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지용수목사

[스크랩] 지용수목사/하나님의 계획 (창 39:10-18)

지용수목사/하나님의 계획 (창 39:10-18)


저는 어릴 때 가난해서 우리 마을의 제일 가는 부잣집 아들을 보고 ‘저 아이는 어찌 저리 복이 많은가?’ 하며 부러워했습니다.    
요셉은 태어나면서부터 복이 많았습니다. 대부호 야곱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 채색 옷을 입었고, 그가 지나가면 많은 종들이 일하다가도 일어서서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굉장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형들의 질투와 시기와 미움을 받아 졸지에 팔려가는 몸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팔려 갈 때 밧줄에 묶여 간 줄 알았는데, 오늘 새벽에 성경을 읽다가 발은 수갑에 채이고 목은 쇠사슬에 매여 끌려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편 105편 18절에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영어 성경에 보면 몸이 목(neck)으로 되어 있습니다.       
존귀한 왕자 같은 자가 하루아침에 그렇게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 노예 시장의 상품이 됩니다.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 그 집의 종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없고 한이 없습니다. 어느 공동체나 나라에 막 항의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에 불만과 한과 분노가 가득한데 요셉은 그토록 억울한 처지에 있어도 생기차고 눈에 빛이 납니다. 착실하게 삽니다. 무슨 일을 시켜도 최선을 다하니 일마다 잘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니 주인 보디발 장군이 감동을 받아 ‘야! 어찌 저런 종이 다 있나? 내가 복이 있어 저런 종을 만났구나.’ 하며 계속 승진시킵니다.
그래서 요셉이 그 많은 종들 가운데 제일 높은 사람이 됩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우러러 보시면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이 영광스러워질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명예롭게 영광스럽게 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늘의 별도 떨어지면 별똥이 됩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요 별같이 귀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빛을 뿌리며 살도록 도와주시지만, 마귀는 우리를 땅에 떨어뜨려 별똥이 되게 합니다.
요셉이 계속 잘 되니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잘 되는구나.”
요셉이 이렇게 빛을 뿌리니 사단이 배 아파합니다.
그러니 마귀가 요셉이 거절하기 힘든 사람, 보디발 장군의 부인을 써서 범죄하게 만듭니다.
“나와 동침하자. 나와 동침하자.”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며 단호하게 거절하여 시험을 이깁니다. 그런데도 본문 10절에 보면 보디발 장군의 부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날마다 유혹을 합니다. 나중에는 요셉이 자리를 피하니 더 집요하게 유혹을 합니다. 하루는 부인이 모든 종들을 바깥에 내보내고 요셉과 단 둘이만 있으면서 “요셉, 이제 이 집에 너와 나뿐이니 동침하자.”라고 합니다. 그래도 요셉이 거절하니 요셉의 옷을 잡아끌고 갑니다. 영화를 보면 부인이 요셉을 끌고 침실로 갑니다. 요셉이 뿌리치다 안 되니 옷을 버려두고 도망을 칩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초라하게 된 부인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질러 종들을 불러 놓고 요셉에 대해 모함을 합니다. 그리고는 요셉의 옷을 들고 있다 남편이 왕궁에서 퇴근해 오니 “이것 보세요.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 해서 내가 소리쳤더니 옷을 벗어 놓고 도망을 갔어요.”라고 합니다.
