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확인하는 세 가지 질문
민수기 14:1-10
(2016년 9월 18일 주일 설교,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던 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에서 지휘관 한 사람씩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해보니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장대하였습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백성들에게 보고를 하는 정탐꾼들은 2패로 갈렸습니다. 다수인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의 백성들은 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메뚜기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애굽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 지휘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기들의 옷을 찢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여호와께서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온 회중은 돌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났습니다.
이 사건의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 나이가 20세 이상이었던 사람들 중에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 볼 수 있는 3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자신의 믿음이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이 가짜라고 판정을 내려주신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살았던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우리 주님은 그들을 저주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 13:5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봐야 합니다.
1.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는 것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는가는 그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고 또 그 사람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맹모삼천지교’라고 들어보셨잖아요. 맹자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교육에 각별한 신경을 썼습니다. 처음에 맹자가 묘지 부근에 살았는데 늘 보는 것이 상여꾼들이라 맹자가 상여꾼들의 흉내를 내며 놀았습니다. 그래서 이사를 했는데 이사 간 곳이 시장 옆 있었습니다. 시장 근처로 이사를 간 맹자는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며 놀았습니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맹자가 서당에서 글 읽는 흉내를 내게 되었고 나중에 훌륭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성질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생활 중에 사복을 입고 경복궁에서 근무를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경복궁에는 2개의 연못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인들도 잘 아는 경회루 연못이고 또 하나는 경회루 연못보다 훨씬 작은 향원정 연못입니다. 향원정 연못에는 취향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 앞에 아이들이 앉아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 아이의 그림을 보고 놀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아름다운 향원정을 그리거나 향원정 넘어 청와대 뒤쪽에 있는 북악산을 그리거나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그리는데 그 아이는 스케치북에 온통 시커먼 색을 칠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그 아이에게 “넌 무엇을 그리니?”라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아이가 “이 나무를 그리고 있어요”라고 대답하고 가리킨 것은 취향교에 사람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바리케이트의 시커먼 기둥 하나였습니다. 저는 안타까웠습니다. 경복궁은 정말 아름다운 고궁입니다. 꽃과 나무의 조경이 잘 되어있고, 건물들도 아름답습니다. 향원정은 아름다운 정각입니다. 연못에는 아름다운 연꽃도 피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바리케이트의 시커먼 기둥을 보고 그것을 그리고 있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워겠습니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집중하고 사는 사람들은 미련하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어보면 다수를 차지했던 10명의 정탐꾼들과 소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보는 것이 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많은 것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고 실과가 크고 탐스러운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사는 주민들은 체구가 몹시 크고 힘이 세며 전투를 잘하게 단련된 강한 사람들임을 보았습니다. 또 그 땅에는 견고하고 큰 성벽을 높이 쌓아 그 성벽을 넘거나 무너뜨리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가나안 족속들과 자기 백성들을 비교하여 보니 자신들은 메뚜기같이 작고 무능해 보였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현실을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현실만 봤다는 것입니다. 현실만을 보았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으로는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에게 자기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10명의 정탐꾼들과 똑같이 정탐을 하고 돌아왔지만 보는 것이 달랐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현실을 보고 현실적인 보고를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현실 넘어에서 시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민 13:30절에서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여호수아와 갈렙이 비록 가나안 족속들이 크고 강할지라도 승리를 확신했던 이유는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8-9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족속들의 신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육안으로 현실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육안으로만 세상을 보면 내가 뭔가 좀 잘하면 교만해지고 내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두려워 떨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안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담대하고 겸손하고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은 수많은 고난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천만인이 자기를 죽이기 위하여 둘러 진을 치는 상황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담대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영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 3:5-6을 보겠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때의 현실은 암담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다윗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누워 자고 깨었다고 말했습니다. 천만인이 자기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육안으로 현실만 본 것이 아닙니다. 영안으로 자기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붙들고 계시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육안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경건하게 살 수 없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하려면 영안으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 세상과 타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죄악에 빠져서 헤맬 수 있겠습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총리 일을 볼 때 있었던 일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음란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음란한 여인이 요셉을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번 요셉에게 추파를 보냈지만 요셉은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집안에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두 사람만 있게 되었습니다. 음란한 그 여인은 요셉을 붙들고 동침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유혹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창 39:9입니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 육신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영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진짜 신앙생활입니다.
