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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난 은혜 디도서2:9~15

나타난 은혜[5]

 

성경: 디도서2:9-15절

 

 

 

 

사람이 아주 똑똑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개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볼 수 가 없고,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는 무엇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은혜 중에 최고의 은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이요, 그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엄청난 것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답은 예수님의 십자가요 예수님의 보혈이요 피 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약속의 확실성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것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타난 은혜입니다.

 

1. 살게 하심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2절)

 

당시에 종들의 신분은 움직이는 물건입니다. 불만을 품는 종은 죽습니다. 주인에게 항거 하거나 도망을 가는 노예는 죽여도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런 종들에게 자유를 찾아라, 내 자신을 찾으라. 라고 말하지 않고 그 현실에 적응하라, 주인을 기쁘게 하는 종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의 해결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예수님을 믿고, 또 믿는 사람들이 많아 져서 그런 제도를 고치는 사회적인 시간이 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종이 자신의 신분을 부정하면 그날로 죽습니다. 바울은 순종하고, 말대꾸를 하지 말고, 때먹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종이요 노예라도 현실에 적응하고 살아라. 는 것입니다. 이 살아라. 는 것 살아가게 하시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첫 번째 은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못살겠다, 죽겠다, 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또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고,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는 말처럼 내가 현실에 불만을 하거나 적응을 못하고 죽겠다 못살겠다고 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손해 보는 것은 자신뿐입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바위 위에서 뛰어 내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이 싫다고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감옥에서도 살고, 가난에서도 살고, 모욕을 당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못살면 죽는 것인데 누가 손해입니까, 자기만 손해입니다. 악착같이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살아야합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노예들에게도 살아라. 하십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도 살아라. 하십니다. 가난한자, 억눌린 사람에게 살 힘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데 그것은 어떤 자리에서도 살 수 있게 하신다. 는 것입니다.

 

남아공의 만델라는 27년 동안 외딴 섬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최악의 정치범인 D급 죄수였습니다. 면회는 6개월에 한 번, 편지도 한 통밖에 허용되지 않습니다.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갔습니다. 이듬해에는 큰 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죽습니다. 물론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둘째 딸은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앞엔 절망의 절벽만 놓여 있는 듯 했습니다. 14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맏딸이 자식을 낳았다고 찾아와 "아버지, 그때 편지로 말씀드린 제 딸의 이름은 정하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딸은 그 쪽지를 조심스럽게 펼쳐서 보고는 종이에 얼굴을 묻고 울었습니다. 종이에 묻은 잉크가 눈물로 얼룩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글은 '아즈위(Azwie, 희망)였습니다.

 

그는 백인들에 의해 27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출옥할 때 사람들은 그가 아주 허약한 상태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7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5년 만 감옥살이를 해도 건강을 잃어서 나오는데 어떻게 27년 동안 옥살이를 했는데 그렇게 건강한 상태로 출옥을 할 수 있었냐고 사람들은 질문했습니다. 그는“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대통령에도 당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는데 어떤 곳에서도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드디어 그는 남아프리카의 첫 번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어‘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하여 복수의 악순환을 끊었습니다. 규칙은 백인경찰이나 군인이 자발적으로 고소 자들 앞에서 범행을 털어놓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그 범죄로 인해 재판을 받거나 처벌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청문회 자리에서 ‘반드브렉’이라는 경찰이 자기의 죄를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과 동료들이 18세 소년을 총으로 쏘고 시체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8년 후 ‘반드브렉’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소년의 아버지를 체포했는데, 그 아내는 남편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을 붙이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아들과 남편을 차례로 잃은 노부인에게 법정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판사는 물었습니다. “반드브렉 씨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부탁한 후 한 가지 요구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반드브렉 씨는 제 가족을 모두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직도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많습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한 달에 두 번 우리 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나는 ‘반드브렉’ 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나는 내가 정말 용서했다는 것을 ‘반드브렉’ 씨가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이런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중에 지친 사람은 없습니까? 싫은 사람, 보기 싫고, 먹기 싫고, 살기 싫은 사람 권태와 무의미 속에서 사람도, 삶도 만사가 귀찮게 생각되는 것 말 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살아라, 그리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은혜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편23:4.5.6편)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126:5-6절)

