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여수 애양원 교회 양재평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공부하던 15살 때 한센병에 걸립니다. 경성대학에서 법을 공부하여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으나 한센병자가 되어 18세부터 한센병 수용소인 애양원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손양원 목사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됩니다. 30세에 결혼했으나 1년 뒤에 시력을 잃고 손의 감각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또 저주하였지만 나아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남은 것이 있지 않는가? 청각이 남아 있고, 기억력이 남아 있지 않는가?” 양장로는 1954년 애양원 한센병자들로 구성된 성경암송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눈도 멀고 손가락도 없소. 손가락이 있다 해도 지문이 없어 점자도 못 읽습니다. 이중 삼중의 장애를 입었지만, 청각이 있고 기억력도 남았기에 성경을 암송합시다. 다섯 달란트를 갖지 못했지만 한 달란트는 남았으니 남은 달란트를 가지고 해봅시다.”성경을 듣고 암송해도 금방 잊어버렸지만 반복을 거듭했습니다. 성경이 한 장 한 장 외워지고 한권씩 암송할 수 있었습니다. 몇 사람은 신약성경을 통째로 외웠습니다. 머릿속에 들어온 성경 구절들은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두려움과 분노와 절망을 내쫓는 힘이 되었습니다. 후에 양재평 장로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우리는 밭에 숨겨진 보화를 산 것이지. 전부를 잃고 천국을 산 것이었어. 나병이라는 병을 얻어 예수를 믿었고, 눈을 잃고 손의 감각을 잃은 대신 성경을 얻었지. 가시라고 생각한 그것들 때문에 얻은 것이야. 그러기에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찬송하지 못할 이유가 뭐야?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고 우리 안에 있다고 외우기만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해하게 되었어. 나사로가 간 나라는 죽어서 간 나라이지만 살아서 삶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바람 불고 암초가 있어 좌초할 듯한 세상에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진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이 존재한다는 거야. 감사하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우리들을 보라! 우리가 받은 저주 같은 병조차 사랑이고, 복이고, 천국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믿지 않는가? 모든 게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이지. 출애굽하는 광야에도 온갖 환난이 있었고,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모래 위에 지은 집 모두 바람과 홍수를 맞게 마련이잖아. 반석 위에 지었느냐, 모래 위에 지었느냐 그게 더 중요할 뿐이지. 그래서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부자되라 하지 않고 증인되라고 하셨잖아” 천벌이라고 여겼던 한센병, 두려웠고 절망적이었던 병이 었지만 하나님을 만나니 그것조차 복이고, 사랑이고, 은혜였다는 것이며 그 병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예수 믿었겠는가를 고백합니다. 두려움과 절망, 한계를 극복한 것은 모두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집에 들어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예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중풍병자를 친구 네 사람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를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애물을 만난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예수 앞으로 내렸습니다. 예수께 가면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으로 보시고” 예수께서 그들의 무엇을 보았습니까? 지붕을 뚫고 내리는 사건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열심만 보신 것이 아니라 예수를 전적으로 믿는 그들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께 가면 낫는다는 확실한 믿음, 사랑과 행함이 동반된 그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안심하라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죽은 후 그의 탄생 100주년 축하 행사가 열렸습니다. 에디슨이 사용하였던 책상 서랍을 열어보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생전에 다른 사람이 책상 서랍 여는 것을 싫어하던 에디슨이었기에 서랍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열어보니 종이 한 장만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캄캄하고 어두울 때 요나를 생각하라”에디슨의 생활신조였습니다. 흔히 발명왕 에디슨만 생각하나 에디슨이 하나의 발명품을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전구를 발명할 때는 수 천 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둠의 때에 에디슨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수 천 번의 실험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라면서 다시 도전하여 어둠을 밝히는 전구를 발명한 것입니다. 캄캄하고 어두울 때 에디슨은 언제나 요나를 생각하였습니다. 요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른 길로 가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물고기를 통해 삼켜 버리게 하셨습니다. 어둡고 캄캄한 물고기의 뱃속은 요나에게 고통스런 장소이며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요나는 어둠의 한복판에서 안심케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풍랑이 닥칠 때 우리를 안심케 하시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을 잡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여기의 ‘안심하라’는 원어로 ‘다르세이’ 인데 ‘용기를 가지라, 확신하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절망 가운데 살았던 중풍병자의 처절함을 잠재우는 말씀이었습니다. 근심과 걱정의 폭풍을 잠재우는 평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으로, 성령으로 말씀하시고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가운데 있어도 말씀을 믿는 믿음은 중요합니다. 그 믿음이 안심하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걱정과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 안심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향해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사하노라 어떤 사람이 꿈속에 하늘나라를 가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지금까지 그가 행한 모든 일을 기록한 책을 주었습니다. 첫 장을 넘겨보니 잔글씨로 가득 쓰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천사는 “당신이 세상에 살 때 행동으로 지은 죄를 기록한 것입니다” 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둘째 장을 펼쳐 보았더니 첫 장보다 더 잔글씨로 가득 쓰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기록입니까?” 라는 물음에 “이것은 당신이 세상에서 말로 지은 죄들입니다” 라고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셋째 장을 보니 둘째장보다 더 잔글씨로 더 많은 죄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또 물었더니, 천사는 “이것은 당신이 생각으로 지은 죄입니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생각으로 지은 죄가 더 많았습니다. 그 다음 장을 들쳐보니 거기에는 아예 글자가 없고 대신 새까만 색뿐이었습니다. 