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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전도설교

[스크랩] 짧은 전도 편지 모음

전도를 위한  편지 모음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행 복 한 부 부

남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여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단 한 가지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눈썹이 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늘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다.

그러던 차에 그는 사랑하는 남성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그는 행복하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한 생각이 가시지를 않았다.

남편이 혹시라도 자신의 그린 눈썹 때문에 실망하지는 않을까라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결혼 후 삼 년쯤 되었을 때, 그만 남편의 사업이 망해 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연탄을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다.

하루는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연탄의 잿가루가 뒤에서 리어커를 밀고 있던 아내의 눈 속에 들어가 절로 눈물이 흐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대로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다.

화장이 지워지기라도 해서 자신의 비밀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 때 남편은 아내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수건을 벗어서 아내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아내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남편은 이런 불안한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척하고, 그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그러나 아내의 눈썹만큼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 당신의 얼굴이 예전처럼 예뻐졌구료!”

남편은 태연하게 다시금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이미 남편은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내를 생각해서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 주는 남편의 마음이 아내는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그 가정은 절로 행복할 것이다.

남을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마음이 늘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란다.

빌4:10“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 이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주일날 11시에 교회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수 영 대 회

미국의 어느 큰 부자가 이웃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수영대회를 열면서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1등한 사람에게는 상으로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나의 상속자인 무남독녀 외동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내 재산의 절반을 줄 수도 있습니다.

셋째로, 세계에서 가장 값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서,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

그 때 집주인은 사람들에게 이런 위협적인 말을 했다.

“이 수영장 안에는 열흘 동안 굶긴 악어가 50마리 들어있고,

또 물리기만 하면 3분내로 죽을 독뱀이 100마리나 들어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뒤로 물러났다.

그저 딱 한 사람이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수영을 했다.

그는 무사히 도달했지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집주인은 약속한 대로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내 등뒤에서 나를 밀었소?”

우리는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다.

달려갈 길을 다 마친 뒤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다. 십자가의 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우리의 등을 밀어서 이 길을 걷게 하셨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이 길을 가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무사히 이 신앙의 경주를 마치도록 지켜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자.

딤후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주님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주일낮 11시에 예배가 있습니다.

기쁨으로 환영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교회, 여러분의 목자 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죤 크레인 John Crane

1950년대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의 선교사 의 일화이다.

그의 한국명은 구례인이었다.

그가 안식년을 맞이해서 미국의 시골에 있는 어떤 교회를 잠시 맡아서 돌보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어떤 남성도로부터 급히 와달라는 전갈이 왔다. 부랴부랴 달려간 그의 눈앞에는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사건은 이러했다. 이 남자 성도가 자기의 두 자녀를 데리고 강에 낚시를 갔었다. 그가 낚시를 하는 동안에, 그의 두 자녀가 물놀이를 하다가 그만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집에서는 큰 불이 나서 혼자 집을 지키고 있던 그의 아내마저 불에 타 죽고 말았던 것이다. 불에 타 죽은 아내의 시신과 물에 빠져 죽은 두 아이의 시체를 앞에 놓고,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 통곡하고 있었다.

목사님도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 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던 목사님은 정신을 차리고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형제는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형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신앙을 저버리겠습니까? 아니면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더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십자가의 길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이 약해져서는 안될 것이다.

마태복음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함께 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성은교회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하면서

                    문 익 점

문익점은 고려말 공민왕 때의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는 겨울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추위를 견디지 못해 얼어죽었다. 그래서 겨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서운 죽음의 계절이라고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러한 때 문익점은 사신으로 중국의 원나라에 파견이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을 한 가지 발견했다. 날씨는 중국이 더 추운데, 이상하게도 그곳에는 얼어죽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울에도 얇은 베옷을 입고 있는데, 그들은 목화를 재배해서 그것으로 따뜻한 솜옷을 만들어 입고 있는 것이었다.

문익점은 나라를 위해서,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서 목숨을 건 결심을 했다. 그 당시 중국측 국경 경비대의 검문은 아주 살벌했다. 원나라에서도 목화를 재배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목화씨를 가지고 나가다가는 죽음을 면키 어려웠다.

그는 궁리 끝에 자기가 쓰는 붓뚜껑 속에 목화씨앗 세 알을 몰래 감추었다. 그리고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다. 가까스로 그는 발각되지 않고 무사히 목화 씨앗을 우리나라에 들여올 수 있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씨앗을 심고 가꾸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목화가 재배되었다. 문익점은 자기의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물레 만드는 법과 베 짜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도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되었다.

한 사람의 섬기는 마음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섬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섬기는 마음으로 살자.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마음을 다해서 섬기고자 합니다.

주일 11시에 예배가 있습니다.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목적이 이끄는 성은 교회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가난한 의과 대학생

가난한 의과대학생이 있었다. 하루는 돈이 필요해 몇 권의 책을 헌 책방에 팔기로 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책방의 주인이 병이 나서 문을 열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너무 힘들어서 냉수라도 한 그릇 얻어 마시려고 어느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때마침 그 집에 어른은 없고, 어린 여자아이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그 아이에게 먹다 남은 음식이라도 있으면 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우유 한 병과 옥수수떡 한 조각을 가져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엄마가 일하러 가시면서 점심 때 제가 먹으라고 남겨주신 것이에요. 괜찮으시면 이것이라도 드세요.”

그는 그것으로 허기를 채우고 난 뒤에 고마운 마음으로 그 집의 주소를 적었다. 또 아이와 그의 어머니의 이름까지도 받아 적었다.

여러 해가 지나서 어떤 부인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 수술은 잘 끝났다. 부인의 딸은 어머니의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것에 기뻤지만, 수술비로 인한 부담감으로 불안했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비 계산서를 손에 쥐었다. 그런데 계산서에는 깜짝 놀랄 만한 금액이 적혀 있는 것이었다.

“병원비는 도합 우유 한 병과 옥수수떡 한 조각임. 그리고 그 값은 이미 지불되었음.”

무엇으로 심든지 나중에 다 거두게 되어 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아니하면, 적절한 때와 적절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거두게 해 주신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선을 심으면서 살아가자.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성은교회는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천 국 설 교

어느 주일날 예배 시에 목사님이 자기 교회에서 천국에 대한 설교를 했다. 그 다음 날 그 목사님은 어떤 교우의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다.

목사님은 돌아오는 길에 그 교회의 집사님 가운데 한 분을 만났다. 집사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자기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는 듯이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 어제 천국에 대한 설교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천국이 어디에 있다는 말씀은 안 해주셨습니다. 도대체 천국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집사님, 저는 지금 어떤 교회의 가정을 심방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 교우는 지금 병들어 누워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집사님께서 그를 위해서 양식을 사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양식을 가지고 왔다고 말씀하십시오. 그 뒤에 그 가정에 있는 성경을 받아서 시편 23편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병든 교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천국이 보이지 않는다면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 돈도 제가 다 지불하겠습니다.”

그 다음 날 그 집사님은 목사님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는 어제 분명히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15분간을 지내다 왔습니다.”

그렇다. 천국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날마다 매순간마다 천국을 발견하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들이 되기를 바란다.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기쁨이 있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고 싶습니다.

성은교회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노인과 바다

어떤 노인이 돛단배를 타고 홀로 먼 바다로 나가서 낚시로 고기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매일 허탕만 치게 되었다. 그는 84일 동안이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85일 째 되던 날 노인은 큰 고기를 한 마리 잡았다. 돛새치라고 하는 고기였다.

돛새치는 엄청나게 큰 고기이다. 너무 커서 고기가 낚시에 잘 딸려 오지 않았다. 노인은 며칠 동안 그 고기와 씨름을 했다. 줄을 풀었다가 당겼다가 하면서 필사의 싸움을 했다.

드디어 사흘 째 되던 날 고기가 바다에 떠올랐다. 노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작살로 고기의 옆구리를 찔러 죽였다. 축 쳐진 고기를 배 옆에 끼고 노인은 육지로 돌아왔다. 노인은 모처럼 오랜만에 행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노인은 또 상어와 필사의 싸움을 해야만 했다. 가까스로 육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고기의 살점은 다 떨어져 나가고 앙상하게 뼈만 남았다. 노인은 허탈한 심정으로 침대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였던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의 1952년 작품인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내용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그 자신의 삶이 어쩌면 이 작품에서 나오는 노인에게서 보았던 허무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해 아래서의 수고는 다 그렇다. 아무리 수고해도 남는 것이 없으니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그러니 해 아래의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눈을 들어 해 위의 세계,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자. 신령한 세계를 사모하면서 살자. 해 아래서의 수고, 육신의 수고는 헛되지만 주 안에서의 수고는 우리를 영광스러운 길로 인도해줄 것이다.

