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열매를 맺는 교회! (갈 5:22~24)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교회입니다. 이 표어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 성령의 열매를 맺는 가정, 성령의 열매를 맺는 구역, 성령의 열매를 맺는 주일학교가 됩시다.
갈5:16 말씀을 보면, “너희는 성령을 따라서 행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면서 성령을 따라서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갈5:18 말씀을 보면,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롬8:14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령은 이미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를 인도해주시라고, 우리가 일부러 기도할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우리는 생각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행동을 할 때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을 따라서 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우리는 자연히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육체의 욕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로잡으려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을 예로 들었습니다. 롬7:22 말씀처럼, 그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 말씀처럼, 그는 분명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7:18 말씀처럼, 그는 자신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롬7:23에서 그의 지체 속에 죄의 법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체의 욕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7:24에서, 그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힘으로는 도무지 육체의 욕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우리 힘으로는 육체의 욕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유일한 해결책은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자연히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바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의 온전한 의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칭의의 배후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칭의 후에는 절로 성화가 따라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결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힘으로 거룩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화의 배후에는 성령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행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극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보다 더 적극적인 결과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첫째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물론 우리가 노력한 결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친히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십니다. 성령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3 온유와 절제니....
여기에 성령의 열매가 아홉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모두 다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입니다. 우선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누구나 다 좋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로 나누어서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열매라는 단어는 단수형입니다. 하나의 열매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은 우리에게 그 아름다운 것들 아홉 가지를 한꺼번에 다 주신다는 뜻입니다.
“나는 사랑은 있는데, 오래 참음은 없어.” “나는 희락은 있는데, 왠지 절제가 안 돼.” 그렇게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단수형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열매는 한 가지씩 따로 따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아홉 가지가 다 주어집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기만 하면, 성령은 우리에게 아홉 가지의 아름다운 것들을 동시에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입니까? 그러면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를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 곧 아가페는 희생을 수반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은 바로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둘째, 희락 곧 기쁨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기쁨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 때문에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맹수들에게 온 몸이 찢김을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바로 이와 같은 기쁨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셋째, 화평 곧 평화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의 화평과 이웃과의 화평과 내 마음의 화평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이 모든 화평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고 찬송합니다.
넷째, 오래 참음입니다.
한두 번은 쉽게 참습니다. 그러나 오래 참는 것은 어렵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칼로 말고의 오른쪽 귀를 쳤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기 어려울 때 참는 것이 오래 참음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래 참음을 주십니다.
다섯 째, 자비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그래서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자비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자비를 주십니다.
여섯 째, 양선입니다.
양선은 어질고 선한 것을 가리킵니다. 보통은 글자의 앞뒤를 바꾸어서, 선량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십니다. 이를 위해 성령은 우리에게 양선을 주십니다.
일곱 째, 충성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지금 자기가 맡은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일을 바라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현재 내가 맡은 일에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생명의 관을 주십니다. 바로 이와 같은 충성을 성령은 우리에게 주십니다.
여덟 째, 온유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은 우리에게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그 대신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아홉 째, 절제입니다.
이는 스스로 조절하며 통제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생각도 절제하고, 말도 절제하고, 행동도 절제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절제를 주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를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비록 우리가 간단하게 살펴보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귀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들입니다.
물론 내가 노력해서 이것들을 한 가지씩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셔서 이것들을 친히 만들어내십니다. 그러기에 이것들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성령이 친히 맺으신 열매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사랑의 사람이 됩시다. 희락의 사람이 됩시다. 화평의 사람이 됩시다. 오래 참음의 사람이 됩시다. 자비의 사람이 됩시다. 양선의 사람이 됩시다. 충성의 사람이 됩시다. 온유의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절제의 사람이 됩시다.
요15:8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십니다. 날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합시다. 그리해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날마다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법 이상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은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십니다. 자연히 우리의 삶은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며, 또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우리를 칭송할 것입니다.
