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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필곤목사

[스크랩] 행복을 만드는 가정

행복을 만드는 가정
시편128:1-6
김필곤 목사


어느 화가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을 그리기를 원하고 집을 출발했답니다. 바다도 가보고 산도 가보고 폭포도 가보고 시장도 가보았습니다. 결혼식장도 가보고 졸업식장도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곳도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 왔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상에 둘러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때 그는 그것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움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그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족 식구가 한 상에 둘러 앉아 기도하며 식사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니다. 오늘 시편은 이런 소박한 가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자유롭게 갑니다(5). 매주 복권을 사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해 일 한만큼 수고의 대가를 받고 살아갑니다(2). 아내는 늘 유산하거나 불임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낳을 수 있어 자녀를 낳습니다. 아이들은 감람 나무 처럼 무럭 무럭 건강히 잘자랍니다. 그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습니다(3). 손자 손녀와 함께 살아 갑니다(6). 손자를 낳은 집을 보니까 그렇게 기뻐하더라고요. 어느 목사님은 새벽 기도가 끝나면 며느리가 뭐라 해도 손자를 보러간다고 해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나라는 전쟁이 없이 평안합니다(8). 이 얼마나 행복한 가정입니까?
우리집은 이 보다 더 행복하다 뭐가 행복하냐고 항변하는 성도님도 있겠지만 평범한 것 같지만 이런 가정을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 특히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면 시편 기자가 얼마나 행복해 하고 있는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126편, 127편, 128편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옆에 있는 설명을 보십시오. 뭐라고 써있습니까?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 예배드리고 갈 때 부르는 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126편은 우리에게 이 시의 배경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126편 1절을 보십시오. 어느 때입니까? 포로에서 돌아 올 때입니다.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포로가 되었습니다. 가정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남편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아들은 포로가 되어 잡혀갔습니다. 아내는 노예가 되어 팔려갔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어 예배드리러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습니다. 나라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이러했는데 포로에서 해방되어 이렇게 한 가족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은 계속 복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1절, 2절, 4절, 5절에 나옵니다. 6절 가운데 4절이 복이 있도다는 말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누구나 이와같은 행복한 가정을 바랍니다.
중고생들이 바라는 가장 큰 기도 제목은 가정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타문화권 목회 연구원장 조은태 목사는 98년 1~10월 전국 20개 교회 2천 2백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8.1%의 학생들이 `가정의 영원한 행복'을 꼽았습니다. 직장인들의 소원도 마찬 가지입니다. 한 해가 되면 사람들에게 한해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물어 봅니다. 가장 많이 원하는 것은 가족의 행복입니다. 가정 주부의 소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가정의 행복이 아니라 마담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남편이 아닙니다. 한 시대 잠깐 살다가 가는데 우리 가정이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행복은 주어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만들어 집니다. 가정의 행복은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끈임없이 노력하여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탄은 늘 우리의 가정을 불행하게 하려고 합니다. 잘사는 꼴을 못봅니다. 최고의 가정 아담의 가정을 보십시오. 에덴 동산에서 먹는 것 입는 것 걱정없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겠습니까? 어차피 입을 필요 없으니까 요즈음 처럼 방직 공장, 옷 공장 필요없고, 산에 있는 열매 따먹고 사니 요즈음 처럼 인스턴트 공장 필요 없는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행복에 겨워 사는 꼴을 사탄이 보고 가만히 놓아 둡니까? 결국 아내는 남편을 배신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모든 책임을 넘김니다.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을 죽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추방됩니다. 땀을 흘려야 먹고 살아갑니다.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행복을 빼앗으로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노력하지 않고 방심하면 행복한 가정을 누리기가 힘이 듭니다. 얼마나 오늘 이 시대 썩은 문화가 가정을 파괴하고 있습니까? 가족 식구들을 탈선시키고 타락시키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방방방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눈만 뜨면 방방방 걸려 있지 않습니까? 전화방, 노래방, 피시방, 소주방, 안마방, 인터넷방,
우리의 가정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뭐 대단한 비결같지만 단순합니다. 평범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정 행복을 만드는 첫 걸음입니다(1).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행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편은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하고 아내는 노예가 되고 자식은 포로로 잡혀가 가정이 산산 조각 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다가 멸망될 당시의 상황을 한번 보세요. 열왕기하 25장을 보십시오. 찾아 보세요. 복권 번호 맞추기 위해 몇번씩 보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하나님 말씀은 복권 보더 더 훨씬 좋습니다. 찾아 보세요.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을 당할 때 시드기야 왕은 두눈을 빼이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7). 아들은 그의 목전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전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은 불살라졌습니다. 성중에 남아 있는 자들은 포로로 잡아갔습니다(11). 빈천한 국민만 남겨놓았습니다(12). 그 사람들도 일부는 애굽으로 도망갔습니다(26).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날 텔레비전을 통하여 유고 전쟁을 보지 않습니까? 전쟁 중에 가정에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이산 가족을 보십시오. 50년이 지난 오늘날도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왜 이들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열왕기하 24장 3절을 보세요. 므낫세의 모든 지은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므낫세의 죄가 무엇입니까? 왕하21장 2-4절을 보십시오.