해 아래의 덧없는 일들에 집착하지 말고, 눈을 들어 해 위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삶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복된 삶이되기를 바란다.

전도서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성은교회는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성은교회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골 곤 다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산 골곤다에 관한 일화이다.

본시 그곳은 목장지대였다. 목장의 주인은 넉넉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에 영국인이 들어와서 다이아몬드 붐이 일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면서 벼락부자들이 생겨났다.

그 목장 주인도 다이아몬드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다. 그가 알아본 결과 지형적으로 주변이 산으로 둘러있고, 그 가운데 시내가 흐르고, 그곳에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으면 다이아몬드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자기 목장을 팔고서 그런 곳을 찾기 시작했다. 비슷한 지형이 나오면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번번이 실패를 했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이제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는 깊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자기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에게서 목장을 산 사람이 어느 날 목장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검은 색의 돌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깨뜨려 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서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틀림없는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다. 얼른 주변을 파 보았다. 손으로 파기만 해도 그 속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곳이 바로 세계 제일의 다이아몬드 광산인 골곤다이다.

만약 원래의 목장 주인이 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분복을 누렸다면, 언젠가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억지로 그때를 만들려고 하니까, 때를 만들지도 못하고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복을 놓쳐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 인간은 그것을 거역할 수가 없다. 우리는 그저 정해진 때 안에서 순응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그때를 거역하지 말고,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하루하루의 삶에 만족을 누리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전도서 3:1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성은교회는,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성은교회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다시 시작하라

사업에서 실패를 한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물었다.

“목사님, 이제는 살아갈 용기도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목사님은 그에게 종이를 한 장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잃어버린 것은 앞면에, 남아있는 것은 뒷면에 적어보세요.”

그는 대뜸 앞면에 “사업”이라고 적고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목사님이 물었다.

“잃어버린 것이 그것밖에 없습니까? 왜 뒷면에는 아무것도 안 쓰십니까?”

“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제가 묻는 대로 대답해 보세요. 부인은 있으십니까?”

“예. 착한 아내가 있지요.”

“그러면 ‘아내’라고 적으세요. 자녀는 몇이나 됩니까?”

“아들 둘과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적으세요. 가족만큼 선생님에게 큰 힘이 되는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건강은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건강’도 적어 넣으세요. 건강도 귀중한 자산입니다.”

“선생님이 사업의 실패를 통해서 얻은 교훈을 적어보세요. 그런 것들도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선생님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믿으니까 목사님을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하나님’이라고 적으세요.”

목사님은 종이를 받고 나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선생님은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한 가지이지만 남아있는 것은 많습니다. 또 잃은 것도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귀중한 것도 많이 얻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는군요.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선생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는 그 말을 통해서 큰 위로를 받고 돌아갈 수 있었다.

고후4: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성은교회는,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성은교회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무 디 목 사

1871년 미국 시카고에 대화재가 났다. 그 때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부흥사 D. L. Moody(1837~1899)가 섬기는 교회도 화재로 불타버렸다. 심지어는 그의 집조차도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이 불과 함께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신문기자가 짓궂게도 무디에게 와서는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몽땅 다 타버렸네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때 무디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을 했다.

“아니요.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은 타지 아니하셨습니다. 내게 희망도 남아있고요. 우리에게는 오래 전부터 꿈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아름답고 큰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지금 이 화재를 통해서 우리의 꿈을 이루어 나가고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뒤 무디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큰 부흥운동을 일으켰고, 그가 돌아올 때에는 영국의 교인들이 모금해준 헌금을 많이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과연 그의 믿음대로 바로 그 자리에는 얼마가지 않아서 더 크고 더 아름다운 새로운 성전이 지어졌다. 그는 또 복음의 활동도 이전보다도 더욱더 왕성하게 하게 되었다.

시험을 만났는가? 잃은 것 때문에 낙심하지 말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우리에게 더 많다. 무엇을 잃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을 주셨다. 돈을 잃었는가? 그것 때문에 믿음을 얻지 않았는가? 건강을 잃었는가? 오히려 그것 때문에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또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은가? 그러므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이 지혜를 주실 것이다. 시험 속에 있는 유익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시험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허락하실 때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렘17: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목적이 이끄는 성은교회는,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헬렌 켈러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의 이야기이다. 그가 태어날 때는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생후 1년 7개월이 되었을 때 아주 심한 열병을 앓게 되었다.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의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불행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8살이 되었을 때 앤 설리반이라는 20살의 아주 헌신적인 여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앤 설리반은 헬렌 켈러에게 계속해서 이것을 강조시켰다.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 어떤 것이라도 그 사람을 결코 패배시킬 수 없다. 하나님은 너의 그 어떠한 환경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계신다. 그러니 너도 얼마든지 너의 삶의 환경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는 헬렌 컬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불어넣어 주었다. 그것이 불꽃이 되어서 헬렌 켈러는 자기에게 임한 시험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고 이겨내었다.

그는 성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1904년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래드클리프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을 했다. 많은 책을 저술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1930년대 다녀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는 일생을 농아와 맹인 등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일에 바쳤다.

헬렌 켈러는 자기의 삶을 다 살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아! 참으로 나의 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그의 머리에 씌워주신 것이다. 우리도 이 땅에서 당하는 시험을 얼마든지 참으며 이겨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이겨낸 시험이기에 우리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자.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목적이 이끄는 성은교회는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김 영 익 목사드림

 

 

귀하를 정중히 초대합니다

                  록 펠 러

록펠러는 당대 세계 제일 가는 갑부였다. 그는 53세에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는 그 당시 돈으로 매주 1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렇게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세상의 모든 돈을 자기가 다 가져야겠다는 식으로 사업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갔다.

하루는 사람들이 와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미 세계에서 제일 가는 갑부인데 돈을 얼마나 벌면 만족하겠습니까?”

그때마다 록펠러는 똑같은 대답을 했다.

“Just a little more(조금만 더).”

이미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되었는데도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조금 더 벌어야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그렇게 한이 없다.

그러나 그는 결국 병에 걸리고 말았다. 불면증에 걸려 잠을 전혀 잘 수가 없었다. 몸은 바짝 말라들어 갔다. 돈이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루에 겨우 우유 한 잔, 비스킷 몇 조각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그는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자기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는 소유에 대한 집착을 다 버렸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떨쳐버렸다. ‘지금까지는 버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번 것을 값있게 쓰자.’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만든 것이 그 유명한 록펠러 재단이다. 페니실린 주사도 록펠러 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해서 만든 것이다.

그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니까, 그때부터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입맛이 돌아왔다. 잃어버렸던 잠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그래서 53세에 불면증에 걸려 죽을 때만 기다리던 그가 98세까지 장수했다. 소유에 집착하게 되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다. 손을 놓자. 그래야 우리 마음 속에 평안함이 찾아올 것이다.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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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익 목사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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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사의 영광

미국의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정열을 다 쏟아서 열심히 사역했다. 그러나 열매가 없었다. 어느 날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병에 걸려서 죽고 말았다. 그 충격 때문에 그의 아내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외톨이가 된 선교사는 선교에 대해서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배를 타고 말았다.

드디어 배가 미국의 항구에 도달했다. 갑자기 부두에서 예포소리와 함께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갑판 위로 올라온 그는 그 배에 아프리카로 휴가차 사냥을 갔다오는 미국의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두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다. 그 위로 대통령이 걸어가고 수많은 환영인파들이 대통령 내외를 맞이하고 있었다.

선교사는 일부러 제일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다. 이미 환영인파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는 깊은 고독감 때문에 흐느끼면서 쓸쓸히 부두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냥을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나 열렬히 환영해 주었는데, 선교지에서 가족을 잃기까지 한 나는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는구나!”

눈물이 그의 발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 때 석양빛이 환하게 그 선교사의 얼굴을 비추면서 이런 음성이 들렸다.

“아들아! 너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너를 위해 황금빛 유리가 깔린 길이 예비되고 내가 너를 친히 마중 나갈 것이다. 너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이곳에 너를 위한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날까지 인내하라. 이곳에서 너를 위한 성대한 환영식이 베풀어질 때까지…”

선교사는 그 음성을 듣고 다시금 발길을 돌려 선교지인 아프리카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선교사역에 더욱더 충성하게 되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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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zen Tears(얼어붙은 눈물)

서양에서는 결혼할 때,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다. 그 때의 진주를 가리켜서 영어로는 “Frozen Tears(얼어붙은 눈물)”라고 부른다.

