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즌을 여시면서 사용하시는 사람
행 10:1-8
(2016년 9월 25일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사도행전에 보면 몇 번에 걸쳐서 새로운 시즌이 열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님이 임하시므로 성령의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하던 성도들에게 성령 하나님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은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에게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 8장에 보면 또 다시 새로운 시즌이 시작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게 되면서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을 넘어서 전국적인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사마리아에서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행 10장도 하나님이 여시는 새로운 시즌의 시작입니다. 유대인들에게만 머물렀던 복음이 공식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하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 것입니다.
행 13장에 보면 또 다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즌을 여십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안디옥 교회를 세우시고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교회가 선교사로 파송하는 새로운 시즌을 여셨습니다.
행 28장에 보면 또 다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즌을 시작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셨습니다. 물론 이미 로마에는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로마 복음화를 위한 초석을 다지게 하셨습니다.
지난 2천 년 동안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준비시키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열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2천 년간 교회 역사에 없던 새로운 시즌 안에 들어왔습니다. 롬 9-11장에 예언된 대로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기도에 헌신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몇 년간 기도팀을 꾸려서 이스라엘까지 가서 그들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 대한민국에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남북통일을 곧 허락하실 것이며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통하여 복음통일의 길과 복음한국, 선진한국, 선교한국의 시즌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 온 세계는 말세지말이라는 새로운 시즌 앞에 서 있습니다. 계시록의 7인, 7나팔, 7대접 재앙이 머지 않아 시작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시대에 두 증인을 일으키셔서 마지막 추수를 하실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 시작 될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돼지고 있는 현상들을 볼 때 저는 그리 멀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즌을 환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로마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로마를 복음화 하시는데 바울과 고넬료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연구하면 바울만이 아니라 본문에 나오는 고넬료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통하여 로마를 복음화 시키는 새로운 시즌을 여셨습니다. 사도행전 28장에서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할 때를 학자들은 주후 60년으로 봅니다. 그 뒤 바울은 2년간 재판을 기다리다가 주후 63년에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 그 다음 해인 64년에 네로에 의해 죽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주후 60년에 로마에 도착해 보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롬 16장에 보면 그때 믿었던 주요 그리스도인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실명만 36명입니다. 그것도 누구 누구의 가정, 누구 누구의 형제 이렇게 나오니까 실제로는 훨씬 많은 그리스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잘 알려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뵈뵈 자매, 3절에 나오는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 등이 있으며 모두 39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는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전도한 것일까요? 누군가가 바울보다 먼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고넬료입니다. 행10장에서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난 것을 학자들은 주후 47년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에 간 것과는 13년 차이가 납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만나서 예수님을 믿고 회심한 지 13년입니다. 그 사이에 고넬료는 이스라엘 근무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후 60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약 10년 이상, 그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특히 군인들, 정치인들, 사회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가 먼저였습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기 전에 고넬료를 택하사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시고 로마 구원을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즌을 여실 때 이렇게 사람을 쓰십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즌을 여실 때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지를 나누겠습니다.
1. 신앙과 일치된 생활을 하는 사람
하나님이 쓰셨던 고넬료는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0장을 천천히 읽어보면 고넬료는 죽은 종교생활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는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여신 것입니다.
2절에 보면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경건'의 헬라어 원문에 뜻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를 잘 드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증거 중에 하나입니다.
이번에 제가 집회를 갔던 교회는 목사님이 참 훌륭하신 분입니다. 사모님도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자녀들도 참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안타까운 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1남2녀의 자녀 중에 아들에게 문제가 생겨서 목사님과 사모님이 힘들어하십니다. 제가 볼 때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위대한 재목으로 쓰시려고 준비시키시는 과정 속에서 겪는 갈등입니다. 목사님의 아들은 인성도 좋고 머리도 좋은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도 최우수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서울대와 연대와 카이스트에 합격을 해서 서울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서울대를 들어간 후에 갑자기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자살까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교수님을 만났고 가족들이 사랑으로 돌봐줘서 자살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 아이가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도 가지 않고, 심지어 방학 때 자기 집에 와서도 예배 참석을 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고등학교 3년 동안 하루도 예배를 감격이 없이 드려본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신앙이 그 영혼에 자리를 잡으면서 예배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경건한 사람은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 부부는 사모님과 목사님의 아픈 심정을 느끼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에 '피에타'라는 조각상이 있습니다. 바티칸에 있는 베드로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르네상스 시대 조각예술품 중에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로마에 체류 중이었던 프랑스 추기경 장 드 빌레르의 의뢰로 미켈란젤로가 3년에 걸쳐 만든 작품입니다. 피에타 상은 유일하게 미켈란젤로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새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의 시신을 무릎에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모습입니다.