요셉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보디발 장군도 압니다. 하지만 자기 아내와 종들 앞에서 “요셉! 네가 정말 그랬냐?”라고 물었을 때 요셉이 “아닙니다.”라고 하면 자기 가정이 깨집니다. 영화를 보면 요셉이 침묵을 지킵니다. 보디발 장군은 요셉을 독방에 끌고 가서 “아무도 없으니 말해 보아라. 너, 정말 그렇게 했나?”라고 묻습니다. 그때 요셉이 “주인님, 제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께도 잘못한 일은 없습니다.”라고만 대답하지, 부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보디발 장군이 고민을 합니다. 요셉이 의로운 것을 알지만 그냥 두면 집안이 안 됩니다. 보디발 장군은 할 수 없이 요셉을 감옥에 넣지만 노예들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에 넣습니다. 그리고 옥사장에게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요셉이 들어간 감옥에는 행정, 정치, 교육, 무역, 사업 등 각 분야를 맡았던 사람들이 왕의 진노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요셉에게는 다 선생님들입니다. 요셉이 옥에서 공부하면서도 눈이 빛나고 생기찹니다. 옥사장이 요셉을 보니 보통 청년이 아닙니다. 일을 맡겨 보니 얼마나 신실하고 잘하는지 옥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깁니다. 요셉이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지만 그 감옥이 그의 대학이 된 줄 믿습니다. 그가 그 감옥대학을 졸업하고 나이 30에 총리가 됩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특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하늘에서 큰 종소리가 울리듯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은 마귀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마귀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귀는 우리를 별똥으로 만들려고 집요하게, 집요하게 공격하고 유혹합니다.
보디발 장군의 부인이 한두 번 유혹해서 요셉이 넘어가지 않으니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날마다, 날마다 요셉을 쓰러뜨리려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과 제가 빛나는, 명예로운 별 같은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빛을 발할 때 마귀는 얼마나 배 아파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를 별똥이 되게 하려고 명예에 약한 사람은 명예로, 돈에 약한 사람은 돈으로, 이성에 약한 사람은 이성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자가 두루 다니며 삼킬 먹이를 찾듯이, 마귀는 이 교회, 저 교회, 이 교인, 저 교인에게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7절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 가는 길을 모두 가기 전에 네 손에 든 검을 꽂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깨어 있어라.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강건하기를 축원합니다.
내 몸에 바이러스나 병균이 들어와도 내가 건강하면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하루에 3개, 4개, 5개, 때로는 6개의 암세포가 생기지만 우리가 강하면 암세포를 꺾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하면 마귀가 공격해도 이기는 것입니다. 기도로, 말씀으로, 예배로 늘 강건하기를 축원합니다.
이번에도 저는 미국에 있는 동안 다른 곳에는 가지 않고 교회와 집에만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그렇게 있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음행, 음란의 죄는 사람을 가장 초라하게 만듭니다.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욥기 31:1-4)
‘Dose he not count my every step?(그가 내 모든 걸음을 세지 않느냐?)’
따라 합시다.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오고, 악한 자에게는 저주가 온다.”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언 7:24-27)
‘그리 내려가면 죽는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나비가 불에 타 죽듯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음행으로 명예가 죽고 삶이 죽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음행의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피하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피하는 것이다. 도망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 『음행을 피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음행을 피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도 음란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음란을 버리라는 말은 피하라(avoid)는 뜻입니다. 
우리가 고난에는 인내해야 되지만 음행의 유혹을 받을 때는 피해야 됩니다. 들릴라가 계속해서 삼손에게 접근할 때 삼손이 피하고 도망가야 되는데, 도망가지 않아서 눈이 뽑히고 초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험이 있는 자리에는 가지 않아야 됩니다. 친구를 따라 갔어도 떠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5년에 한 번씩은 전하려 합니다. 34살의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의사 친구들과 가까운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술집 색시에게 코가 꿰었습니다. 그의 할머니도 의사이고 믿음이 참 좋은 집안의 아들인데 술집 색시에게 빠지니 외박을 하고 3년간 부인을 괴롭혔습니다. 나중에는 술집 색시가 집으로 쳐들어 와서 부인에게 소리쳤습니다.
“너, 치마만 입으면 여자냐? 남편의 사랑도 못 받는 여자가 무슨 여자냐? 네 남편은 너 같은 것은 상관도 안 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좋아해. 너는 이 집에서 나가! 내가 이 집을 지키겠다.”
아이들은 울고 싸울 줄 모르는 부인은 당하기만 했습니다. 술집 색시는 집안을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 놓고 의사에게 부인과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체면이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으니 술집 색시와 결혼하기는 어려워 거절했습니다. 앙심을 품은 술집 색시가 그를 곤히 잠들게 한 다음 연탄불을 피워 머리맡에 두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 34살 먹은 의사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 날 관을 영구차에 싣는 시간에 그 어머니 권사님께서 제 왼손을 잡고 풀썩 주저앉으며 하신 말씀이 아직도 제 귀에 메아리칩니다. 