왜, 이러한 풍습이 생겨났을까? 아마도 딸이 시집살이하다가 속상해 할 때, 조개 속의 모래가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진주가 된 것처럼 잘 참고 견뎌내라는 뜻일 것이다.

진주는 땅에서 캐내는 보석이 아니다. 바다 속의 조개 안에서 만들어진다. 어쩌다 잘못해서 모래알이 조개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깔깔한 모래알이 보드라운 조갯살 속에 박히게 된다. 그때 조개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모두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깔깔한 모래알이 조개의 보드라운 살에 박히게 되면 조개는 본능적으로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된다. 하나는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결국은 조개가 모래알 때문에 병들고 만다. 살이 썩기 시작하면서 얼마가지 않아 그 모래알 때문에 조개가 죽어버리고 만다.

또 다른 하나는 조개가 모래알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조개는“nacre(진주층)”라는 생명의 즙을 짜낸다. 조개는 이 생명의 즙으로 자기 몸 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계속해서 덮어 싸고 또 덮어 싼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동안을 계속해서 생명의 즙으로 모래알을 감싸고 또 감싼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진주이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삶 속에도 이런저런 모래알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것을 우리가 “시련”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어떠한 시련이 임할 때 “내가 지금 값진 진주를 품고 있구나!”라고 생각하자. 내가 당하는 시련이 크면 클수록, “내가 품고 있는 진주도 더 값지고 더 크겠구나!”라고 생각하자. 그러면 오늘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내일이면 아름다운 진주로 바뀔 것이다.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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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타닉호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라고 자랑했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였다.

1912년 그 배는 영국 사우스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시로 처녀항해를 하는 도중 빙산과 충돌했다. 타이타닉호가 바다에 완전히 빠지는데는 2~3시간 정도 소요될 예정이었다.

그 동안에 배에 있는 사람들은 구명보트를 타고서 배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그러나 배 안에는 구명보트가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등객실의 손님들과 여성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졌다.

마지막 구명보트가 배에서 내려올 때였다. 그 보트에 타도록 되어있던 여성 한 사람이 선실을 향해서 쏜살같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선원은 깜짝 놀라서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그 여인은 울면서 통사정을 했다.

“객실에 보석상자를 깜빡하고 놓고왔어요! 얼른 가서 그것만 가져올 테니까 제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선원은 어쩔 수 없이 5분간의 여유를 주었다. 선실로 뛰어가는데 1분, 거기서 보석상자를 찾는데 1분,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데 1분, 넉넉잡아 3분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5분이 지났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5분을 더 기다렸다. 10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구명보트는 배에서 떠나버리고 말았다.

왜 그 여인이 돌아오지 못했을까? 자기의 보석상자만 들고 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실 바닥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온갖 패물들을 보고서는 차마 발길을 떼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것들을 줍다가 보트를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이 여인은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빠져 죽고 말았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일시적인 것들이다. 그런 것들 때문에 영원한 것을 상실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요1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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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집 아주머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이웃집 아주머니가 그의 가게로 찾아와서는 자기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회에 초청을 했다.

그는 그 아주머니의 얼굴 때문에 마지못해 교회에 왔다. 그는 오른쪽 구석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목사님은 계속 자기의 오른손으로 그가 있는 쪽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외쳤다.

“죄인들아 회개하라! 회개하지 않으면 죽는다!”

설교를 듣고 있던 그의 마음 속에서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다음 날 옆집 아주머니가 그를 데리러 왔을 때, 그는 자기가 기분 나빴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교회에 안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옆집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그를 달랬다.

그는 화가 난 것을 간신히 참고서, 그 날도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이번에는 일부러 왼편에 앉았다. 그런데 그 날 목사님은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주제로 해서 설교를 했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양 같은 의인들이며, 왼편에 있는 사람들은 염소와 같은 죄인들이라고 소리를 치면서 설교를 했다. 그러니 그가 또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그는 오기로 마지막날 집회에도 참석했다. 이번에는 일부러 한 가운데 있는 기둥 뒤에 가서 앉았다. 목사님의 얼굴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목사님은 창세기 3장을 주제로 설교하시는 것이었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네가 왜 거기 숨었느냐?”

그는 예배가 끝나자마자 목사님에게 가서 따지듯이 대들었다.

“당신이 목사면 목사지, 나를 언제 보았다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오!”

목사님이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자초지종을 다 들은 목사님이 웃으면서 진지한 태도로 그에게 구원의 진리를 일러주었다. 그리고 난 뒤에 목사님은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셨다. 그제야 그는 깨닫고 자기의 모든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다. 지금은 장로로서 교회를 잘 섬기는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 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성은 교회는 기쁨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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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레(Jean-Francois Millet)

17세기 중엽 불란서에 어떤 화가가 있었다. 그는 누드화를 잘 그렸다. 그가 그린 그림은 꽤나 인기가 있었고, 그의 명성도 높아졌다. 그 덕분에 그의 그림은 잘 팔려서 돈도 많이 벌었다.

하루는 그가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화랑에 그의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서 몰려왔다.

그런데 어떤 두 젊은이가 그가 그린 누드화를 보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을 그가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자기는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그려놓은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면서 지저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이제부터는 굶어죽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이런 누드화는 더 이상 그리지 않으리라! 사람의 마음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사람의 심성을 아름답고 곱게 만드는 그림만 그리리라!”

그는 자기의 아내에게도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했다.

“여보, 이제부터는 내가 누드화를 더 이상 그리지 않으려고 하오. 어쩌면 우리의 생활이 어려워져서 굶을지도 모르겠는데 당신은 괜찮겠소?”

그의 아내는 그 소리를 듣고서 대찬성을 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그 때부터 누드화를 더 이상 그리지 않았다. 그 대신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박한 시골 아낙네들의 모습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그림 가운데 하나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만종”이다.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바로 밀레(Jean-Francois Millet, 1642~1679)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해 보자. 손해를 볼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잔이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다. 결코 우리의 삶이 부족하지 않게 해 주실 것이다.

잠16: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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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carlet Letter(주홍글씨)

1800년대 초 미국의 어느 세관에서 일하는 남성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 그는 낙심이 되어 집에 돌아와서는 자기 아내에게 자기가 직장에서 해고된 것을 이야기하면서 괴로워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나는 정말 무능한 사람인 모양이야.”

아내가 옆에서 그를 위로해 주었다.

“여보, 힘내세요!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기 마련이랍니다. 썰물이 지나가고 나면 밀물이 오잖아요. 당신은 평소에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지금부터라도 글을 쓰시면 될 거예요.”

남편은 조금 용기를 얻었다. 그러나 곧 생활을 걱정하면서 되물었다.

“아니, 무얼 먹고살려고?”

아내는 남편을 안심시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이럴 때를 대비해서 푼푼이 모아 놓은 돈이 있어요. 그 돈이면 일년은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예요.”

“일년 안에 잘 팔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아내가 또 대답했다.

“당신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우실 거예요.”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두 부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 그는 한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대히트를 쳤다. 미국이 낳은 소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힌 것이었다. 그 소설의 제목은 “The Scarlet Letter(주홍글씨)”이다. 작가의 이름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이다.

그의 삶 속에 던져진 하나의 시련이, 오히려 그를 무명의 사람에서 역사적인 인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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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는 당대 세계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다.

그는 젊은 시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광산업에 투자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에게서 금광을 인수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그는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었다. 금은 이미 모두 캐내 가고, 찌꺼기만 조금 남아 있는 폐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금이 나와야지 은행에 빚을 갚을 수 있는데, 금이 나오질 않으니까 돈이 생기지를 않았다. 은행에서는 계속해서 빚 독촉이 날아왔다. 또 광부들에게도 임금을 주지 못하니까 그들은 폭도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다.

록펠러는 결심하고서 광산 깊숙한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돗자리를 깔고 식음을 전폐하고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다. 그는 기도하다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그러나 지금은 더 깊이 파야할 때니라.”

그는 이것이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말씀임을 믿었다. 물론 더 깊이 파보았자 금이 안나올 것은 뻔한 이치였다. 그러나 록펠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광부들을 독려하면서 더 파내려 갔다.

