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권위를 세우신 예수님! (막7:9~13)
예수님이 게네사렛 땅에 계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엿보기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들과 또한 서기관 중 몇 사람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책잡기 위하여, 예수님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장로들의 전통에는 위배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잘 씻어야 했습니다.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온 몸을 씻고 나서야,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음식을 먹기 전에는 음식을 담을 잔과 주발과 놋그릇도 씻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장로들의 전통은 음식을 먹기 전에 씻는 일을 아주 강조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위생상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장로들의 전통에 따르면, 씻지 아니한 손으로 음식을 먹으면 사람이 부정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보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 곧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예수님에게 나아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범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으로 그들의 공격을 물리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을 내세우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오직 성경만이 절대적인 권위가 있음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경의 권위를 분명하게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믿고,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문제점을 지적하신 예수님입니다(9절).
막7: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5절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이 지키는 전통을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너희 전통”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와 같이 표현하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너희 전통”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들이 지키는 전통은 사람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과는 달리, 장로들의 전통 곧 그들의 전통은 결코 절대적인 권위나 구속력을 가질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모든 책임이 장로들, 곧 그들의 조상들에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 탓이 아닙니다. 조상 적부터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핑계를 대지 못하도록, 예수님은 아예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신 것입니다.
아무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핑계가 되어서, 그것이 구실이 되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도 쉽게 거역했습니다.
본시 장로들의 전통은 성경을 보호하는 울타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울타리가 빽빽하게 들어섰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울타리 역할을 하는 그들의 전통에 가리어서, 그 안에 있는 성경이 제대로 보이지를 않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그들의 전통을 모아놓은 것을 미쉬나(Mishnah, “반복”)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미쉬나를 좀더 자세하게 풀이한 것을 게마라(Gemara, “보완”)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곧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친 것이 이른바 탈무드(Talmud, “배움)입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는 손을 잘 씻어야 한다.” 이것은 미쉬나입니다. 이런 규정이 성경에는 전연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장로들의 전통, 곧 그들의 전통일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손을 잘 씻는가? 적어도 달걀 한 개 반 분량의 물이 필요합니다. 그 물을 손바닥에 받아서 손을 비비면서 씻어야 합니다. 단 그 물이 손목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됩니다. 손을 씻은 물은 부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게마라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전부 모아서, 그것들을 항목별로 나누어 체계화한 것이 바로 탈무드입니다. 우리 나라 시중에 나와있는 탈무드는 재미있는 내용만 간추린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히브리어로 된 탈무드는 20여권이 넘습니다. 그만큼 내용이 방대합니다.
아무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보다도 더 권위 있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더 구속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통을 어기면, 성경을 어긴 것보다 벌이 더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마11:28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마23:4 말씀처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성경에도 없는 무거운 짐들, 곧 그들의 전통을 묶어서 사람들의 어깨에 지웠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본시 장로들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지키고 보호하는 울타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전통을 지키려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렸습니다.
말하자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전통을 성경보다도 더 상위에 두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 곧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치명적인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바라보려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말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초점이 잘못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의 초점은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구체적으로 예를 드신 예수님입니다(10~12절).
오늘 본문에서 먼저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렸습니다. 곧 이어서 예수님은 이와 관련된 하나의 구체적인 예를 드셨습니다.
막7: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는 십계명 가운데 제 5계명으로서, 모세가 출20:12에 기록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예수님은 이를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13절에서 예수님은 이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분명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기록했든지, 이사야가 기록했든지, 또는 다른 사람이 기록했든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15:4 말씀을 보면, “모세는”이라는 말씀 대신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라는 말씀으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뜻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경의 권위를 확고하게 세우셨습니다.
신12:32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지키고 행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여기에 무슨 변명이나 핑계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시기 위하여,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경에 있는 또 다른 말씀을 추가로 인용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출21:17 말씀입니다.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이렇듯 예수님에게는 언제나 성경만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가 받아야 할 벌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만무했습니다.