갈5:23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여기서 “이같은 것”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우리말 성경은 “이같은 것”이라고 단수형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원문은 “이같은 것들”로 복수형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씀하는 “이같은” 것이란 앞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를 가리킵니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 그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귀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어느 법이 이같은 것들을 금지하거나, 반대하거나, 정죄하겠습니까?
예컨대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자는 징역 일 년형에 처한다.” 또는 “자기의 기쁨을 겉으로 표현하는 자는 벌금 일 백만 원을 물어야 한다.” “싸움을 말리며 화평을 도모하는 자는 그의 전 재산을 몰수한다.” 세상에 이와 같은 법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불신자들도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는 모두 다 아름다운 것들임을 인정합니다. 그러기에 세상도 이같은 것들을 행하는 사람을 표창하며, 선행상, 모범상, 평화상 등등의 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은 이 세상에 전혀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법인 율법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율법이 성령의 열매를 금지할 리가 만무합니다. 율법의 역할은 죄를 깨닫게 하며, 죄를 억제하는 것입니다. 육체가 욕심을 이루려 할 때, 율법은 그것을 막으며 죄를 짓지 못하게 합니다.
갈5:19~21 말씀을 보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이루어지는 육체의 일이 열 다섯 가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더럽고 지저분하며 악한 일들입니다. 물론 육체의 일들은 이외에도 많이 있겠지만, 그저 대표적으로 열 다섯 가지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갈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갈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의 법인 율법은 여기에 나오는 열 다섯 가지 육체의 일들을 다 금하며 정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세상의 법들도 이들 대부분을 다 금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해지는 육체의 일들은 추하고 역겹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 정죄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아름답고도 풍성하게 맺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 율법은 더 이상 당신에게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당신에게서 나타나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는 내가 기대하는 수준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나 율법 아래에 있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갈5:18 말씀이 밝히는 바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은 율법 아래에 있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요구하는 수준보다도 더 고귀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을 따라 행하면, 법 이상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사소한 것까지라도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그리해서 마지못해 법에 끌려 다니는 초라한 삶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법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삶, 고귀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셋째로, 진정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한다고 해서, 또는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또는 교회에서 직분자로 봉사한다고 해서, 모두 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사람만이 참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죄에게 종 노릇 합니다. 그들은 육체를 따라 살면서, 온갖 육체의 욕심을 이룹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육체의 일들을 행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그들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다시 말해서 육체의 온갖 욕심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를 따르며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습니다.
롬6:6을 보면,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의 옛 사람이 바로 육체의 욕심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우리의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도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2:20 말씀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또한 갈6:14 말씀처럼,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를 따라 행하며, 육체의 욕심을 이루어 육체의 일들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행하며, 성령의 역사를 이루어 성령의 열매를 아름답고도 풍성하게 맺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아직도 육체의 욕심을 온전히 떨치지를 못하고, 여전히 곤고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장막을 벗는 날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며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우리의 옛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에 끌려 다니면서, 그 욕심을 이루어야 할 이유는 전연 없습니다.
예컨대 사나운 맹수가 있습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닥치는 대로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그 맹수가 굵은 쇠사슬에 단단히 묶여있습니다. 그러면 그 맹수가 아무리 사납고 무서워도, 우리가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한 그 맹수는 우리를 결코 해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미 육체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부러 사로잡히지 않는 한, 육체의 욕심은 결코 우리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주어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동사는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입니다. 그런데 이는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자신이 육체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는 우리의 의지와 결단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욕심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로잡으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단호하게 외쳐야 합니다. “나는 이미 너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므로 너는 나를 결코 사로잡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우리는 단호하게 육체의 욕심을 뿌리쳐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은 기뻐하시며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아울러 성령은 우리 안에서 풍성하게 열매를 맺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을 따라 행합시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는 법 이상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열매, 희락의 열매, 화평의 열매, 오래 참음의 열매, 자비의 열매, 양선의 열매, 충성의 열매, 온유의 열매, 절제의 열매를 풍성히 맺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에게 큰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크게 누리며, 하나님의 축복이 넘쳐흘러서 축복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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