한 삼 일 정도 파내려 갔을 때였다. 갑자기 검은 물줄기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유전이 발견된 것이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록펠러는 스탠더드석유회사를 창설하게 되고, 나중에는 세계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더 깊이 파야할 때이다. 더 깊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더 열심히 묵상하자. 주를 위해서 더욱더 뜨겁게 헌신해 보자.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아름다운 역사를 일으켜 주실 것이다.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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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시험

어떤 회사에서 사람이 필요해서 신문에 모집광고를 내었다. 그 광고를 보고서 7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험을 쳐서 그 가운데 적당한 사람들을 뽑기로 했다.

시험은 간단했지만 방법은 색달랐다. 지원자들은 차례대로 줄을 서서 한 사람씩만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시험장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저 양 사방 벽에 큰 거울이 하나씩 걸려있을 뿐이었다.

지원자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거울 위에 쓰여있는 질문에 “예” 또는 “아니오”라고 답안지에 적도록 되어있었다.

첫째 질문이었다.

“당신은 거울에 비친 이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둘째 질문이었다.

“이 사람은 여하에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셋째 질문이었다.

“이 사람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까?”

마지막 넷째 질문이었다.

“만일 당신이라면 이 사람을 채용하겠습니까?”

그것이 시험의 전부였다. 시험을 치른 사람마다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부분 이렇게 수군거렸다.

“사람을 뽑으려면 시험을 쳐서 실력으로 뽑아야지. 이게 뭐야?”

드디어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놀랍게도 70명 가운데 단 한 사람만 합격했다. 합격한 사람은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아니오”라고 대답한 사람이었다. 그 회사는 자기의 실력을 뽐내면서 큰소리를 치는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 자기의 부족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선 줄로 생각했다가 넘어질 때가 많이 있다. 교만해 지지 말자.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낮추자.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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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걸이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주인공 마틸드는 젊고 매력적이었다. 그는 호화로운 삶을 꿈꾸어 왔으나 현실은 그렇지를 못했다. 그는 문부성의 하급관리와 결혼을 했다. 마틸드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 때문에 불만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장관이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아왔다. 그러나 마틸드는 기쁘지를 않았다. 그에게는 변변한 옷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자기가 아껴두었던 돈을 모두 털어서 새 옷을 사주었다. 그런데도 마틸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새 옷에 걸치고 갈 만한 마땅한 목걸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틸드는 자기의 부자 친구를 찾아가서 아주 값비싼 목걸이 하나를 빌렸다. 그제야 마틸드는 기뻐했다.

그 날 저녁 파티에서 마틸드는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황홀했던 순간도 잠시 잠깐뿐이었다. 그는 새벽녘이 되어서 자기 남편과 더불어 초라한 자기의 집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집에 와서 외투를 벗는 순간 마틸드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분명 자신의 목에 걸려 있어야 할 목걸이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두 부부는 미친 듯이 밤새도록 목걸이를 찾고 또 찾았다. 그러나 결국은 찾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보석상에 가서 똑같은 목걸이를 사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부부는 돈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처분했다. 그래도 모자라는 것은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빌렸다. 그렇게 해서 똑같은 목걸이를 사서 돌려주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들 부부는 그 후 10년 동안이나 뼈빠지게 고생을 해야만 되었다. 마틸드의 곱던 얼굴도 다 상해 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마틸드는 우연히 길을 걸어가다가 자기에게 목걸이를 빌려주었던 옛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깜짝 놀라서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물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그의 친구는 깜짝 놀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가엾기도 해라! 그것은 가짜 목걸이였는데……”

그러니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가짜 목걸이를 위해서 그들 부부는 10년 동안이나 고생을 했던 것이다.

전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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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주의 도움 받고자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D. L. Moody)의 이야기이다. 한 번은 그가 스코틀랜드에 가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다. 한 소녀가 그의 집회에 참석을 했다. 이 소녀에게는 깊은 영적인 고민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기조차도 부끄러운 죄악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마음 속에는 늘 깊은 죄책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과연 이런 죄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소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날도 무디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무한하신 용서에 대해 설교를 하고 있었다.

소녀는 그의 설교를 통해서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 설교가 다 끝난 뒤 소녀는 흐느끼면서 무디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무디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선생님! 나의 부족하고, 죄악된 모습 이대로를 주님께서 받아 주실까요?”

무디는 흐느끼는 그 소녀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아들의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님은 자매의 모습 그대로를 당연히 받아 주십니다.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드리세요.”

그제야 소녀는 이제껏 억누르고 있던 모든 죄책감에서 자유함을 받게 되었다. 그는 큰 감격 속에서 흐느끼게 되었다. 그 모습을 성가대 석에서 보고 있던 엘리자 헤밀턴(E. Hamilton)이라는 여인이 펜을 들어 글로 그 감동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그리고 무디와 함께 순회를 하면서 음악으로 그의 복음 사역을 도왔던 생키(I. D. Sankey)가 그 글에 곡을 붙였다. 그렇게 해서 찬송가 214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에게는 아무런 가식이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시기 때문이다.

눅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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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은 어떠한 곳인가?

첫째로, 마25:41의 말씀처럼, 본래 지옥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서 만든 곳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마귀를 추종하면 그와 더불어서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 지옥에 떨어져 귀신들과 더불어서 영원토록 살 것이다.

둘째로, 마13:40의 말씀처럼 지옥은 불타는 곳이다. 가스레인지의 불에 엄지손가락을 대고서 5분 정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보자.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옥은 가스불 정도가 아니다. 더 뜨거운 풀무불이다. 거기다 전신이 들어가서 고통을 당해야 한다. 또 5분이 문제가 아니다. 끝없는 고통을 당해야 하는 곳이다.

셋째로, 마8:12의 말씀대로 지옥은 흑암의 나라이다. 어린 시절에 캄캄한 밤을 혼자 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름이 좍 끼친다. 이렇듯 어두운 밤을 걸어가도 무서운데, 지옥은 전혀 빛이라고는 없다. 그 어두움 속에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넷째로, 지옥에는 소망이 없다.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곳이 지옥이다. 마13:48절의 말씀처럼, 지옥의 구더기는 죽지도 않는다. 사람의 존재 자체가 영원하니까 사람을 괴롭히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다.

다섯째로, 지옥에서는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다. 마13:50에 보면 “거기서 울며”라고 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고집 피우지 말고, 예수님을 믿었어야 하는 건데……”하면서 뉘우침의 눈물을 흘리는 곳이다. 아울러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다. “내 부모 때문에 내가 이곳에 왔구나! 내 아내가 자기만 믿지 말고 기를 쓰고서라도 나를 믿도록 만들었어야지!” 원망하면서 이를 가는 곳이 지옥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처럼 무서운 지옥만큼은 가지 말아야 한다.

마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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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ood bye!

어떤 가정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셔서 어머니가 홀로 두 아들을 키웠다. 비록 고생을 많이 하면서 살았지만, 어머니는 두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늘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감사한데, 어머니의 마음에 늘 걱정이 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작은 아들은 교회에도 잘 다니며, 신앙 생활을 잘 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자라면서 교회를 멀리하고 신앙 생활을 전연 하려고 들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큰 아들이 나쁜 길로 빠지거나 못된 행동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미루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어느덧 그 어머니도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두 아들은 어머니의 곁에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두 아들의 손을 꼭 쥐고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는 두 아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들에게 하는 작별 인사가 각기 달랐다. 먼저 예수님을 믿지 않는 큰 아들에게는 이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얘야, Good bye!(잘 있거라!)”

어머니는 큰 아들에게는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측은한 마음으로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을 잘 하는 작은 아들에게는 이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얘야, See you again!(또 만나자!)”

왜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서로 다른 작별인사를 했을까? 큰 아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까 그에게는 영생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가 있는 천국으로 올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예수님을 잘 믿으니까 어머니가 가 계신 천국으로 언젠가는 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또 보자고 했던 것이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만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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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hold, this is glorious”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한다. 마치 어둡고 무서운 곳을 혼자서 가야하는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죽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을 지극히 평안하게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가올 영원한 세계에 대한 기대감, 받을 상급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D. L. Moody, 1837~1899)가 임종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둘러서서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무디는 감격에 찬 음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Behold, this is glorious(보라, 영광이로다)!”

“The earth recedes and the Heaven is coming(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임하는구나)!”

