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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용수목사/빛나는 사람, 요셉 (창 39:4-9)

지용수목사/빛나는 사람, 요셉 (창 39:4-9)


오래 전 경상북도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주일 낮 예배를 드리러 교인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목사님도, 전도사님도 계시지 않아 나이 드신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한글을 겨우 읽는 분이 두꺼운 돋보기를 쓰고 성경을 읽는데 당시 성경은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으니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을 잘못 읽어서 “하나님이 내 목 자르셔도 부족함이 없습네다.”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런데도 교우들이 그대로 믿고 “아멘!”이라고 했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인 곳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제가 일생 성경을 붙잡고 살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어떤 것은 밝히 아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는 것도 있습니다. 천당에 가서 물어볼 것입니다.
존 캘빙이 말했습니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망한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만큼만 알아도 넉넉히 구원받고 은혜를 받고 복을 받는다.” 할렐루야!
또 제가 전도사 시절에 전한 것을 지금 와서 보면 ‘아이고! 그 뜻이 아니었는데…….’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영혼을 살려 주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주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도 제가 정성을 다해 말씀을 전하지만 혹 제가 실수를 해도 하나님께서는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조개에서 진주가 나오지만 진주만 빛이 나지 조개껍질은 아무리 산더미처럼 쌓아 놓아도 빛이 나지 않습니다. 
몇 만 명이 모여도 조개껍질이 쌓인 것처럼 빛이 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요셉은 한 사람만 있어도 빛이 납니다. 요셉은 맑고 깨끗하니 빛을 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조개껍질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진주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그 당시에도 빛이 났습니다. 그는 이미 천당에 가 있고 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만 지금도 요셉에 대해 읽으면 그에게서 빛이 납니다.
이제 곧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옵니다. 순식간에 십대, 청년,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고, 무덤에 들어갑니다. 잠깐 살다가 가는 인생입니다.
빛을 뿌리며 산 요셉 같은 인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요셉은 쇠사슬에 끌려왔지만 보디발 집에 가서 사랑을 받습니다.
4절에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주인의 사랑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 집과 이삭의 집에도 수많은 종들이 있었으니 보디발 장군의 집에는 종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 많은 종들 중 요셉이 제일 사랑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요셉을 보는 보디발의 눈빛이 관심과 기대로 차 있습니다.
‘어쩌다 내가 복이 있어 요셉 같은 복 있는 종이 내 집에 왔을꼬?’
우리가 회사의 직원이 되었으면 윗사람에게 이렇게 사랑받아야 될 줄 믿습니다.
‘아이고! 우리 회사에 저 사람이 들어온 것이 복이구나. 우리 회사가 복이 있어 저런 사람이 우리 회사에 들어왔구나. 알고 보니 양곡교회 교인이었네.’ 이런 칭찬을 받으면 출근이 기쁩니다. 일하는 것이 기쁘고 미래가 불안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해고당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이 없습니다. 윗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승진을 하지 해고당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의 사랑을 받는 학생은 학교 가는 것이 즐겁고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겨울 방학 직전, 선생님들 월급날에 저희 담임선생님께서 도장을 갖고 오지 않으셨습니다. 도장을 찍어야 월급을 받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공부 시간에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용수야, 오늘 월급날인데 내가 오늘 도장을 안 갖고 왔다. 너, 우리 집에 가서 사모님한테 도장 받아 오너라.”
눈이 내리는 날, 왕복 40분을 걸어야 하는데도 제가 ‘제기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이 났습니다. 왜입니까? 선생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으면 힘이 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사랑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어찌 이렇게 내가 복이 많아 ○○○을 만났을꼬?’라고 칭찬 듣는 사람이 되어야지,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복이 없어서 저런 ○○○을 만났을꼬?’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담임목사님을 생각할 때 ‘어쩌다 내가 복이 많아 이렇게 좋은 목사님을 만났을까?’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사랑 받는 요셉 같은 목사, 여러분은 제게 요셉처럼 사랑 받는 교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요셉이 17세의 어린 나이에 팔려 왔으니 아직 젊습니다. 그런데도 죽죽 승진을 해서 그 가정의 총무가 되어 9절에 보면 그 집에서 요셉보다 높은 사람은 보디발 장군뿐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승진시켜 주어서 올라가면, 하만처럼 총리가 되면 죽습니다. 마지막이 비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면 요셉처럼 갈수록 좋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승진하시기 바랍니다. 회사에서도 과장, 부장, 이사, 전무, 사장으로 올라가고, 군에서도 대위, 대령, 대장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아이들의 성적도 올라가야 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올려주시니 올라갈수록 더 잘됩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동산도 잘되고 부동산도 잘됩니다.