피에타 상이 완성되었을 때 교황과 추기경, 귀족들이 제막식에 모였습니다. 교황은 피에타상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미켈란젤로에게 “당신이야말로 위대한 예술가요”라고 치하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교황님, 피에타 상은 제가 조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이 대리석 덩어리 안에 만들어 놓으신 피에타 상이 드러나도록 겉에 붙은 부스러기들을 제거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피에타는 ‘경건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경건은 온갖 죄와 탐욕으로 얼룩진 모습을 다듬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자기 속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형상이 잘 드러나도록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는 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2절에 보면 고넬료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여기서 '온 집'이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말합니다. 자녀는 물론이고 그의 부하나 노예들까지 모두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고넬료가 생활을 통해서 영적인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넬료의 생활이 엉망이었다면 고넬료의 집 사람들은 고넬료 눈치를 보느라고 종교생활을 했지 하나님을 경외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니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것입니다.
고넬료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많이 구제했던 사람입니다. 2절에 보면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4절에 보면 고넬료가 기도하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라고 말했습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구제를 조금하고 자기 이름을 과시하는 과시용이 아니었습니다. 고넬료의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구제였습니다. 눈가림이나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구제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신앙을 실천하는 신앙인이었던 것입니다.
고넬료는 겸손했습니다. 고넬료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로마군의 1개 군단은 약 6,000명의 병사로 이루어졌습니다. 600명씩 10개 부대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고넬료가 속했던 이달리야 부대는 그 10개 부대 중 하나로, 외국에 주둔하는 정예부대였습니다. 고넬료는 그 부대에서 100명의 군사를 통솔하는 지휘관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이었고 고넬료는 로마의 장교였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습게보고 함부로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25-26절에 보면 고넬료는 베드로를 만난 후에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이에 놀란 베드로가 고넬료를 일으켰습니다. 고넬료의 겸손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고넬료는 일반인들도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많이 구제했었고, 베드로는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더 귀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고넬료의 겸손함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고넬료는 겸손함을 통해서도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앙과 행위가 일치하는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
2. 기도 하는 사람
행 10장에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즌을 여시는데 사용하신 2사람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 모두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다른 부분을 통해서 베드로가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 역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10절에 보면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3절과 30절에 보면 고넬료는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던 사람입니다. 4절에 보면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이 고넬료의 기도를 기억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억하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므네모쉬논”입니다. 이 말은 ‘기념’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기념물”, “기념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맞는 기념물을 주십니니다.
이삭은 결혼하고 20년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기념물로 쌍둥이를 주셨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의 황폐함에 대한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념물을 주셨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 응답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갈 수 있었고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는 기념비적인 일을 해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역사해주십니다.
중국에서 선교하시는 최하진 선교사님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1989년 28살에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스탠포드대학교에서 포스트 닥터를 했으며, 대덕 연구 단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 선교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최박사 미쳤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분이 ‘네 인생을 주님께 걸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꿈은 버려라, 나의 꿈을 가져라!” 그는 중국의 청소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열방중고등학교를 세우고자 2002년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03년 8월 학교 개교를 앞둔 1개월 전 마지막 공사 대금 1억 원이 필요했습니다. 1주일 동안 잠을 못 자니까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까지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돈만 찾았던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어느 목사님을 통해서 1억 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최선교사님은 그 일을 계기로 절실하게 체험하고 깨달은 바를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구나!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이런 메시지를 주셨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게 뭔지 아느냐? 네가 학교를 지어 나를 위해 일하는 것,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니다. 내가 너에게 원하는 건 딱 한 가지다. 바로 나에 대한 절대 신뢰다. 네가 나만 의지하면 다른 모든 일은 뒤따라온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가 무엇인지 그때 직접 경험했다. 돈이 많아야 안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가장 안전한 것이다. 주님, 주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이뤄집니다. 여러분!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왜 기도해야 합니까? 저는 여러분에게 자신의 전도대상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우리는 태신자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해야 합니까? 영혼 구원은 우리들의 능력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2:47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초대교회 때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이십니다.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지역에 한 소녀가 난치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소녀는 어느 날 병상에서 전도를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출석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데 어느 날 목사님이 방문하여 병상에서나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게 되었고, 놀라운 부흥이 그 지역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소녀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죽은 다음에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소녀의 베게 밑에서 56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 한 장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 적힌 56명은 하나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각 사람의 이름 앞에서 빨간 십자가 표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기도한 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 사람씩 표시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부흥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몸을 쓰지는 못하지만 병상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 한 소녀로 인해 교회가 부흥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열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시 35:13을 보겠습니다.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는 다윗 주변에 다윗을 괴롭게 하는 자들을 세워서 끊임없이 다윗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히려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가 다윗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다윗을 도우셔서 원수를 이기게 하셨고, 기도하는 다윗을 원수의 목전에서 높여주셨으며, 기도하는 다윗의 잔이 넘치도록 역사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을 이기게 하셔서 사울을 이어서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가 기도자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자를 도우시며, 기도자를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열어가시는 분입니다.