“God calls me(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

그러면서 그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여러분, 내일 아침 조간신문에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가 났다 할지라도 믿지 마십시오! 무디는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앞에서 이렇게 하늘로 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디는 환희와 확신에 찬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 세상을 떠나는 아쉬움을 보이면서 눈을 감은 것이 아니라, 다가올 찬란한 영광을 바라보면서 지극한 기쁨 속에서 눈을 감은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죽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왠지 모르게 죽음이라고 하면 혼자서 무섭고 캄캄한 곳으로 가야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에서 나온 것이기보다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살아온 사람은 언제 하나님이 부르시더라도 주저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요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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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족

현대인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가정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층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느 가정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부부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숨을 죽인 채,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실에서 싸우는 소리를 마음 졸이며 듣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 점점 더 언성이 높아졌다. 급기야 화를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쫓아가더니 주방에 있는 가스밸브를 틀었다. 그리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말았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아파트 안에 불길이 크게 치솟기 시작했다.

방안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면서 동정을 살피고 있던 아들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왔다. 나와서 보니까 거센 불길이 아파트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아들은 엉겁결에 창문을 열고서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순간적으로 되어진 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급히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따라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버지는 홧김에 불을 지르기는 했지만, 어쩔 줄 몰라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자신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가족 세 사람이 모두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첫째로, 아버지는 제비족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제비처럼 날아서 땅에 사뿐히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둘째로, 어머니는 날라리였기 때문이란다. 훨훨 날아서 땅에 사뿐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셋째로,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다. 그러니 고층에서 떨어져도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가정이 얼마나 병들었는지 우리들에게 풍자적으로 꼬집어주는 이야기이다. 가정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혹시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살펴보자. 바쁜 일과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가족들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도록 하자.

시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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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미

우리 나라 사람 가운데 어린 시절에 모나미 볼펜을 써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모나미 볼펜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그 볼펜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얀 케이스에 파란 글씨로 모나미 볼펜이라고 쓰여져 있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 숫자 하나가 기록되어 있었다. 무슨 숫자인지 기억이 나는가? 153이라는 숫자이다.

153이라는 숫자가 우리에게 연상을 시키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물고기 153마리이다.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베드로를 위시한 몇몇 제자들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다. 그러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새벽에 디베랴 바닷가로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다. 그러자 그물에 가득 찬 물고기의 수가 153마리나 되었다. 그토록 많은 고기가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예수님의 축복이 있기 전과 있고 난 후의 차이점은 엄청나다.

모나미 볼펜의 창업자이신 송삼석 회장은 믿음이 독실한 장로님이셨다. 그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성공의 비결을 깨달았다. 예수님이 축복하셔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물고기 153마리의 축복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제품명을 “모나미 볼펜 153”이라고 정하고, 믿음으로 자기의 사업을 시작했다. 과연 하나님은 그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셨다. 그는 “모나미 볼펜 153”이라는 한 제품을 가지고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믿음은 위대하다. 결코 시시하지 않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도 믿음은 가능하게 만든다. 오늘도 이 소중한 믿음을 붙들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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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

미국의 선교사 스탠리 존스(Stanley Jones)는 인도에서의 복음사역을 위해 자기의 일평생을 바쳤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그를 성자로 추앙하고 있다.

그는 89세 때 선교지에서 뇌일혈로 쓰러졌다. 그는 미국 보스턴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를 치료하는 의사들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의사 선생님, 저를 보실 때마다 이렇게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스탠리 존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의사들은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아니, 선교사님! 저는 베드로도 아니고, 요한도 아니고 또 부흥사도 아닌데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외칠 수가 있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가 강권하니까 의사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볼 때마다 그렇게 외쳤다.

“스탠리 존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그러면 그는 침상에 누워 있다가 큰 목소리로 “아멘! 아멘!”으로 화답을 했다.

그는 의사들뿐만 아니고 심지어 간호사들에게까지도 똑같은 부탁을 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를 보면 똑같은 소리로 외쳤다.

“스탠리 존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그러면 그는 누워서 “아멘! 아멘!”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6개월만에 완쾌되었다. 그가 병원에 들어올 때는 들것에 실려서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자기의 두 발로 당당하게 걸어서 건강한 몸으로 퇴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선교지로 다시금 돌아갔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했다. 90세에 가까운 노환자가 어떻게 그 병에서 완쾌될 수 있었겠는가? 믿음의 힘이다.

믿음은 우리를 강건케 한다. 믿음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막9: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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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

영국의 대 철학자요 수학자였던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 Whitehead,1823~1905)교수의 이야기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믿어오던 기독교 가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시절 학문에 심취하면서 그만 신앙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교회와도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았다.

그도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하루는 그가 살고 있는 도시에 폭설이 내렸다.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길에 한 노파가 눈 구덩이에 빠져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노교수는 그 노파를 부축해서 눈 구덩이 속에서 구해 주었다. 노파는 노교수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물어 보았다.

“내게 큰 친절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보니까, 댁도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심이 분명합니다. 어느 교회에 출석하고 계십니까?”

그는 겸연쩍은 듯이 자기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파는 의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 다 늙은 사람이 어쩌자고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단 말이오! 그러다가 나처럼 뜻밖의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나는 저 눈 구덩이 속에서 죽는 줄 알고 계속해서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있었구먼.”

그 말을 듣는 순간 노교수는 절로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저 노파로 하여금 저토록 확신 있는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일까? 내가 지금 탐구하고 있는 철학과 수학, 아니 전 영국의 모든 학문을 통틀어서라도 저 노파가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확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서지를 않았다. 그 때부터 그는 자기가 탐구해 왔던 학문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젊어서는 신앙에 대한 회의가 들었는데, 이제는 자기가 추구해 왔던 학문에 대한 회의에 빠지고 만 것이다. 결국 그는 다시금 교회를 되찾게 되었고, 잃었던 신앙도 회복하게 되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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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불꽃 하나가”

1960년대에 미국에서는 히피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머리를 덥수룩하게 기르고, 면도를 하지 않았으며, 맨발로 다녔다. 그들은 아무 곳에서나 노숙을 했다. 그들의 삶이란 그저 통기타나 치면서 맥주를 마시거나 마리화나를 피우는 일이었다.

갈보리 채플의 척 스미스 목사는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겼다. 그 당시 갈보리 교회는 미국 내에서 크게 부흥하고 있던 중이었다. 온 교회는 한 마음이 되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씩 나오더니 나중에는 히피족들이 무리를 지어서 교회를 나오게 되었다.

그러자 예기치 않았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에서는 역한 냄새가 났으며, 또 맨발로 들어오니까 교회의 깨끗한 카펫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아무래도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그들을 그대로 계속해서 받아야 할 것이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했다.

교회는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교회는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의 심정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받아 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에 그들의 모습 그대로 나와 통기타를 치면서 자기들의 언어와 문화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번지기 시작한 것이 바로 가스펠송이다. 그 때 그들이 애송했던 가스펠송 가운데 “작은 불꽃 하나가”라는 노래가 있다. 3절에 보면 이러한 가사가 있다. “친구여 당신에게도 이 행복을 전하고 싶소. 그것은 주께서 당신이 의지해야 할 구세주가 된다는 사실이라오.”

교회는 주님의 몸이다. 주님의 몸인 교회는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오라!”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대로 받아주셨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받아주고 격려해 주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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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손수건

시골의 한 가정에 부모님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아버지가 모아놓은 돈을 몽땅 훔쳐서 도회지로 달아났다.

그는 나쁜 친구를 사귀며, 나쁜 길로 들어섰다. 결국 그는 몹쓸 병에 걸렸다. 그가 건강할 때와 돈이 많을 때는 친구가 많았다. 그러나 돈이 다 떨어지고, 건강도 잃고 나니까 친구들도 다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는 부모님이 그리웠다. 고향집에 다시금 돌아가고 싶었으나 선뜻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는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불효 막심한 아들이 아버지께서 피 땀흘려 모아놓으신 돈을 가지고 도회지로 나와 허랑방탕하면서 모두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뒷골목을 방황하다가 몹쓸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9월3일 11시 기차를 타고서 우리집 앞을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만일 부모님께서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집마당에 있는 감나무 위에 노란 손수건 한 장을 걸어놓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저는 기차를 타고서 멀리 떠나가겠습니다. 두 번 다시 부모님을 괴롭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드디어 9월3일, 아들은 기차를 타고서 고향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고향집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안절부절못하면서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감나무 가지가지마다 노란 손수건들이 만국기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감나무 옆에는 그의 부모님이 노란 옷을 입고서, 노란 보자기를 열심히 흔들고 계셨다. 아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기차에서 내려 고향집으로 되돌아 왔다.

