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의 아버지는 신발제조공이었습니다. 한번은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상원의원들 앞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링컨을 무척 싫어하는 상원의원이 있었습니다. 링컨이 연설을 시작하려고 하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정말 놀랍소. 그러나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제조공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가끔 당신 아버지가 우리 집에 신발 만들기 위해 찾아오곤 했는데 지금 내가 신고 있는 신발도 사실 당신 아버지가 만든 신발이오.” 그러자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링컨은 단상위에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서 있었습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습니다. 링컨은 의원들을 둘러보고 난 다음에 말합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의원님 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제 아버지는 신발제조공으로 완벽한 솜씨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능가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따라 잡으려고 지금도 노력할 뿐입니다.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 중에 제 아버지가 만든 신발을 신은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발이 불편하다면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나도 옆에서 아버지의 기술을 조금은 보고 배웠기 때문에 수선은 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최 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돌아가신 아버지와는 나는 비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부끄러워할 줄만 알았던 링컨이 신발제조공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존경을 나타냈기 때문에 오히려 링컨을 조롱하던 상원의원만 부끄러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부모공경입니다. 에베소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유대교적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부모공경이 ‘주 안에서’와 ‘순종’이라는 특징으로 구분됩니다. 순종의 개념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뿐 아니라 부부 사이의 관계나 주인과 종의 관계에도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종들은 주인에게 순종해야 하여야 합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가정을 구성하는 인간관계의 초석이 순종에 있다고 말하면서 아내가 주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종들도 역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주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자녀들도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율법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차원인 그리스도론에서 부모공경을 제시하였는데, 자녀들은 주 안에서 주를 따르듯이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경’이라는 단어를 영어성서에는 ‘honor’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명예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카베드’ 인데 ‘무겁다’는 뜻입니다. 신체 중에 있는 장기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이 간입니다. 공경이란 단어가 ‘카베트’가 된 이유는 부모를 간처럼 소중하고 무겁게 여기라는 이유입니다. 신체 중에 간이 가장 무겁다고 해서 무겁기 때문에 불편하다든지 간수하기에 부담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겁다는 간의 기능이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육신의 간이 소중한 것을 알거든 부모도 간처럼 소중하게 생각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존경과 사랑을 다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물질보다 더 중시하는 것이 공경이고 자신이 가진 무엇보다도 부모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본문은 부모가 어떠한 부모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조건도 달지 않았습니다. 단지 부모를 공경하라고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가나안농군학교 교장 김평일 장로가 자녀들에게 주는 ‘효도 십계명’이 있습니다. “1계명-신앙을 갖도록 해 드려라. 2계명-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 드려라. 3계명-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라. 4계명-궁금증을 풀어 드려라. 5계명-자유롭게 쓰실 수 있도록 정기적인 용돈을 드려라. 6계명-향토적인 음식을 드려라.7계명-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려라. 8계명-일거리를 찾아 드려라. 9계명-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 드려라. 10계명-등을 긁어드리고 손발톱을 자주 깎아 드려라. 부모님의 몸을 만지게 됨으로써 부모와 자식 간에 믿음이 돈독해지고 나아가 고부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자녀된 이들은 부모 공경의 신앙으로 무장하여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 있는 계명이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모 공경의 신앙이 삶의 기초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본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증거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부모공경에 대한 계명은 사람에 대한 첫 번째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은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계명이라는 해석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대할 때 하나님을 공경하듯 해야 하는 으뜸계명인 것을 강조합니다. 공경하라는 단어의 형태는 명령형입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핑계로 부모에 대한 공경을 등한히 하여서는 안 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명령은 패륜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율법은 이러한 명령을 어기는 자들을 돌로 치라고 하였습니다. 혹여 믿는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더욱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잘 경외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옳은 일이기에 2012년 10월 2일 밤,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최전방 사단의 병영생활관의 문을 노크한 북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일명 노크 귀순으로 온 국민을 놀라게 한 주인공입니다. 북한을 탈출한 그는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북한 감시병을 피하느라 이틀 밤낮 동안 걷고 또 걸었습니다. 북한군 초소 7개를 피해 철책을 넘은 뒤 바로 옆 우리 측 초소로 갔지만 군인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기 철책을 넘은 뒤 250m 떨어진 우리 경비대 생활관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습니다. 다시 30m를 이동해 소초 생활관 문을 두드렸더니 비로소 문이 열렸습니다. 그는 관계기관에서 5개월여 조사를 받으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 믿게 된 이유는 ‘10㎝ 간격으로 지뢰가 깔려 있다’는 지뢰밭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 교회에 가서 보게 된 성경에 대하여 느낀 점이 특별합니다. 