3. 고정관념의 장벽을 넘어서는 사람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는 이 사건은 외형적으로 보면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로서는 그것은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유대인에게 갇혀있던 복음이 유대인의 장벽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가 가능했던 것은 베드로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영적인 장벽을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있었던 집은 욥바의 무두장이 집이었습니다. 무두장이는 요즘 말로 하면 가족 제조공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가죽을 만들려면 먼저 죽은 짐승의 사체를 가져다가 피부를 벗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무두질과 염색을 하고 말려야 합니다. 이때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그 집이 시내에 있지 않고 해변가에 있었습니다. 유대인 입장에서 죽은 동물을 만지는 것도 부정하고 또 염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납니다. 베드로도 유대인 아닙니까? 그래서 피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감동하셨습니다. “너 해변가에 있는 무두장이 집으로 가라”. 그래서 율법에 저촉되는 줄 알면서 순종하여 갔는데 또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제6시 기도를 하려고 지붕에 올라갔다가 환상을 봤습니다. 율법에서 금하는 짐승들이 담긴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음성이 들리기를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잡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런 일이 3번 있은 후에 부정한 짐승을 담았던 보자기 같은 그릇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성령님께서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내려가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서 무슨 일로 왔느냐 묻고 고넬료가 자기를 초청하여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었으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그 벽을 뛰어넘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갔고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이 말씀 듣는 사람들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공식적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장벽은 유대인의 선민의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유대인 랍비는 “왜 하나님은 이방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옥에 유황불이 타오르고 있지 않느냐? 그 유황불이 계속 타오르려면 땔감이 필요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 땔감으로 이방인들을 만들어 놓으셨느니라.” 그 정도로 유대인의 이방인에 대한 생각은 배타적이며,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유대인으로서는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사도라 하더라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수 없는 사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장벽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영적인 새로운 시즌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고넬료가 가진 장벽이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나라 종교를 믿지 않고 이스라엘의 종교를 믿었습니다. 본래 로마인은 로마인이 믿는 종교가 있습니다. 로마의 종교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신교입니다. 로마는 여러 신을 믿었습니다. 심지어 황제도 신이었습니다. 하도 여러 신을 믿었기 때문에 지금도 로마에 가면 만신전이 있습니다. 그들이 믿은 수많은 신들을 모신 신전입니다. 또 하나는 국가종교입니다. 로마는 국가에서 정해준 신만 믿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으면 반국가적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로마장교로서 로마의 신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의 신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쉬운 일입니까? 만일 황제가 이것을 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넬료의 성공과 출세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황제를 신으로 믿는 나라의 장교가 자기 나라 신을 믿지 않고 식민지 국가의 신을 믿는다면 황제가 좋아하겠습니까? 이것은 고넬료에게는 분명히 장벽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믿음으로 그 장벽을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넬료를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여셨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큰 장벽은 고정관념입니다. 만약 우리가 고정관념을 깬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여실 것입니다. 우리의 숙제는 환경이나 사람이나 물질이 아닙니다. 우리가 뛰어넘어야 할 장벽은 질병이나 가난이나 원수가 아닙니다. 자신 안에서 자기를 묶고 있는 고정관념이 가장 큰 장벽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여시는 것입니다.
어떤 제과점에 앵무새가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출근하는 길에 제과점 앞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앵무새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봐 아가씨! 아가씨, 이리 와봐! 이리 와봐!” 그래서 신기해서 가보면, “너 왜 그리 못생겼어, 너 참 못생겼네, 메주 같구나.” 처음엔 여자도 신경을 안 쓰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날 앵무새가 “이봐! 아가씨! 이리 와봐! 이리 와봐!” 해서 가면, “너 얼굴이 왜 그리 메주같이 생겼어, 왜 그리 못생겼어!” 기분이 상한 여자는 주인한테 가서 앵무새가 무슨 말을 저렇게 하느냐고, 버릇 좀 고치라고 얘기했습니다. 다음날 지나가는데 앵무새가 야단을 맞아서 그런지 기가 좀 꺾인 것 같았습니다. “이봐 아가씨! 이리 와봐.”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할까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알지?”, “무슨 말할지 알지?” 뒷말은 들어보지도 못하고 여자는 그만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앵무새가 반복적으로 해 주었던 그 이야기만 기억하고 생각했습니다.
경험이 많다는 것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굳은 확신이 바로 고정관념입니다. 사람은 고정관념 외에 다른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고정관념을 넘어서 위로부터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새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훈련입니다. 이것을 반복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시즌을 여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 세계에 들어가는 새로운 시즌을 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서도 늘 새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즌을 여실 때 사용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3가지를 나눴습니다. 첫째, 신앙과 일치된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고정관념의 장벽을 넘어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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