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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용수목사/내가 네게 축복하리라 (창 27:1-4, 24-29)

지용수목사/내가 네게 축복하리라 (창 27:1-4, 24-29)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한 청년이 결혼을 한 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아내도 착한데 서로 다투고 미워하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나와 네 아내 중에서 택해라. 네가 네 아내를 택하면 나는 죽겠다.”
그러자 아내도 “당신, 어머니를 택하든지 나를 택하든지 어서 택하세요. 어머니를 택하면 나는 이 집을 나가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답변을 못하고 있으니 어머니가 “만일 네 처와 내가 물에 빠져 죽게 되면 누구부터 구하겠느냐? 네가 한 사람밖에 살리지 못한다면 누구를 살리겠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캄캄한 어려움에 있던 아들에게 ‘번쩍’ 하고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를 살려야지요. 어머니를 구한 다음에 바다로 들어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죽겠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도 울고 아내도 울었답니다.
답이 없는 곳에서도 지혜가 번쩍이면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사람이 지혜가 있어도 답이 나오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하나님께는 답이 없는 문제가 없습니다. 길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답이십니다. 하나님이 양식이십니다. 양식이 없을 때 만나를 주시고, 물이 없을 때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시고, 밀가루가 없을 때 밀가루 통에서 밀가루가 계속 솟아나게 하시고, 길이 없을 때 홍해를 갈라 길을 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친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마다 찾아오는 백성들에게 답을 주십니다. 길 되신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를 드리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승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도 우리의 양식이 되고 힘이 되고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되고 답이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사람이고 대부호인 아브라함이 나이 100세에 얻은 귀한 아들 이삭은 어려서부터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왕자처럼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가 젖을 뗄 때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청년이 되었을 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리브가와 결혼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가 양을 치면 양이 잘되고 소를 치면 소가 잘되었습니다. 우물을 파면 물이 펑펑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종들도 잘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나라의 모든 백성이 이삭을 부러워하다 못해 질투했습니다. 심지어 왕까지 질투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을 누리는 이삭도 오늘 본문을 보면 나이가 들고 늙습니다.
이삭이 늙으니 옆에 있는 아들이 큰아들인지 작은아들인지도 모를 정도로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니 ‘아, 내가 죽을 때가 되었구나. 내가 죽기 전에 내 장남 에서를 축복해 주어야겠구나.’라고 생각해 에서를 부릅니다.
“에서야, 에서야! 어디 있느냐?”
“예, 아버님. 여기 있습니다.”
“아들아, 내가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그러니 네 활과 전통을 가지고 들에 나가 짐승을 잡아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그 별미를 먹고 여호와 앞에서 마음껏 너를 축복하리라.”
에서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최근에 결혼 일로 아버지 어머니의 미움을 사서 이러다가 장자의 축복을 잃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그 축복에 흔들림이 없으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는 달려 나가 사냥을 했습니다.
한편 리브가는 이삭과 에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에서는 교만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데, 그런 에서가 복을 받으면 안 되는데, 복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야곱이 받아야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불렀습니다.
“야곱, 야곱!”
“어머니, 부르셨습니까?”
“야곱아, 네 아버지가 네 형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오늘 네 형이 사냥해 온 고기로 만든 별미를 드신 후에 네 형을 마음껏 축복하시겠단다. 네 형이 복을 받으면 안 된다. 복은 네가 받아야 된다. 그러니 어서 가서 좋은 새끼 염소 두 마리를 끌고 오너라.” 본문에는 한 마리이지만 원어에는 두 마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별미를 만들어 네게 줄 테니 아버님께 대접하고 마음껏 복을 받아라.”
“어머니, 아버지가 저를 만져 보면 어떻게 해요? 형은 털이 많고 저는 매끈매끈한데 들키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축복 대신 저주를 받을 건데요.”
“만일 네가 저주를 받으면 네 대신 내가 저주를 받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야곱이 달려가서 살지고 토실토실하고 기름 진 새끼 염소 두 마리를 끌고 왔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급히 요리를 하여 떡과 향기로운 포도주를 함께 가지고 와서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누구냐?”
