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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유명목사 설교

바울과 디모데 1 딤후1:1-7

바울과 디모데[1]

 

성경: 딤후1:1-7절

 

로마의 5대 황제인 네로는 주후 54년 16세의 나이에 황제가 되어서 몇 년은 평화롭게 지냅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서 자신의 어머니와 스승을 죽입니다. 그리고 많은 귀족들을 죽이고 그 재산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을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면서 구경거리로 삼습니다. 즉위 10년이 지났을 때 로마의 대화제가 났는데 자신이 의심을 받게 되자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씌웁니다. 이때 바울은 1차 투옥 되었다가 석방이 된 후 당시의 세상 끝으로 여겼던 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겨울을 지나려고 니고볼리에 왔는데 그곳에서 체포가 되어 로마의 중심지인 로마광장 지하 감옥에 투옥된 것입니다. 이제 그는 죽을 것을 예상하고 그 인생의 마지막 편지를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쓰게 됩니다. 이것이 디모데 후서입니다.

 

1. 사도바울

 

어떤 여학교의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단어를 설명하였습니다.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되었는데 나르시스라는 열여섯 살 된 소년이 숲 속의 은빛 호수를 지나다가 물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소년은 그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사랑을 고백했지만 상대방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만 호수에 빠지고 말았단다. 그리고 그곳에 꽃이 피었는데 그것이 수선화가 되었다” 는 것입니다. 이 신화에서 이 단어가 유래되었는데 그 뜻은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병, 즉 자애 병이라고 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 있던 한 여학생이 손을 들더니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아무래도 그 병에 걸린 것 같아요 ,정말, 왜 그렇게 생각하니?, 저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거울 앞을 떠날 수가 없거든요.” “이봐 학생, 그것은 나르시즘이 아니라 착각이라는 병이란다.” 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지금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비참하게 여기거나 혹은 절망적인 마음으로 글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는 편지의 서문에서 자신의 고백을 씁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가 된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요, 인생이요 신앙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이 선택해주신 사도라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이것을 그는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전혀 자격이 없는 죄인인 자기를 하나님이 선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삶을 결정지었습니다. 그는 그를 부르시고 선택하신 분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삶이요 사역입니다.

 

헨리 마틴 선교사는 인도에서 사역을 마치고 페르시아로 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미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페르시아어를 배운 다음 9개월 만에 신약성경 전체와 시편을 번역해냈습니다. 그 후 왕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성경을 인쇄, 배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테헤란까지 960킬로미터를 여행했지만 왕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영국 대사를 찾기 위해 다시 640킬로미터를 여행했습니다. 대사는 그에게 소개장을 주며 다시 그를 640킬로미터 떨어진 테헤란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때가 1812년이었다. 그는 이 긴 여정을 노새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는 마침내 왕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일기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과수원에 앉아 감미로운 위로와 평안을 누리며 나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다. 고독 속에서 나의 벗, 나의 친구, 나의 위로 자이신 그분을 생각했다.” 그는 분명히 편안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매우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많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목표 의식에 완전히 사로잡혀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행복이요 기쁨이었습니다. .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지금 하나님을 자랑할 입장이 아닙니다. 사도라는 이름을 영광스럽게 글의 서두에 쓸 만한 형편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초월하고 자신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놓고 그분을 자랑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하지, 또는 자랑할 것이 있어야 자랑하지 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살아 있는 것이 감사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자랑입니다.

 

남편이 초등학교 교장이신 강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강 집사는 일곱 남매 맏아들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가보니 살림이 말이 아닙니다. 신혼 재미는 고사하고 결혼 첫날부터 아침마다 시동생, 시누이 도시락 여섯을 사주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옷 꿰매는 일로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남편은 꼬장꼬장한 성격이라 칭찬이나 도움이란 아예 없습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섯 시동생, 시누이가 한 둘 살림 차리고 나가고나니 이제는 제 속에서 나온 자식들이 다섯입니다. 시집 와서 십여 년을 시동생, 시누이 여섯 뒷바라지 하느라 손발이 닳았고, 이제는 아이들 뒷바라지로 또 십여 년 세월을 보내니 뼈골이 다 빠졌습니다.