속된말로 겁대가리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경외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두려워하고 공경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경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숭배의 대상으로 마땅히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돌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안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결국 가정이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결국은 물질입니다. 자신들에게 그 우상이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그들을 철저하게 징계합니다. 오늘 날도 마찬 가지입니다. 온 통 가정은 경제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경제 가정으로 변하였습니다. 돈에 울고 돈에 웃습니다.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악세사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이면 아버지도 냉장고에 넣습니다. 어머니도 욕실에 넣고 불사릅니다. 아들도 버립니다. 버리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뱃 속에서 죽여 버립니다. 심지어는 아내 대여, 부인 임대도 합니다. 가정에는 경제기능, 자녀 출산, 교육, 가족보호, 자녀 양육, 휴식, 애정, 신앙 계승 등 여러 기능이 있는데 유독 경제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울 송파에서 30대 부인을 60대에게 돈을 받고 임대해줬다가 계약이 끝났는데도 다시 찾아오자 싸움질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황씨 부인이 천호동에 있는 C카바레에서 만난 김씨와 바람을 피우자 남편은 이것을 알고 아내와 바람을 피운 김씨를 만나 2 천만 원을 받고 `아내 조씨는 3년간 낮 시간을 김씨의 집에서 지낸다'는 내용의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입니다. 황씨는 그러나 계약에 따라 3년간 조씨와 낮 시간을 함께 지내며 계약 결혼 생활을 한 김씨가 계약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씨를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 것을 보고 김씨와 말다툼을 벌이던 끝에 서로 주먹을 휘둘러 경찰에 입건되었습니다. 황씨는 조씨가 계약 기간 동안 자주 집을 비워 3년 중 9개월을 채우지 않아 이를 따지기 위해서 찾아갔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해지는 길을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첩경입니다. 지름길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정은 남편을 경외합니다.
남편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온 가족이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가슴조이며 살아갑니다. 남편의 비유를 맞추려고 갖은 아양을 다 떨으며 사는 부인들도 있습니다.
아내를 경외합니다. 중전 마마의 눈에 벗어나면 짐짝 신세가 됩니다. 중전 마마, 아내 수령님 명령만 하옵소서 하고 살아가는 집도 있습니다.
자식을 경외합니다. 자식이면 온 식구가 다 최면에 걸립니다. 공부하는데 방해될까바, 혹시 화를 내지 않으려나, 혹시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려나 온통 그 자녀를 향하여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해방되시십오. 그것이 행복의 길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여 가정이 행복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온 가족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게 하십시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관점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서 추방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보십시오. 1950년대 미국의 가정들은 주일이면 정장을 한 가족들이 함께 차를 타고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은 전 세계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했고 가정은 행복했고 학교 역시 경건하였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공화당 정권을 물리치고 민주당 후보였던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진보와 자유, 인권을 앞세우며 공립학교에서의 기도와 성경과목을 자율화라는 명목으로 금지시켰습니다. 아침마다 기도로 시작하던 학교에서기도를 못하게 하였습니다. 성경공부를 학교에서 몰아 내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총에 맞아 제명에 못살았고 지금 미국의 학교는 전쟁터로 변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어떻습니까? 이혼을 밥먹듯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정에서 몰라내고 학교에서 몰아내면 행복할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 반대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십시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녀 얼굴만 보면 공부, 피아노, 숙제, 노래 부르지 말고 함께 잠잘 때 기도 하고 식사할 때 학교 갈 때 기도하며 하나님 경외하는 방법을 가르쳐 보십시오. 함께 가족이 둘러 앉아 경건의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아버지는 아내를 위하여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기도해 보십시오. 우리 집의 주인은 하나님이신 것을 과감히 선포하고 하나님을 경외해 보십시오. 삶의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가정이 행복합니다(2).