억지로는 안 됩니다.
P도시의 명문 대학 출신 고등학교 선생님은 집사님인데도 교회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학교생활보다 주식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투자를 잘하여 집이 두 채가 되었는데 주식이 한꺼번에 몰락하는 바람에 집 두 채를 다 잃어버리고 조그만 방 하나에서 네 식구가 삽니다. 그때서야 선생님이 정신을 차리고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껏 헛살았다.”라고 합니다.
따라 합시다.
“헛살았다.”
억지로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시니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되어 보디발 집이 잘됩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 제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시험을 이깁니다.
시험을 이기지 못하면 망합니다.
요즘은 중령에서 대령으로 진급하기도 하늘의 별따기이니 장군 진급은 정말 힘듭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별이 된 한 장군은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가까이 지내는 한 거래처 사람이 장군으로 승진한 것을 축하한다며 술 한 잔을 대접하면서 골프 채 하나와 5백만 원을 봉투에 넣어주었습니다. 그것이 상부에 알려져 며칠 뒤 다시 대령으로 강등되고 제대했습니다. 돈 5백만 원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유혹을 이겨야 됩니다.
요셉은 유혹을 이겼습니다.
당시 장군의 부인은 대개 미인이었는데 경호 대장의 부인이니 얼마나 미인이었겠습니까? 그런 미인이 청년 요셉을 유혹합니다.
“요셉! 요셉! 사랑해요. 사랑해요.”
결혼하지 않은 청년은 여자를 그리워합니다. 군에 있을 때 보면 할머니만 지나가도 군인들이 “와! 여자가 가네.” 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절세미인이 집안 종들을 다 밖으로 보내고 “요셉! 사랑해. 사랑해.” 하면서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이 때 묻은 사랑, 병든 사랑, 하나님의 저주를 부르는 사랑인 줄을 압니다.
“사모님, 주인께서 이 집의 모든 것을 제게 맡기셔서 제 마음대로 하게 하셨습니다. 주인께서 드시는 음식 외의 모든 것은 제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사모님은 제게 금하셨습니다. 사모님은 장군님의 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죄를 짓겠습니까?”
만일 요셉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면 보디발 장군의 칼에 죽었을 것입니다. 비밀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놀아나면 눈이 뒤집힙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부인과 지냈다면 죽었을 텐데, 그 유혹을 이긴 것입니다. 보디발도 그 진실을 알았습니다. 보디발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자기 아내의 말에 속아주고 요셉을 감옥에 보내긴 했지만 여전히 요셉을 사랑하고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
여러분과 제 앞길에도 유혹이 있습니다. 그 유혹을 이겨야 됩니다. 그래야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음란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궁전인 몸으로 죄를 지으면 욥기 31장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복을 빼앗아 가시고 저주를 내리십니다.
음란하고도 잘된 집이 없습니다. 자식이 복을 받는 집이 없습니다. 음란하면 성(城)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은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길 가다가 소를 보면 앞을 조심하고, 나귀를 보면 뒤를 조심하고, 여자를 보면 사방팔방으로 조심하라.”라는 이태리 격언이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조심하고, 남자는 여자를 조심해야 됩니다.
요즘 남자들은 참 어리석게 삽니다.
남자들이 ‘남존여비는 여자 비위를 맞추려고 존재하는 것이 남자다.’라고 말한답니다. 그런데 이것도 옛날 말이 되었고, 지금은 ‘여자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이 남자의 존재 의미이다.’ 또 ‘여자의 비자금을 많이 대주려고 있는 것이 남자다.’라고 말한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자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고 가르치십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더 권세 있어 남편을 꾸중한다면 그 집은 잘못된 집입니다. 남편이 옷을 사 입든, 돈을 어떻게 쓰든 남편의 존엄함을 지켜 주어야 됩니다. 남편이 무엇을 잘못 사 왔어도 특별히 자식들 앞에서 “당신, 돈을 그 따위로 써?”라고 하면 남편이 구겨집니다. 단 둘이 있을 때 “여보, 오늘은 돈을 잘못 쓴 것 같아요.”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딸에게 “딸아, 네 남편이 네게 어떻게 대하든지 너는 남편을 존귀하게 대해라. 물을 달라 하면 ‘예, 그러지요.’ 하고 물을 갖다 바치고, 그저 남편을 존귀하게 대해야 좋은 아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이 에덴동산에서부터 여자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성경에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남편이 복종하는 세대가 되면 망합니다. 성경을 이루는 가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조심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존엄이 깨지면 안 됩니다. 명예가 깨지면 안 됩니다. 특별히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조심해서 우리의 존엄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천사라서 그런 유혹을 이겼습니까?
