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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12-16, 20-21 여리고성 함락 (1)

6:12-16, 20-21 여리고성 함락 (1)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거친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의 첫 관문인 여리고성 바로 앞까지 와서 진을 쳤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여리고성은 성문을 굳게 걷어 잠갔습니다. 그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작전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작전

 

①매일 한 번씩 성을 돌되 6일 동안을 같은 방식으로 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 성을 돌라는 것입니다. ②성을 행진 할 때 선두는 무장한 자, 그 다음은 일곱 양각 나팔을 든 제사장이 나팔을 불며 따르고, 그 다음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든 제사장이, 그 다음은 후군이 뒤 따르라는 것입니다. ③누구든지 음성을 들리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하지 말고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④외치라 할 때 일제히 외치라는 것입니다. 나팔이 길게 들릴 때, 하나님이 주신 신호이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 되어 외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작전을 납득할 수 있습니까? 상식적으로 얼마나 웃기고 어이없는 전쟁이고 작전입니까? 여리고성이 얼마나 크고 견고하고 강한 성인데 그렇게 해서 무너진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결과는 그대로 순종할 때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함락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전대로, 말씀대로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강하고 견고하면 뭐합니까? 여리고성은 무너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바벨탑이 높아 하늘을 닿을 듯 하면 뭐하겠습니까? 무너졌습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크고 강한 장수면 무엇 합니까? 결국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앞길을 막고 있는 홍해와 요단강이 크면 뭐합니까? 갈라졌습니다. 여리고성, 바벨탑, 골리앗 모두 크고 강하고 대단했지만 무너지고 쓰러지고 넘어짐의 대명사로 우리 앞에 남았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앞길을 가로 막은 거대한 홍해와 요단강 갈라짐의 대명사가 되어 역사 앞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무너짐과 갈라지는 기적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관여하시고 역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바다와 강을 갈라 대로처럼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나서니 가능한 줄 믿습니다.

 

하늘비전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성이 있지 않습니까? 건너야 할 강이 있지 않습니까? 너무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그 비밀의 지도를, 그 비결을 몇 주일에 걸쳐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잘 듣고 여러분도 이겨 승리와 기쁨의 깃발을 높이 흔드시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견고한 여리고성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여리고성은 약 5000평에서 6000평 되는 대지 위해 세워진 견고한 성입니다. 벽이 두 겹으로 둘러서 있었습니다. 외벽은 약 2미터 두께로 높이는 10미터 정도의 높이로 둘러져 있고 외벽과 내벽 사이의 간격은 3.5-8.5미터 정도라 합니다. 첫 번째 벽인 외벽을 넘어서도 두 번째 벽인 내벽이 또 서 있습니다. 두 번째 벽, 내벽은 두께가 3-4미터로 외벽보다 더 두껍습니다. 그러니 약 2미터 두께의 외벽과 3-4미터에 높이가 10미터인 내벽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내벽 위로는 말과 마차가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여리고성은 그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한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이런 여리고성을 바라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여러분이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까?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다보면 우리 생각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여리고성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마음속에 이 여리고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업의 여리고성도 있고 직장의 여리고성도 있고 인간관계의 여리고성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때로는 질병의 여리고성이, 마음의 병의 여리고성이 우리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리고성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여리고성 함락 첫 번째 비결

 

우리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없을 때 기도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고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성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일 동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성을 돌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수6:12)

일곱 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서 성을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일곱 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수6:15)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성을 일곱 바퀴 돌고, 일곱 제사장들은 크게 나팔을 울려 불고, 백성들이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수6:20)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새벽에 외치는 것은 우리가 새벽에 통성으로 기도하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여리고성 함락 그 첫 번째 비결은 새벽에 외치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부르짖고 외치면 여리고성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십니다. 여러분의 여리고성 함락을 위해 새벽마다 외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국가적-가뭄, 메르스)

 

하나님께서는 매일 새벽마다 돌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도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교훈이 있습니다.

 

➀반복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시 입니다.

"한 걸음이 당신을 그리 멀리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걸어야 합니다.

한 마디의 말로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설명 하는 것이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말을 해야 합니다.

한 인치가 당신을 크게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하나의 행동이 모든 것을 이루어 놓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하여 행해야만 합니다."

누군가가 이 시에 한 줄을 덧붙었습니다.