 

그래서 만날 하는 푸념이 “나도 남이 해주는 밥 좀 먹어보자”는 소리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두 팔에 힘이 쭉 빠지기 시작합니다. 두 팔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백가지 약을 먹었습니다. 효과가 없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그 집사님 평소 소원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침내 강 집사님은 남이 해 주는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팔을 꾸부릴 수 없으니 남이 해주는 밥 정도를 넘어 남이 떠먹여 주는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남이 해 주는 밥과 남이 떠 먹여주는 호사를 만 일 년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 무렵 전도 받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교회에 나와 하는 처음 기도가 이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용서하여 주셔요. 앞으로 평생 내가 밥 해먹고 살겠아오니 이 팔 좀 고쳐 주셔요. 앞으로 절대 남이 해 주는 밥 먹겠다는 소리 안하겠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이 팔 좀 고쳐주셔요” 이렇게 간절히 기도 하였습니다. 또 일 년 동안이나 용하다는 병원 다 가보고, 좋다는 약 다 써보았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고, 두 팔은 여전히 맥없이 달려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기도할 수밖에 없어 종일 눈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내 손으로 밥 해 먹게 하여주셔요” 이렇게 기도했는데, 어느 날 밤 한참 자는데 무엇인가 이상하더랍니다. 자기가 자기를 보니 두 팔이 가슴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강 집사님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스스로 자각 해보니 분명히 꿈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으로 가만히 두 팔을 아래로 내려 보았더니 내려갑니다. 이번에는 올려 보았더니 두 팔이 슥 올라갑니다. 몇 번이나 조심조심 움직여 보았는데 이것은 분명히 꿈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내 두 팔이 움직인다” 날이 새면 두 팔이 도로 내려앉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 속에 그 밤을 기쁨 마음과 두려움으로 뜬 눈으로 새웠습니다. 아침 해가 뗬습니다.

 

그리고 이제 강 집사는 제 손을 밥을 해먹고 예수님 섬기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생살이는 생각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믿고 사는가가 은혜입니다. 여러분 바울같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을 감옥에서 죽음에서도 자랑스럽게 높일 수 있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는 환경을 초월했습니다. 그는 디모데를 어떻게 말합니까?

 

2. 디모데

 

⑴ 기도할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먼 곳에 있다 할지라도, 설사 이별했거나 하늘나라에 가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생각 속에 살아 있습니다. 힘들 때는 아름다움으로 생각나고, 잘못하고 넘어 졌을 때는 격려하던 것들을 생각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힘들 때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고, 좋은 것이 있을 때 떠오르는 이름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사람은 자기만 생각하고 산 사람이라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할 때 마다 디모데가 생각났습니다. 그런 그의 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교회를 잘 감당하고 목회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바울 같은 사람들의 기도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사 학자들은 19세기의 찰스 스펄전을 ‘설교의 황제’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27세 때에 런던 메트로폴리탄 교회에서 6천 명의 청중에게 설교했습니다. 활자화된 3,561편의 설교문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책으로 출간되고 또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1879년 8월 10일도 다른 주일들과 마찬가지로, 교인들은 새로 온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도록 하나같이 예배당 밖으로 나갑니다. 곧 6천 명의 사람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교회를 방문한 한사람이 교인에게 이 비결을 물었습니다. 교인은 “따라오세요” 하고 방문객을 지하실로 안내했습니다. 거기에는 400명의 교인들이 설교 중인 목사님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교인들은 기도 사역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법이나, 기도의 능력을 배우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1부 예배 후 설교자 스펄전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기도 사역이며 스펄전이 설교의 황제가 되는 숨어있는 비결이었습니다. 바울은 틀림없는 디모데의 중보 기도자이었습니다. 바울의 기도 속에 디모데가 있고 디모데의 사역 속에 바울의 중보기도가 나타난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하는 사람의 수가 얼마가 되는가 하는 것이 그 목회자의 목회를 좌우합니다. 많은 사람은 목회자에게 기대는 많이 하지만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기도와 휴대전화에 관한 비유가 있습니다. 첫째, 휴대전화는 매월 요금고지서가 날아옵니다. 그러나 기도는 전혀 돈이 들지 않습니다. 둘째, 휴대전화는 지하실이나 터널 산속에서는 잘 터지지 않는 통화 장애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어디에서든 막는 것이 없습니다. 셋째, 휴대전화는 아무리 잘 보관해도 분실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분실이나 도난의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넷째,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나가면 통화가 끊어집니다. 그러나 기도는 고장의 염려가 없고 영원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휴대전화 통화가 길어질수록 시간과 돈이 들어가 손실을 가져오지만 기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영적인 유익을 줍니다. 여러분들은 주변 사람들과 통화하는 것만큼이나 자주 자주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⑵ 감사와 기쁨을 주는 사람

 