하나님도 우리를 위한 용서의 표시로 노란 손수건을 걸어놓으셨다. 바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이다.

엡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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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라게르크비스트(P. Lagerkvist)의“바라바”

1950년 스웨덴의 작가 라게르크비스트(P. Lagerkvist)는 살인강도 바라바의 회심을 다룬 작품 “바라바”를 발표했다. 그는 그 작품으로 인해서 195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바라바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그가 그 십자가에 달렸을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바라바의 마음에는 회한이 서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바라바는 예수님이 다시금 살아나셨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충격을 받게 된다. 그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들과 만나기를 원했지만, 아무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금 도적질과 강도를 일삼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끊임없이 골고다 사건의 충격이 맴돌고 있었다.

결국 그는 다시금 체포되어 노예로 로마에 팔려가게 되었다. 그는 노예 생활을 하는 가운데,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그에게서 감화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 즈음 로마의 황제 네로는 로마 시가지에 불을 지르고는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렸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체포를 당했다. 그 때 바라바도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밝히면서 체포를 당하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다.

결국 그는 스스로 체포를 당했다. 로마의 원형극장 안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십자가에 달려 있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했다. 그러나 아무도 바라바에게는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밤이 깊었다. 순교자들은 모두 숨을 거두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바라바도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친다.

“오, 주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시대의 바라바는 바로 우리이다. 정작 죽어야 할 나 대신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바라바가 가졌던 그 회한의 심정을 우리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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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조셉 스크리븐(Joseph Scriven)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대단히 난폭하고, 누구를 보든지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서 대학에서는 문학을 전공한 유능한 청년이었다.

그런데 결혼식 전날 매우 사랑했던 그의 약혼녀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의 성격이 비뚤어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조국을 떠나서 캐나다로 건너갔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살아보겠다는 결심에서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방황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하루는 교회를 찾아갔다. 그는 십자가 밑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이렇게 원망했다.

“오, 하나님! 왜 나의 사랑하는 약혼녀를 그냥 데리고 가버리셨습니까?”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약혼녀를 호수에서 잃었지만, 나는 나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아 피를 흘리며 죽게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너를 사랑했단다!”

그 순간 그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가 십자가를 바라보았을 때 십자가는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십자가 속에서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의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되었다. 아울러 자신의 삶이 그동안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심경을 노래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찬송가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이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신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무거운 짐을 벗고 온전한 자유함을 누리자.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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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꾀가 많은 여우가 한 마리

꾀가 많은 여우가 한 마리 있었다. 하루는 그 여우가 시골 동네 앞을 지나가는데 그의 눈에 포도원이 보였다. 그 안에는 잘 익은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여우는 배가 고팠다. 군침이 돈 여우는 입구를 찾았지만 보이지를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까 울타리의 한쪽 구석에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여우는 그 구멍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여우의 몸이 비대해서 통과할 수 없었다.

꾀 많은 여우는 포도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사흘을 금식하기로 했다. 일부러 굶어서 자기 몸을 홀쭉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여우는 과연 그 구멍을 통해서 포도원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여우는 포도를 실컷 따먹었다.

배가 잔뜩 부른 여우는 다시금 자기가 들어왔던 구멍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배가 너무 불러서 그 구멍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여우는 어쩔 수 없이 배가 다시 홀쭉해 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몇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기다리고 난 뒤에야 여우는 자기가 들어온 구멍으로 다시금 나갈 수가 있었다.

여우는 나가면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결국 내 배의 사정은 처음에 들어올 때나, 지금 나갈 때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구나!”

이 우화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바가 무엇인가?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던 것처럼, 갈 때도 다 남겨 놓고 결국은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것처럼, 결국은 다 반납하고 빈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을 지나치게 움켜쥐려고만 하지 말자. 손을 좀 펴면서 살아가자. 하늘나라에 우리의 보화가 쌓일 것이다.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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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능자의 손에 맡겨졌을 때

영국 런던의 템즈 강변에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한 거지노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를 하며 구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신통치를 못했다. 그래서 관심을 기울여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가 벗어놓은 모자에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웬 낯선 외국인 한 사람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거지노인이 연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외국인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측은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지금 제 수중에 준비된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바이올린을 좀 다룰 줄 하는데, 제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잠시 몇 곡만 연주해 드리면 안되겠습니까?”

거지노인은 잠시 쉬기도 할 겸해서 그에게 낡은 바이올린을 건네주었다. 외국인은 천천히 활을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낡아빠진 바이올린에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거지노인은 자기가 벗어놓은 모자를 들고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모두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노인의 모자에 넣었다. 순식간에 돈이 수북히 쌓였다.

연주가 끝나자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를 쳤다. 그 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 사람은 바로 파가니니이다!”

이탈리아의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세계적인 연주자였다. 그가 런던에 연주차 왔다가 잠시 템즈 강변을 산책하기 위해서 나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거지노인이 바이올린을 힘겹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하게 생각되어 대신 몇 곡을 연주해 주었던 것이다.

낡은 바이올린이지만 그것이 누구의 손에서 연주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는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의 삶도 악기와 같다. 내 손으로 내 인생을 연주하려고 들지 말고, 전능자의 손에 맡기자. 그러면 내 인생의 멜로디는 지극히 아름다울 것이다.

시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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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어떤 젊은 집사님이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그에게 결과를 이야기 해 주었다. 간경화로서, 이미 간에 더러운 균세포가 퍼졌다고 했다. 그는 주치의에게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앞으로 제가 살 수 있는 기한은 얼마나 됩니까?”

의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5년은 넘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말기에는 엄청난 고난이 수반될 것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되겠습니다.”

그 날 밤 그는 병실에 홀로 누웠다. 깊은 고독과 절망감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다. 사41:10의 말씀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는 먼저 그 말씀의 글자 수를 세어 보았다. 정확하게 70글자였다. 그의 마음에 감동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완전 숫자였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계속해서 암송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평화가 임하기 시작했다.

금년 초는 이미 6년째 되는 해였다. 그는 금년 초에도 똑같은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균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검사를 받아 보았다. 결과는 매일반이었다. 완전히 깨끗하게 치유함을 받은 것이다. 의사는 놀라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의사 생활을 30년째 했는데 이런 기적이 두 번째입니다.”

우리는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그 집사님을 사랑하셔서, 이것을 체험적으로 그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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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 은 친 절

미국의 어느 가구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점원들은 손님이 없으니까 서양 장기를 두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때 웬 할머니 한 분이 상점 밖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점원 가운데 한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서, 할머니에게 가서 말을 건넸다.

“할머니, 거기 서 계시지 말고 가게 안에 들어오셔서 비를 피하세요. 여기 있는 가구들도 좀 구경하시고요.”

할머니가 말했다.

“젊은이, 나는 지금 차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네.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니야.”

그러나 그 청년은 할머니를 강권해서 가게 안으로 모시고 왔다. 그는 할머니에게 자기가 앉아 있던 의자를 내주어서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잠시 뒤에 기다렸던 차가 왔다. 할머니는 나가면서 그 청년에게 명함 한 장을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났다. 어느 날 깜짝 놀랄 만한 편지 한 통이 가구점에 전달되었다. 당시 강철 왕으로 이름이 나있던 카네기의 친필로 쓴 편지였다. 바로 그 청년에게 온 편지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일전에 비 오던 날, 우리 어머님에게 베풀어주신 친절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서 이번에 스코틀랜드에 짓고 있는 대저택에 쓸 가구 일체와 또 우리가 새로 짓고 있는 회사에 들어갈 가구 일체를 당신의 가구점에서 구하고 싶습니다. 단,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에 당신이 책임을 지고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청년은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가 큰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가 베푼 사랑과 친절이 언제나 즉각적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친절이 뜻밖에도 큰 행운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음을 알고 오늘도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자.

히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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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룽과 아란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펄벅(1892~1973)의 대표작 “대지”의 줄거리이다.

농사꾼 왕룽과 그의 아내 아란은 가난했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땀흘리면서 농사일에 전념을 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그만 그 땅에 큰 흉년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왕룽은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남쪽에 있는 큰 도시로 이사가게 되었다. 어렵사리 리어카 하나를 구해서 왕룽은 앞에서 끌고 아란은 뒤에서 밀며 행상을 했다. 고생이 되었지만 아란은 행복했다. 남편이 자기와 늘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감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자기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부잣집을 공격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왕룽은 자기가 일평생 동안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엄청난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아란은 값비싼 보석을 손에 쥐었다.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땅을 사서 부자처럼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아란에게 불행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남편 왕룽이 여유가 생기니까 첩을 얻은 것이다. 왕룽은 아란을 부엌으로 내쫓아 버리고 오히려 첩을 안방에 앉혔다. 심지어 아란이 가지고 있던 보석을 강제적으로 빼앗아서 첩에게 주기까지 했다. 아란은 첩 때문에 매일매일 슬픔 가운데서 지새우게 되었다.

