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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고형진목사

"선택이냐? 버림이냐?"

"선택이냐? 버림이냐?"
로마서 9:10-14


사랑하는 여러분들!
혹시 예정론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습니까? 예정론이라는 말은 글자그대로 하면 우리가 이미 예정되어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정론에 대해서 두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오해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면 고형진은 목사님으로 예정되었다. 따라서 목사님이 아무리 딴 생각을 해서 댄스가수가 되려고 해도 안되고, 붕어빵 장사가 해도 안되고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고형진은 목사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다." "만약에 하나님이 나를 과학자로 만들기로 작정하시고 예정했다면 내가 시를 쓰고 나쁜 짓을 해도 나는 결국 과학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과학자로 예정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정말 오해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예정은 예정론이 아니라 운명론이지요. 내가 어떻게 해도 결국은 다 결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지요!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났어요! 길을 가다가 다들 도망가는 데 유독 김선생님이 도망가지도 않고 버티는 것입니다. 왜 버티고 있는지 알아요! 김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야!~ 지금 내가 죽기로 예정되어 있으면 나는 도망가도 죽을 것이고 여기 있어도 죽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살기로 예정되어 있다면 아무리 총알이 와도 총알이 다 피해갈 것이 아니냐? 그러데 내가 땀땀 뻘뻘 흘리면서 도망가야 할 이유가 어디있냐? 그러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총알이 날라와서 죽어버렸지요.
여러분들! 이것이 예정론이라고 생각하지요. 아닙니다. 이것은 예정론이 아니라 운명론이고 숙명론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다 결정되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예정론은 이것이 아닙니다.
예정론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우리의 미래가 다 결정되어졌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정론의 핵심은 구원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길에 대한 예정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이라고하는 것입니다.



예정론에 대하여 두 번째 오해는 오늘 설교제목처럼 선택과 버림받음입니다. 예정론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선택과 버림받음입니다. 이것에 따르면 예정된자는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버림받기로 작정된 자는 예수님을 믿는 데 실패하고 결국 멸망을 당한다는 교리입니다.
쉽게 말할까요?
하나님께서 저 친구가 아무리 뺀질거리고 매일 술과 담배를 품에 안고 살아도 하나님이 예정하면 언젠가는 저 친구는 하나님이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친구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에 출석해도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았으면 언젠가는 하나님을 떠나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봐라! 이삭의 부인 리브가 뱃속에 에서와 야곱이 있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고 에서를 버렸느냐? 그것은 9:12절에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이렇게 예정되지 않았느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에정하셔서 선택하셨고 에서는 선택하지 않아서 버렸다. 이것이 바로 예정이다.라고 설명을 많이 합니다.



한번은 교회에서 경건회를 마치고 나왔는 데 교회근처에서 중학교 여학생 4명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있었습니다. 저는 교육목사다보니까 중고등부학생들만 보면 관심이 생겨요!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그 시간이 9시 20분정도 되었는 데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의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물어보았어요. 애들아! 왜 학교에 안갔니? 애들이 말은 못하고 "금방 갈거예요"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리를 잡고 하나씩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여학생들이 학교에 조금 지각을 했는 데 교장선생님이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망을 간 것입니다. 문제는 교장선생님을 보고 도망간 것이 무서워서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니다.
제가 아이들을 설득해서 "애들아!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데리고 학교에 갈테니까 나를 따라와라! 내가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잘 이야기해줄테니까..."
그랬더니 아이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따라왔어요! 수업하는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을 들여보내놓고 교무실로 들어가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아이들 걱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한번 구원을 학교에 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해봅시다.
이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저를 만나지 않아도 학교에 갔을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선택되어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를 만났어도 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의 전통적 예정론입니다.



