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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가 되는길 다도서1:5-9

디도가 되는 길[2]

 

성경: 디도서1:5-9절

 

바울은 디도를 나의 참아들(딛1:4절) 내 형제(고후2:13절) 나의 동료요 동역자(고후8:23절)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디도는 바울이 부탁하는 문제의 해결사로 나타납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내서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과의 긴장을 해결합니다(고후7:6-16절) 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헌금을 모으는 일을 위해서 다시 파송됩니다.(고후8:6,16-24절) 오늘 본문은 폭력과 부도덕으로 악명이 높은 그레데로 디도가 보내졌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보내서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는 사명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 일을 마친 후에 디도는 감옥에 있는 바울을 방문하고 다른 어려운 지역인 달마시아(딤후4:10절)로 파송됩니다.

 

지금 디도서의 배경이 되는 그레데 섬은 크기 길이257km 폭56km (제주도73km 31km)으로 제주도의 6배 크기의 지중해 연안 그리스 동남쪽의 섬으로 100개의 도시가 있었고 해안을 따라서 많은 마을과 사람들이 살고 있는 큰 섬이었습니다. 바울은 62년경 감옥에서 석방된 후 디도와 함께 사역을 하는 중에 그레데에도 갔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그 지역 교회에 남겨두었고 디도가 그곳에서 당면한 문제들에 대하여 도움을 주려고 디도서를 쓴 것입니다. 디도는 헬라인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목격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사역에 깊이 헌신하였고 교회 역사에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배경, 국적, 성별 혹은 교육에 상관없이 사람을 사용하심을 디도를 통해서 보여 주고 계십니다.

 

1. 사명자 디도 (Tivto 공경)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5절)

 

부족한일을 바로 잡을 것을 디도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번역에서는 “교회를 강하게 하는 것(현) 다하지 못한 일 완성(공) 남은 일 정리(새)”하는 것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디도에게 부족을 채우고, 교회를 강하게 만들어라, 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레데에 디도의 사명입니다.

 

지구상에는 3만여 종의 직업이 있습니다. 일자리가 귀했던 1910년대 인기 직종은 주모(酒母)와 염부(鹽夫)이었습니다. 이후 광산개발자, 헌병, 수사관, 야학 교사, 선주 등이 일제강점기의 선망 직종이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군 장교, 극장 간판장이, 나룻배 사공, 타이피스트, 가발 기술자, 연탄 배달부, 보일러 수리공 등이 차례로 유망 직종이었습니다. 현재는 여성은 초등학교 교사, 공무원, 금융기관이고 skia성은 판사 의사 한의사라고 합니다. SEEK job-hunting 조사에 따르면 뉴질랜드 노동자들의 70%가 새로운 일자리를 원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미국 컨슈머 리서치 센터(CRC)가 5,000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8%만이 자기직업에 만족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일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봉급을 원하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응답이 28%나 차지하였고, 그 다음으로 스스로가 인정받지 못해 이직을 원한다는 응답이 23%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성경은 무슨 직업을 통해서 사람이 자신을 실현하고 보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던지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나 자세가 있는데 그것을 부족함을 채우는 사람이 되고, 강하고 좋게 만드는 사람이 되라, 는 것입니다. 그곳이 직장이면 직장 교회 구역이면 구역에서 자신이 있어서 힘이 되고 강하게 되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말하고 있습니다. 디도는 제주도 보다 6배나 크고 100군대의 큰 마을을 가진 그레데라 섬에 있는 교회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강하게 하는 사람으로 사명을 맡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한 인물이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힘을 얻고 용기를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답입니다. 그런데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과 정반대로 행동합니다. 다른 사람을 실망을 시킵니다. 힘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힘이 빠지게 만듭니다. 부족함을 채우는 것은 고사하고 부족을 만들어서 구멍이 나게 만들고, 자기 때문에 일이 안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거나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글을 씁니다.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4:1절)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2:19절)

 

이것은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 교인들입니다. 나무나 곡식에서 열매를 얻는 것이 수고한 보람이요 기쁨이요 농사한 사람의 영광입니다. 그러나 쭉정이는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열리지 않는 나무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집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힘을 주고 기쁨을 주는 사람입니까? 힘 빠지게 만들고 부담을 주고 근심을 주는 그런 행동은 없는가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는 것은 이런 자신을 바로보고 고치는 것이요 변하는 것입니다. 2011년에 하나님은 당신이 집에서, 교회에서 사회나 직장에서 당신의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는 사람으로 강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으로 사는 한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일본 남단 해역에 오키노토리라는 아주 작은 섬이 있습니다. 간조 때는2m, 만조 때는30㎝ 바위만 보이는 작은 섬입니다. 일본은 이곳이 파도에 마모되어 사라지거나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만약 이 섬이 바다에 잠겨 흔적을 감춘다면 일본은 엄청난 영해(領海)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돌출 부분에 시멘트를 발라 마모를 막고 있습니다. 이 보잘것없는 오키노토리 때문에 중국과 일본은 지금도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초라한 바위 하나지만, 그것이 국가의 영토로 인정받으면 엄청난 권리가 주어집니다. 바다 속에 석유, 가스, 수자원, 광물질, 어류 등이 모두 그 국가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 작은 섬으로 인해 일본은 본토보다 큰 40만㎢의 영해를 확보했습니다. 작은 바위 하나가 국가의 지도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바위만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위만 보면 아무 쓸모없습니다. 그러나 그 바위로 인해 얻어지는 권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은 작습니다. 어떻게 보면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하는 작은 바위 섬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살아 있어야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자녀들이 용기를 얻고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파도에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잠수를 해서 보이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당신이 주변을 살아나도록 하는 그런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것이 디도의 길이요 디도처럼 사는 성도의 길입니다.