2. 나는 무엇을 듣고 있는가?
이천에 있는 가산교회 엄충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아버지 목사님이 자기 결혼을 시키면서 말했습니다. “아들 낳으면 목사를 만들어라. 그래서 3대 목사가 되게 하여라.” 엄충원목사님은 아버지를 통해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 속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엄목사님이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아들 낳으면 목사를 안 만들리라. 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리라. 나를 아버지 어머니가 강제로 목사 만든 것이 싫다.” 자기 속에서 나는 소리도 분별해야 하는데 엄목사님은 분별하지 않고 받아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을 하면 유산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온갖 약을 다 먹어보아도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해보라는 것을 다 해보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10번이나 계속해서 유산을 하였습니다. 엄목사님은 10번을 유산 한 후에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아버지 목사님의 말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것을 그때 깨달은 것입니다. 이 때 엄목사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제 임신하면 아들이 되게 하시고 주의 종으로 기르겠습니다.” 드디어 임신이 되었습니다. 배에 손을 얹고 목사로 서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낳았는데 약 한번 안 먹어도 유산이 되지 않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요셉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4년 만에 또 아들을 주셔서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소리나 마귀의 소리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믿음의 보고를 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수인 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의 말에 집중을 하다가 불신앙의 말에 지배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불신앙으로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들은 말이 그들의 믿음을 변질시켰고, 변질된 믿음이 하나님께 매를 맞을 행동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모세를 버리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돌로 믿음의 사람인 여호수아와 갈렙을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말았어야 할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은 광야에서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입니다. 그들은 다수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므로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 종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의 소리입니다. 마귀의 소리는 육신을 자극하여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아주 위험한 소리입니다. 가룟유다가 이 음성에 귀를 기울이다가 멸망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인간의 소리입니다. 인간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소리는 참고할 뿐이지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언제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에 마귀의 소리나 사람의 소리를 분별할 수 있는 잣대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파워가 있어서 듣고 믿는 사람에게 실제가 됩니다.
우리는 마귀의 소리는 대적해야 합니다. 인간의 소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송 옥영이라는 분은 [세뇌된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 5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죽음이 다릅니다. 동물은 얼마든지 죽여도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면 큰 죄입니다. 살인은 가장 큰 죄입니다. 어느 권사님은 닭 공장을 할 때 하루에 닭 4만 마리까지 죽였습니다. 그렇게 닭을 많이 죽여도 조금도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사람만 죽여도 사형 죄에 해당됩니다.
둘째, 가치가 다릅니다. 동물은 사고 팔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양을 사러 가면 항상 앞에 가는 양은 비싸게 부르고 뒤에 쳐진 양은 싸게 부릅니다. 부지런한 양은 항상 앞장 서 가면서 풀을 잘 먹기 때문에 건강해서 그렇습니다. 짐승들은 사고 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사고 팔 수 없습니다. 인신매매는 큰 죄인입니다.
셋째, 실험이 다릅니다. 동물은 실험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해부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생물 시간에 개구리를 해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구리 잡아다 핀으로 네 다리에 꽂고 생살을 찢으며 생체 실험을 한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은 실험용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생체실험 하던 일본군 741부대가 할빈에 있습니다. 영하 40도에서 발가벗겨 놓으면 얼마 만에 얼어 죽나 실험도 하였습니다. 싸우나 실에서 땀을 계속 빼면 몇 분 만에 죽나도 실험하였습니다. 이것은 큰 죄입니다. 동물을 실험할 수 있어도 사람은 실험할 수 없습니다.