천사는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성생활이 없습니다. 요셉이 그런 천사입니까?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유혹을 이겼습니까?
그 답이 9절에 나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그 집에 보디발 장군의 부인과 그, 둘만 있고 그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식합니다.
누구를 의식합니까?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할렐루야!
유혹에 빠질 때 가족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생긴 한 부인이 수영장에 갔다가 대학을 갓 졸업한 한 청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핸섬하고 늘씬하고 너무 멋진데다 수영도 멋있게 했습니다. 자기 남편은 배가 나왔고 입에서는 냄새가 나고 개헤엄을 치는데, 청년은 그렇게 멋지니 청년에게 자꾸 눈이 갔습니다. 청년도 부인의 시선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또 마주쳤습니다. 그러다 함께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하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식사할 때는 짜증이 나는데 그 청년과 함께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결국 그 청년과 호텔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호텔에 가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엄마!”
그 순간 부인은 청년을 냅다 밀어붙이고 나갑니다. 그래서 그 위기에서 벗어나 가정을 지킨 것입니다.
만일 그때 부인이 그 청년과 잠을 잤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청년은 제비족이었습니다.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 부인이 가족을 생각하니 유혹을 이긴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생각하면 무엇을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생각하면 어떤 유혹도 이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금 덩어리가 있어도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 5백만 원의 월급을 받아도 2천만 원, 3천만 원어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회사에 복이 되게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달에 5백만 원을 받는다고 5백만 원만큼만 일하면 회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떻게 세금을 내고 어떻게 관리를 하겠습니까? 회사에서 5백만 원, 7백만 원을 받으면 2천만 원, 3천만 원의 이익이 되도록 회사를 위해 일해야 회사가 되고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의식해야, 하나님 앞에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종이라 월급도 없지만 열심히 일해서 살림을 불어나게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상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면, 하나님을 의식하면 정직하고 죄도 짓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뢰받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지난 여름 세계적인 감리교회에 가서 집회를 인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그 교회 중직자 회의실에는 아주 좋은 의자가 있는데 거기에는 아무도 앉지 않습니다. 그 옆 의자에 목사님께서 앉으시고 그 다음에 장로님들이 죽 앉으셔서 회의를 하십니다.


그 의자는 누구의 의자입니까?
하나님의 의자입니다. 지나치다 할 수도 있지만 ‘이 의자에 하나님께서 계신다.’ 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희의를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밥을 먹을 때도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고,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것을 의식할 때 빛을 뿌리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안에 빛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십니다.
어젯밤에 달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구름 위의 달, 그 주변의 별들이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 제가 한 10분 정도 바라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달은 발광체가 아니라 태양 빛을 받아서 빛을 쏩니다. 이처럼 우리도 발광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은혜의 빛을 쏜다고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와서 생각하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안에 빛 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계십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생명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니 우리 안에 빛이 있는 것입니다.  
벽촌의 할아버지가 서울의 아들 집에 가서 전깃불이 환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전구를 ‘탁’ 하고 켜니 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올 때 마침 아들 집 옆에 철물점이 있어서 전기선과 전구를 샀습니다. 집에 와서 그것을 빨랫줄에 연결하여 달아놓고 동네 사람들을 다 불렀습니다. 어둠살이 내렸을 때 “잘 봐요!” 하며 전구를 켰습니다. ‘탁’ 소리는 나는데 불이 오지 않았습니다. 발전소와 연결되어야 불이 오지, 빨랫줄에 연결해 놓은 전구에 어떻게 불이 오겠습니까?
세상에 수많은 우상 종교가 있습니다. 우상 종교는 소리는 나는데 생명이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것은 오직 예수, 교회뿐입니다.
그 성령께서 여러분과 제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빛이 있으니 우리가 요셉처럼 살면 빛이 나가는 것입니다. 램프 안에 불이 있으니 램프만 그을려 있지 않으면 밝은 빛이 나오는 것같이 우리가 죄만 없어도 우리에게서 빛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빛나는 사람이 되고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오늘의 요셉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빛 되신 주님을 온 세상에 전파해야 됩니다.  
