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지구촌의 겨울 축제인 동계올림픽이 러시아 남부 흑해 연안 소치의 올림픽파크 피시트 스타디움에서 화려하게 막이 올랐습니다. 2014년을 뜻하는 20시 14분에 푸틴 대통령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환대 속에 입장하면서 시작됐습니다. 510억 달러를 투입한 개막식은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보여준 공연이었습니다. 러시아 영토 대부분을 확보하며 근대화의 토대를 놓은 최초의 황제 표트르 대제, 초강대국 위상을 떨쳤던 소비에트 연방, 드넓은 영토와 함께 러시아의 자랑인 문화와 예술이 재조명 되었습니다. 3시간에 걸쳐 러시아의 근, 현대사가 총망라된 개막 공연은 러시아 부활의 꿈이 빛과 색채의 향연 속에 녹아들었습니다. 이어서 ‘뜨겁고, 차갑게, 그대의 것(Hot, Cool, Yours)’이란 슬로건 아래 88개 참가국 선수단 입장이 뒤를 이었습니다. 한국은 러시아 알파벳 순서에 따라 60번째로 입장했으며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규혁 선수가 기수를 맡았습니다. 130일 동안 6만5000㎞를 달려온 성화가 타오르면서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을 공식적으로 세계에 알렸습니다. 올림픽은 23일까지 88개국 2,873명의 선수가 7개 종목에서 총 98개의 금메달을 놓고 겨루게 될 것입니다. 지난 11일 우리나라 이상화 선수는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미터에서 벤쿠버 올림픽에 이어 다시 금메달을 획득하여 2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금메달은 받는 이나 보는 이 모두를 흐뭇하고 기쁘게 만듭니다.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가운데 아버지는 소를 팔아 딸을 뒷바라지했고, 딸은 금메달로 은혜를 갚았다는 감동적인 소식이 들렸습니다.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의 케이틀린 패링턴(Kaitlyn Farrington)이라는 미국 선수입니다.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의 사연을 털어놓아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한 이후 큰 대회에 나가면서부터 아버지가 뒷바라지를 위해 농장의 소를 내다 파셔야 했습니다. 결국 농장에서 소가 모두 사라졌죠. 밸리 스키교육재단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면 말들도 모두 팔아야 했을 겁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부모님을 꼽은 패링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노보드를 타다가 힘들어 할 때면 부모님은 ‘카우걸, 힘내’ 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농장에서 보낸 유년시절이 지금의 나를 ‘터프걸’로 만들었고, 올림픽 챔피언으로 만들었습니다. 금메달을 땄으니 이젠 부모님이 나를 위해 팔았던 소를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으로 믿어요.”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과 부상 속에서 챔피언의 꿈을 놓지 않았던 패링턴은 마침내 과거 챔피언들을 제치고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베드로는 본장을 통해 4절까지의 앞부분은 지도자인 장로들에게, 5절부터는 젊은 자로 불리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할 것을 당부하며 그 상급은 시들지 아니하는 면류관임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초창기 올림픽에서는 승리하는 선수들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월계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얻을 면류관은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입니다. 영광의 관은 금메달처럼 개인과 국가의 명예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영광의 관을 얻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이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높이시리라 최대의 신학자이며 부흥사이기도 한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노샘프턴 교회의 목사가 된 후, 23년 사역하면서 대각성 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1750년에 교회에서 배척을 받아 사면했습니다. 그를 찾는 교회가 없어 열 아이를 데리고, 부인이 뜨게질을 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아무 불평도 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교회가 다시 도와 달라고 할 때에도 겸손히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후에 스톡브리지에 있는 작은 교회의 부름을 받아 인디안 교회를 돕도록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7년간 목회를 하면서 불평 없이 지내고, 저술도 하였습니다. 1757년 프린스톤 대학 총장으로 초빙되어 취임하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고 겸손했다고 합니다. 지위가 높을 때에도 겸손했고, 낮아진 때에도 겸손, 좋아져도 겸손, 그저 겸손을 일관한 결과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인물로 교회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앞 절에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명하십니다.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옷을 입다’는 의미로 노예들이 주인에게 시중들기 위하여 앞치마를 두루는 것처럼 겸손히 섬기는 것을 표현하는 모습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손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니 평안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낮아지며 겸손할 때 도리어 거룩한 자리에 참여하는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남이 나보다 나으면 견디지 못하고, 나보다 못하면 멸시를 해대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 남이 하는 일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교만한 자아가 살아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낮아져야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 자신을 높이면 높일수록 낮아져 파멸하게 되지만, 자신을 낮추면 낮출수록 더욱 높아져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로 돌보시리라 경북 대구 근교에 자산교회가 있었습니다. 교회에는 재정적으로 큰 몫을 담당하는 오부자가 있었습니다. 성이 오씨가 아니라 부자인 오형제 모두가 교회의 많은 일을 담당하였기에 오부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부자가 사업 관계상 대구교회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그들이 옮기게 되자 교인들은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교회를 꾸려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대구 교회의 안두화(Edward Adams) 선교사를 찾아가 사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선교사 앞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이상히 생각하여 물었습니다. “아니, 교회에 무슨 걱정이라도 생겼습니까?” “예, 우리 교회의 오부자가 한꺼번에 이 교회로 이사를 왔습니다. 