왜 이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을까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은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모세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당시도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심판하였습니다. 불을 내려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시켰습니다. 공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역하는 백성을 지진으로 징계를 합니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쓴 물이 단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직접 체험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누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겠습니까? 눈 앞에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가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습니다. 3대 4대 10대 20대 이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만 하시지 기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납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경고해도 되지 않습니다. 말로만 말로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실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수히 들었으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실제 삶에 실천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무수히 많은 시간을 통하여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였습니까? 오늘날 유두고 사건과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설교들으면서 조실수 있겠습니까? 아나니와와 삽비라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한탄의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사 1:4)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사 29:13)
오늘 날 기독교 가정이 불행해 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행함이 없습니다. 실천이 없습니다. 많은 설교를 듣고 많은 성경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실천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실천력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것 아닙니다.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활용하고 실천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얼마나 멋지고 감동적인 설교를 듣느냐 보다는 들은 말씀을 얼마나 삶의 현장에 옮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만 밑줄 긋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에 밑줄을 긋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씀에는 빨간, 파랑, 노랑, 7곱가지 색을 칠해 놓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좋을 것이라라는 말씀을 읽는 중 마는 둥 빨리 읽고 지나가 버립니다. 대학 다닐 때 기숙사에 있었는데 어느날 옆방에서 사람들이 자주 발에 들랄 거리니까? 신28장 19절 말씀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 말씀이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얼마 지난 후에 누군가 그 말씀을 떼고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을 붙여 놓았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여집사님은 가정 세미나 듣고 자기에게 필요한 말씀은 빼버리고 다시 편집하여 남편에게 필요한 말씀만 녹음하여 차 속에 넣어 놓는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남편은 아내에게 할 일을 빼고 듣기를 원합니다. 아내에게 받을 일만 생각합니다. 남편의 아내의 옆구를 찌르며 당신 들으라고 하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우리 남편이 들어야한다고 말합니다. 남편들은 남편의 발을 씻고 읽고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당신 그 집사님에게 가서 하루 자고 배워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시도행전에 보십시오. 똑같은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태도는 다릅니다.
행 5:3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행7:54)
그러나 똑같은 내용이지만 사도행전 2장 37절에서 말씀을 들은 사람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코"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41-47절까지 나와 있습니다.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늘었습니다. 교제하며 떨을 떼고 말씀을 공부합니다. 찬양과 기도를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행복한 신앙 생활로 변화된 것입니다. 삶의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감상하는 신앙에서 행함있는 신앙으로 성숙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눈으로만 보면 참 맛을 모르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는 듣고 지키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선과 의를 행하면 너와 네 후손에게 영영히 복이 있으리라 (신 12:28)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신 15:4)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5)

가정의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실제 생활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은 참으로 행복해 집니다. 받을 부분에 빨간 줄 치지말고 내가 행해야 할 부분에 빨간 줄 파란 줄, 검정 줄을 치고 행해 보십시오.
엡5:22-6:4까지에서 아주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하라고 합니다. 복종하지 않아요. 머리가 될려고해요. 33절 보니까 심지어는 남편을 경외하라고 해요. 물론 존경하라는 말이 강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을 쓰고 있어요. 경제 수단으로 생각해요.
●남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아내를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기 보다는 유희의 수단으로, 식모로 생각해요. 재미 없으면 바꿔요.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고 합니다. 그런데 부모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사람으로 생각해요. 필요할 때 도움받고 필요 없으면 벌여요.
●부모들은 자식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합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의 말씀은 출세한 후 생각해 보라고 해요. 너가 출세하고 나면 모든 사람은 너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이 무워냐고 물으신다면 욕구에 반비례하고 소유에 비례한다고 서슴없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행복이란 흐뭇한 인간의 정신적 만족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 채우고 싶은 것 등 여러 가지 희망 사항 즉 욕구가 있습니다. 이 욕구를 분모로 보았을 때 소유나 성취 수치가 분자가 되어 분자가 분모 수치보다 더 크게 되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다. 1)시각적으로 아름다움을 원합니다. 1)남들보다 많이 배워 속사람이 꽉 차기를 원합니다. 3)남에게 꾸러가지 않도록 재물과 부를 누리고 싶어합니다. 4)자기가 한 일을 인정받고 싶어하며 나아가 그 공적으로 승진이나 영전을 기대합니다. 5)이상적인 배필을 만나 다복한 가정을 갖기를 원합니다. 6)똑똑한 자녀를 낳아 잘 자라서 부모보다 더 훌륭하게 출세나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7)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가 질병없이 건강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남보다 외모가 아름답다고, 꽉찬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재물이 많다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이상적인 배필을 얻었다고, 똑똑한 자녀가 있다고, 건강하다고 반드시 행복할까요? 그렇지는 않는 것같습니다. 가난한 사람보다는 잘사는 사람이, 후진국보다는 선진국이, 지위가 낮은 사람보다는 높은 사람이 그리고 추녀보다는 미녀가 자살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해 줍니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들은 다섯 항목의 만족도 지표와 기쁨과 비참함 사이를 일곱 단계로 구분한 기준표를 사용하여 행복의 본질을 측정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행복의 첫째조건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이나 젊음, 잘생긴 용모 등보다는 "원만한 인간관계"가 꼽혔습니다.
행복한 인간 관계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 인간관계의 윤리를 말씀하겠습니까?
순종해 보십시오. 실제 삶에 실천해 보십시오. 행복의 비결이 있습니다. 함께 1절을 읽겠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 집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행하십시오.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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