"단 한 번의 기도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어도

당신은 계속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절망을 극복하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같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힘이 얼마나 큰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눅18:1-8절 비유를 들어 반복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집중하여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을 존경하거나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재판관에게 힘없고 약한 여인이 자주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간청을 했습니다. 그 호소에 대한 재판관의 태도는 무시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되는 간청에 재판관은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원한을 풀어 주리라. 왜입니까? 그가 나를 번거롭게 한다. 간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실 그 여인은 재판관을 자주 찾아가 간청했습니다. 간청의 내용은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갚아 주소서.”(3)입니다. 자주 찾아가 번거로울 정도로 같은 말을 계속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갚아 주소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갚아 주소서”

 

성도 여러분, 같은 내용의 기도를 하루에 몇 차례씩 하고 있으면 내가 기도를 잘하고 있는가? 생각이 들 것입니다. 아주 성경적으로 잘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32장 13절 이하에 보면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 기도한 야곱의 기도는 ‘나를 축복하소서!’(26, 29)입니다. 그는 밤새 축복해 달라는 기도를 반복적으로 한 것입니다. 비를 달라고 엘리야는 일곱 번 같은 내용을 반복한 기도였습니다. 오랫동안 성전에서 기도한 한나의 기도제목은 ‘아들을 주소서!’ 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기도를 세 번 반복하셨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문제 앞에서 응답을 받기 위해 반복기도를 했습니다. 반복기도는 병에 물을 붓는 것과 한 가지입니다. 계속해서 기도하면 기도의 물이 점차로 차 올라와서 나중에 철철 넘치게 되고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채워질 때까지 시간을 내서 계속 부르짖어야 합니다. 또한 반복기도는 여리고 성을 도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 돌고 이틀 돌고 사흘, 나흘, 결국 일곱 째날 일곱 바퀴째 돌고 고함을 치니까 성이 무너졌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주님이 결론적으로 하는 말씀에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7,8)

 

재판관은 자신을 더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원한을 풀어주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뻐 받으시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실 것입니다. 재판관은 그 여인과 아무런 관계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우리를 사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택함 받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속히 응답하십니다. 속히(빠르게)란 우리의 시간표대로가 생각하면 지연이고 더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말하자면 빠르게, 속히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망하거나 실망하지 마시고, 용기 잃지 말고 항상, 자주,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기도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새벽마다 같은 방식으로 돌기를 원하시고 일곱 째 날에 일곱 번을 돌기를 원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➁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에게 강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오라 했습니다. 여섯 번째까지 순종했지만 아무런 변화나 차도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들어갔다 나오니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온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엘리야는 비를 내려 주시라고 일곱 번 기도했습니다. 여섯 번째까지도 별 징조가 없었습니다. 일곱 번째 기도하니 손바닥만 한 먹구름이 보였고 후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온전한 인내를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그 마음과 믿음, 인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여리고성 역시 매일 새벽마다 한 바퀴씩 돌아도 별 조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 돌때까지도 무너짐의 조짐이 없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마지막으로 외칠 때 무너집니다. 주님이 원하신 것은 온전한 순종입니다.

 

왜 하필 새벽이냐는 것입니다. 시편 46:5절 말씀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성경을 살펴보면, 새벽에 놀라운 역사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새벽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출14:20-24, 27) 새벽에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닭이 우는 소리를 들고 새벽에 베드로가 회개했습니다. 야곱이 날이 새기 전, 새벽에 응답을 받고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했습니다.(창32:26, 31)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새벽에 건너고(수3;1)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기 위해 새벽에 출발했습니다.(창22:3) 새벽이슬과 함께 만나를 새벽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만나를 거두기 위해 4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에스라는 새벽에 율법책을 읽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부터 말씀을 들었습니다.(느8:3)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일 새벽에 만났습니다. 바로 그 새벽에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다윗 왕이 블레셋을 완전히 물리 친 것도 바로 새벽이었습니다.(삼상30:17)

 

새벽에 하나님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시겠다는 약속 때문일 것입니다. 새벽은 가장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우리의 마음을 다하는 정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는 전날 저녁에 일찍 자야하고, 모든 시간을 새벽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밤 문화보다 새벽 문화를 원하시고 새벽형 성도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시편108:2절에서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새벽을 깨운다는 것은 일찍 일어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늘비전 성도 여러분!

전도 대상자들이 여리고성처럼 보입니까? 여리고성은 크고 견고하지만 무너짐의 대명사입니다. 반드시 무너집니다. 날마다 새벽에 외치는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 무너질 것입니다. 믿고 새벽을 깨우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교회는 새벽기도에 승부를 겁니다. 새벽기도에 온 힘을 다하고 성령충만과 은혜 받아 전도에 집중하여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성장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새벽기도부터 시작입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해 주시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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