 

2. 책망 할 것 없는 사람(6.7절)

 

오늘 성경에는 장로와 감독이라는 명칭을 번갈아 씁니다. 장로는 직분이고 감독은 교인들을 이단으로부터 지키는 그의 역할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장로를 세우라고 하면서 두 번씩이나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⑴ 가정과 자녀

 

6절은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찌라” 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가정생활이 문제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녀들이 불순종해서는 안 된다고 기록합니다. 자녀들이 말을 안 듣는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장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지 합니다. 말도 잘 듣습니다. 그러나 머리가 커지면 자의식이 생기고 고집이 생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호박순도 나무 가지도 어린 순은 돌려놓는 데로 자라고 올라갑니다. 그러나 굵어지면 안 됩니다. 잠언22:6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신앙교육은 시기가 중요합니다. 유태인의 자녀 교육법에 따르면 유치부 때에는 100% 유태인으로 만들 수 있으나, 초등학교 때에는 50%, 중고등학교 때에는 10%, 대학교 때에는 5%, 그리고 장년에 이르러서는 매우 힘들다고 말합니다. 어릴 때 확실한 신앙교육이 되면 자라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어릴 때 신앙교육을 희미하게 해놓으면 자라면서 세속적인 지식이 그 희미한 영적 지식을 덮어버리게 되고 결국 세속화 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는 강철같이 단단한 돌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돌에는 새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단단한 돌에 새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을까요? 이는 필경 이 단단한 돌도 그 언젠가 새가 디뎌도 발자국이 날 정도로 물렀다는 증거입니다. 그토록 연했던 물체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매우 단단한 돌이 되어 지금은 코끼리가 밟고 지나가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돌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도 돌처럼 굳어져버리면 제 아무리 손을 써도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도 홈(Home)스쿨과 대안학교가 불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의 홈 스쿨 인구는 250만 명 이상 있습니다. 정부에서 인정을 하고 교재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몇몇 뜻있는 가정이 모여 함께 자녀들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매년 15% 이상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홈 스쿨 인구는 3만 명, 호주는 2만 명, 일본은 4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집에서 교육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인본주의 교육, 세속화된 교육에 우리의 자녀들을 맡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과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학교나 학원에 보내 놓으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부모가 선생이 되고 아버지 어머니가 모범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⑵ 자기관리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6-8절)

 

위의 것을 정리하면 혈기, 음주, 완력, 물욕, 접대, 근면, 정결, 절제, 말씀에 순종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으로 자기관리를 하고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다 물질에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을 넘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신앙과 믿음이 그 사람의 모습이요, 인상이요, 정체인 사람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신앙원칙을 어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힘들고 위험해도 말씀위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걸어가는 행진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길은 여러 갈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길을 몰라서 방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지 말아야 할 헛된 길을 가기도 합니다. 한참 가다가 잘못 간 걸 알고 되돌아서 다른 길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 연습이 있어도 인생은 연습이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똑바로 가야 합니다. 민수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생활은 이스라엘의 순례 길인 동시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순례 길입니다.

 

첫 번째 원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가겠다는 분명한 결심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들은 행진할 때 반드시 여호와의 명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어두워져 가고 혼란한 인생길에서 여호와의 명을 따라 걸어가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원리는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가를 듣고 보고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며 멈추기도 하고 행진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삶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행동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이제껏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모방은 겉모습만 같게 만들 뿐, 그 내면과 그 삶의 근본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참 원리는 모방이 아니라 참여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여한다는 것은 주님의 그 풍성하고 신비로운 생명이 내 속에 들어와서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데이비드 건은 1984년 뉴욕 지하철 책임자였습니다. 깨끗한 지하철, 범죄 없는 지하철을 만들고 싶었던 데이비드 건 소장은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범죄학자였던 조지 켈링은 지하철 낙서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했습니다. 지하철 낙서야말로 충동적인 범죄의 심리적 온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객차마다 스케줄을 잡아 지하철 낙서를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7년 동안 낙서와의 끈질긴 전쟁이었습니다. 지하철 낙서가 줄어들자 마침내 범죄도 줄어드는 특별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문제를 푸는 것은 모든 것을 다 풀어야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라도 분명한 것을 붙잡고 계속하면 전체가 달라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지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도우시고 역사하실 때 우리는 불가능의 사막을 넘어 온전한 곳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힘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쁨이 되면 좋겠습니다.

 

움직이는 것이 전진이 되고, 사는 것이 간증이 되면 좋겠습니다.

 

혼자 있는 때는 기도시간이 되고, 함께 할 때는 노래를 부르면 좋겠습니다.

 

사랑하기에 좋았고, 구원하였기에 잊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해가되면 좋겠습니다.

 

나의 오늘이 있게 한 은혜가 하나하나 생각나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 하나님 내 마음에 욕심을 버리게 하소서 아직도 남아 있는 미움과 갈등을 버리고 빈 마음을 가지고 만족하게 사는 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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