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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일반 예화

너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어느날 14세의 소녀 소피가 이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에는 짤막하게 {너는 누구냐?}라고만 적혀 있었다. 소피는 거울을 들여다 보며 {너는 누구?}라고 자문해 본다.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니 좀 이상하지 않나 하는 의문을 품는다.
{게다가 자기 얼굴인데도 자기가 결정하지 못한다니 그럴 수 있어? 친구는 내가 고를 수 있는데 내 얼굴은 내가 고르지 못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 끝에 소피는 [인간이란 뭣인가?]하는 의문을 처음으로 품게 된다.
다음날 그녀는 또 한장의 괴상한 편지를 받는다. 이번에는 그냥 {세계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만 적혀있었다. 그런 걸 누구든 알 턱이 없지 않나 하고 웃어넘기려다 문득 생각한다. 세계가 어디서 왔는지를 전혀 물어보지도 않는 채로 산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고. 그런지 며칠 후에 그 이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긴 편지가 왔다. 이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굶주린 사람에게 묻는다면 먹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은 따스함이라 대답할 것이고, 외로운 사람은 벗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본조건이 모두 충족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람들에게 절실한게 있을까? 그렇다. 사람은 모두 먹어야 하고, 사랑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밖에도 절실한 게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하는 절실한 욕구를 우리는 갖고 있다….}.
[철학자로부터의 이상한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소피의 세계]는 이렇게 시작된다. 노르웨이의 작가 요스타인 골델이 쓴 이 책은 미국에서는 대학의 철학 부독본으로까지 채용되고, 일본에서는 7백페이지 가까이나 되는 두꺼운 책인데도 60만부나 팔렸다.
그것은 고대신화로부터 칸트 마르크스 프로이트를 거쳐 현대의 우주론에 이르는 철학의 역사에 관한 얘기책이다. 그게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은 마치 14세 소녀를 위한 미스터리 소설처럼 알기 쉽고도 흥미롭게 엮어진 때문에서만이 아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에게 사고의 원점에 돌아가서 [당신은 누구인가?]하는 기본문제를 풀도록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누구냐] 하는 물음에 대해 당장에 나오는 해답은 [나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누구냐?]고 재차 물을 때 여기 만족스럽게 해답을 내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으며, 또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은 채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라는 의문사다. 사람에게 지혜를 불어넣어 주는 것도 [왜]라는 의문이다. 그런 [무엇]과 [왜]라는 의문을 티끌만치도 품지 않은 채 우리는 마냥 달리고 있다.
그나마 앞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우리는 조금도 의심치 않고 있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탈레스가 어느 날 우주의 신비로움을 생각하며 하늘을 쳐다보며 걷다 발을 헛디디고 물에 빠졌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발 밑에 있는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하늘을 안다는 것이냐}며 비웃었다.
우리는 지금 발 밑에만 정신이 팔려서 먼 산에서 무슨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빛을 보기 위해서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귀가 있다. 그리고 생각을 하기 위해 사람에게는 머리가 있고 마음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머리를 쓰지 않고 있다.
모두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방향감각을 잃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목적의식도 잃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물론이요, 내일의 인류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은 우리 한국인뿐인 것만 같다.
한마디로 우리는 생각하는 버릇을 잊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철학을 멀리하고 있다. 우리는 마치 과학 또는 과학적 기술만이 행복에 이르는 우리의 길을 비춰주는 유일한 등불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분명 과학은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의 기둥이 된다. 그것은 세계화를 서두르는 우리의 추진력이 되어준다. 그러나 과연 고도성장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인지, 또는 이른바 세계화가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하고 의문을 품어보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21세기를 향해 잘 달리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러나
21세기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엉뚱하게 다를지도 모른다. 여기대해 대답해 줄 수 있는 철학자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또 [소피의 세계]가 우리나라에서 번역된다 해도 과연 몇부나 팔릴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바로 이런 데 있다.
우리는 지금 걸음을 멈추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제 길을 걷고 있는가?]고 한번쯤만이라도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엉뚱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주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