“목사님! 오늘이 내 아들 생일입니다. 생일날, 장례식 합니다.”
여러분, 자녀 생일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의 생일날이 장례식 날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마귀는 사람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의 생일날 그의 장례식을 하게 만든 것이 마귀인 줄로 믿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려면 그런 자리를 피하고 만일 그런 자리에 갔다면 도망을 쳐야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무서운 깡패였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다 만난 여 선교사님이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는 전도지를 받아 팽하고 코를 풀었습니다. 김익두가 얼마나 무서운 깡패인지를 모르는 선교사님이 “청년! 전도지로 코 풀면 코가 썩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코가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에 자리에 누우니 코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너무 두려워 그 선교사님을 찾아가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새사람이 된 그는 자기를 아는 사람들에게 ‘김익두는 죽었다.’라는 부고장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전도를 했는지 모릅니다. 
하루는 “하나님, 오늘은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가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을 전도하겠습니다.” 하고 늦도록 기도하고 집으로 가다가 뽕밭에서 뽕을 따고 있는 한 아가씨를 보았습니다.
‘어떡하나? 남녀 7세 부동석인데 저 아가씨에게 전도해야 되나? 아니지.’라며 그냥 집으로 가는데 ‘그래도 하나님과 약속했으니 전도를 해야지.’ 하는 감동이 왔습니다.
아가씨는 이상한 청년이 자기를 보고 왔다 갔다 하니 수상해서 뽕 따던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김익두 청년이 “아가씨! 아가씨!” 하며 따라갔습니다. 아가씨는 더 놀라 “사람 살려!” 하며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오빠! 오빠! 어떤 사람이 날 잡으러 와요.”
그 아가씨의 오빠 세 명은 유명한 씨름 선수들이었습니다. 누가 여동생을 잡으러 왔나 하고 나와 보니 김익두가 서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들 여동생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오. 오늘 새벽기도를 할 때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하기로 하나님과 약속했는데 당신들 여동생을 제일 먼저 만난 거요. 그래서 전도하려고 따라온 거요.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으니 예수를 믿으시오.”
그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그 집이 교회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하루는 김익두 씨가 평양 시가지에서 옛 애인을 만났습니다. 술집 색시인 애인에게 붙들려 색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서방님, 왜 그동안 들르지 않으셨어요?”
“나, 이제 새사람이 되었어. 예수 믿어.”
“예수 믿어도 그렇지요. 내 서방님인데 그렇게 오지 않으시면 어떡해요?”
그의 마음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아하! 이러다가 내가 죽겠구나.’라고 깨닫고 “하나님! 김익두 죽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색시가 졸도했습니다. 그래서 김익두 청년이 도망을 쳐서 나중에 목사님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날 거기에서 그 유혹에 넘어갔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쓰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피하자. 도망가자.”
음란의 죄가 있는 곳에서는 요셉처럼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을 쳐야 이 세상에서 우리가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큰 종소리가 울리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음성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자리에서든지 생기 차게, 희망차게, 빛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뚝이는 어디에 던져도 오뚝, 오뚝 섭니다. 아무리 멀리 던지고, 높이 던지고, 험한 땅에 던져도 반드시 다시 오뚝 섭니다.
요셉은 오뚝이 같습니다. 종으로 팔려도, 감옥에 들어가도, 더러운 누명을 쓰고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어려움을 당해도 오뚝 서서 생기 차게, 빛나게, 희망차게 삽니다. 
잠언 15장 15절에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는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잘될 때는 물론 안 될 때도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루 밤에 천만 원을 주어야 하는 호텔에서도 잘 수 있고 길가에서도 잘 수 있는 사람입니다. 존귀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아는 굉장한 사람입니다.
오늘의 여러분과 저도 요셉을 본받기 바랍니다. 살아 있으면 감사하고, 생기 차게 살아야 됩니다.