그는 성경에 대하여 “부모를 공경하고 도적질하지 말라 등 북한에서도 평소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성경이 전혀 다른 책이 아니라 평소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믿을 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북한에서나 남한에서나 마땅히 하여야 할 인간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름도 임바울로 바꾸고 교회에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버이의 사랑을 격언에 담기를 “신은 도처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어버이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어버이가 신이 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식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에 비유한 말입니다. 이러한 어버이의 사랑을 입고도 부모공경이 옳은 일인지 모른다면 분명 짐승만도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의 ‘옳으니라’는 ‘하나님의 성품과 맞다. 하나님의 공의와 맞다. 또는 하나님의 율법과 어울린다’라는 뜻입니다. 즉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로 보든지, 성품으로 보든지, 율법에서 보든지, 전혀 어긋남이나 모순됨이 없고, 잘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명령하신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시대를 뛰어넘어 영원히 변경되거나 폐지 혹은 약화될 수 없는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는 기본원리가 있습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내려가는 원리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에 희생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원리입니다. 또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간에게 마땅한 일이고 옳은 일입니다. ‘이것이 옳으니라’는 표현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당연한 도리인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셋째, 축복의 길이기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찰스 스틸웰(Charles Stillwell)은 어릴 적 집이 가난해 어머니는 상점에서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늘 무거운 물건을 들고 다니느라 어머니는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스틸웰이 우연히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가죽으로 된 큰 가방에다 배달할 물건들을 잔뜩 넣은 뒤 간신히 운반하곤 했습니다. 그 때 스틸웰은 어머니가 배달할 물건보다 그걸 담은 가방이 더 무거워 보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부터 스틸웰은 어머니를 도울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가방이 가벼우면 어머니의 짐은 그만큼 줄어들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그는 물건이 담긴 봉지를 그대로 들고 다니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질긴 종이로 밑바닥이 네모난 큰 종이 봉지를 만든 다음, 맨 위에 종이로 튼튼한 손잡이를 달았습니다. 종이 가방을 만든 것입니다. 그 종이 가방은 생각보다 튼튼하고 가벼웠습니다. 얼마 뒤, 스틸웰이 만든 종이 가방을 본 한 이웃 사람이 특허출원을 권했습니다. 스틸웰이 출원한 종이 쇼핑백이 특허를 받은 후 전 세계로 퍼져 나가자, 스틸웰의 가족은 하루아침에 큰 부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1887년 찰스 스틸웰은 종이 쇼핑백의 고안자로 영원히 기록됐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다가 발명자가 되었고 특허를 받아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종이백에 물건을 담을 때마다 어머니의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발명한 효도백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비결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절입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십계명가운데 축복을 말씀하신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뿐입니다. 여기의 ‘잘된다’는 것은 헬라어로 ‘유 기노마이’인데, ‘무엇을 하든지 좋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며 효도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셔서 형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형통한 복을 받아 범사에 막힘이 없이 일이 잘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드시면 세 가지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힘이 없어집니다. 돈이 없어집니다. 형편이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자녀들이 부모의 힘이 되고 돈이 되어야 합니다. 형편을 잘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 이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이름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존재할 수 있게끔 해주셨던 부모에 대한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비록 부모가 늙고 병들고 볼품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부모가 되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긍지가 될 자격을 이미 갖추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부모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는 한, 설령 불효처럼 보이는 행동도 그 본질은 효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네 부모를 순종하라고 그리고 공경하라’고 말입니다. 순종이 부모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면 공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것입니다. 신문에 이상한 광고가 났습니다. ‘나이든 어머니를 팝니다.’고아로 가난하게 지냈던 한 젊은 부부가 광고를 보았습니다. 부부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살았기에, 부모가 있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던 참에 ‘나이든 어머니’를 판다는 광고를 보자마자 그 어머니를 자신들의 어머니로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부부가 광고를 보고 찾아간 집은 부잣집이었습니다. 벨을 누르자 노인이 나와 어떻게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부는 “우리는 고아로 살아왔습니다. 부모 없이 살다보니, 부모가 계신 분이 부러웠습니다. 마침 신문에 나이 드신 어머니를 판다고 하기에 그 어머니를 사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반가워하며 젊은 부부에게 “내 뜻에 맞는 사람이 왔구먼. 이제 자네들은 내 자식이오”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인은 그 부부에게 “이 집은 당신들 것이니 이 집에 들어와서 함께 삽시다”라며 하는 말이 “내가 양자를 구한다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도 재산이 탐이 나서 몰려왔을 게야. 그러나 나이든 어머니를 판다고 하니, 자네들처럼 진심으로 효도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겠나?”하는 것입니다. 어버이주일에 부모를 향한 자녀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세상에서 가장 옳은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 공경을 통하여 이 땅에서 잘되는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