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가?(3:19-22)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노인 한 사람이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손에 가죽으로 만든 성경을 한 권 들고 있었습니다. 공원에서 놀던 어린아이들이 노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노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 사진을 찍는 카메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노인에게 말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우리 사진 좀 찍어주세요.” 노인은 그 소리를 듣고서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얘들아, 그런데 내게는 이미 너희들이 찍힌 모습을 가지고 있단다. 어디 한번 보여주련?” 아이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 어디서 우리를 찍었을까?”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노인에게 다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노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롬 3:10~18에 있는 말씀을 아이들에게 천천히 읽어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
그리고 나서 노인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얘들아, 이것이 바로 너희들의 모습이란다. 하나님의 눈에 비친 너희의 모습은 바로 이러하단다.” 그러면서 노인은 아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우리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자세하게 언급했습니다. 죄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예리하게 지적했습니다. 왜 사도 바울이 그러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에게 구원의 필요성, 복음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갑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치료가 시작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치료하기에 앞서 먼저 의사는 진단합니다. 청진기를 가슴에 대봅니다. 경우에 따라서 피검사도 합니다. 엑스레이 촬영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올바른 치료가 있기 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은 죄 아래 놓여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철저하게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부터는 치료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의 문제를 다 해결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우리들에게 비로소 말씀해주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편의상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19~20절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기에 앞서서 먼저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결코 우리를 의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이 하는 일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21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이것은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의해서 증거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증거가 참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2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의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길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들,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복음의 길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고, 내 공로가 아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나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해주신 연고인 줄 알고 예수님께 영광돌리고,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더욱더 사랑하고, 나의 남은 생애를 예수님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헌신하겠다고 하는 거룩한 결단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복음에 앞서 주신 율법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바울은 3:19∼20에서 특별히 율법과 죄의 문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가지고는 결코 우리를 의롭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자기의 개인적인 생각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알고, 너희들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진리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율법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러면서 율법이 무엇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까?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마치 법정에서 검사가 죄인을 앞에 세워놓고 “이런 죄를 지었잖아? 언제는 또 이런 죄를 지었구나. 또 이런 죄를 지었구나”고 하며 추상같은 논고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 율법이 누구에게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까? 19절 상반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말할 가치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그늘 아래 살면서 율법을 자랑하고 율법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당연히 의롭다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아니다. 너는 죄인이다. 이런 죄를 지었어”하고 율법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궁극적인 이유가 19절 하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9절 하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도록 만들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유구무언이라고 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도록 만들어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 고개를 푹 수그리고 두려움에 떨면서 하나님의 무서운 판결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상태로 율법이 우리를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까? 율법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바울은 오늘 본문 20절에서 그것을 우리들에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을 다시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바울은 오늘 본문 20절에서 율법이 할 수 없는 일과, 반대로 율법이 하는 일을 우리들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율법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입니까? 율법은 우리를 절대로 의롭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자기의 힘만으로 율법에 있는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사람이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율법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20절 하반부에 보니까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봅니다. 우리 몸의 뼈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갑니다. 엑스레이를 찍습니다.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면 뼈의 어디에 금이 갔는지, 뼈의 어디가 부러졌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엑스레이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수천 번을 찍는다 할지라도 엑스레이 그 자체를 가지고서는 부러진 뼈를 붙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엑스레이가 하는 일은 우리 뼈의 어디에 이상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율법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엑스레이의 기능을 율법이 하고 있습니다. 율법 그 자체를 가지고는 아무리 해도 우리의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이구나!”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엑스레이를 찍어서 부러진 뼈를 붙이겠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것이 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읽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이제는”이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전환점이 여기서 생겼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양상이 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눈앞에 푸른 초장, 쉴 만한 물가가 펼쳐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율법의 강이 도도히 우리 눈앞에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의 강, 복음의 강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의 정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절망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고얀 놈들, 못된 놈들! 너희는 죽어 마땅한 죄인들이야. 죽어도 싸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의가 아닙니다. 내 노력,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주신 의입니다. 누구든지 이 의의 옷을 입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엿이 설 수 있는 의를 우리에게 마련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롬 1:17에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복음에는 무엇이 나타났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 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의 길에 이를 수 없는 것인 줄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를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소식입니까?