하루는 아란이 밥상을 차려서 안방에 들여보내 놓고 자기는 대충 부뚜막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다가 너무나 서러운 나머지 흐느끼면서 이렇게 독백을 했다. “차라리 그 때가 더 좋았는데……”

가난하게 농사지으면서 살았던 때가 더 행복했다는 것이다. 그 때는 가난했지만, 남편이 자기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그 때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은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풍요가 우리의 신앙을 해칠 수도 있다. 물질을 탐하지 말고 매일매일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자.

전5:11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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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허(BenHur)

“벤허”(Ben Hur)라는 제목의 영화를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 영화는 본시 류 월레이스(Lew Wallace)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어느 날 월레이스는 자기의 절친한 친구요, 유명한 무신론자였던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의 부탁을 받았다. 그들은 기독교를 부인하는 글을 써서, 기독교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자고 약속했다. 특히 예수님을 한 사람의 평범한 인물로 헐뜯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는 그 후 이년 동안 세계 각국의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구했다. 그리고 성경도 부지런히 읽었다. 기독교를 완전히 부인하고, 없애 버리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그는 준비를 다 갖추고 난 뒤에,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제 2장을 쓰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살아 계셔서 그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그가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뒤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바뀌어졌다. 그 후 그는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를“벤 허”라는 주인공 인물에 고스란히 투영시켰다.

벤 허는 본시 칼과 창의 무력을 통해서 자기의 신음하는 동족 유대인들을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겠다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누가 그의 손에서 칼과 창을 빼앗아 갔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셨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셨다.

벤 허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완전히 새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월레이스도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다. 우리도 날마다 매순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을 만나도록 하자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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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시각

사람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보는 시각도 다르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어느 날 불란서의 조각가 로댕이 청년들과 함께 산에 올랐다. 산길을 오르다가 청년들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를 보고 투덜거렸다.

“어떻게 이렇게 큰 바위가 사람이 다니는 길을 막고 있지?”

그러나 로댕에게는 그 바위 덩어리가 인생을 고민하는 젊은이로 보였다. 그는 이 화강암을 갈고 닦아 명품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번개를 보고 무서워 떤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가요 과학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거기에서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전기를 보았다. 더 나아가 그는 피뢰침을 만들어 벼락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생쥐를 보면 징그러워한다. 그러나 미국의 젊은 만화가 월트 디즈니는 창고에서 잠을 자다가 쥐들이 노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는 평화와 자유의 상징인 미키마우스를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달라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평과 원망을 일삼다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들어가지를 못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지 못하고 불평을 일삼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못하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밝게 살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늘 함께하심을 잊지 말자.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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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지도자의 의식” 아문센과 스콧

1911년,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과 영국의 탐험가 스콧이 각기 남극 정복을 목표로 출발하였다.

아문센은 출발하기 전에 에스키모 인들의 여행하는 방법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익혔다. 그는 모든 장비와 물품을 에스키모 개들이 끌도록 했다. 그는 물품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남극점을 향해 갔다. 그리고 개에게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출발한 지 55일 만인 1911년 12월 14일, 인류 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하였다. 대원 중 한 명이 썩은 충치를 뺀 것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상처 하나 없었다.

그런데 그와 경쟁자로 나선 영국의 스콧은 달랐다. 그는 남극 탐험을 위해 모터와 망아지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모터 엔진은 5일 만에 추위에 고장이 나버렸다. 그리고 망아지는 동상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대원들에게 짐을 지고 가도록 했다. 그들이 남극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5일 전에 아문센이 기를 꽂고 간 후였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추위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다 죽고 말았다.

스콧도 죽어 가면서 마지막으로 이러한 글을 남겼다.

“우리는 이곳에서 신사답게 죽겠다.”

아문센이나 스콧이나 똑같이 남극점을 향해 출발하였다. 그런데 왜 아문센이 이끈 팀은 아무런 사고가 없이 목적을 달성했고, 스콧이 이끈 팀은 다 죽고 말았는가?

결국은 지도자의 문제이다. 지도자를 잘 만난 사람들은 남극점을 정복하고 성공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지도자를 잘못 만난 사람은 결국 다 죽고 말았다.

우리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 예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까지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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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 종탑위의 어린양

노르웨이의 어느 시골에 있는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 교회는 종탑의 모양이 특이하게 생겼다. 보통 교회의 종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뚝 서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교회의 종탑에는 어린양의 조각이 서 있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그 교회가 건축을 할 때였다. 시골 교회라서 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교회 교인들은 교회를 건축할 때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일을 하기로 했다. 모두가 시간을 내어서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건물을 지어갔다.

교회의 건축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갔다. 이제 건축이 거의 마무리될 때였다. 높은 종탑을 세우기 위해서 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 건물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러다가 그만 실수로 그의 발이 미끄러져서 그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상당히 높은 건물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 사람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전혀 몸을 다치지도 않았다. 그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때마침 그 시간 그 밑으로 한 무리의 양떼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 양떼 위로 떨어졌던 것이다. 그 결과 어린 양 한 마리가 깔려서 죽었다. 그 대신 그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놀라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교회는 종탑에 어린양의 조각을 세워놓았다.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서 하신 사역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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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 테 르

18세기 불란서에는 볼테르라는 유명한 무신론자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외쳤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면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성경을 읽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어리석은 짓들 하지 마십시다.”

그뿐 아니었다. 그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떠들면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욕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큰 소리를 쳤다.

“봐라! 내가 이렇게 하나님을 저주해도 나는 멀쩡하지 않느냐?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하나님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의 모습은 전연 달랐다. 그가 나이 들어 죽을 날이 다가오자, 그는 다급한 마음에 의사를 붙들고 이렇게 사정했다.

“부디 내가 6개월만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재산을 다 드리겠습니다.”

그때 의사는 딱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제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을 준비해야겠습니다. 6개월이 아니라 6시간도 채 안 남은 것 같습니다.”

그때 볼테르는 마지막으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지금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구나.”

그가 죽고 난 뒤에 그가 살던 집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쇄하는 곳으로 바뀌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생은 유한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신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바위를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삼하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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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상집에서 배우는 지혜란?

어떤 교회의 전도사님이 학생들과 함께 소문이 날 정도로 잘 알려진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을 했다.

장례식이 다 끝난 후에 그들은 그 장례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도사님은 학생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장례식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각자가 한 번 본 대로 말해 보아라.”

먼저 한 학생이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은 부자였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정말 굉장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전도사님은 그에게 이렇게 일러주었다.

“너는 돈을 보았구나.”

또 다른 학생이 대답했다.

“제 생각에 고인은 덕망이 높으신 분 같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오지 않았겠습니까?”

전도사님은 그에게 말해 주었다.

“너는 덕을 보았구나.”

학생들은 자기가보고 느낀바를 다 이야기한 후에 전도사님에게 물었다.

“전도사님은 무엇을 보셨습니까?”

전도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죽음을 보았지. 그의 죽음에서 나의 죽음을 보았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면서, 자기의 죽음을 보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그 다음은 우리의 차례요, 우리에게도 일생의 마지막이 곧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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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트르(Jean-Paul Sartre)

불란서에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1980)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실존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불란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지성인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옹호하는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는 한때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결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상 받기를 거부해 버렸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그 한 가지만 보더라도 그는 참으로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1980년 봄에 그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병명은 폐암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5세였다. 이미 살만큼 살았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조용히 마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병원에 있는 한 달 동안, 죽음을 앞두고서 평소와는 전혀 딴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기의 감정을 전연 억제하지 못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발광을 하면서 온갖 고함을 질러댔다.

그가 죽고 난 뒤 언론들은 떠들었다.

“어떻게 자유를 그토록 부르짖었던 사르트르가 그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때 어떤 독자가 신문에 이런 글을 투고했다.

“그것은 사르트르가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세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살면서 사람들의 찬사는 받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죽음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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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불란서가 사르트르가 자랑했다면, 독일이 자랑했던 신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였다.

