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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69-75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20세기 초였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여객선 한 척이 영국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배는 선실에 물이 차더라도 부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도록 특수하게 설계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배는 절대로 침몰하는 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1912년 4월 14일, 그 배는 2,200명이 넘는 많은 승객을 태우고서 첫 항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배는 영국을 출발해서 대서양을 건너 미국의 뉴욕 항구로 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덧 밤이 깊었습니다. 배는 대서양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들떴던 승객들의 마음도 이제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처를 지나가던 배에서 그 배로 무선전문이 날아왔습니다. 전문의 내용은 항로 앞에 큰 빙산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선사는 그 전문을 받아 쥐고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이 배는 그까짓 빙산 따위에는 끄떡도 하지 않을 배야!" 그러나 똑같은 전문이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날아왔을 때, 무선사는 어쩔 수 없이 전문을 들고서 선장에게로 갔습니다. 선장도 그 전문을 받아 쥐더니 픽 웃으면서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똑같은 전문이 계속해서 날아왔습니다. "항로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빙산과 충돌할 것이다!" 그 전문을 받아든 선장은 역정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어림없는 소리! 아니, 그까짓 빙산 때문에 항로를 바꾸라고? 설사 이 배가 빙산과 충돌한다 할지라도 이 배는 끄떡하지 않을 배야!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배야!" 그는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자정이 지난 뒤 결국 그 배는 빙산과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배는 두 동강이 나버렸습니다. 그리고 수심이 4,000m가 넘는 깊은 바다 속에 침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2,200명이 넘는 승객 가운데서 겨우 700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구조 받았을 뿐입니다. 나머지 1,500명이 넘는 승객들은 물에 빠져서 죽고, 물위에 떠 있다가 얼어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 배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타이타닉호입니다. 절대로 침몰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했던 배였습니다. 그까짓 빙산에 충돌해도 끄떡하지 않으리라고 큰소리쳤던 배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처구니없게도 빙산에 충돌해서 두 동강이 났습니다. 깊은 바다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유한한 존재입니다.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애당초부터 우리 인간들에게는 "절대로, 영원한"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베드로도 큰 소리치다가 뼈저린 실패를 겪어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앞에서 큰 소리를 쳤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은 마음대로 깎아 내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모습은 신앙적으로 올바른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은 큰 소리치는 베드로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리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 자신의 고백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면 베드로는 당연히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서 "오, 주여! 내가 어떻게 하면 좋으리까?"라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또 장담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는 큰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을 철저하게 배신해 버렸습니다. 비겁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초대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게는 오늘 본문 75절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새벽 닭 울음소리를 듣고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심히 통곡하면서 철저하게 자기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의 심금을 울렸던 새벽 닭의 울음소리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교만을 깨뜨리는 소리입니다. 우리를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소리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도록 다짐시키는 소리입니다. 새벽 닭의 울음소리가 이 아침 우리에게도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편의상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간단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베드로의 잘못은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한데 있었습니다. 큰소리치거나 떠벌리는 사람치고 실속있는 사람은 보기 드뭅니다. 우리가 이따금씩 서부영화를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보게 됩니다. 총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면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언제나 큰소리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총에 맞아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을 보시기 바랍니다. 말이 없습니다. 모자를 지그시 눌러 쓰고서 입을 꾹 다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 총을 뺏는지 번개같이 총을 빼들어 상대편을 쏘아 넘어뜨립니다. 그리고 나서도 주인공은 말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말보다도 행동이 더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러면서 큰 소리쳤던 베드로는 얼마나 비겁한지,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지금 누구 앞에서 큰 소리쳤습니까? 로마의 군병이 칼이라도 빼들고 그의 목을 겨누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6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여기서 비자는 계집종을 가리킵니다. 베드로는 하찮은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또 7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두번째 역시 하찮은 여종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73절에 보니까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라고 했습니다. 그저 구경꾼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는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예수님을 배신했습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70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냥 부인만 했습니다. 두번째는 72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그는 맹세까지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74절에 보니까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저주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만일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내게 벼락이라도 내리시기를 원한다!" 이런 뜻일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저주까지 하면서 맹세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이렇게 약해질 수 있다면 우리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이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귀부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차를 몰던 마부가 갑작스런 일이 생겨서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마부를 고용해야 되었습니다. 세 명의 마부가 지원을 해서 그들을 면접하게 되었습니다. 귀부인은 그 사람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니까 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당신들이 내 마차를 몰다가 아주 가파른 낭떠러지 길에 이르렀다고 가정하십시다. 그러면 마차바퀴에서 얼마정도 여유가 있어야 당신들은 내 마차를 안전하게 몰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첫번째 마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대략 30cm정도 여유만 있으면 충분히 마차를 안전하게 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 마부는 좀 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바퀴에서 5cm정도만 떨어져도 얼마든지 마차를 안전하게 몰 수가 있습니다.