“예,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네가 에서라고? 어찌 그리 짐승을 빨리 잡았니?”
“아버지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빨리 잡았습니다.”
“너, 가까이 와 봐라. 네가 에서인지 내가 확인해 봐야 되겠다.”
야곱이 덜덜 떨며 가까이 가니 이삭이 야곱을 만지며 말했습니다.
“에서가 맞구나. 그런데 이상하다. 손은 에서의 손인데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로구나. 네가 참으로 내 아들 에서가 맞느냐?”
"예, 아버님. 맞습니다.”
야곱이 이미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을 꾸며 놓아서 이삭이 속은 것입니다.
“그래? 그러면 별미를 갖고 오너라.”
아버지 이삭이 별미와 떡을 먹고 향기로운 포도주를 마신 다음 “아들아, 네게 입 맞추어라.”라고 했습니다.
가족은 서로 입을 맞추며 부비는 살틀을 해야 됩니다. 
입을 맞추는 야곱에게서, 야곱이 에서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이삭이 에서의 향취를 맡고는 이렇게 축복합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이슬짐으로 축복하기를 원하노라. 땅의 기름짐으로 축복하기를 원하노라.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기를 바라노라.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 받기를 원하노라.”
야곱이 복을 받아 그 때부터 축복의 무지개가 야곱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구름기둥, 불기둥이 야곱에게 있습니다. 야곱의 집에서 유명한 다윗 왕이 나오고, 야곱의 집에서 예수님이 나옵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지 못한 에서는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리고 영원히 축복 밖으로 밀려나는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님의 음성과 교훈을 많이 듣지만 먼저 듣게 되는 음성은 우리도 이삭처럼 늙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우리도 이삭처럼 늙어가고 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에 얻은 귀염둥이였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그 아들을 낳고 부모가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가 벌써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때가 된 것입니다.
시편 90편 9절에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we finish our years with a moan.)』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식간에 다하였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끝난다는 말입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도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안개도 자욱할 때는 그 힘이 대단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지도 착륙하지도 못합니다. 예전에 제가 서울의 한 교회에서 금요일 새벽 성회를 마치자마자 우리 교회 예수제자구역장회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가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 비행기가 부산까지 와서 맴돌다 다시 서울로 갔습니다. 김해 공항에 안개가 너무 많아 착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안개가 자욱할 때는 그 힘이 이렇게 대단합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안개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습니다. 
영웅호걸은 대단해 보입니다. 나폴레옹, 시저, 박정희 대통령, 다 대단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어! 그 사람, 안 보이네.”
“아, 그 사람, 죽은 것 몰라?” 이것이 인생입니다.
‘세월은 다섯 마리 말이 끌고 가는 마차 같다.’ 라고 합니다. 한 마리 말이 끌어도 빠른데 다섯 마리가 끄니 얼마나 빠르겠습니까? 
저를 보세요. 저는 지금까지 제가 나이 들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청년으로 살았습니다. 조금 전에도 팔굽혀펴기를 수십 개나 하고 나왔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또 40개를 더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도 팔굽혀펴기를 190개 하게 됩니다. 이렇게 저는 힘이 펄펄 솟아납니다. 그런데 제 아들딸이 일찍 결혼한 바람에 손자들이 생겨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손자 준이는 그 어린나이에도 통찰력과 양심이 있어 저를 할아버지라 하지 않고 ‘할아버지 아빠’라고 부릅니다. 급히 부를 때도 ‘아빠’라고 하지, ‘할아버지’라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낍니다. 우리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잘 하다 신랑을 따라 다른 지방으로 간 한 자매가 얼마 전에 아이를 데리고 제게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아이 엄마가 “인사 드려라. 이분이 누구니?”라고 하자 아이가 “할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아저씨라 하지 않고 할아버지라 했습니다.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철부지라 한들 어찌 저를 보고 할아버지라 부른단 말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제가 청년인 줄 알지만 할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남은 날을 계수해야 됩니다.
