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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마 25:14~30

영국 캔터베리 교회(Canterbury Church)의 니콜라이(Nicolai)17세부터 관리집사가 되어 교회 청소와 심부름 같은 잡다한 일과 매일 5분 동안 종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5분전에 종탑에 올라가 종줄을 붙잡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종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이 평화를 얻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해 주세요이어 5분간 종을 칩니다. 얼마나 정확하든지 런던 시민들은 종소리에 시간을 맞출 정도였습니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 존은 철학교수가 되었고 제임스는 의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권합니다. “아버지, 이제 종치는 일을 그만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때마다 니콜라이는 죽기까지 종을 칠 것이다라며 거절했습니다. 76세 때 병이 들었을 때 교회에서 종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라고 권해도 그는 종치기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하였습니다. 혼수상태에 있다가도 종치는 시간만 되면 의식이 돌아와 기도하고 5분 동안 종을 치고 다시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반복한 후 마지막 종을 칠 때가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부축하고 종탑에 같이 올라갔습니다. 종 줄을 잡고 기도하던 니콜라이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죽도록 충성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소식을 듣고 감동받아 니콜라이의 시신을 황실 묘지에 안장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장례식 날, 런던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유흥업소들도 자진해서 쉬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니콜라이가 죽기까지 충성하였더니 성자의 칭호를 받게 되었고 온 가족이 귀족처럼 대우를 받는 존귀한 삶이 된 것입니다. 비록 종을 치는 일이 적은 일처럼 여겨져도 그는 변함없이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땅에서 영광을 얻은 니콜라이는 하늘에서도 큰 영광으로 돌려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 25장은 재림을 예비하는 성도들의 합당한 자세를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자세로 열 처녀 비유, 재림을 준비하는 자의 삶의 열매로 달란트 비유, 재림으로 말미암은 심판의 모습인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세 가지 비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의 재림 때 칭찬과 축복을 받을 무리와 저주와 멸망을 받을 무리로 뚜렷이 양분되고 있습니다. 특히 책망의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악행을 일삼은 자들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이루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소극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무사안일주의의 죄가 얼마나 엄하게 다스려지는가를 밝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계산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들은 갑절로 남겨 주인 앞에 내놓았습니다.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내 놓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주인의 평가 기준은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가 아니라얼마나 충성하였느냐였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이 동일하게 칭찬 받은 사실만 보아도 충성도로 전적으로 평가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은 일이라도 얼마나 충성을 했느냐에 더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충성은 원어로 피스티스(pistis)’인데 힘을 다하여 주인을 기쁘게 하는 태도로 가식이나 위선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 행동하는 모습입니다. 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까?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까? 부디 적은 일에 충성하는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합니까?
 

첫째로 많은 것을 맡기리니

일제 강점기에 국가의 지도자였던 고당 조만식(曺晩植) 장로는 청년시절에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마다 주인의 요강을 깨끗하게 닦아 놓았습니다. 주인이 아무리 생각해도 총명이나 성실함으로 보면 그가 머슴살이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학비를 대주며 평양의 숭실 학교에 보내어 공부를 시켰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조만식은 고향 정주로 돌아와서 오산학교의 선생이 되었습니다. 그 후 조만식 선생은 제자들이 성공의 비결을 물을 때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의 집 요강을 닦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적은 일에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그렇다면 적은 일은 무엇입니까? 언제나 내 곁에 있고 내게 맡겨지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를 볼 때 충성됨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적은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여기에서 적다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작고 크고의 문제가 아니라 적고 많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최고가 아니라 최선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맡은 일이 어떠하든지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최고가 되는 일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는 적은 일이 아닙니다. 적은 일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충성을 다하는 자가 더 많은 것을 맡는 칭찬받는 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 많은 일을 맡기십니까?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다섯 달란트 남긴 것으로 다 되었다가 아니라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해주었습니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한 번 더 해보라며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충성된 종은 기회를 누리는 특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얻는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어진 일이 적다고 불평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충성함으로 더 많은 일을 맡는 신령한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즐거움에 참여하리니