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지 부인께서 경치를 마음껏 구경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번째 마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만일 부인의 마차를 몰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저는 가급적이면 마차를 낭떠러지에서 멀리 떨어지게 해서 몰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귀부인이시라면,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구를 택하시겠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세번째 사람을 택할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할지라도 실수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0:12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선 줄로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늘 넘어질까 조심하면서 살아가야 될 줄 압니다. 베드로는 너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과신했습니다. 그러다가 선 줄로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넘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를 비롯해서 모든 제자들이 잠만 잤습니다. 여러분, 이따금씩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밤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애를 태울 때입니다. 그 때 제일 화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잠이 안와서 애를 쓰고 있는데, 옆에 있는 사람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면서 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옆으로 눕혀 코고는 것을 조금 덜 골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일부러 깨어 있으면서 나와 말동무해 주는 사람은 얼마나 고맙습니까?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 다른 제자들은 다 잠잔다 할지라도,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이라고 큰 소리쳤던 베드로만큼은 깨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말과 다른 행동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잠든 제자들을 향해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있을 수 없더냐?"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십일을 금식하면서 같이 기도하자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백일 동안 철야기도하자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기껏해야 하룻밤입니다. 불과 몇 시간 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못할 만큼 무슨 중병에라도 걸렸습니까? 허리라도 부러졌습니까? 문제는 그의 정신상태입니다. 무사안일주의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깨우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인간의 육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자기가 약한 존재인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깨어있을 필요도 못 느꼈고, 기도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잠만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시험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정신없이 자고 있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들기 위해서 마구 몰려왔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의 칼을 빼들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편 귀를 베었습니다. 귀만 베었기에 망정이지, 그 칼에 말고의 목이라도 달아났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큰 일을 저지를 뻔했습니다. 뿐만 아니고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철저하게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비겁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때 일을 회상하면서, 뒤에 벧전5:8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우리가 깨어 기도하면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 기도하지 아니하면 베드로처럼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면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서 깨어 기도하지 아니하면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병들어서 다 죽게 되고 난 뒤에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께 미리미리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다 망하고 난 뒤에 회복시켜 달라고 울부짖지 말고, 미리미리 내가 하는 일을 축복해 주시라고 기도하기 바랍니다. 셋째로, 베드로는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 날 밤에 베드로만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의 갈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면 더 나을 뻔한 인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그도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철저하게 배신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초대 교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에게는 75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새벽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철저하게 회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뒤에도 예수님의 사도로서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에게 75절의 말씀이 없었다면 그도 가룟 유다와 같은 운명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75절 말씀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우리는 본문 말씀 가운데서 베드로의 행동을 세 가지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에게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고 났을 때는 이미 새벽녘이었습니다. 곧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새벽 닭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잊었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은 비록 잘못된 길로 나아갔다고 할지라도 돌이킬 수가 있습니다. 회개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날 때, 우리가 그 말씀으로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베드로는 밖으로 나아갔습니다. 시1:1을 보시기 바랍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베드로는 죄악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가 어디였습니까?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리, 아직도 믿지 않는 자들이 우글거리는 자리였습니다. 베드로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을 때 그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가 어디로 나갔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추측컨대 겟세마네 기도의 동산으로 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땀 흘리시면서 기도하신 그 자리에 베드로는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베드로는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눈물로 겟세마네 동산을 적셨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날 밤에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큰 소리쳤던 자신의 자만을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토록 예수님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안일하게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던 자신의 나태함에 대해서도 회개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칼을 휘둘렀던 자신의 혈기에 대해서도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했던 자신의 비겁함을 회개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이와 같은 철저한 회개가 있었기에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 다시 그는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고 다른 사람의 약함도 이해해 줄 줄 아는 넓은 마음,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에 앞서는 삶을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베드로의 심금을 울렸던 새벽 닭의 울음소리를 우리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악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오십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다. 주께서 눈물샘이 터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강물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베드로가 새 사람이 된 것처럼, 주께서 우리 모두도 새로운 사람, 거듭난 사람이 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이 아침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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