제가 여러분을 평생 섬길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때가 되면 은퇴합니다. 그 때가 순식간입니다. 여러분에게 열과 성을 다해 말씀의 요리를 대접하고 싶은 것이 제 마음지만 때가 되면 여러분에게 큰절을 드리고 떠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 『세월을 아끼라(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모든 시간을 최상의 기회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내일 모레 죽는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겠습니까? 내일 모레 죽는다면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겠습니까? 한 시간 한 시간, 하루하루를 귀하고 값지게, 후회 없이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피어선이라는 사람이 세계적으로 성공한 20세기의 인물들을 조사하여 연구하고 분석했습니다. 하루는 그의 제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성공적으로 사신 분들을 연구하셨는데 결론이 무엇이었습니까? 인생에 승리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인생이 판가름 난다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6시에 퇴근해서 그냥 시간을 보내면 평범한 사람이 되지만, 6시부터 10시까지 전문 분야를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10년 내에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네.”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을 다니지 못한 설움이 커 회사에 다니면서 야간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래도 명문대학 출신들 틈에서 아픔을 느꼈습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나면 피곤했지만 집사님은 퇴근하면 바로 학원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10년 동안 그렇게 공부한 집사님이 그 회사에서 명문대 출신 120명을 통솔하는 팀장이 되고, 이사가 되었습니다. 이 회사 저 회사에서 서로 많은 연봉을 주겠다며 스카우트해 가려는, 그 회사에서는 빼앗길까 봐 걱정하는 그런 인재가 된 것입니다.
하루 동안 우리 모두에게 8만 6천 400초의 시간이 있습니다. 돈은 쓰지 않으면 모이고 쌓이지만, 시간은 쓰지 않아도 없어집니다. 
따라 합시다.
“시간은 저축할 수 없다.”
시간은 저축할 수 없습니다. 쓰지 않아도 없어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TV를 보는데 시간을 씁니까? 어떻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냅니까? 한 살이라도 나이가 적을 때 더 힘쓰고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만화가 보고 싶고 영화가 보고 싶고 게임이 하고 싶어도 그것을 극복하고 공부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학생을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잠언 10장 4절에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듣게 되는 음성은 아무리 시간을 아끼며 써도 영원히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르시면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손 털고 가야 됩니다. 그 때는 쌓아둔 재산, 명예, …… 아무 필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 하나만 필요합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천국에 가고, 믿음이 없으면 영원히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회사 경영보다, 자식을 기르는 것보다, 건강관리보다, 부부생활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 관리입니다.
믿음 관리의 최고 지름길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주일 낮 예배에, 주일 밤 예배에, 삼일 밤 예배에, 새벽 예배에, 구역 예배에 나오면 은혜의 비를 맞아 믿음 생활을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주의 은혜 감사해 나는 무엇 드리리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향기 받으소서」 할렐루야!
아무리 나이가 들고 믿음 생활의 역사가 깊어도 은혜를 받아야 사는데 예배 시간에 은혜가 내립니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하면 믿음이 커나가게 됩니다. 목숨을 걸고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아 믿음 관리를 잘 해서 마지막 날 후회하지 않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대학에서 수석하고, 의사고시에 수석하고, 아무리 잘되어도 믿음이 없으면 마지막 날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예수님의 비밀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다 함께 영생을 얻도록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 전하는 일에 쉼이 없는 우리 양곡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듣게 되는 음성은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유산은 축복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삭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에서에게는 양과 소를 2,000마리씩, 야곱에게는 1,000마리씩, 또 무엇은 얼마씩 이렇게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자식에게 아무리 큰 재산을 나누어 주어도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면 아무 소용없고,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아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면 잘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에서야, 내가 죽기 전에 내 재산을 정리해서 나누어 주겠다.”라고 하지 않고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를 마음껏 축복하리라.”라고 한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축복해야 합니다.