물론 구약성경과는 달리 신약성경에는 그와 같이 혹독한 벌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 함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며,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부모가 나이 들어 일할 수 없을 때, 자녀는 물질로 부모를 봉양해야 합니다. 부모 공경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 계명을 어길 경우에 중한 벌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막7: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너희는 이르되.” 이는 10절에서 시작하는 말씀, 곧 “모세는”하는 말씀과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과, 이 계명을 어길 경우에 받게 될 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경과는 다르게 행하며, 또한 성경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이 지키는 잘못된 전통 때문이었습니다. 곧 이어 예수님은 그들의 그릇된 전통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이 지키던 전통 가운데, 일명 “고르반”(Corban)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어로 고르반은 “예물”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를 해석하여,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졌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그가 가진 재물을 고르반, 곧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기로 서원을 했습니다. 민30:2 말씀처럼, 하나님께 한 서약은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미 고르반을 하기로 하나님께 약속한 재물은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부모가 나이 들어,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와서 그에게 물질적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 때 그는 그의 부모에게 이와 같이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것은 이미 고르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30장을 읽어보면, 이것은 핑계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자녀가 서원을 했더라도, 그 부모가 허락하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자녀는 자기가 한 서원을 이행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니까 잘못된 서원은 고칠 수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비록 고르반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자기의 재물을 계속해서 소유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따금 성전에 올라가서 “이것은 고르반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조금씩 하나님께 바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물론 그 나머지는 자기가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만들어낸 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이 고르반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사람들로부터 못된 자식이라는 질책을 받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막7: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여기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전통이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일단 무엇이라도 고르반이 되면, 그들은 그것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도록 아예 금해버렸습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하나님이 부모보다 더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부모를 섬기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따지고 들면, 이것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려고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하나의 핑계요 구실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만들어, “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는 그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네 부모를 공경하면 안 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렸습니다. 이에 대하여 오늘 본문 앞 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선지자 이사야가 그들 외식하는 자들에 대하여 잘 예언했습니다.
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한다고는 했지만, 그들의 경배는 하나님이 열납하지 아니하시는 헛된 경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성경의 권위를 확신하면서, 성경 말씀을 붙들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 예배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결론을 내리신 예수님입니다(13절).
막7: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조상들로부터 잘못된 전통을 이어 받아서 그대로 준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그 그릇된 전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여 주면서, 남들도 그 어그러진 전통을 그대로 지켜 행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8절 말씀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습니다. 또한 9절 말씀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더니 결국 13절 말씀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였습니다. 점점 더 그 도가 심해졌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 것은 제 5계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그들은 이같은 일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일을 빈번하게 행했던 것입니다.
이미 마가복음 2장에도 그러한 예가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그들은 시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손으로 밀 이삭을 잘라서, 그것을 손으로 비벼서 먹었습니다.
신23:25을 보면,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곡식밭에 들어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딸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날에 대해서는 아무런 예외 규정이 없습니다. 비록 안식일이더라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이의 곡식밭에 들어가서 손으로 그 이삭을 따먹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한 행동이 성경에는 전연 위배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제자들의 행동이 자신들의 전통에 어긋났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출34:21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거두는 일, 곧 추수하는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전통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예컨대 안식일에는 타작하는 일도, 키질하는 일도 금했습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때 제자들의 행동은 여러 가지로 안식일을 범한 것이었습니다. 밀 이삭을 자른 것은 추수에 해당했습니다. 그것을 손으로 비빈 것은 타작에 해당했습니다. 지푸라기들을 버린 것은 키질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물론 제자들은 성경에 위배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전통에 제자들이 어긋난 행위를 했다고 심통을 부렸던 것입니다.
이렇듯 그들은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신들의 전통을 엄청나게 많이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전통이 성경과는 상충이 되는데도, 그들은 그들의 전통이 전부인 줄 알고서 오로지 그들의 전통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세우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성경의 권위를 무너뜨렸습니다. 결국 그들의 종교, 곧 유대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종교요, 성경의 권위를 짓밟는 종교였습니다.
결론은 자명합니다. 유대교는 거짓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교를 정죄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교를 대신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그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교회로 하여금 성경의 권위를 확고하게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빌3:5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도 본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장로들의 전통에 사로잡혀, 그 전통을 지키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심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빌3:8 말씀을 보면, 그는 과거의 자랑거리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그가 이전에 힘써 지키려했던 장로들의 전통도 들어있었습니다.
그 뒤로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오직 성경만을 힘써 전하며 가르치기를 고집했습니다. 그는 성경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바울도 성경의 권위를 확고하게 세웠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래 된 교회일수록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의 역사를 자랑하지 맙시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자랑합시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셔서, 친히 역사하심을 자랑합시다.
또한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 하더라도, 전통이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전통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이며 영원불변합니다. 그러므로 전통을 내세우지 말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도록 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다가 멸망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는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믿읍시다. 성경 말씀을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깁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늘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의 칭찬을 받으며, 예수님 안에서 복되게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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