넷째, 약육강식이 다릅니다. 동물의 세계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 먹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잡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강한 사람을 약한 사람을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다섯째, 윤리와 도덕이 다릅니다. 동물세계에는 윤리가 없습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힘이 좋은 수놈 한 마리가 수십 마리의 암놈을 거느립니다. 다른 수놈이 암놈에게 접근하면 피가 나도록 물어뜯습니다. 돼지는 일부일처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윤리와 도덕이 있어서 그런 짓을 하면 양심에 찔림을 받습니다.
송옥영씨가 말한 다섯 가지 외에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은 영적인 면에서 다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지지만 동물은 영이 없습니다. 사람은 영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만족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공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영적인 만족이 없습니다. 요 6:63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인생을 만족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소리나 다 들어서는 안 됩니다. 경계해야 할 소리가 있습니다. 불신의 말, 부정적인 말, 악평하는 말, 원망의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계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 성경적인 말은 영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말과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은혜로운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고 가려 듣는 복된 귀를 소유해야 합니다.
3.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를 받은 후에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신앙의 문제이고 두 번째 문제는 그들이 목적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목적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에게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고 후손인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들의 불신앙의 말을 듣고 믿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목적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우리의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많은 돈을 벌고 많은 인기를 누려도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인생을 잘못 산 것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답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단 하나 영혼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혼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벧전 1:9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영혼이 거듭나는 중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듭남의 결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 3:5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14장에 보면 주님께서 자신이 승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떠나가지만 제자들은 염려하거나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네 가지가 이유가 나옵니다. 그중에 첫 번째가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도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 14:1-3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사해서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천국에 상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 앞에 갈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시고 다듬으시면서 준비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좀 잘살고 좀 더 높아지는 것에 초점을 모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그런 것들은 때가되면 자동으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천국 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밖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많게는 1,000만 명 정도로 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그들을 몽땅 이스라엘 땅으로 데리고 가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 운동을 독수리 날개 운동(Wings of eagle movement)이라고 합니다. 말세가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독수리 날개를 타고 귀국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된 데서 나온 운동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먼저 대상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랍비를 보내어 3년 동안 그들을 잘 훈련시켜서 이스라엘 문화를 익히게 한 후에 데리고 간다고 합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몇 명을 지도자로 세우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먼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몇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3년 간 그들을 철저히 훈련시킵니다. 그리고 3년의 훈련이 끝난 후에 합격점수를 받은 자를 왕 앞에 서게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곧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 날을 위하여 훈련하며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사람들이 이걸 모르니까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전폭적으로 투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 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나만 가면 안 되니까 전도해야 하고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 왕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한 결 같이 전도를 열심히 하니까 하나님께서 생활도 책임을 져주시더라고 간증을 합니다.
어느 권사님의 간증입니다. 권사님은 30대 후반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 중에 젊은 나이에 혼자 되셔서 아이들 키우는 분들 보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3남매를 혼자 기르느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였습니다.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17년간 하였습니다. 매일 습도가 많고 뜨거운 곳에서 사람들 때밀어 주는 일을 17년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권사님이 기왕에 때를 미는 것이니 손님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가 권사님의 유일한 낙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국회위원 선거에서 떨어져 낙심하고 재산까지 다 날린 사람의 아내가 찾아왔습니다. 그 날도 권사님은 때를 밀어 주면서 전도하였습니다. 손님이 권사님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 손님의 믿음이 좋아졌고 남편은 국회위원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그 후 국회위원 아내가 전도하여 준 것을 잊지 못 하고 있다가 생활이 넉넉해지니까 때를 밀며 전도하던 권사님의 자녀 교육을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의 상을 위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천국에서 상도 주시지만 이 땅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주십니다.
우리는 현실만 보면 안 됩니다. 현실 넘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 말이나 들어서는 안 됩니다. 마귀의 음성은 분별하고 대적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은 분별하여 참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모하여 듣고 믿음으로 받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가 천국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땅에 것에 목을 매지 마시고 천국을 준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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