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7:13-14 골짜기 다음은 정상입니다.
회남자(淮南子:한(漢)나라 고조의 손자, 회남왕 유안(劉安)이 한대에 크게 유행한 황로학을 집대성한 책으로 회남왕의 회남(淮南)에 사상가를 뜻하는 자(子)를 더해 회남자라고 명명)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새상(塞上:북쪽 국경)에 사는 늙은이, 즉 새옹이 말을 잘 길렀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사랑하는 말 한 마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애마가 홀연히 국경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동네사람들이 그가 크게 상심하리라고 생각하여 애통한 마음으로 위문을 왔습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그러나 새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태연하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지금의 화가 내일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지금의 슬픔이 어찌 곧 기쁨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리오?"(此何遽不爲福乎!) 수개월이 지나 그 잃어버린 말이 북방 오랑캐 지역의 아주 훌륭한 준마 한 마리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 모두 새옹을 찾아와 축하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새옹은 조금도 기쁜 내색을 하지 않으며 차분히 "오늘의 복이 내일의 화가 될 수도 있는 것, 지금의 기쁨이 어찌 곧 슬픔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리오?"(此何遽不能爲禍骨骨乎!)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 새옹의 집엔 말 타기를 좋아하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준마를 타고 달리다가 그만 낙마를 하여 비골(髀)이 크게 부러져 영영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노인의 슬픔을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새옹은 조금도 슬픈 표정을 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지금의 화가 내일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 지금의 슬픔이 어찌 곧 기쁨이라 말할 수 있지 않으리오?"(此何遽不爲福乎!) 그리고 일 년이 지나 변경의 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전쟁이 벌어졌고, 장정이란 장정은 모두 징발되어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열중 아홉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새옹의 외아들은 다리를 쓸 수 없어 징발되지 않았고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회남자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복이 화가 되고 또 화가 복이 되는 것은, 그 변화가 불측하여 그 끝을 알 수가 없고, 그 이치가 깊고 깊어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 했습니다.
인생들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배운 지혜입니다. 인생사가 새옹지마! 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생은 앞날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오늘 말씀에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장래의 일을 알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장래의 일은 아무리 연구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장래의 일이 인간의 머리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인생은 도무지 헤아려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 수 없게 하셨으니 그러니 알려고 힘쓰거나 애쓰지 마십시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겨울 지나면 봄이 오고 칠흑 같은 어둔 밤 다음은 광명한 새 아침이며 골짜기 다음은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가정에서 형통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도 잠시,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눈물의 골짜기, 고난의 골짜기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가정총무라는 작은 산, 봉우리를 맛보았습니다. 얼마 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어 감옥살이를 3년 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에게 또 찾아 온 힘든 골짜기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은혜를 주어 관리자라는 봉우리에 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강대국 애굽의 국무총리라는 큰 산 정상에 우뚝 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곤고’라는 골짜기를 주시기도 하시고 ‘형통’이라는 정상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니 골짜기 지나면 정상이고, 골짜기 다음은 봉우리임을 믿고 절망하지 마시고 주 안에서 희망을 품고 희망을 노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장래 일을 알 수 없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요?
‘곤고’한 골짜기에서는 생각해야 합니다.