여러분, 오늘 본문 뒤에 있는 23절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는 더러운 누더기와 같습니다. 이 의를 가지고서는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한 의를 마련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의를 덧입기만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율법이라고 하는 깊은 강에 빠졌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죽음을 향하여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구원의 손길이 나타난 것입니다. 구조대가 나타났습니다. 헬리콥터가 하늘에 떴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아닌 밤에 홍두깨 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1절 하반부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증거해놓았습니다. 선지자들이 이미 다 증거했습니다. 구약 성경 속에 계시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증거는 참됩니다. 진실합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의를 얻을 수가 있습니까?
바울은 마지막 22절에서 우리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22절 말씀을 우리 한 목소리로 읽어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율법으로 불가능으로 했던 일을 예수님이 가능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 오직 이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그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요 6:28∼29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하신 일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타락한 인간이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에 타락한 우리 인간들이 보충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 생각 자체가 불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주신 그 의를 믿음으로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 봅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시성 다윗이 이렇게 노래를 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풍성한 식탁을 이미 다 차려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하여 풍성한 식탁을 이미 차려놓으셨는데 도 그 상을 앞에 놓고서, “큰일났네. 내가 영양실조에 걸렸구나. 내가 이 음식을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야 할까?”하고 걱정을 하고 앉아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이겠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22절 하반부에 보면 모든 믿는 자에게, 믿는 사람 누구에게나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이냐, 헬라인이냐? 그것을 따지지 아니하십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묻지 아니하십니다. 지금까지 선을 행했느냐, 악을 행했느냐?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묻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것을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나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할 때에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 무서운 사형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정리해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에 앞서 주신 율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결코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율법이 하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복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을 의해서 이미 다 증거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그러면 이 의를 어떻게 받아 누릴 수 있습니까? 길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의를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큰 배 한 척이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배 안에는 수많은 승객들이 타고 있습니다. 배의 갑판 위에 한 어린 소년이 자기가 기르는 개와 함께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둥근 원반을 멀리 던지면 개가 껑충 뛰어서 그것을 물고 자기의 어린 주인에게 갖다줍니다. 소년이 던지면 개는 또 그것을 입으로 받아 물고 주인에게 갖다주는 놀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잘못해서 그 원반이 갑판 밖으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개는 자기의 몸을 날렸습니다. 다행스럽게 입에 그 원반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개는 바다 위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소년이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버지에게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고서 선장을 찾아갔습니다. “선장님, 우리 개가 지금 바다 위에 떨어졌습니다. 배를 좀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선장은 냉담한 표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찮은 개 한 마리 때문에 이 큰 배의 운행을 중단하고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년이 아무리 사정을 해도 선장은 난색을 표했습니다.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뒤에 소년은 주먹을 불끈 쥐더니 갑판 위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순간적으로 자기의 몸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물에 빠진 개를 향하여 헤엄쳐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선장도 어쩔 수 없이 그 큰 배를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우리 예수님의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나 저나 죄로 인해서 죽어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찮은 저와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높고 높은 보좌를 내놓으시고 이 땅에 자신의 몸을 던지신 것입니다.
오늘 뜻 깊은 성찬예식을 통해서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찢기신 주님의 살을 먹고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그 보혈을 마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오는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게 임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율법의 정죄를 받아 만신창이가 되어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저희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복음을 허락하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것은 나의 공로가 아니요, 전적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인 것을 우리가 잠시라도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오늘 저희들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거룩한 성찬예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저희들을 붙들어주시옵소서. 회개할 것은 다 회개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거룩한 의식에 임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손을 붙들어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거룩한 성찬예식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큰 은혜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도록 복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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