 이겼겠느냐.” 우리는 약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강하게 사용하십니다.

3. 우리가 할 일은 주님과 하나 되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주십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면 주님은 우리의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고, 거룩함이 되시고, 구원함이 되십니다. 이 말은 주님의 지혜가 우리의 지혜가 되고, 주님의 의로움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고, 주님의 거룩함이 우리의 거룩함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과 하나 되고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약함을 주님에게 보내고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의 강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교환 장소입니다. 우리의 약함은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에게로 가고 주님의 강함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로 옵니다. 주님의 지혜와 건강과 풍성함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로 오고, 우리의 미련함과 질병과 부족함은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다른 말로 하면 그 십자가의 메시지, 그 십자가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하고 신비한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너무 사랑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이 생겨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차단되었습니다. 사람은 허물과 죄 속에서 살다가 영원히 멸망하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시어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죄악의 담을 헐고 사람을 영생하게 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는 것입니다. 그 피의 공로로 모든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아들딸로 삼아 주시고 구원해 주셔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는 거저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삶속에서 내 것으로 만들려면 내 생활 속에서 마음을 열고 언제나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계 3:20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에 대해서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불신자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주시는 메시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말씀은 불신자에게 주님을 믿으라고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실은 믿는 자들에게 주님과 하나 되어 살라고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계 3:20은 불신자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한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주님을 영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이유는 신앙생활은 주님을 영접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으나 실제의 생활 속에서 계속해서 십자가의 능력을 누리며 살려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대하 16:9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도록 전심으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처음으로 미국 보스톤에서 집회를 인도하실 때의 일입니다. 그 분이 집회를 인도하러 가섰을 때 많이 떨었습니다. 보스톤에 있는 그 한인교회에는 대학 교수와 하버드 대학생, 보스톤 대학생, MIT 학생 등 지성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부족하고 미련한 내가 그 똑똑한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꼬?’하고 덜덜덜 떨며 비행기 안에서도 기도하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강단에 서니 목사님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영으로 꽉 잡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할 때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것이 보였습니다. 말씀을 던지니 사람들이 “아멘. 아멘.”하고, 카페트에 내려와서 기도하고 첫 날 밤에 천국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야! 이번 집회는 굉장하구나. 첫 시간부터 은혜가 임하는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새벽 집회를 인도하러 나갔더니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첫 시간의 80% 정도의 사람들이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설교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사람, � 떪�사람 등 지겨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상한 현상이었습니다. 설교를 하는 목사님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이 목사님은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어깨를 꽉 잡아 주시는 것 같은 든든함이 있었는데, 그날은 혼자 덜덜덜 떨며 고생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목사님께서 이제까지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그런 일은 처음이라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왜 이렇게 어려웠습니까?”, “야, 네가 오늘 새벽에 내게 도와 달라고 나를 의지했느냐? 기도했느냐? 너 혼자 잘 하더라. 계속 혼자 잘 해 보아라.”하시며 막 비꼬시는 것 같았답니다. 아찔했습니다. 전날 밤에는 비행기를 타면서도 내리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말씀을 위해서 계속 “주여! 도와주세요. 주여! 도와주세요” 했는데, 그 날 새벽에는 전날 잘 되었으니 그 날도 잘 될 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냥 편안히 나갔더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여! 도와주세요. 주여! 주님이 손을 떼시면 저는 못합니다. 망합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힘써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보기도를 할 때도, 전도를 할 때도, 교회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학생들은 공부를 할 때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세요. 기억력을 주세요. 사고력을 주세요. 창의력을 주세요. 공부하는 것이 꿀맛처럼 좋게 해 주세요.”하고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며 공부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직장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아이디어를 주세요.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담대함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일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일을 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총리였습니다. 그는 목사가 아니라 총리였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니 80년 가까이 한 번의 실책도 없이 성공했습니다. 다니엘도 목회자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니 정권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총리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무슨 일이든지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렘 17:7,8입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 주님!”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귀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잎이 청청하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을 찾자. 간절히 찾자”
   19세기에는 수술환자의 90%가 수술을 받으면 죽었습니다. 그때는 세균이 있는지 없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쓴 칼을 또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쓰고, 그 피 묻은 칼을 또 다른 사람에게 쓰고 하다 보니 세균에 감염되어서 수술환자의 90%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조지프 리스토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소독학의 창시자입니다. 그분이 주님을 잘 믿는 사람인데 그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환자들이 수술만 받으면 죽는데 살리려고 한 수술이 왜 사람을 죽입니까?” 그러니까 마음속에 조용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칼에 세균이 붙어 있어서 병을 옮기는 수단이 된다. 칼을 소독해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다 비웃는데도 불구하고 조지프는 수술하기 전에 불에다가 칼을 소독시켰습니다. 활활 타는 불에 칼을 집어넣어서 칼을 소독시키고 난 다음 수술했습니다. 그런데 조지프가 수술한 사람은 80%가 다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조지프 리스토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조지프가 하나님을 찾으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지혜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미련함이 주님의 지혜로, 여러분의 약함이 주님의 강함으로, 여러분의 가난함이 주님의 풍성으로 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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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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