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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약하여지지 않는 믿음-롬 4:16~24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 대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기로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몸을 진단해 보더니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너무나 병약하기 때문에 이 몸으로는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목사가 되었다가는 일 년 안에 목회를 못하고 쓰러져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가 될 생각은 아예 꿈에도 꾸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도리어 순교할 각오로 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복음을 전하다 죽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오른손으로 그를 붙드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84세까지 살면서 건강한 사람보다도 더 많은 일을 했습니다. 많은 구제 사업을 펼쳤습니다. 노년에 당시의 왕인 에드워드 7세가 그를 버킹검 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은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남기고 싶은 말을 한 마디 쓰라고 했습니다. 그때 윌리암 부스가 방명록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예술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성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황금입니다. 그러나 나의 야망은 오직 한 가지, 사람들의 영혼구원입니다.” 그는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지고 평생토록 복음을 전하면서 불쌍한 이웃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병약한 몸이었지만 건강한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말년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젊었던 시절에 저는 목사가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때 제 몸을 진단했던 의사가 날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때 의사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나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신실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약하여지지 않는 그 믿음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을 믿으면 실망할 때가 옵니다. 사람을 믿으면 우리 곁을 떠날 때가 옵니다. 돈과 명예를 믿으면 그것이 사라질 때가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결코 후회하는 법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면 믿음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바라보다가 의심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이루어 주실까? 기도가 정말 응답될까? 비전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러나 이때에 우리는 믿음이 약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유지시키는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든지 약해지려는 유혹을 이겨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해질 때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속적으로 가졌습니다. 그 결과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그러므로 힘들다고 하나님의 손을 놓아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핍박이 두려워서 놓아버리고, 지쳤다고 놓아버리고, 세상 유혹에 흔들려 놓아버리고, 눈앞의 현실이 불리하다고 놓아버리는 연약한 믿음의 모습이 아닙니까? 성도는 흔들릴수록 더 확신에 서야 합니다. 시험이 올수록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일이 더욱 더 중요합니다.

복음성가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찬양합니다.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능치 못하실 일 전혀없네 우리의 모든 간구도 우리의 모든 생각도 우리의 모든 꿈과 모든 소망도 신실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괴로움 바꿀 수 있네 불가능한일 행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시니 그를 이길 자 아무도 없네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믿음으로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네

본문 19절입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영역을 보면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라고 과거 완료시제로 기록하였습니다. ‘죽은 것 같고는 이미 죽었음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생산능력이 완전히 상실되어 인간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자녀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현재적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을 넘어서는 믿음입니다. 환경과 상황 때문에 믿음이 약해지는 것은 아닙니까? 어떠한 상황에도 능치 못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도대체 아브라함은 어떠한 믿음을 가졌기에 약하여지지 아니하였습니까? ‘약하여지지 않는 믿음은 어떠한 믿음입니까? 어떠한 하나님을 바라야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합니까?
 

첫째로 창조의 하나님을 바라라

프랑스의 조각가 중에서 로댕 다음으로 각광을 받는 조각가가 있다면 세자르 발다치니(Cesar Baldaccini)입니다. 세자르는 마르세유 미술학교와 파리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1950년대 이후 프랑스 예술계를 풍미한 누보 레알리즘의 거장으로 주로 금속재료를 이용한 작품을 시작으로 철사, 철근, 볼트, 스프링 등 산업화의 부산물인 금속폐품을 압축 또는 팽창시킨 작품들을 제작하였습니다. 고철용접작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자동차 3대를 압축하여 쌓은 작품을 발표하여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습니다. 자동차, 냉장고, 컴퓨터 등 다양한 고철들을 용접하거나 압축하는 방법으로 현대사회의 단면을 표현하였습니다. 잠실 올림픽공원에 있는 조각품 엄지손가락이 그의 작품입니다. 세자르는 어린 시절 가난해서 배우지도 못하고 조각할 수 있는 재료를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려진 물건들을 주어다가 그 물건의 특징을 살려서 조각품을 만들곤 하던 것이 오늘의 세자르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작업장을 보면 마치 철공소 같기도 하고, 폐품 수집장 같은 인상을 풍기기도 했습니다. 부서지고 녹슬고, 버려진 것들이라도 조각가의 손에 들어가기만 하면 신기한 작품으로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폐품을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의 작업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만지셔서 의인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병든 자를 만지셔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드시고, 가난한 사람을 부하게 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도하여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만지심을 경험하였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여기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에서 부르시는이라는 단어는 존재하게 하다’, ‘창조하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부활과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부활과 창조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만이 율법과 상관없이, 신분에 상관없이, 업적에 상관없이 믿음만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여 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만이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존재라고 강조합니다. 무로부터 창조를 가리킵니다. 없다는 것과 있다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컴퓨터는 있는 것의 기술적인 변형에 불과하지 창조는 아닙니다. 무로부터 유를 가능하게 하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창조의 하나님만이 새롭게 만드십니다. 그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 믿음입니다.
 

둘째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라

프린스톤 대학 교수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박사는 기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기쁨은 제자들이 목회자가 되어 신학교에 와서 설교하며 목회보고를 듣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성장한 모습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한번은 제자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작은 도시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인은 많지 않지만 저는 현실에 만족하면서 죄 짓지 않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자마자 윌슨 교수는 제자의 어깨를 툭 치며 자네의 설교를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을 것 같네” “왜요?” “Your God is too small (자네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 다음에 자네를 통해 하나님이 큰일을 했다는 소식을 도무지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작은 하나님이 아니라 능력의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작지 않습니까?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작은 하나님으로 축소시켜 아무것도 하실 수 없도록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까? 과연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본문 1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의 신앙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은인간적인 면에서 절망적이며 불가능한 상태이고 또 바랐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의 가능성을 희망하고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불가능하게 여겨졌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믿었습니다.

바랄만한 것을 바라며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식이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수많은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며, 후손을 통해서 세상의 많은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바라며 기다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믿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것을 되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며 믿었습니다.
 

셋째로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라

미안마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의 선교사업은 수포로 돌아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를 잡아 감옥에 가둔 사람들은 조롱하며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봐 저드슨, 선교의 전망이 어떻소?’ 그때 저드슨 선교사는 주저하지 않고 강하게 대답했습니다. “선교의 전망은 아주 밝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 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은 소망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프리카 선교에 평생을 바쳤던 선교사 리빙스턴은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날을 살아가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선교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약속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마태복음 2820절에 있는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예수그리스도의 약속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이것이 위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여주는 이유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주실 줄로 믿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인생은 불확실한 것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확률에 의해서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거짓종교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20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 미국 국회에서 연설하였습니다.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말하여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거실 벽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젊음을 지속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한 길, 하나님을 믿으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더 견고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이 약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랄 수 없는 가운데도 바라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람으로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08-08 21:0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