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태복음 11:2~6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대통령으로 선출된 버락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변화라는 깃발을 앞세워 승리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450년 만에 선지자로, 이스라엘 땅에서 활동하며 변화를 외쳤습니다. 변화는 회개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람은 그를 감옥으로 내몰았습니다. 감옥에 갇히면서도 뒤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희망을 기대했기 때문에, 그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다르게 세상은 여전히 변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인 것이 그를 실망하게 했고, 낙담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감옥 안에서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합니다. “당신이 오실 그리스도입니까? 메시아입니까?”
세례 요한이 실망하고 낙망하게 된 이유가 뭐냐?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대를 안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분류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자신의 분류함 중에 이 세상을 순식간에 변혁시키는 변혁가라는 분류함 속에 넣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기대처럼 세상을 발칵 뒤집히는 그런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신지 2천 년이 지났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변할 줄 알았는데, 기독교 인구가 많아졌다고 할지라도 지금도 이 사회 속에는 여전히 악이 존재하고 잘못된 일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요한은 그의 분류함대로, 그의 기대대로, 세상이 변하지 않자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향한 질문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질문은 그 맥을 같이한다고 여겨집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는 때로 실망하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신앙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삶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그 때에 그 문제를 누구에게 가지고 가야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 해답을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일을 만날 때, 찾아야 할 분은 예수님이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이렇게 말해라.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문둥병자가 나음을 얻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너희는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가서 다 얘기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을 ‘그리스도냐, 메시야냐’고 묻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행한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요한에게 가서 그렇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는 모세의 소명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 제가 누구관대 그 일을 합니까? 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너를 보냈느냐?’고 물으면 제가 하나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내가 누구관대 그 일을 합니까? 라는 질문에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으로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를 보낸 분이 누구냐?’는 질문에 “나는 야웨다.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 답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말은 명사가 아닙니다. 반대로 “나는 활동하는 자다.”라는 동사입니다. 구원하고, 축복하고,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동사로서 말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시고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신앙생활 또한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지금 이 시간에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떤 공간에 갇혀서 움직이지 않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축복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변화의 주체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정해놓은 그 분류함에 들어갈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예수님 그 자체로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나로 인하여 실족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신앙은 어떤 이론도 논리도 아닌 삶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활동하시고, 역동하시고, 움직이시는 그런 예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앉아서 머리로 신앙을 정의내리는 사람은 백이면 백 다 실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삶속에서 역사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신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능력의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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