천사가 “이것은 당신의 마음에서 지은 죄입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죄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은 심령이 병든 사람이며, 양심이 마비된 사람이고, 영혼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께 나오는 사람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죄를 사하는 권능이 오직 예수께 있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통해 죄 사함의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여기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다”의 시제는 진행형이 아니라 완료형입니다. 예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하는 순간 모든 죄가 다 용서되었다는 뜻입니다. 질병보다 시급한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당시 질병이 죄로 말미암아 온다고 생각하여 문둥병 같은 부정한 병에 걸리면 격리시키고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중풍병자도 이러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중풍병자의 죄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보고 정죄하지만 예수는 믿음을 보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기준과 생각을 가지고 예수께 접근하였습니다. 죄의 용서는 성전과 율법을 파괴하는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예수께 은혜받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죽일 명분을 찾기 위해 나온 자들입니다. 예수께 나올 때 어떤 자세로 오셨습니까?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죄에서 사함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께 나와 죄 사함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일어나라 미국의 한 부흥강사가 집회를 인도할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입구에서 앉은뱅이 여인을 만났습니다. 집회 시간까진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어떻게 오셨나요?”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부흥강사인 줄 모른 채 “집회하시는 목사에게 기도받고 병 고침 얻으려고 왔습니다. 저는 기도를 하고 마음에 낫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자동차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아니, 자동차를 돌려보내다니요? 집에 갈 때 어떻게 가시려고요?” “나아서 걸을 텐데 자동차가 무슨 필요가 있어요? 버스 타고 집으로 가면 되지요” 이 말을 들은 목사는 “자매님, 꼭 나을 줄 믿습니까?” 하니 “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자매님, 집회 시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군요. 제가 바로 부흥 목사입니다”하고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여인의 손을 붙들고 일으키니 여인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병 고침의 소문이 교회에 퍼졌습니다. 다리를 못 쓰는 다른 여인이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부흥강사 의 기도를 받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일어 설 수 없었습니다. 자매는 “목사님, 저도 믿음으로 나으려고 자동차를 돌려보냈는데 왜 낫지 않습니까?”실망하였습니다. 그러자 목사는 그녀에게 “자매는 아직 일어나실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침 받은 자매는 하나님으로부터 고침 받는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자매는 아직 약속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았으니 나도 자동차를 보내면 낫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셨군요. 자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믿음이 임하여야 낫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나타나기 전에는 행동해 보았자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을 주셔야 기적이 나타납니다. 앉은뱅이 여인의 믿음은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을 얻기 위해 회개하고 내 뜻대로가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산다는 믿음을 굳게 할 때 비로소 기적이 일어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여기의 ‘일어나라’는 중풍병자의 능력을 보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열심이나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을 보시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지체치 말고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생동감 넘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껏 침상에 매여 살았다면 이제는 그 침상을 들고 부리는 존재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운명에 매여 사는 수동적 존재였다면 이제는 믿음으로 운명을 짊어지고 사는 능동적인 존재가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은혜의 시작입니다. 중풍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문제입니다. 영혼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찌할 수 없는 육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질병입니까? 풀리지 않는 사업입니까? 해결할 길이 없는 부채입니까? 설득해도 변하지 않는 자녀들입니까? 그렇다면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들을 예수께 가져오는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께서 선포하실 것입니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집에 돌아간 중풍병자를 본 사람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신천옹이란 새가 있습니다. 새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새로 80년을 산다고 전해집니다. 이 새는 오래 날고 멀리 납니다. 비결은 하늘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새의 날개 길이는 3미터 정도 되는데, 날 때의 에너지를 보면 10%는 자기의 힘이고, 나머지 90%는 바람의 힘입니다. 바람의 힘으로 날아가니 힘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 날 수 있고, 멀리 날 수 있고, 에너지 소비가 적으니까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신천옹 (信天翁)입니다. ‘하늘을 믿고 오래 사는 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벌새는 신천옹과 반대입니다. 벌새는 6cm 정도 되는 작은 새입니다. 날개 짓을 1초에 80번을 합니다. 이 새의 특징은 바람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힘으로만 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만으로 나니 멀리 날 수도 없고, 오래 날 수 없습니다. 여기 저기 앉았다가, 땅 바닥에 앉았다가 10미터를 못 날아갑니다. 수명도 4년 정도로 짧습니다. 내 힘으로 살려고 하면 오래 못 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디 믿음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육체의 문제를 향해‘안심하라’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통해 영적인 문제를 향한 ‘사하노라’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을 보임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어나라’의 음성을 통해 기적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