여러분들! 설교를 잘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진짜가 아니라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앞에 내용만 듣고 아! 예정론이 저것이구나하면서 "저렇다고 한다면 내가 맘대로 살아도 하나님이 나를 예정했다고 한다면 구원해주실 것이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주님을 믿어도 버림받았다고 한다면 방법이 없지 않느냐?"라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제가 주님을 영접하고 이 부분에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가롯유다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안그래요! 이미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팔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가롯유다의 탓이 아니라 하나님의 탓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선택받은자들입니까? 아닙니까? 잘 모르겠다고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믿습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제가 확신하고 보증하는 데 여러분들은 예정된 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정된 자입니다.
칼바르트라는 학자는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것을 "믿음의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내가 예정되었느냐 안되었느냐하는 것은 내가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믿는 순간 즉 이 사건이 바로 내가 예정된 순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착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태초 이전에 너는 택하고 너는 택하지 아니했다라고 하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그것은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 예수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버리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선택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의 육신의 옷을 입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버리신다고 한다면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버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복중에 내가 너를 선택했다." "태중에 내가 너를 알았다."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선택하고 버렸다는 것은 어려운 말로 하면 "이중예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이중예정은 십자가의 사건을 뜻합니다. 십자가에서 선택하고 버려진 사건이 일어납니다.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인간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어야 우리가 살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선택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버림을 당했습니까? 예수님 자신이 버림을 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 예수그리스도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십자가에서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동시에 그 버림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선택되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땅에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버림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이 현실은 버림을 받은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들을 버렸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심에도 불구하고 받는 이들에게는 두 가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은 믿음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는 곳, 거부당하는 곳에는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택은 믿음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버림은 믿음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만나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건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건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선택되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주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만나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아직 버림받은 존재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야곱과 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들은 솔직히 화가 안납니까? 저는 화가 나요? 왜냐하면 사실 야곱이 나쁜놈이지, 에서가 나쁜놈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 뱃속에 있을 때에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에서가 무엇을 잘못 했길래...또 야곱이 무엇을 잘 했길래...
그러자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하냐면 "까불지마라! 내가 너희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너희들을 만든 나에게 너희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한마디로 묵살을 내버립니다.



우리가 왜 분노하고 화를 내는가 하면 야곱이나 에서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사랑을 받고 미워한다는 사실이 이미 결정되었다고 하는 것 때문에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어느날 고형진목사가 교육목사로 부임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성선생님은 미워하고 홍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누가 분노할까요? 홍선생님이 분노할 까요? 그렇지 않지요! 성선생님이 분노를 하면서 무슨 이유로 나를 미워합니까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예정론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후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원하려는 위대한 역사를 하나님은 이미 예정하고 계셨습니다. 이 위대한 예정 즉 인간을 구원하려는 위대한 계획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사건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예정을 했는 데 그 예정이 무엇이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민의 죄를 담당하고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정론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은총입니다. 사랑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예정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믿는 순간에 선택받은자가 된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로 다시 돌아가볼까요!
우리는 자꾸만 버림받은 에서의 입장에서 항변을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그러나 에서의 입장이 아니라 선택받은 야곱의 입장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야곱도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나같은 사기꾼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셨다는 놀라운 고백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야곱과 에서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선택받은 야곱이라고 할지라도 두려움가운데 에서일 수 있다라는 것과 내가 지금 버림받은 에서지만 주님을 만나는 십자가 사건이 경험되어진다면 나는 야곱이 될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정은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정론에 대해서 설교를 들으면서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정은 에베소서 1:13절에 의하면 "구원의 복음을 듣고" 또 믿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 구현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대단히 중요한 것 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우리 학생에게 전화를 겁니다. 정원아! 부탁이다. 교회에 열심히 좀 나와라! 매일 전화를 합니다. 하도 지겨워서 한달을 버티다가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갔더니 얼마나 좋은 줄 모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왜 이렇게 늦게 들었는가 싶을 정도로 좋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기에서 이 친구가 잘 결정해서 교회에 오게 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원이에 대해서 정원이가 교회에 오게 된 사건이전에 먼저 내가 정원이를 애타게 찾고 부르짖는 작정함이 있었습니다.
예정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먼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우리가 결정을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고 찾아오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이 바로 예정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이미 예정된사람들입니다. 이 예정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사건입니다. 오늘 왜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했느냐고 묻지 마세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버리셨느냐고 묻지 마세요.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 내가 너를 사랑한다.
<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하루를 허락하셔서 살게 하시고 지금 나와서 예배케 하심을 감사합니다. 죄인인 우리를 선택하셔 자녀삼으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