파스칼이 말했습니다.
“눈을 뜬 사람에게는 밤이 길 뿐이다. 단잠을 자는 사람은 긴 밤도 짧다. 지친 사람은 10리도 멀고, 다리에 힘이 넘치는 사람은 100리도 짧다.”
여러분, 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생기 차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힘 있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의 특징인 줄로 믿습니다. 더더구나 우리는 귀한 하나님의 아들, 성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디에 있어도 요셉 이상으로 살아야 합니다. 재산을 잃고 집을 잃고 가족을 잃어도 오뚝이처럼 살아야 합니다.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힘 있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요셉입니다. 부잣집의 아들이 종이 되고, 감옥에 가도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힘있게 사는 것입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세상을 떠난 이후 가장 인기 있는 성악가는 안드레아 보첼리입니다. 그의 연주를 제가 CD를 통해 들어보았는데, 얼마나 부드럽고 감미로운지 마음이 녹아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1958년도에 이태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 어머니가 음악을 좋아해서 여섯 살 때부터 그에게 피아노와 색소폰, 플롯과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축구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12세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았습니다. 며칠 아프다 나을 줄 알았는데 실명했습니다. 그의 부모들은 통곡을 했지만 그는 “나는 내 눈을 잃은 것 때문에 어둡게 살지 않는다. 한 시간만 울고 나서 밝게 살리라.”라며 한 시간을 울고 나서 의욕 차게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시각 장애자인 그가 법학박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었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자기가 원하던 성악가가 되기 위해 코렐리라는 유명한 성악가를 만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의 노래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그는 라보엠 오페라를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가 주인공 역을 맡게 된 것입니다. 그는 모든 악보를 다 암기하고, 몇 발자국 위치에 계단이 있고 여주인공이 있는지, 어디에서 사랑을 고백해야 하는지를 다 암기한 후 무대에 섰습니다. 오페라를 마치고 나니 모든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까다로운 음악 평론가들이 ‘안드레아 보첼리의 연주는 완벽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시각 장애자가 되었지만 오히려 더 노력해서 세계적인 별이 된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하려고 하면 하게 되고, 하면 된다. 해보자.”
시각 장애자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따라 합시다.  
“못할 게 뭐냐?”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아멘’ 하십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거기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테바니 바스토스, 미국의 세계적인 발레리나인 그는 1995년도에 자동차 사고로 발목이 잘렸습니다. 발레리나는 발목이 잘리면 끝입니다. 발목이 잘려나간 자기 다리를 보며 엉엉 우는 그에게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딸아, 너 왜 울고만 있느냐? 의족을 하고 해 봐라. 못할 게 무어냐?”
의족을 하고 발레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의족을 하고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마침내 링컨 센터에서 발레 공연을 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격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아무리 어려운 장애물이 있어도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오뚝이처럼 설 수 있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 거기에서 최선을 다하면 커나가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술에 찌들어 있어도, 아들이 아무리 방탕해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 남편이 있고 그 아들이 있으니 기뻐하고, 사람은 변할 수 있으니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한 부인은 남편이 계속 술로 사니 “당신은 망나니 중 망나니! 주정뱅이 중 주정뱅이! 인간쓰레기! 서푼어치도 안 되는 인간!” 하며 남편을 늘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술을 먹고 오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험회사에서 보험금 5만 불이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5만 불은 큰돈입니다.
“내 남편이 서푼어치밖에 안 되는 줄 알았는데, 5만 불이나 되었구나. 이렇게 비싼 남편인 줄 알았다면 잔소리를 덜 했을 건데…….”
그러나 5만 불이 있는 것이 더 좋습니까? 남편이 있는 것이 더 좋습니까?
서울의 한 부인은 이혼한 지 8년이 되었지만 고고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그 집에 심방을 가셔서 소원이 있으면 말해 보라고 하니 눈물을 쏟으며 “8년 전에 이혼한 남편과 재결합하는 거예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기도합시다. 저도 기도할 테니 집사님도 기도하세요.”라고 했답니다. 2년 후 남편이 돌아와 두 사람이 함께 잘 살고 있답니다.