투르의 마틴(Martin of Tours)은 중세 시대에 가장 대중적인 성자입니다. 특히 수도원 사역에 큰 공헌을 남겼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교도였지만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마틴은 아버지를 따라 기병대가 되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불쌍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무척 돕고 싶었지만 군복을 벗어줄 수가 없어 망설이다가 군복 절반을 찢어 추위를 면하라고 덮어 주었습니다. 그날 밤 마틴은 꿈을 꾸었는데 예수께서 찢어진 군복 자락을 걸치고 계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사에게 말하기를 마틴이 헐벗은 나를 이 옷으로 덮어 주었다고 칭찬까지 하셨습니다. 마틴은 꿈속에서 받은 은혜와 충격을 가지고 일생 동안 예수를 기쁘게 하는 충성된 종이 되어 하나님이 베푸시는 즐거움에 참여하리라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군인으로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카이사를 지금까지 섬겼지만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섬기기 원합니다"라고 선언한 후 감금되었다가 석방되었습니다. 그리고 371년 수도원을 건립하고 투르의 감독이 되어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는 일을 감당하며 충성하였습니다. 그 후 교회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여기의 즐거움은 원어로 카라인데 주의 영광스런 현현이 제공하는 넘치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충성된 자로 인정된 사람은 주의 영광에 참예하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의 즐거움은 단순히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이 수반되지만 그 기쁨은 더욱 큽니다. 그러므로 적은 일이 힘들어도 충성스럽게 섬길 때 당연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기쁨이 주어 질 것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은 얼마나 큽니까? 우리는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감미로운 음악, 감상적인 문학이나 오락, 먹고 마시는 일에 진력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물거품에 불과합니다. 주님의 즐거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 즐거움을 가진 자는 찬송하게 됩니다. 영원한 간증이 있게 됩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적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즐거움인 것입니다.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일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적은 일이라도 충성을 다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즐거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풍족하게 되리니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바드 대학의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 박사는 마태복음 효과(Matthew effect)를 주장합니다. 본문 29절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의 말씀을 근거로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적게 가진 자는 점점 더 적게 가질 수밖에 없는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입니다. 마태복음 효과는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소득의 양극화 현상과 빈곤의 악순환, 지식과 교육의 격차, 정보의 격차, 실력 격차, 선진국과 후진국의 소득 격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마태복음 효과는 누적 이득의 효과로서 개인이나 집단이 성공하고 앞서 나가면 장점과 강점이 점점 더 쌓여지면서 더 크게 성공하고 발전할 수 있고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즉 성공은 더 큰 성공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성된 종이 되어 마태복음 효과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29절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사랑의 하나님이 없는 자에게 더 주어야지 왜 없는 자에게서 있는 것까지 빼앗으려 하십니까? 이는 적은 것이라도 귀히 여겨 충성하는 자를 더욱 풍족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하더라도 가치 없게 여기고 불충성하면 있는 것까지 빼앗기거나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가진 것을 빼앗긴 이유는 무엇입니까?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빈곤의식에 사로잡혀 왜 나는 남보다 적게 가졌는가?한 달란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책망 받은 이유는, 엄청난 빚을 졌거나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스스로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고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썩혔기에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은 일이라도 충성을 다하여 무릇 있는 자가 되어 더 주시는 풍족함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시골로 귀농을 하여 젖소를 기르던 사람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는 젖소의 젖이 마르자 이웃 농부에게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웃농부는 젖이 마른 이유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날마다 필요한 만큼의 젖만 짰다는 것입니다. 한 병이 필요하면 한 병만 짜서 마셨고, 우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아예 짜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필요한 만큼만 짜던 것이 젖을 마르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젖소는 젖을 짤 수 있는 만큼 최대한도로 짜내야 계속 더 많은 신선한 젖을 생산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충성은 무엇입니까? 지금 상황에서 다 짜내는 것, 다 쓰는 것입니다. 지금 건강한 것, 지금 돈 있는 것, 지금 능력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쓰며 충성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지금 안 쓴다고 나중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금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십니까? 한 달란트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적다고 달란트를 묻어 두는 불충성한 종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참된 그리스도인은 적은 일에도 충성을 다하는 종이어야 합니다. 부디 적은 일에 충성하여 많은 것을 맡아 일하는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적은 일에 충성하여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적은 일에 충성하여 더 풍족하게 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08-01 21: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