교회의 유지가 앞으로 큰 걱정입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선교사는 “그래요? 그것참 문제로군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있습니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니 무슨 걱정이 또 있습니까?” “그럼요.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자산교회의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부자만 믿고 계셨으니 어떻게 문제가 아닙니까?” 그때서야 자신들의 불신앙을 깨달았습니다. 부끄러워서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로 돌아온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염려를 다 맡기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자산교회는 오부자가 있을 때보다 더 풍성해지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 것입니다. 흥하고 망하는 것은 우리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여기의 ‘돌보신다는 것’은 ‘관심을 가지신다, 마음을 쓴다’는 뜻입니다. 보편적인 관심이 아니라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입니다. 즉 책임지시고 문제를 처리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면 친히 돌보시고, 친히 해결해 주셔서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처리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명령입니다. ‘맡기라’의 원어 ‘에피맆산테스’는 ‘던져버리다’라는 뜻입니다. 명령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희를 돌보심이라’는 약속입니다.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염려가 일어날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영광의 관을 씌우시며 돌아보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지키시리라 멜 태리(Mel Tari) 선교사의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란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의 전도팀이 토착신을 섬기는 원주민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들어갔습니다. 토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이 “만일 예수를 전하고 싶으면 예수가 우리의 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제사장은 주민들을 모아놓고 “당신들이 먼저 예수가 강하다는 것을 이들에게 보이라”고 말했습니다. 멜 테리 선교사는 전도팀과 함께 외쳤습니다.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노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은 떠나갈지어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귀는 물러가라.” 그때 맨 앞에 있던 제사장이 벌벌 떨면서 말합니다. “나도 당신들이 섬기는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왜 그러시오?”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대답합니다. “당신들이 그 말을 외치자마자 우리가 섬기던 신들이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제사장으로서 늘 신들과 대화를 해왔는데 이곳의 가장 큰 신부터 작은 신까지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것을 예수가 허락하지 않는다’라며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러니 나도 예수를 믿게 해주시오” 결국 마을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굳건히 할 때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승리의 관을 씌어 주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면 마귀가 아무리 능력이 크다 해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여기의 ‘굳건하게 하여’의 ‘스테레오이’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같은 단단함’을 의미합니다.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굳센 믿음이 필요합니다. 연약한 믿음으로는 안 됩니다.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절망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흔들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마귀와 대적해서 싸울 수 있는 무기는 믿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바른 믿음을 가지면 기도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잠자는 것이 더 낫지, 새벽 기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생각하며 기도의 능력도 믿지 않습니다. 왜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지 않습니다. 결국 믿음이 없기에 하나님의 지키심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굳센 믿음을 가지고 먼저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1988년 9월 27일 월요일 아침 캐나다 CBC방송 아침 뉴스에서 아나운서의 비통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시민 여러분, 오늘은 국가적 수치의 날입니다.” 캐나다의 영웅이자 세계적 육상선수 벤 존슨(Ben Johnson)이 약물중독으로 선수자격을 박탈당하였다는 보도였습니다. 그의 신기록은 취소되고 금메달도 회수되었습니다. 인터뷰에서 㰡’왜 약물을 복용하였습니까?”라고 묻자 존슨은 말했습니다. “그동안 훈련을 게을리 했습니다. 그래서 의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챔피언의 명예는 잃고 싶지 않았기에 할 수 없이 약물을 복용했습니다.” 약물을 복용한 이유는 게을렀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원인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는 이유도 게으름이 아닙니까? 기도에 게으르고, 사명에 게으르고, 전도에 게으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게을러 결국 신앙이 나태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열심을 다하여 수고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언제까지 수고가 계속되어야 합니까? 4절에 보니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까지입니다.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서 그만 하라 하실 때까지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염려할 까닭 또한 없습니다. 깨어서 사명을 감당할 때 그 수고에 따른 영광의 관을 반드시 허락하실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받는 금메달도 자랑스러운데 하물며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더 하겠습니까?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운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깨어있는 굳센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음으로 하나님이 높여주시고, 돌보시고, 지켜주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