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Ⅰ. 본문해설
사도 베드로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과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할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Ⅱ. 아내를 귀히 여기라
A. 생명의 은혜를 받음
첫째로, 남편은 아내와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기 때문이다. 부부이기 전에 이 편지를 받고 있는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지체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의 생명이 아내 안에 있기에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도 묵묵히 감당할 수 있고, 주님의 생명이 아내를 붙들고 있기에 모든 것을 참고 이기게 한다. 그리고 그 생명은 아내만이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동일하게 누리고 있다. 부부는 이 생명을 함께 나누며 한 생명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가장 충만하고 완성적으로 그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B. 기도의 은혜를 누림
둘째로, 기도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성경은 아내와 불화하면 남편의 기도가 막힌다고 한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의 깨어짐은 어느 정도 우리의 경건생활을 방해한다. 그러나 관계의 중요도에 있어서 그 정도는 각각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관계를 주셨고, 그 관계에서 사랑을 누리며 평화하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는 남편과 아내이다.
성경은 남편이 아내와 불화하면 기도가 막힌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아내와 불화한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사태를 행복한 것으로 바꾸는 게 아니다. 광야와 같은 길을 걷다가 예수를 믿으면 오솔길을 걷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시련과 고난은 온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수많은 삶의 사태를 초월하여 우리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다. 신앙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신앙을 유지할 때 우리의 마음을 쏟아붓는 기도생활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은 시련과 고난이 아니라 기도가 막히는 것이다. 기도할 수 없다면 그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사탄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기에 온 힘을 다해 성도의 기도의 문을 닫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Ⅲ. 아내, 더 연약한 그릇
A. 연약한 그릇으로 여김
또한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릇’은 성경에 크게 세 가지 용례로 사용된다. 첫째로는, 멸망받을 자와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다(롬 9:21). 둘째로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가리킨다(고후 4:7).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는, 재능과 소명을 그릇에 비유한다(딤후 2:20). 아마 베드로는 이 본문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용례를 생각하며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지칭한 듯하다.
여성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남성들보다 연약하게 지어졌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부족을 발견할 때마다 저 연약하고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주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그녀의 남편으로 불러주셨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래서 아내가 자신의 품 안에서 쉬고 의지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B. 아내와 동거함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아내와 동거하라고 말한다. 동거한다는 것은 한 장소에서,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부부는 서로 정신적인 연합을 누려 서로가 서로에게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한다. 여기에서 이 지식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원동력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것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 이 지식은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변환된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를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또한 이 지식은 배우자를 아는 지식을 말한다. 남편과 아내는 일생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이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앎이든지 아프게 하는 앎이든지 그 모든 것을 품으며 배우자를 마치 자신인 것처럼 사랑하여야 한다. 이러한 지식으로 아내와 육체적 정신적으로 동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바라신다.
Ⅳ. 결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짝지어 부부로 맺어주셨다. 그렇게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가 서로에 의해 용납되어지고 보충되어질 때 그들은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작품으로 빚어질 것이다. 잠시 이 땅을 지나는 때에 이렇게 아름다운 부부의 연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김남준목사 불펌Ⅰ. 본문해설
사도 베드로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를 교훈하고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아내를 귀히 여기는 것과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할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Ⅱ. 아내를 귀히 여기라
A. 생명의 은혜를 받음
첫째로, 남편은 아내와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기 때문이다. 부부이기 전에 이 편지를 받고 있는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지체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의 생명이 아내 안에 있기에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도 묵묵히 감당할 수 있고, 주님의 생명이 아내를 붙들고 있기에 모든 것을 참고 이기게 한다. 그리고 그 생명은 아내만이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동일하게 누리고 있다. 부부는 이 생명을 함께 나누며 한 생명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가장 충만하고 완성적으로 그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B. 기도의 은혜를 누림
둘째로, 기도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성경은 아내와 불화하면 남편의 기도가 막힌다고 한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의 깨어짐은 어느 정도 우리의 경건생활을 방해한다. 그러나 관계의 중요도에 있어서 그 정도는 각각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관계를 주셨고, 그 관계에서 사랑을 누리며 평화하기를 바라신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는 남편과 아내이다.
성경은 남편이 아내와 불화하면 기도가 막힌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아내와 불화한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사태를 행복한 것으로 바꾸는 게 아니다. 광야와 같은 길을 걷다가 예수를 믿으면 오솔길을 걷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시련과 고난은 온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수많은 삶의 사태를 초월하여 우리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다. 신앙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신앙을 유지할 때 우리의 마음을 쏟아붓는 기도생활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은 시련과 고난이 아니라 기도가 막히는 것이다. 기도할 수 없다면 그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처지가 된다. 사탄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기에 온 힘을 다해 성도의 기도의 문을 닫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Ⅲ. 아내, 더 연약한 그릇
A. 연약한 그릇으로 여김
또한 베드로는 남편들에게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릇’은 성경에 크게 세 가지 용례로 사용된다. 첫째로는, 멸망받을 자와 구원받을 자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다(롬 9:21). 둘째로는,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가리킨다(고후 4:7).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는, 재능과 소명을 그릇에 비유한다(딤후 2:20). 아마 베드로는 이 본문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용례를 생각하며 아내를 ‘더 연약한 그릇’이라고 지칭한 듯하다.
여성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남성들보다 연약하게 지어졌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의 부족을 발견할 때마다 저 연약하고 모자란 부분을 보충해주라고 하나님께서 나를 그녀의 남편으로 불러주셨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래서 아내가 자신의 품 안에서 쉬고 의지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B. 아내와 동거함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아내와 동거하라고 말한다. 동거한다는 것은 한 장소에서,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부부는 서로 정신적인 연합을 누려 서로가 서로에게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고 한다. 여기에서 이 지식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게 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원동력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것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다. 이 지식은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변환된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를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또한 이 지식은 배우자를 아는 지식을 말한다. 남편과 아내는 일생 동안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이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앎이든지 아프게 하는 앎이든지 그 모든 것을 품으며 배우자를 마치 자신인 것처럼 사랑하여야 한다. 이러한 지식으로 아내와 육체적 정신적으로 동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바라신다.
Ⅳ. 결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짝지어 부부로 맺어주셨다. 그렇게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가 서로에 의해 용납되어지고 보충되어질 때 그들은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작품으로 빚어질 것이다. 잠시 이 땅을 지나는 때에 이렇게 아름다운 부부의 연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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