록펠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록펠러에게 남긴 말입니다.
“아들아, 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주일 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오른쪽 호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호주머니가 되게 해라. 어떤 이유로도 원수를 맺지 말아라. 매일 아침 하나님 앞에서 하루의 목표를 세우고 부탁 기도를 드려라. 하루 일을 끝낸 다음에는 하나님께 소상히 기도로 보고 드려라. 매일 아침에는 신문보다 성경을 먼저 읽어라. 선한 일을 할 기회가 있으면 작게 하지 말고 크게 해라. 예배 시간에는 가장 앞자리에 앉아라.” 할렐루야!
이렇게 어머니가 축복 받는 길을 열어주어서 록펠러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금요일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작은 냇가에서 짚단만한 큰 고기가 놀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잡으려고 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반두(그물의 일종)가 있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고기이지만 손으로 잡으려니 되지 않았습니다. 반두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뻔히 보고도 남의 고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축복이 계속해서 가득히 흐르고 있어도 그 축복을 뜰 반두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그 반두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계속해서 손들고 축복합니다. 
“하나님, 우리 성이가 위대한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 기도가 약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하도 욕을 많이 먹으니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우리 경이가 세계 최고의 성악가가 되어서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세요. 우리 성찬이가 어서 PD 일을 끝내고 위대한 목사가 되게 해 주세요.”
제가 매일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이들을 만나도 축복 기도를 해 준 다음에 보냅니다.
여러분,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도 그냥 보내지 말고 민수기 6장 24절에서 26절 말씀에 아이의 이름을 넣어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에게 복을 주시고 ○○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에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매일 한 번씩 축복해 주면 그것이 아이에게 입력되어 아이가 어려운 일이나 위험한 일을 당해도 “나는 하나님께 복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시는데…….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될 사람인데…….” 하며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따라 합시다.
“입력되면 나온다.”
입력되면 나옵니다.
저는 거울을 보면 가끔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디로 갔느냐’ 하는 노래가 나옵니다. 아직도 저는 제가 17세 소년인 줄 아는데 이 모습이 웬일입니까? 그런데 제가 그 노래를 여러 번 들은 것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딱 한 번 들었습니다. 비행기 안의 채널을 돌리다 보니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디로 갔느냐’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느낌이 와닿아 계속 들어보았더니 2절에서는 ‘내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했습니다. 청춘을 누가 어떻게 돌려주겠습니까? 그런데 그 후로 거울을 볼 때 그 노래가 제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입력되니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십 수 년 전, 강원도 속초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밤 집회 후 숙소에 들어가 새벽 설교 준비를 마치고 12시쯤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아래층에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쿵자작작 쿵자작, 쿵자작작 쿵자작’ 하는 소리와 함께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한 번 가면 다시 못 올……’라는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을 자장가처럼 듣고 잤습니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주님!” 하는데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노래가 나왔습니다.
입력되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에게 “○○야, 너는 잘 된다. ○○야,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내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는 말씀으로 축복해 주면 아이가 이 말씀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축복의 말씀으로 매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 축복의 말씀을 입력시키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도 복을 받아야 됩니다.
이삭은 자녀에게만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하늘의 이슬짐과 땅의 기름짐, 풍성한 포도주의 복을 받았습니다. 열왕이 굴복하고 만민이 섬기는 복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런 복을 받읍시다. 그러려면 예배를 드리고, 말씀에 순종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간구하는 것입니다.
야곱도 복 받기 위해 얼마나 간구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형을 속여서라도 복을 받아야 한다.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내가 축복을 받아야 한다.’라며 복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환도 뼈를 쳐서 불구자를 만들어도 그는 매달려서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하지 않으시면 놓지 못합니다.”라며 하나님의 허리를 놓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매달리니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해 주십니다.
