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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활하신 예수님! (고전 15:1~8)

부활하신 예수님! (고전 15:1~8)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롬10:9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은 성도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고전15:12 말씀과 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몸도 부활하리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 팽배했던 헬라철학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한번은 바울이 헬라철학의 중심지인 아덴에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곳의 철학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과 죽은 자들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행17:32~33 말씀처럼, 그들이 조롱하며 믿지 않기에 바울은 그 곳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헬라철학은 이원론이었습니다. 헬라철학자들은 사람을 영과 육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영은 선하지만, 육은 악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몸의 부활, 곧 자신들의 악한 육이 부활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린도는 아덴에서 가까웠습니다. 자연히 아덴의 헬라철학이 고린도에도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은 믿었지만, 자기들의 악한 몸이 다시 산다는 것을 믿기가 선뜻 내키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 몸의 부활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육체가 그대로 부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변화된 몸으로, 신령한 몸으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자세하게 밝혔습니다.

바울은 우리 몸의 부활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면, 우리 몸도 부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세 가지 면으로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기에, 우리 몸의 부활도 확실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믿음과 부활의 소망이 더욱 확고해지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1~2절).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만이 구원받은 성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이 지상에 교회가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고전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형제들아.” 애정 어린 표현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열매로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지금 바울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그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바울은 과거에 그가 고린도에 있었을 때, 그들에게 전했던 복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그가 전한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돌이켜보게 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3절과 4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의 본질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에게 복음, 곧 기쁘고도 복된 소식이 됩니까?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처럼, 우리도 다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복음 가운데 섰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신앙에서 벗어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복음 가운데 서서, 복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복음을 계속해서 믿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미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의 주변에는 헛되이 믿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믿는 듯하다가, 뒤에 믿음을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구원을 받았다가, 구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일2:19 말씀처럼, 그들은 애당초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알곡이 아니라 쭉정이였습니다. 겉으로는 믿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처음부터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을 받고, 굳게 지키고, 진실 되게 믿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본시 그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습니까? 고전6:9~11 말씀과 같이, 그들은 불의한 자,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제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로서 거룩한 삶, 의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들의 삶을 바꾸어놓았습니까? 바로 살아 계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셔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을 증언합니까?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셔서, 그들 가운데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역사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이는 사탄이 사람들의 구원을 막으려하는 짓입니다. 그러나 지난 이 천 년 동안 교회는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부흥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믿음의 선진들이 전하여 준 복음을 받아서, 복음 가운데 서 있습니다. 아울러 교회는 복음을 굳게 지키며, 복음을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복음의 본질, 곧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받아, 복음 가운데 서며, 복음을 굳게 지키고, 복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백성에게 분명히 증언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3~4절).


복음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미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또한 성경대로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내가 받은 것을.” 복음은 바울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았을 뿐입니다. 바울은 누구에게서 복음을 받았습니까? 갈1:11~12 말씀처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복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직접 받은 것입니다.

고전11:23에서 바울은 성찬에 관한 말씀을 하면서도, 자신이 그 말씀을 예수님에게서 받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튼 바울은 자신이 받은 복음을 무엇보다도 먼저 고린도에서 전했습니다.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도 복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곧이어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 죄를 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목적이며,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정신을 읽고 기절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완전한 사망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신 것은 우연히 되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곧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대속의 죽임을 당하실 것과 장사 지낸 바 되실 것을 이미 자세하게 말씀했습니다.

예컨대 사53:5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53:9 말씀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예수님이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의 무덤에 장사 지낸 바 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보다 칠백 년이나 앞서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성경대로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고전15:4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복음이 새롭게 만들어져서 전해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이미 다 말씀해놓았습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은 성경대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컨대 베드로는 행2:27에서, 또한 바울은 행13:35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는 그들이 시16:10 말씀을 인용한 것이었습니다.

막12:10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죽임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 때 예수님은 시118:22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마12:40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이때도 예수님은 성경을 들어서, 자신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이미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처럼, 성경대로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며, 성경을 삶의 원리로 삼고, 성경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증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5~8절).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시 사신 예수님을 목격한 수많은 증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합니다.


고전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우선 오늘 본문을 보면, “보이신다”라는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뒤에는, 아무나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며 자신을 보이셔야만, 누구든지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기 전에는 막달라 마리아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도 예수님을 몰라보았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도 예수님이 그의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난 뒤에야,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먼저 예수님은 게바 곧 베드로에게 보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심히 통곡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상심에 빠진 베드로를 위로하시기 위하여 먼저 그에게 보이셨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눅24:34 말씀을 보면, 그 때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에게 보이셨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보다도 먼저 게바, 곧 시몬 베드로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습니다. 이때는 가룟 유다가 빠지고 또 도마도 처음에는 없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열 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둘이라고 표현한 것은 열둘이 예수님의 제자들, 곧 사도들을 가리키는 대명사였기 때문입니다.


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마28:10과 16절 말씀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 있는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곳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아마도 그 때 예수님은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을 것입니다. 열두 제자가 양질의 증인이라면, 오백여 형제는 다수의 증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약 25년 정도 지나서 고린도전서가 기록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오백여 형제 중에 잠든 사람, 곧 죽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살아 있었습니다. 따라서 얼마든지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확인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고전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이때의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도 아니었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둘 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요7:5 말씀처럼, 처음에 야고보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다 믿는데, 가족이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 야고보는 예수님을 믿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야고보서를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신 후에, 또 다시 모든 사도들에게 보이셨습니다. 행1:3 말씀과 같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마지막으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에게도 보이셨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본시 바울은 그리스도를 비방하며,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그는 대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다메섹으로 갔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때부터 바울은 예수님에게 잡힌바 되어,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님의 종으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고 칭했습니다. 해산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났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기와 같이 덜 되고 부족한 사람에게 보이신 것은 전적으로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뒤에 있는 고전15:10에서 바울은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보이신 것도, 또한 그가 사도로서 수고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수많은 증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한 것처럼, 우리의 부활도 확실합니다.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의 몸도 부활할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을 끝내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교리적으로 우리는 부활 신앙 위에 견실하게 서서,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우리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고를 칭찬하시며,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행한 대로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앙 위에 굳게 서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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