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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기석목사

생명의 바다

생명의 바다
겔47:1-12
(2000/7/16)

'기분' 공화국
우리말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 옮기기 제일 어려운 말이 '기분'이랍니다. 문자 그대로 하면야 어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feeling, sensation, mind, mood)?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기분이야!' 하면서 호걸 노릇하는 우리의 그 느낌을 무슨 말로 옮길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기분'이라는 말을 이해하면 한국인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도대체 이 '기분'이라는 게 뭐길래 그렇지요? 신문을 보면서 기가 막혔습니다. 어떤 사람들 셋이 고급 룸살롱에 가서 하루 저녁에 쓴 돈이 540만원이라고 하더군요. 그 속에는 아가씨들과의 소위 2차 비용까지 포함된다지요? 룸살롱과 단란주점에서는 음란하기 그지없는 일들이 매일 저녁 벌어집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통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음란한 그림들을 보느라고 밤을 새웁니다. 조금 살만한 사람들은 소비의 신을 섬기느라고 교회에 가는 것보다 더 자주 백화점과 시장을 들락거립니다. 저는 그런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라의 등뼈가 흐물흐물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해요. 과민한 반응인가요? 세상이 그런 거 몰랐냐고 책망하셔도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기독교인인 우리들은 정말 이런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든든하게 서있나요? 잠언 7장에는 탕녀의 유혹을 물리치라는 권고가 나옵니다. 탕녀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골목에서 젊은 남자를 기다려요. 마침내 어수룩한 젊은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자 탕녀는 와락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말합니다.

"나는 오늘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실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맞으러 나왔고, 당신을 애타게 찾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탕녀는 자기 침상에 화문석 요도 깔아놓고, 애굽에서 가져온 화려한 이불도 펴놓았고, 향수까지 뿌려놓았으니 어서 자기 집에 가서 한껏 사랑에 빠져보자고 말합니다. 남편은 돈주머니를 가지고 나갔으니 한 보름은 안 들어올 거라고 젊은이를 안심시키면서 말이에요. 여기서 기가 막힌 것은 탕녀가 '화목제'를 들먹인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 여인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요즘으로 말하면 교회에 가서 헌금도 했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홀가분해졌으니 좀 놀고싶다 그거예요. 이게 지금부터 3,000여 년 전 이스라엘에 국한된 문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안심하기에는 오늘의 현실이 너무 암담해요.

저는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종교'가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는 말이 있어요. 다양한 문화 현상을 잘 들여다보면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이 종교라는 거예요. 그 시대의 문화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는 말이지요. 우리 시대는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이 가리워진 시대 같아요. 과도한 욕망의 그림자에 덮여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된 시대라는 말입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에스겔서의 본문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줍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 여호야긴 왕과 함께 잡혀간 사제였습니다. 그는 동족들과 함께 그발 강가에 있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예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입이 되어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①오늘 우리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분의 뜻을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②우리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웠습니다. ③우리가 살 길은 하나님 앞에서 삶을 돌아보고 철저히 회개하고, 각자 자기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깨닫고 책임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④그러기 위해서는 굳은 살과 같은 마음을 도려내고 새 살과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⑤오늘의 무기력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야 하고,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⑥그리고 새로워진 백성들이 살게 된 새 세상의 중심은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겔은 무너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은 정치, 경제, 문화보다는 '신앙을 바로 세움'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신앙은 한 나라의 등뼈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성전'을 재건되는 나라의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어느 날 에스겔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의 손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전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부터 물이 솟아 나오고 있었는데, 그 물은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줄자를 가지고 재면서 가다가 천 자가 되는 곳에 이르더니 에스겔에서 물을 건너보라고 했습니다. 물은 겨우 발목 높이에 불과했습니다. 또 천 자를 재고 나서 물을 건너는데, 물은 무릎에 닿았습니다. 또 천 자를 재고 나서 물을 건너는데, 허리께까지 잠겼습니다. 또 천 자를 재고 나서 천사가 건너라고 했을 때 그 물은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습니다. 그때 천사가 묻습니다.

"사람아, 네가 이것을 자세히 보았느냐?"(6)

이 말은 무슨 깨달음이 있었느냐는 물음입니다? 여러분은 이 본문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많은 이들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온 몸이 잠길만큼 불어나는 물을 통해 성장하는 믿음을 읽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달리 보고 싶습니다. 첫째, 저는 그 물의 발원지에 주목합니다. 이 물은 성전, 곧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은 생명입니다. 물이 죽으면 생명은 죽게 마련입니다. 에덴 동산 한 복판에서 솟아나온 물이 사방으로 흘러 비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로 흘렀다고 합니다. '4'라는 숫자는 동서남북 사방, 곧 땅 전체를 뜻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발원한 물이 사방으로 흘렀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말합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에덴 동산의 꿈을 보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십니다. 우리는 동참하는 것이구요.

둘째로 저는 그 물이 점점 불어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확장되어 가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봅니다.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기슭 고목나무샘물골에서 퐁퐁 솟아나온 물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검용소에서 솟아 나와 514㎞의 한강 줄기를 이루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소박한 듯 하지만 줄기차게 흘러나와 은혜의 강을 이룹니다. 큰 것에 길들여진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는 작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작아 보이지만 세상을 가득 채웁니다. 끝없이 솟아 나와 결국에는 큰 강물을 이루고야마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가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물
그런데 보십시오. 에스겔이 강가로 올라섰을 때 강 양쪽에는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에스겔에게 성전에서 솟아 나온 물의 흐름을 설명해줍니다. 그 강물은 동쪽으로 흘러 요단 계곡(아라바)을 통과한 후에 死海로 흘러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강물이 흘러가는 곳에서 일어날 놀라운 변화를 예고합니다. '그 강물이 사해에 들어가면 죽은 물이 되살아나고,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번성하게 될 것이다. 강 양편에 줄지어 서있는 나무들은 때를 따라 온갖 종류의 과실을 맺고, 잎도 시들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요? 천사는 간단하게 답합니다.

"그것은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 나오기 때문이다."(12)

하나님의 은혜는 메말라 죽어가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사해는 염분이 높아 아무런 생명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사해가 되살아나 그 속에서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 속에 사해는 없습니까? 절망과 무기력과 미움과 환멸의 사해를 품고 죽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질과 쾌락의 유혹에 빠져 얼이 빠지고, 등골이 빠져버린 삶이 곧 사해입니다. 주님의 강물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우리를 통해 다른 영혼들도 살게 됩니다. 허망한 것에 매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쾌락도 지나가고, 젊음도 지나가고, 건강도 지나갑니다. 명예도 지나가고, 권력도 지나갑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고 사는 사람만이 자기 영혼을 사해로 만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강물은 지금도 우리 곁을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강의 흐름 속에 뛰어드십시오.

은혜의 강물에 몸을 맡기라
은혜의 강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 멀리 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 강은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하나님의 은혜에 몸을 맡기고 사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은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압제 밑에 살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내다보았습니다. 이사야는 광야에 물이 솟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죽음의 바다가 되살아나 온갖 생명들이 번성하는 세상의 꿈은 白日夢에 지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꿈은 꿈꾸는 자들의 헌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작은 시작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처음에는 미약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꾸준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하나의 흐름이 된다면 세상은 아름답게 변할 것입니다.

은혜의 강물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개펄이나 진펄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소금기가 버석이는 죽음의 땅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은혜의 강물은 지금 우리 삶의 주변에 굽이굽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타십시오. 그 흐름을 타고 갈 때 비로소 우리는 생명의 큰 바다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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