남편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좋은 점만 보면 기쁩니다.
지금 제 손자 준이가 제 연구실에서 놀고 있습니다. 여기 강단까지 저를 따라 올라왔다가 쫓겨났는데 제게 설교를 빨리 마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무조건 예쁩니다. 그 아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예쁩니다. 그러니 잔소리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하는 일은 이것은 좋고 저것은 좋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준이는 무조건 좋고, 아내는 그렇지 않은가?’
그러다 회개했습니다. 이제는 아내도 무조건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감옥에서 뭐가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무조건 좋게 생각하고 기뻐하며 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황금 종소리가 다시 울리며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요셉의 일생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짝이 되는 말씀이 시편 105편에 있습니다.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시편 105:17)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편 105:19)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시편 105:20)
요셉이 종으로 팔려간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먼저 보내신 것이고, 그 말씀이 응할 때까지 훈련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국을 다스리는 왕이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내어 자유롭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깃발을 날립니다. 야곱의 가족 70명을 오게 해서 그들이 대 민족이 됩니다. 요셉이 팔리고, 노예 시장에서 뒹굴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것, 그것이 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코스였습니다.
오늘까지 제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코스였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기뻐하다가 깜짝 놀랄 일을 당하다가, 또 억울한 공격을 받고 서러워서 3시간을 울기도 한 모든 일들이 지금 생각하니 다 하나님의 코스였습니다.
요셉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시고 여러분을 인도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힘이 얼마나 솟구쳤는지 모릅니다. 요셉의 일생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것처럼 여러분과 저의 일생이 하나님 손에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양곡교회 대 성전을 지금 아름답게 짓고 있는데 설계대로 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설계하신 것이 말씀입니다.  
노아는 농사짓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설계대로 배를 만드니 오늘의 조선공학자들도 깜짝 놀라며 혀를 내두르는 작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여러분과 제가 아무것도 몰라도 말씀에 순종해 나가면 우리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는 그냥 갑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땅에서 크게 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제가 1992,3년도 미국에 있을 때 교회를 청소하는 교인이 없어 제가 청소를 다 했습니다. 주차장과 교회 앞길뿐 아니라 이웃집 앞까지 다 했습니다. 우리 교회 때문에 그 동네가 다 밝아지기를 원해서였습니다. 매일 그렇게 청소했더니 나중에는 이웃 사람들이 도와주고, 교우들이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교회 청소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한 장로님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아하! 목사님께서 친히 청소하시는구나.’
제 설교가 1990년대부터 미국 TV에 방영되었는데, 그 장로님이 TV에서 저를 보았답니다. TV에 나오면 굉장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고 있었는데 제가 매일 청소를 하니 “목사님, 이제 교회 청소는 제가 하지요.”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장로님이 새벽 2시 40분이 되면 일어나셔서 매일 그 큰 교회 청소를 다 하십니다. 이번에 제가 미국에 갔을 때 값진 과일을 아주 많이 사 갖고 오셔서 “목사님, 은혜를 어떻게 갚습니까?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을 겁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목사님께서 청소하시는 것을 보고 제가 청소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제가 이렇게 건강하고, 다른 사람들은 이 나이에 일자리를 잃고 노는데 저는 계속 일도 하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 장로님은 교회 청소를 하다 복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살다보면 좋은 일, 빛나는 일을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야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코이라는 비단잉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어항에서 기르면 4cm, 5cm 정도로 자랍니다. 그러나 연못에 풀어 놓으면 45cm까지 자라고, 큰 강에 풀어 놓으면 90cm, 1m까지도 자랍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큰 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살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에 순종하면 우리가 낮아져도 높아지고, 안 되어도 되는 것입니다.
5년 후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양곡교회를 얼마나 빛나게 하실지 우리는 모릅니다. 5년 후, 10년 후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높여 주실지를 우리는 기대해야 됩니다.   
신명기 28장 1절 말씀대로 우리가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 순종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