복은 구하는 자가 받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7-11)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과 제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야보고서 4: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2-3)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성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교인들이 몇 백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교회가 바다같이 넓어 보이고 ‘언제 이 자리를 다 채우나?’ 하고 걱정스러웠으나 10만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했더니 이 자리가 이렇게 꽉 차서 또 다시 새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 구할 때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간구하니 새 성전도 불원간에 차게 될 줄로 믿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의 자녀가 잘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우리 대학에서 1등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공부하는 학생을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 같아도 되는 것입니다.
충남 해안가의 한 성읍에 세 아들과 함께 월세방에서 사는 가난한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남편은 도박에 미쳐서 집을 나간 지 3년이나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이 마을 저 마을, 이 거리 저 거리를 다니며 “갈치 사세요. 고등어 사세요.”하고 생선을 팔았지만, 그 당시에는 밥만 먹고 살기에도 어려운 형편이라 생선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삶이 얼마나 힘들고 서럽던지 새벽마다 울었습니다. 하루는 장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돈을 정리하는데 100원짜리 동전인 줄 알고 받은 돈이 사용하지도 않는 구닥다리 동전이었습니다.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어디 속일 데가 없어서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을 속이노?’
다음 날 새벽, 그것을 갖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 어디 속일 데 없어서 나 같은 사람을, 이 가난한 사람을 속입니까?” 하며 울었습니다. 그 당시 100원은 꽤 큰돈이었습니다. 땅 한 평에 300원, 400원 할 때입니다.
집사님이 그렇게 울며 새벽기도를 하고 나서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것은 제가 속아서 받은 돈인데 목사님께서 가지세요.”
“저, 그것 필요 없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동전 수집 같은 것 안 하세요?”
“예, 안 합니다.”
“그래도 가지세요. 저는 이것 정말 필요 없습니다.”
목사님이 그것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나중에 그것을 버리려다가 집사님이 생각나 차마 버리지 못하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안국동 골동품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가게에 ‘옛날 돈 삽니다.’라는 간판이 보였습니다. 집사님이 준 그 동전이 생각나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옛날 돈 삽니까?”
“예.”
“이것도 삽니까?”
점잖은 체면에 부끄러웠지만 그 동전을 내놓았습니다. 주인이 그것을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예, 사지요. 얼마 드릴까요?”
목사님은 ‘100’이라고 적혀 있는 동전이니 200원은 받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한 200…….”이라고 하니 주인이 “예, 200만 원을 드리지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0만 원을 받아 가지고 와서 그 집사님에게 주었습니다. 집사님이 기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  100만 원은 헌금하고 100만 원으로는 집과 가게를 샀는데 가게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나중에 큰 슈퍼마켓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집 나간 남편이 어떻게 알았는지 집으로 돌아와 교회를 잘 다니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안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기름 값이 올라가고 경제가 어려우니 우리는 어려울 거야. 우리 회사는 어려울 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적의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다 천국에 갑니다. 천국 시민권은 이미 다 받았습니다. 천국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여 크게 일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어제 새벽기도를 마치고 내려가니 어떤 분이 좀 뵙자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부산의 어느 교회 교인인데 우리 양곡교회 성전 건축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면서 헌금 봉투를 주었습니다.
“아주 약소합니다. 아주 약소하지만 받아 주세요.”
그래서 제가 그것을 받으며 “감사합니다. 주일에 강단에 올리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아닙니다. 제가 다른 교회 교인이니 강단에 올리지 마시고 바로 재정부에 입금시켜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서재에서 봉투를 열어 보았더니, 1,000만이나 되었습니다. 약소하다고 말씀하셔서 저는 십만 원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큰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천 배로 잘 되게 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만일 그분이 셋방에 사는 가난한 분이라면 자신이 섬기는 교회도 아닌 우리 교회에 1,000만 원을 헌금할 수 있겠습니까? 또 1,000만 원을 약소하다고 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잘 사는 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도 잘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되고 부자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록펠러처럼 잘 되어 교회도 짓고 선교 사업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 일을 하기 위해 우리는 잘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민족이 잘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멋지게 쓰는 우리 민족과 여러분,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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