 

2. 기다리게 하신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13절)

 

하나님은 세상을 불로 심판을 하실 것인데 참고 기다리시는 데 그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 때문입니다. 성경은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기다렸던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 아들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이나 굴욕의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요셉은 상처와 억울함으로 얼룩진 13년을 그리움과 아픔으로 참았습니다. 야곱은 21년간이나 실망과 시행착오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가정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다림이라는 불에 던져 타게 하시고 결국은 녹아지게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기다릴 힘도, 기다릴 이유도 없이, 그냥 눈떠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살아있음으로 하루를 사는 존재로 만드십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 기다림의 세월에서 낮아지고, 작아지며, 정화 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미련하여 그때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좋았을 일들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아 알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기다릴 수 있음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만이 끝까지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기다림의 은혜를 받아들이십시오.

 

‘기다림’이란 제목의 글을 소개합니다. “생은 기다리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아이는 자전거를 탈 만큼 나이가 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젊은이는 그가 차를 운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의학도는 졸업증서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며, 직장인은 승진을 위해 기다려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가정의 평온을 위해 기다려야 하고, 새 집을 마련하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의 기술은 한 순간에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기다림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시겠다고 성경에서 1,260번이나 이야기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2,000년 동안 주님 오시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의 중심에는 자기가 있습니다. 내가 움직이면 된다는 생각 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고 생각합니다. 내가 뭘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운명을 개척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다림이 쌓이고 쌓이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야곱의 인생은 초기에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머리를 굴러서 팥죽으로 장자 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받아냅니다. 모두 자기 힘으로 이룬 일들입니다. 야곱은 이런 행동을 통해서 뭘 얻었습니까, 쫓기는 인생이 되었고, 외로운 타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셉은 오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자기가 한 일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밑바닥에서 애급의 총리까지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해를 가한 모든 이들이 자신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용서를 선포합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합니까, 사랑하고 기다리라. 믿고 기다려라, 할 일을 하면서 기다리라. 고 하십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나, 언제든지 인내하고 참는 기다리는 사람이 됩니다. 봄이 오고 여름을 기다리면 가을이 올 것입니다. 또 겨울이 오겠지요. 그러나 열매는 열리고 추수기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절)

 

3. 열심을 내게 하신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14절)

 

한 영국 귀족이 부모로 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 귀족은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돈으로 점박이 쥐를 만드는 일에 투자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점박이 쥐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은 무익한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과 재능을 점박이 쥐를 위해 바쳤지만 점박이 쥐는 귀족이나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본문 성경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교회는 스펄전목사가 목회하던 교회였습니다. 1866년에 성도가 4천 3백 66명으로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스펄전목사가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해서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 두 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천 3백 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전부가 다 미지근한 성도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슴이 뜨거운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가 오래 사용하던 건물이 낡아서 그 옆에 예배당을 새로 짓는데 성도들이 열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낡았지만 우선 예배드리는 곳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짓는 공사는 계속해서 지연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이 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목사님의 책도 타고, 교회의 의자도 불에 타서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당장 예배를 드릴 곳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성도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모아졌습니다. 속도가 붙었습니다. 예배당을 잘 지어 봉헌하였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믿음으로 뜨거워지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론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이 미국의 제7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조지 윌슨(George Wilson)이 강도질을 하다가 우체국 직원을 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고. 법관을 그를 교수형에 처하도록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앤드루 잭슨이 친구들의 청원서를 받고 그를 사면하는 사면장에 서명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합법적인 권한이었고, 또 모든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간수는 그에게 대통령의 사면장을 보이면서, 그가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감옥을 나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지 윌슨은 대통령의 사면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는 감옥도 떠나지 않겠다고 우겼습니다. 간수는 어쩔 수 없이 상관에게 그대로 보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조지 윌슨의 사건은 그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되었고, 그곳의 결정으로 그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 당시 대법관 존 마샬(John Marshall)은 판결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면장은 종잇조각에 불과하지만, 그 가치는 사면 받을 사람의 승낙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만일 그것이 거부된다면 사면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당신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살 수 있는 은혜, 기다릴 수 있는 은혜, 뜨거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냥 죽고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조영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