그는 세계 제2차 대전 중에 나치에 항거를 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가 죽은 뒤인 1951년에 출판된 ≪옥중서간≫은 그의 신념이 담긴 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가 감옥에 갇혀 있는 어느 날이었다. 간수가 그의 감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그는 직감적으로 자기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그는 감방문을 나서면서 함께 갇혀 있는 동료들에게 평안한 모습으로 이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형제들이여! 이제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임을 알기에 내 마음은 지극히 평온합니다. 나 먼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가겠습니다. 우리 모두 그곳에서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나십시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본회퍼는 39세라는 비교적 짧은 일기로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감옥 속에서 모진 고문을 겪으면서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영원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그 결과 그는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의 관문을 거뜬히 뛰어넘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믿음을 따라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했던 것이다.

믿음으로 살자. 우리도 믿음을 따라서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믿음을 따라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마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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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이름표

스코틀랜드의 숲 속에 있는 한 동네에 낯선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오랫동안 길을 헤맸던지 그 강아지는 굶주림에 지쳐 있었다. 그리고 몸도 너무 더러웠다.

그런데 그 강아지 목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이름표에는 "밥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밑에는 이러한 말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나는 이 나라 왕에게 속했다.”

알고보니 이 강아지는 왕의 강아지였던 것이다. 왕의 부처가 에딘버러성에 휴가를 왔다가 그 강아지를 잃은 것이었다. 이 사실은 곧 왕궁에 보고되었다. 강아지는 왕에게 그 즉시 되돌아가게 되었다. 강아지는 왕궁으로 돌아가 다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중요한 교훈이 무엇인가? 이름표의 역할이다. 강아지가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은 이름표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라. 왕이 무엇 때문에 그 더러운 강아지를 받아들였겠는가? 강아지가 왕에게 좋은 일을 해서인가? 강아지가 왕의 뒤를 잘 따라 다녀서인가? 왕이 강아지를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한가지뿐이다. 그 강아지가 자기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도 이름표가 중요하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표, 온 우주의 왕이신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이름표만 확실하게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세 전에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 우리의 부족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대로 받아주신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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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Seward Highway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고, 그의 뒤를 이어서 앤드루 존슨이 미국의 17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였다.

러시아가 미국에 알래스카를 720만 불에 사라고 제의를 했다. 존슨 대통령은 그 땅을 사고 싶었다. 그래서 의회에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의원들의 대부분은 극구 반대를 했다. 그들의 반대 이유는 이러했다.

“아니, 우리도 남북전쟁으로 인해서 지칠 대로 지쳐있는데 그런 쓸모 없는 눈 덮인 땅을 사서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하는가?”

그때 국무장관 윌리암 슈워드가 나서서 의원들을 잘 설득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알래스카의 눈 덮인 모습을 보고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땅에 묻혀져 있는 무궁무진한 보물들,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지하자원을 생각하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 세대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그 땅을 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의 간곡한 설득으로 인해서, 결국 의회는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는 일에 동의를 했다.

지금의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최고로 큰 주이다. 소득도 제일 높다. 석유를 비롯한 무궁무진한 지하자원이 땅 속에 매장이 되어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이다.

윌리암 슈워드는 긴 안목으로 미래를 꿈꾸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알래스카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서 알래스카의 중앙을 관통하는 크고도 중요한 고속도로의 이름을 William Seward Highway라고 부르고 있다.

믿음 안에서 큰 꿈을 품고 살자. 그 꿈이 이루어질 날이 올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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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슐러“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미국의 시카고에서 목회를 하던 목사님이 계셨다. 그는 목회에 실패를 하고서, LA로 이주를 했다. 그의 수중에 단돈 500불만 남아 있었다.

그는 LA에서 우연히 디즈니랜드를 보게 되었다. 그곳의 환상적인 광경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꿈이 부풀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도 맨손으로 다시 한번 시작해 보리라. 나도 이곳에 하나의 환상적인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보리라.'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믿음뿐이었다. 그는 믿음으로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결국은 그의 꿈이 이루어졌다. 그는 하나의 환상적인 교회를 세웠다. 그가 바로 Crystal Church, 곧 수정교회를 세운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다.

그가 교회를 열심히 짓고 있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엄청난 교회의 규모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의 꿈이 목사님의 생전에 다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짓고 있는 교회가 너무나도 엄청난 규모였기 때문에 그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주저하지 않고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저는 제가 죽을 때까지 제 꿈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저는 죽을 때까지 늘 꿈을 꾸면서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환상적인 하나님의 교회를 짓겠다는 꿈은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도 더 큰 꿈, 새로운 꿈을 계속해서 꾸면서 살아가고 있다.

성경은 약속의 책이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 신약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경 안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이 가득 차 있다.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잡아야 한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찬송하리이다”(시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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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트 디즈니

미국에 월트 디즈니(Walt Disney, 1901~1966)라는 젊은 만화가가 있었다. 그는 본시 매우 가난했다. 그는 어린 시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의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집집마다 조간신문을 배달하기도 했다. 그는 통신학교 과정을 통해 만화그리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가 학교신문을 위해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한편 만화공부를 계속하면서 장차 만화가가 되려는 꿈을 키웠다. 졸업 후, 그는 한 때 트럭을 운전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꿈을 한번도 포기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작업실을 구했다. 작업실은 허름한 건물 지하실이었다. 그런데 그 건물에는 쥐가 많았다. 밤이 되면 쥐들 때문에 그는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그는 꿈속에서도 귀찮은 쥐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꿈에서 쥐들의 친구가 되어서 함께 재미있게 노는 꿈을 꾸었다.

그때부터 그는 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쥐를 소재로 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쥐의 이름이 바로 미키 마우스였다.

미키 마우스를 소재로 한 그의 만화는 전 세계 어린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 결과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그 돈으로 하나의 환상적인 놀이 동산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디즈니랜드(Disneyland)이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놀이 동산을 만들어 나갔다. 플로리다의 올랜도 근교에 디즈니월드를 세웠고, 지금은 도쿄와 파리 근교에도 디즈니랜드를 세웠다. 디즈니가 품었던 꿈은 아름답게 실현이 된 것이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창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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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칼의 팡세

불란서의 천재적인 수학자요, 물리학자요, 종교철학자였던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의 이야기이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는 이성이 아니라 심성을 통해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배후에는 그의 개인적인 체험이 있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불란서의 사교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불란서의 모든 여성들이 그의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여길 정도였다.

어느 날 그는 파티에서 밤늦게 놀다가 술에 만취한 채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그가 타고 가던 마차가 그만 세느강 다리에 부딪혔다. 그 사고로 파스칼은 밖으로 튕겨 나와 그의 몸이 마차에 깔려 버렸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세느강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도대체 죽음 앞에서 무엇인가? 내가 천재로서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한 질문에 그는 명쾌한 답변을 내릴 수 없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너무나도 초라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 다행스럽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그는 죽음 바로 직전에 구출되었다.

그는 그때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지금까지 술에 취한 채 허랑방탕하게 지내던 삶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차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가 보이지를 않았다.

그때 그의 친척중의 하나가 그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 다음부터 그는 믿음을 따라서 성결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팡세』라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앙적인 명상록을 남기기도 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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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속”Promise is promise

몇 해전에 상영된 영화가 있다. 제목은 “It could happen to you,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주인공 찰리는 평범한 경찰관이었다. 찰리는 사람이 참 좋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그는 점심을 먹기 위해서 인근에 있는 커피샵으로 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여종업원 이본느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 차 보였다. 찰리는 그의 기분을 좀 풀어주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팁이라도 듬뿍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주머니를 살펴보니까 팁을 줄 만큼의 돈도 없었다.

그는 마침 자기의 아내를 위해서 산 복권 한 장을 생각해 냈다. 그는 그것을 끄집어내었다. 그리고는 여종업원 이본느에게 그 복권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 약속을 했다.

“내가 이 복권에 당첨되면, 당첨금의 절반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다음 번에 내가 올 때에는 오늘 팁까지 합쳐서 두 배의 팁을 주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찰리의 복권이 400만 불에 당첨이 되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48억 원이다. 찰리는 자기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절반인 200만 불을 떼었다. 그리고는 이본느에게 그 돈을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유명한 말을 했다.

“Promise is promise, 약속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했기 때문에 자기는 그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부족과 허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한 약속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하물며 신실하신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이야 어떠하시겠는가? 신실하신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지키신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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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52주 분량의 편지입니다

더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 교회에서 만들때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 부흥, 대 교회, 대 목회 이루시길 빕니다.

김 영 익 드림

출처 : 가고싶은교회 성은교회
글쓴이 : 피터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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