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경배를 정죄하신 예수님! (막7:1~8)
예수님은 벳새다 빈 들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해산시키셨습니다.
그 다음 날 예수님은 그의 본 동네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그 전날 예수님이 주신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었던 사람들이 또다시 예수님에게 몰려왔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주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썩을 양식을 구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생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게네사렛 땅으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그 곳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모든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었습니다.
바로 곧 이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을 반박하시면서,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질책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들의 헛된 경배를 정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더라도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면, 이 문제도 아주 심각해집니다. 하나님은 헛된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헛된 경배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일은 선지자 이사야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 당시에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똑같은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똑같은 위험이 도사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했다면 회개합시다. 요4:23 말씀처럼, 이제는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합시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의 경배, 곧 나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1~2절).
막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여기에 먼저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는 크게 네 종파로 나누어졌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파, 그리고 에세네파였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이라 함은 유대교의 한 종파인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들 각 파에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서기관들은 각 교단의 신학교 교수들에 해당하는 셈입니다. 성경에서 그들은 때때로 율법교사라고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랍비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막3:6을 보면, 갈릴리에 살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을 지지하는 헤롯당과 함께 그 문제를 의논했습니다. 분명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막3:22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서기관들이 갈릴리로 파송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바알세불, 곧 사탄이 지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귀신의 왕인 사탄을 힘입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논리적인 설명으로 그들의 주장을 일축해 버리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자신이 사탄보다 더 강하다고 말씀하심으로, 그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또다시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갈릴리로 파송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주 뛰어난 서기관들이 보냄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저 “서기관들”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일부러 “서기관 중 몇”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무튼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책잡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여 없앨 수 있을까?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게네사렛 땅까지 오는 동안에, 그들은 줄곧 그 한 가지 문제만을 골똘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갈릴리에 이르러, 쉽게 예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을 주의 깊게 살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들은 결정적인 기회를 얻었습니다.
막7: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여기에 “부정한 손”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에 살던 사람들을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부정한 손”의 의미를 잘 모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부정한 손”이란 “씻지 아니한 손”을 가리킨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먼저 손을 씻고, 그 후에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위생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으면, 그것은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었습니다. 요2:6에 기록된 대로, 거기에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있었습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을 물이 바로 그 돌항아리 안에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일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보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 사람이 손을 씻지도 않고서 떡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떡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떡”이라는 뜻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 후, 남은 떡을 거둔 것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떡이 가득한 바구니를 각자 하나씩 들고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 사람이 별 생각도 없이 자기 바구니에 남아있는 떡을 손으로 집어서 먹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일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벳새다 빈 들에서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을 때입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손을 씻고 난 후에, 예수님이 주시는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먼저 손을 씻고서 그 후에 먹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눅11:38을 보면, 예수님도 음식을 드시기 전에 손을 씻지 아니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 사람이 실수로 손을 씻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떡 먹기 전에 손 씻는 일을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이 문제가 여간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예수님을 책잡을 수 있는 구실을 충분하게 찾았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3~5절).
막7: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①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막7:4 ②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③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오늘 본문 3절과 4절은 괄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에 살던 사람들은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장로들의 전통을 괄호 속에 넣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두개인들보다는 훨씬 더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튼 바리새인들과 또한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켰습니다. 이 때의 “장로들”은 “조상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시 장로들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호하는 울타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울타리가 빽빽하게 들어섰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있는 울타리에 가리어서, 그 안에 있는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장로들의 전통에 가리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권위가 있는 것처럼 여겼다는 점입니다.
사실 성경에는 떡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말씀이 전연 없습니다. 다만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맞으려고 자기들의 옷을 빨았습니다. 또한 레위기를 보면, 제사장들은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기 앞서서 물로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말씀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경에도 없는 것을 그들의 전통으로 만들어서 지켰습니다. 오늘 본문 3절과 4절은 세 가지의 실례를 들어서 그들이 지키던 전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부정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컨대 부정한 짐승들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시체도 부정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특별한 병에 걸리면, 그 사람은 부정하게 여겨졌습니다. 물론 이방인들도 부정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와 같이 부정한 것들을 만질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서 부정함을 없애야 했습니다. 만일 씻지 않은 손, 곧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그 사람은 부정하게 된다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이와 같이 주장했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람의 손끝에 붙어있다. 그러다가 음식을 먹을 때, 그 귀신이 사람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비록 손으로 아무 것을 만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음식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잘 씻어야만 했습니다.
둘째,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고서야 먹었습니다.
집에서도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잘 씻어야 했습니다. 하물며 혼잡한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얼마나 잘 씻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말 성경은 “물을 뿌린다”고 번역을 했습니다. 마치 시장에서 사온 것들에게 물을 뿌려야 한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뜻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본래의 뜻은 몸을 씻는 것, 다시 말해서 목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온 몸을 씻고 난 후에, 비로소 음식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부정함을 씻는 일에 철저했다는 뜻입니다.
셋째,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었습니다.
여기에 세 종류의 그릇이 나옵니다. 모두 음식을 담을 때 사용되는 그릇들입니다. 잔에는 포도주와 같은 액체를 담습니다. 주발은 액체 음료를 잔에 따르기 전에 담아놓는 주전자와 같습니다. 놋그릇에는 떡과 같은 음식물을 담습니다.
시장에서 이러한 식기들을 사올 때는 물로 이것들을 씻어야 했습니다. 이방인이 이것들을 만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먹을 때마다 이것들을 씻어야 했습니다. 부지중에 이것들이 부정한 것에 닿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몸을 씻고서야 먹었습니다. 또한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었습니다. 이외에도 그들이 지키는 전통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막7: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이 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질문은 순전히 예수님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은 것은 예수님이 그들을 잘못 가르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모든 책임을 지셔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경을 어겼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범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위에 두었다는데 있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어떤 랍비가 감옥에 갇혔을 때, 떡과 마실 물이 조끔만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 랍비는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오히려 그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
이렇듯 장로들의 전통을 따라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부정을 씻어내는 일에 철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었습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책잡을 구실이 충분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셋째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질책하신 예수님입니다(6~8절).
막7: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범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아니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장로들의 전통이 절대적인 권위나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들어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권위와 구속력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라고 질타하셨습니다. 그들의 겉과 속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입니다. 마23:27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을 회칠한 무덤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무덤의 겉은 하얀 회로 칠해져 있어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합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옳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겼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첫 장부터 그들의 외식을 질책하면서, 그들에게 마음을 깨끗하게 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사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하나님은 그들의 헛된 제물을 바라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함께 모여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깨끗한 마음을 바라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마지막 장에서도 같은 사실을 또다시 반복했습니다.
사66:2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사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는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마음으로 드리는 참 예배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첫 장에서 이 사실을 서론적으로 말씀했고, 마지막 장에서 이 사실을 결론적으로 또다시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의 내용들은 모두 참 예배에 대한 촉구입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질타하시면서, 선지자 이사야가 그들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살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예언과 같이 되어서,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잘 드러내었습니다. 곧 이어 예수님은 “기록하였으되”라고 말씀하시면서, 사29:13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경배가 하나님 앞에서 열납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지도 아니하시고, “이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서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지키던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했지만, 그들의 경배는 헛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나옵니다.
막7: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장로들, 곧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장로들의 전통, 곧 사람의 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했을 뿐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경배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는 헛된 경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나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입술로는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듯하면서도, 실제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지 않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사람의 이야기를 더 좋아하지는 않습니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람의 말에 초점을 맞추면 헛된 예배가 됩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참 예배가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십시오.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날마다 거룩하게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이며,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참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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