‘곤고’ 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보면 ‘곤란하고 괴로움’을 뜻합니다. 형편이나 처지 따위가 딱하고 어려움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일이 뒤틀릴 때, 고통과 슬픔이 지배하는 때를 말합니다. 성경은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숙고하다.”, “관찰하다.”, “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말씀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그 고난의 의미와 고난의 가치, 고난의 이유를 잘 살펴보고 잘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까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곤고한 골짜기에서는 보이는 법입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은 건강의 중요성을 볼 수 있고, 돈을 잃은 사람은 절약과 돈을 올바르게 쓰는 법을 볼 수 있습니다. 직장을 잃은 사람은 일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의 중요성도,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의 중요성도, 사랑, 가족의 중요성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는 곤고한 골짜기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마시고 생각을 깊이 많이 하시는 지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랍 격언에 '비가 오지 않고 햇빛만 계속 비추면 좋은 땅도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햇빛도 비도 모두 필요한 것입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태풍이 와서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내립니다. 그래서 태풍이 온다하면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태풍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있습니다. 태풍이 불면 바다 속의 산소량이 늘어나서, 물고기와 식물들이 산소를 풍부하게 공급받아 잘 크고 자랄 수가 있습니다. 또한 태풍은 바닷물을 정화시켜주는 역할도 합니다. 태풍은 육지에도 영향을 주어, 나무들을 더욱 견고하게 자라게 하고, 공기를 변화시켜 주며, 비를 내려 굳어 있는 땅을 적셔줍니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태풍도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때로는 태풍이 불고, 폭풍우가 쏟아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곤고한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시편의 표현대로 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하기도 합니다. 고생스럽고 힘든 시간이겠지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경험자와 지혜자들은 ‘고난이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인생의 좋은 선생입니다. 고난의 골짜기에서 인생은 하나님을 배웁니다. 귀로만 들은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전능하심을, 응답하심을, 신실하심을, 주인 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적은 곤고할 때 일어납니다. 또한 골짜기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인생의 지혜를 배웁니다. 진정한 나를 보고 알게 됩니다. 부르는 노래가 있고 꾸는 꿈이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화려한 별장 침대에서 신약성경의 절반을 쓴 것이 아닙니다. 차디찬 감옥에서 고통의 골짜기에서 썼습니다. 이것이 모두 고난이 주는 유익, 골짜기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고난은 포장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지금 힘든 고난에 처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고난이 주는 유익을 생각하시고 곤고한 골짜기 다음은 정상임을 믿으시고 반드시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곤고한 골짜기에서 성도가 취하여야 할 자세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은 두 가지 환경에 처할 때에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는 너무 너무 잘될 때에 흔들려 교만해지고, 또 하나는 너무 너무 어렵고 힘들 때에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성도를 향한 성경의 가르침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성도는 골짜기에서 낙심하지 말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도는 성도이니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계속 환경만 바라보고, 사람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만 낙심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해답은 기도입니다. 얍복강가에 홀로 남아 단판을 짓는 야곱을 기억하십시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무수한 기독교인들, 믿음의 선진들은 곤고한 골짜기를 기도로 통과했습니다. 우리도 곤고한 날에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믿음의 선진들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합시다.
‘스트라우스’라는 사람은 천막 천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서부에 황금광산이 발견되면서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주거지가 필요했습니다. 천막은 떠돌이 광부들에게 좋은 숙소가 되었고 스트라우스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천막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 군대에서 천막 10만개를 주문했습니다. 엄청난 주문을 받은 스트라우스는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10만개의 천막을 만들어 납품했는데 기쁨도 잠시, 납품한 천막은 사용할 수 없다는 통보와 함께 되돌아왔습니다. 10만개의 천막 전부 군대에서 사용하는 색깔인 국방색이 아닌 청색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빚까지 낸 “스트라우스”는 쫄딱 망할 위기에 쳐했고 직원들은 임금을 달라고 투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스트라우스는 납품에서 거절당한 천막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며칠을 꿇어앉아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금 광산의 광부들이 모여앉아 바지를 꿰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친 일을 하는 광부들의 바지가 잘 떨어져서 바느질하기도 바빴습니다. 스트라우스는 “질긴 천으로 옷을 만들면 잘 떨어지지 않을 텐데”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자신이 무심코 내 뱉은 말에 깜짝 놀란 그는 "지금 내가 한 말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도의 응답이었어.”하면서 무릎을 탁치면서 좋아하였습니다. 염색이 잘못된 청색 천막 천으로 바지를 만들었습니다. 광부들에게 청바지는 최고 인기였고 불티나게 미국본토의 의류계를 장악하더니 3년 후에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트라우스는 천막 천을 만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을 벌었습니다. 실패와 실수에도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기도가 청바지라는 선물을 안겨준 것입니다. 지금도 청바지는 세계에서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디자인으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청바지의 탄생은 실패를 기도로 딛고 일어선 발명품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고 시원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34:6)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5:13)
시편 107편을 보시면 반복된 말씀이 있습니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라는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6절, 13절, 19절, 28절에 4번에 걸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부르짖음의 결과를 성경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
그들이 바라는 항구,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십니다. 약속 된 말씀, 기록된 말씀 부여잡고 힘든 중에, 근심 중에 부르짖으며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곤고한 골짜기에서 성도가 취하여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루이스 교수의 말처럼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은 땅을 덤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아멘입니다.
하늘비전 성도 여러분!
지금 곤고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시고 자리 잡고 앉아 야곱처럼, 믿음의 선진들처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소원의 항구, 형통의 정상에 주께서 여러분을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골짜기 다음은 정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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