1900년 에비슨 박사가 미국 카네기 홀에서 열린 만국 선교대회에서 가난한 조선인들을 치료할 수 있는 큰 병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조선에 한 번도 가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세브란스라는 사업가가 선뜻 병원 건축비를 기증하였고, 그렇게 해서 오늘의 세브란스 병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병원 앞뜰에는 이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그 밑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받는 당신의 기쁨보다 주는 나의 기쁨이 훨씬 더 큽니다.” 이 말은 세브란스가 에비슨 박사에게 병원 설립 비를 주면서 한 말입니다. 세브란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제자요 믿음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사람을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으로 무엇을 해주는 것만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 자신이 돈이나 금덩어리와 비교할 수 없는 보물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가? 근심이 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걱정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또 디모데처럼 감사의 사람이 되고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디모데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뜻이고 갈라디아 지방의 루스드라 사람으로 아버지는 헬라인이고, 어머니는 유니게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제1차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그 어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자신도 주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입니다.(행14:6,22). 그 후 그는 그 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칭찬 받는 자로 소문이 났는데(행16:2).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그는 바울을 따라 나서는데 부모는 그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 후 바울은 그를 믿음의 아들로 삼고 사랑하고 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그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좋은 동역 자였으며 위로 자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얼마나 사랑하고 믿고 있었는지는 바울 서신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⑶ 신앙유산 받은 사람

 

디모데가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의 믿음을 물려받은 것이 곧 바울의 감사의 제목이었습니다.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의 경제학 박사 토머스 스탠리 교수가 부(富)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는 최근 20년 동안 미국을 움직이는 백만장자들의 성장 과정과 흥망성쇠의 역사를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의 재벌 중 80%는 중산층, 또는 노동자 출신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부자들은 겨우 20%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부모로부터 유산대신 좋은 습관을 물려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 근면, 성실, 정직, 용기 등 정신적 유산입니다. 자녀들에게 아무리 많은 재산을 남겨주어도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면 그 재산을 다 날아 갈 것입니다. 중요한 유산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유산은 보이지 않는 신앙이고 정신적 유산입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제2차 대전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승리로 이끈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 역사에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한명 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 저녁식사 시간은 언제나 아버지의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여섯 명의 장난기로 가득한 아이들로 늘 시끌벅적했지만, 아버지의 기도시간 동안에는 누구나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만약 기도시간에 장난을 치거나 시끄럽게 했을 경우에는 무릎을 꿇고 벌을 받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성경을 읽고 함께 찬송을 부르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아이젠하워의 부모님은 그에게 신앙을 물려준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에는 항상 세상의 가난하고, 지치고, 불행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주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한다면 그들은 위대한 신앙인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신앙훈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이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하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게 하소서.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부모가 됩시다.

 

히틀러가 평소에 싫어한 것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태인이요, 다른 하나는 여자였습니다. 그는 6백만의 유태인을 살해했으며, 여자를 거느리긴 했지만, 사랑을 주거나 결혼한 일이 없이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장사꾼으로 물건을 해다가 팔고 돌아오는데 한 달도 걸리고 두 달도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이웃에 사는 돈 많고 세력 있는 유태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어린 히틀러는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기를 눈물로 호소했으나 어머니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히틀러는 여자와 유태인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범죄가 히틀러의 마음에 살기를 품게 했고, 그 결과 인류는 히틀러 한 사람 때문에 엄청난 비극을 당해야 했습니다. 첫째는 그의 죄악이나 어머니가 준 악한 영향 때문에 그런 악인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는 간단한 방법은 부모가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축구 중계를 보고,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연속극이나, 영화 DVD를 빌려 보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서 믿고, 집에서는 안 믿는 사람들처럼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습니까?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내 루스 그레이엄(Ruth Graham)은 중국에서 선교사의 딸로 자랐는데 부모님이 매일 성경을 공부하고 읽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우리 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계셨다. 의료 선교사이셨던 아버지는 항상 정신없이 바쁘셨던 분인데도 아침 시간에는 항상 성경과 함께했다. 또 밤이면 일을 마치신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와 똑같이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의 관심을 그렇게 차지하는 것이라면, 나도 한번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부모의 유산이자 자신을 세워준 가치이었습니다.

 

결론

 

어느 교회에서 40대 부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신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한 사람은 모두 152명이었습니다. 성숙한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4명,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4명, 그리고 부족하면서도 노력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은 무려 124명이었습니다. 이는 교회생활이 형식적이며 교회는 다니지만 고쳐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심지어 주일 예배만 한번 드리고 모든 것을 다한 것으로 착각하는 교인들마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 편한 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겉으로 나타나는 형식보다 더 깊은 사랑과 희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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