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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되는길 디도서1:1-4

2011년 1월 2일 제목: 바울 되는 길[1]

 

성경: 디도서1:1-4절

 

오늘 성경은 디도서입니다. 디도서는 디모데 전후서와 함께 목회 서신이라 부르고 바울이 써 보낸 것입니다. 디도는 이방인이고(갈2:3), 바울이 전도한 사람이며(딛1:4),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고후8:6,23) 바울이 제1차 로마 감옥에서 석방되어서 스페인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전도할 때 디도와 함께 그레데 섬에 전도하고, 이 섬에 디도를 남겨두었는데(딛1:5) 그의 임무수행을 지도하기 위해 본서를 썼습니다. 따라서 본서는 교회의 지도 관리에 대한 것을 가르치려는데 있습니다. 특별히 이단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그 이단이란 그노시스주의자들로 지식이나 난잡한 이야기, 공허한 이론을 일삼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딛1:10,13,3:9,딤전6:4-5,20-21,딤후2:16,23). 교회를 이런 이단에서 지키기 위해, 바울은 올바른 교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디도서의 성격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읽혀야 할 책으로는 위인전을 꼽습니다. 위인전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꿈이 되고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2011년 한해 바울이 되는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바울은 한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좋은 점을 배우거나 닮으면 내가 바울의 영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되는 길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1. 믿음을 돕는 것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선택하셨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다른 사람들의 믿음과 진리를 위해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존재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앙을 위해서 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고 존재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거나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사는 것이 무의미해 집니다. “아 밥이나 먹고 살다가 죽으면 그뿐인가? 이렇게 산다고 발버둥 치다가 내 인생 끝이 나는 구나,” 이런 사람이 것입니다.

 

사람의 사망률이 결혼식이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이 있을 때에는 훨씬 적어진다, 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자기 앞에 어떤 희망이 있고 목표가 있는 때는 죽음도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목표가 없는 사람은 키 없는 배와 같아서 이리저리 표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할까봐 목표를 안 세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실패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활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무슨 목적으로 만드셨겠습니까? 그저 먹고 자고 일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자식 낳고 살다가 죽으라고 만드셨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좋은 목표를 주셨습니다.

 

뉴욕 전화국에서 사람들이 어떤 말을 많이 쓰는가. 조사해 보았더니 '나'라는 말을 제일 많이 쓰더라고 합니다. 5,000번의 대화중에서 3,999번이 다 '나'에 대한 이야기더라고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기만 아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만, 자기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자기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돈을 벌고 성공을 해 보았자 짐승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행복도 없고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도 받지 못합니다. 참으로 성공한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남을 가장 사랑하는 길이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길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에게 어느 신문기자가 묻기를 '당신은 재산이 다 없어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또 다시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면 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은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고전10:24에 "누구든지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웃의 유익을 위한 목표가 아니면 대부분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쓴 것을 어떤 것이든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못 가져가지만 미리 하늘 나라에 우리의 선한 것은 저금하듯이 보내 둘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황제가 되었을 때, 스스로 왕관을 썼다고 합니다. 그만큼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죽을 때, “조세핀, 내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한 사람 뿐이었소.”라고 말했습니다. 조세핀 이외에는 믿을만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생은 실패작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으로부터 버림받고 아무도 그 사람을 따르지 않습니다. 능력과 은사 중의 최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오직 나 밖에 모른다는 것은 실패자의 길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고 배려해 줍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위하는 것을 보람으로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슈바이처와 꺄뮤 두 사람은 노벨상을 탔습습니다. 슈바이처는 박사학위를 4,5개나 가졌지만 아프리카의 람바네라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학대한 것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그들을 치료해 주고 문둥병을 싸매 주는 일을 하다가 노벨상을 탄 사람입니다. 그는 거액의 상금도 그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짓고 약을 사다가 치료해 주는 일에 썼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를 20세기의 성자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한편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인 알베르 까뮤는 노벨상 탄 돈으로 교외에 고급 별장을 짓고 자신의 쾌락만 좇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별장으로 신나게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다시 나옵니다.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나는 대학생인데, 학교생활도, 공부도, 인간관계도, 식사도, 잠도,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을 움직이질 못하겠습니다. 너무나 무기력하여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모든 일에 의욕이 없습니다. 온 우주가 그리고 영원한 지옥이 제 가슴을 마구 내리 누르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눌려서. 밥이 안 넘어가요. 일주일에 살이 2~3kg씩 빠집니다. 이 우주에 오직 나 혼자 버려진 것 같습니다. 단 1%의 기적이라도 있다면, 가시같이 아픈 제 영혼에 임하도록 도와주세요. 하루걸러 술만 마시면 사탄 마귀처럼 변하여 "칼을 물고 죽으라", "뛰어내려 자살하라." "개만도 못한 인간아" "내가 너를 칼로 찔러 죽이겠다."느니 온갖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 때문에 극심한 공포와 불안으로 보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 부디, 제 아픈 영혼 좀 없애주세요.

 

이 어머니는 옛날 서대문 영천시장에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아주머니의 인생목표는 자식들을 믿음으로 성장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아들은 훗날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의 어머니가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의 자기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소리가 연상되도록 자신의 제약회사 심벌마크를 종으로 정했습니다. 그 회사는 빠르게 급성장하여 이름만 대도 누구나 다 알만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 회사가 바로 종근당제약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입니다. 특별히 신앙에 영향을 주는 것이 바울을 닮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믿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믿음을 세워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무너지게 하는 사람이 될 수 도 있습니다.

