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보장
본문/ 신 11:8-17
불안한 상황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2017년 국제 정세 전망을 한 마디로 '초(超)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Hyper-Uncertainty)'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아이켄그린 버클리대 교수가 2017년이 갤브레이스의 명저 '불확실성의 시대' 발간 40주년임을 상기하며 내년은 그때보다 더 심한 예측 불가 시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며 사용했던 말입니다.
우선 대외적 여건이 초불확실합니다. 내년 1월 20일 백악관에 입성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자체가 초불확실성입니다. 앞으로 백악관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국제 무역 질서가 어떻게 뒤바뀔지, 북핵 문제와 우리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내년에 두 차례 이상 금리를 올릴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신흥국들의 부채가 큰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계 부채만 1300조원이나 됩니다. 우리 경제에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초불확실성입니다.
또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미국과 어떻게 맞서게 될지 현제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특히 사드 배치를 놓고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우리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어떤 보복을 받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대내적 상황 역시 초불확실성입니다. 우리는 대통령 탄핵 심판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대선 일정도 불투명합니다. 올해 1월과 9월 두 차례 핵실험을 한 북한이 연초부터 어떤 도발을 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리더십 부재 상태에서 제대로 된 나침반 하나 없이 초불확실성의 바다를 헤쳐 나가야 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지금처럼 초불확실성 속에서 국민들이 불안을 느끼며 새해를 맞은 때도 없었을 것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당시에 불안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과거 430년 동안 애굽에서 처참한 노예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쓰라린 광야생활을 해 왔습니다. 더 더욱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 확실한 보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시기는 했지만 이미 그 땅에는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가나안 7족속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400여 년을 살아온 땅을 하루아침에 호락호락 내 줄 리가 만무했습니다.
더욱 불안한 것은 능력의 영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그 나마 자기들이 모진 광야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영도력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쳐도 모세를 따르기만 하면 헤쳐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모세가 자기들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글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습니다.
확실한 보장
오늘 본문 말씀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안한 상황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8-12)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보장입니다. 그 보장의 내용은 다음의 네 가지입니다.
첫째, 강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8절에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강성해 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담대해 지는 것을 말합니다.
2차 대전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고향에 돌아왔을 때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연설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청춘은 육체적인 상태가 아니라 단지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그 사람이 청년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이 청년다운 기상과 기백을 가졌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과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 뜻대로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상황 가운데서 진정하고 싶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염려 걱정을 떨쳐버리고 싶지만 그것이 옷 벗어버리는 것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담대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요, 보장입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약속대로 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8절에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결국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승리에 대한 보장입니다.
텔레비전으로 운동 경기 중계방송을 볼 때 무척이나 조마조마 합니다. 특별히 비중 있는 경기일 때 더 그렇습니다. 축구 한일전을 볼 때 온 국민이 다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긴 뒤에 재방송을 해주는 것을 볼 때는 이겼다는 사실을 다 알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겼다는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문제가 무엇입니까? 승리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투자해서 손해 보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길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고, 이 땅에서도 잘 될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힘들 때도 있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끝에는 승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 땅에서 오랫동안 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9절에서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나면 그 후로 오랫동안 그 땅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 8회 본선 진출했고, 그것도 7회를 연속으로 진출했습니다. 이것은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기록입니다. 게다가 2002년에는 4강까지 진출한 바가 있습니다. 이 역시 아시아 유일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축구에 관한한 아시아에서 지부심을 가질만도 합니다. 그런데 7회 연속 본선에 나갔다고 이번에도 나간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러시아 월드컵 예선이 내년에도 계속 치러지게 될 텐데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승리라는 것이 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승리란 일시적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쩌다 한 번 승리할 수는 있으나 그 승리가 지속적이지 못하다 것입니다. 한 번 이겼다고 다음에 또 이기는 것이 아니고, 한 번 일등 했다고 다음에 또 일등 하는 것 아니고, 한 번 합격했다고 다음에 또 합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승리가 장구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셔 늘 승리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보장입니다.
넷째, 여호와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12절에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장애인들은 외출할 때 무척이나 불안해합니다. 시각 장애인들 경우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앞에서 어떤 일이 돌발적으로 생길지 몰라서 늘 불안합니다. 그런데 더 불안한 사람들은 청각 장애인입니다. 건널목을 건널 때 옆에서 달려오는 차의 경적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무척 위험합니다. 운전자는 겉으로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경적소리로 충분히 예고했다고 생각하고 달려옵니다. 그런데 청각 장애인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가 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앞으로 한 달 뒤, 아니 내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장애인들이 외출을 하듯이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더욱 요즘처럼 초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야 할 때 그 불안함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처럼 확실한 보장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약속 이행을 위한 조건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아무에게나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약속을 하셨지만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한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여기서 ‘그리하면’이라는 말을 유의해야 합니다. 조건을 지키면 그 약속을 지켜 확실한 보장을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도 성립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겉으로 언급되어있지 않지만 ‘그리하지 않으면’ 이라는 단서 조항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확실한 보장을 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명령을 청종해야 합니다.
본문 8절에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13절에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건강 상태를 자가 진단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것이 있다면 식사입니다. 입맛이 있어서 늘 맛있게 밥을 잘 먹는다면 일단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에 이상이 오면 먼저 나타나는 징후 중에 하나가 입맛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끼니때가 되도 즐겁지가 않고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영적인 식사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은 그 영혼에 병이 들어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새해에는 열심히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큰마음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선포된 말씀으로 목사의 설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렘1:9에 보면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세우셔서 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설교를 잘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됩니다. 새해에는 설교를 더 잘 경청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안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뿐 아니라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이제는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옳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지킨다는 것은 너무도 힘이 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말씀 앞에서 우리가 너무 똑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분석하려는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 유리한 지 손해가 나는지 따집니다. 이 말씀을 지킬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따집니다.
또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취사선택합니다. 지킬 것과 지키지 않을 것을 선택합니다. 지킬 수 있는 것, 지키고 싶은 것 이런 것들만 고릅니다. 그리고 지킬 수 없는 것, 지키고 싶지 않은 것들은 못들은 체 합니다. 슬쩍 지나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어리석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처럼 그저 아멘만 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만 사랑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한 통계에 보면 30-40대 직장인들 가운데 75%가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해 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실 남자들 마음에 흑심이 있습니다. 연애 상대 따로 결혼 상대 따로...
유감스럽게도 이것을 이해해 줄 여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꿈 깨십시오. 사랑에는 독점력이 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 외에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여자는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그 남자를 진정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 질투입니다.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면 뜨거운 사랑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상대가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무서운 질투로 대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속성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내처럼 사랑하고 이 세상은 연인처럼 재미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푸근한 축복도 맛보고, 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세상이 주는 얕은 재미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꿈 깨십시오. 하나님께서 이것을 용납지 않으십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셔서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 세상을 더 사랑한다면 하나님은 이제 질투를 발동하십니다. 그래서 출 20:5에 보면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고 하셨습니다.
새해에는 하나님만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축복 받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을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추천 설교 > 박봉수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1. 8 영역 1/십계명 살인하지 말라 출 20:13 (0) | 2018.03.22 |
---|---|
17. 1. 1. 영역 2/신년주일 서로 사랑하라 (0) | 2018.03.21 |
16. 11. 6. 사람,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영역 4/바울서신 (0) | 2017.01.07 |
16. 10. 30. 영역 2/종교개혁주일 예수님의 종교개혁 (0) | 2017.01.07 |
16. 10. 23. 영역 2/추수감사절감사의 능력 (0) | 2017.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