출애굽기 9장 16절에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온 세상에 전하도록 우리를 세우셨다.”
구원은 예수뿐입니다.
1932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USS 아크론이라는 비행선을 묶으려고 2백 명이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선이 급상승을 하는 바람에 그것을 잡고 있던 200명이 비행선에 매달려 끌려 올라갔습니다. 5분, 10분 후 그들의 손에 힘이 빠져 다 떨어져 죽고, 한 사람만 살았습니다. 그 한 사람이 산 것은 그의 바로 옆에 1m가 조금 넘는 줄이 있어 그 줄을 허리끈에 묶어서 매달려 있었는데, 그 비행선이 1시간 45분 후에 어떻게 다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다 똑같습니다. 
우리나라 백화점계의 최고 세일즈맨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병원 영안실에서 시체를 씻고 닦고 옷을 입혀 관 속에 넣는 일을 했던 청년입니다. 잘생긴 사람, 못생긴 사람, 늙은 사람, 젊은 사람, 부요한 사람, 가난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을 다 씻기고 닦아 관속에 넣으며 그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따라 합시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을.”
그는 사람들이 잘 살려고 애쓰는 것을 볼 때마다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고! 결국 시체가 될 사람들……’
그래서 그저 웃으며 편하게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아무리 스트레스를 주어도 ‘곧 관에 들어갈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되지 않고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를 만나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백화점에서 경력 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습니다.
“시체만 만졌던 사람이 어떻게 물건을 팔려고 합니까?”
“나는 도를 닦은 사람이라 잘 팔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마지막에는 시체가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웃으며 잘 대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백화점에 채용되었는데 보름 만에 1억 원어치를 팔아 전국에서 1등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무리 까다로운 사람을 만나도 ‘당신도 시체가 될 사람…….’이라며 친절하게 대하니 그렇게 많이 팔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시체로 끝납니까?
아닙니다. 
영원한 심판이 있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 6백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는 2차 대전의 주범으로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그런 히틀러를 아주 미워하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꿈을 꾸었는데,  히틀러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야, 이놈! 너는 지옥이다. 나쁜 놈! 많은 사람을 죽이고…….”
“하나님, 억울합니다.”
“뭐가 억울해?”
“하나님, 제게는 아무도 지옥이 있다, 심판이 있다고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전해준 사람이 없어서 제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만일 지옥과 심판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깨니 꿈이었지만 그분은 그때부터 히틀러를 미워하지 않고 ‘왜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았나? 내가 왜 히틀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히틀러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미워만 했던고.’ 하며 자기 가슴을 쳤다고 합니다.
사람은 죽으면 영원한 지옥에 갑니다. 살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무조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아무리 고상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망합니다. 
이 길을, 이 소식을 우리가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 생활로, 입으로 어쨌든 알려야 합니다.
얼마 전에 부시 대통령께서 안동을 다녀가셨습니다. 저는 ‘혹시 우리 교회도 방문하시려나?’ 하고 기대를 했는데 오지 않으셨습니다.
부시 대통령께서 안동에서 학생들과 만남을 가졌을 때 한 학생이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사셨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답니다. 그때 부시 대통령이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나는 독서를 많이 했다. 텔레비전은 보지 않았다. 컴퓨터 게임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대통령께서 권해 주실 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슨 책을 읽어야 됩니까?”
“성경이 최고의 책이다. 성경을 읽어라.”
그 자리에 계셨던 한 국회의원께서 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기자들 앞에서 “성경이 최고의 책이다. 성경을 읽어라.”라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할렐루야!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해마다 우량 품종으로 상을 받는,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부가 마을 사람들에게 해마다 그 좋은 옥수수 종자를 공짜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마을 전체에 나눠 주니 그 양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해마다 그렇게 많은 양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이 극상품 옥수수 종자를 어찌 공짜로 주십니까?”
“다 나를 위한 겁니다. 바람이 불면 이 들판에 있는 옥수수 꽃가루가 우리 밭으로 올 것 아닙니까? 내 밭의 품종이 아무리 좋아도 다른 밭의 품종이 좋지 않으면 우리 것도 나빠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고 요셉처럼 빛을 뿌리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이웃 사람이 다 의인이 되어야 편안하고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온 세계 만민이 빛을 뿌리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빛 되게 살고, 빛 되신 하나님을 전해야 될 줄 믿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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