 

2. 전도하며 사는 것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나타내시는 방법을 오늘 본문은 전도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전도를 하지 않으면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지만 전도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가 없고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1-24절)

 

미국의 정치가요, 사상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때 서점에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책 한 권을 들고 얼마냐고 물었고, 프랭클린은 1달러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손님이 책값을 깎으려고 흥정을 하다가 2-3분이 경과되었습니다.

 

그러자 프랭클린은 1달러 15센터를 내라고 했습니다. 손님은 싸게 해 달라고 하는데 15센터를 더 내라고 하자 기분이 상해 말했습니다. "어떻게 싸게 해 달라고 하는데 더 비싸게 부릅니까?"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은 돈보다 귀한 것인데 쓸데없는 흥정을 하느라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에 시간 값으로 15센터를 붙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시오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

 

당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만큼 살아왔듯이 그렇게 삶은 지나가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날아가는 듯한 시간 속에서 정말 가치 있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재물이나 명예나 성공 쾌락은 죽음과 동시에 소멸될 것입니다. 국내 상위권 중· 대형교회나 빠르게 성장한 교회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전도 왕’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 왕 한 개인이 전도를 많이 해 성장했다기보다는 전도 왕의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다른 성도들의 잠든 사명을 깨우고 도전의식을 심어 전도 열기를 퍼뜨린 것입니다. 즉 전도 왕이 영혼 구원의 깃발을 높이 들고 달려가면 다른 성도들도 함께 따라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도 왕들의 전도비결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의 신앙과 삶이 전도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섬김과 나눔을 통해 마음을 얻고 소외된 영혼들을 먼저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셋째는 전도의 기본은 반드시 기도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전도 왕으로 뽑힌 사람 셋만 소개합니다.

 

주안장로교회 전도 왕 김종열 전도사는 “전도는 내가 예수를 만나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을 전도 대상자에게 알려 예수를 믿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전도에 대한 부끄러움과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으려면 먼저 성령으로 충만하고 어디서나 전도 대상자를 놓고 기도해야 한다. 전도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라고 말합니다.

 

대구서문교회 전도 왕 이종근 장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 것이 전도다. 사업에 실패하고 건강까지 잃었던 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전도를 붙잡았다. 3000명 전도를 서원해 1026명을 전도하고 326명을 결신시키는 기적을 이뤘다. 그러자 건강을 찾고 물질도 회복됐다. 전도자는 하나님께서 가라면 가고, 전하라면 전해야 한다. 편한 전도는 없다. 고난과 어려움이 따른다.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 라고 합니다.

 

예정교회 전도 왕 문방현 장로는 “누구보다 부족하고 전도를 못했던 평범한 내가 전도 왕이 되자 모두들 놀랐다. 나에게는 전도 성공사례보다 실패사례가 더 많다. 지난 19년 동안 체험한 내 전도의 핵심 코드는 ‘자신감’이다. 거스르지 않는 당당한 태도와 모습이 호감을 주게 된다. 전도의 접촉점은 계절과 유행에 따라 바꾸어 주어야 한다. 요즘은 무료 발마사지 전도가 효과가 크다. 발 마사지를 배워 낮은 자세로 앉아 정성껏 시원하게 주물러 드리면 마음도 활짝 열린다. 전도는 오히려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선물이다.” 오늘 바울은 이것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한사람 전도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분입니다.

 

3. 항상 축복하는 사람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4절)

 

바울은 모든 글을 쓸 때 반드시 축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새해에는 상대에게 말을 좋게 해주되 특별히 축복하는 말을 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어느 집에 가든지 먼저 그 집을 위해서 평안을 빌라! 무엇입니까? 아침잡수셨습니까? 하지 말고 샬롬!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빈 축복이 그 집에 머물 것이고, 받지 못할 그릇이라면 네게로 돌아오리라. 고 하십니다. 축복이 중요합니다.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금하지 말라 어린아이들이 축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귀하게 여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이 12아들을 축복하였습니다. 그 축복의 내용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어느 수필가가 서울 신설동에서 봉천동으로 이사할 때였다고 합니다. 신설동 집안의 복이 계속 자기네를 따라오게 하려고 방마다 창호지를 북북 찢고 청소도 안 했습니다. 복이 그 집이 싫어서 자기를 쫓아오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봉천동 집에 도착해서 빈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이 집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고 창호지도 멀쩡했다. 그리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이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 집에 오셔서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방마다 연탄불을 피워 놓았습니다. 방 하나에 연탄 두 장씩이면 온종일 따뜻합니다. 저는 다음 주소로 이사를 갑니다.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축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축복의 말 한마디가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고 위로해줍니다. 여러분 모진 말이나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입을 다물고 사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축복하고 덕담하고 도와주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결론

 

여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대형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엄마의 손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니까 두려워 소리 지르기 시작합니다. “이지은, 이지은!” 그러자 아이 엄마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아이를 금방 찾았습니다. 그리고 야단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녀석아, 엄마 엄마 하고 불러야지, 엄마의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부르면 되겠어?” 그러자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이 슈퍼마켓에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가 엄마를 부르면 사람들이 다 돌아보지 않겠어요? 그래서 엄마 이름을 불렀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신앙도 기도도 인생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응답이 있고 결과가 있습니다. 기도도, 전도도, 헌금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적당히는 가라! 두루뭉수리는 없다고 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