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박봉수목사

위기 극복의 비결/느 4:15-23

위기 극복의 비결/느 4:15-23

 

 

                                                                                                출 처| 박봉수목사

 

 

영국의 문호 존 밀턴은 끝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우선 가정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두 번 결혼에 실패했습니다. 자기 눈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다음으로 일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정치에 뜻을 두고 자유 공화국을 세우고자 정열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왕정복고로 인해서 그 모든 꿈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건강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앞을 보지 못하게 됐습니다. 심각한 관절염으로 고통을 겪게 됐습니다.

 

그러나 밀턴은 이 위기들을 잘 극복했습니다.

위기가 다가오면 그 시점을 인생의 끝으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실명한 뒤 시작(詩作)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불후의 명작을 남기게 됩니다. 바로 저 유명한 대서사시 “실락원”입니다.

 

밀턴은 이 때 우리가 귀담아 들을만한 말을 남겼습니다. “정말 비참한 일은 앞을 못 보게 된 것이 아니라, 앞을 못 보는 환경을 이겨낼 수 없다고 말하며 주저앉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위기 때문에 주저앉고 마는 것입니다. 태풍에 고목이 쓰러지듯이 넘어져서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인생의 끝이 되고 맙니다. 다른 하나는 그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납니다. 인생의 새로운 시작으로 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치 도둑처럼 인생의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 없이 인생의 위기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주저앉으면 안됩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위기가 찾아왔느냐고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도무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이 인생의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굳굳하게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찾아온 인생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까요?

우리 인생에 위기가 찾아올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줍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귀환을 허락합니다. 군대의 호위도 받고, 성을 재건할 물자도 지원 받았습니다. 이제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2-3장을 보면 저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낡고 무너진 예루살렘 성 곳곳을 손을 보기 시작합니다. 힘을 다해서 성벽을 다시 쌓습니다.

 

그런데 이 때 위기가 찾아옵니다. 4: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적들이 방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적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산발랏입니다.

    그는 북쪽 사마리아를 통치하는 자입니다.

 

둘째, 도비야입니다.

    그는 암몬을 통치하는 자입니다. 여기서 암몬은 예루살렘의 동쪽 요단강 건너에 있는 나라입니다.

 

셋째는 아라비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아스돗은 블레셋에 속한 도시로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동서남북에 자리 잡고 살던 자들이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동맹을 맺고 공격해 온 것입니다. 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협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불시에 예루살렘 성 공사장을 공격해 왔습니다. 게릴라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 공사 그 자체만도 힘이 드는 판입니다. 그런데 수시로 적들이 공격해 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정말 큰 위기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살펴보면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이 위기를 잘 극복합니다. 그리고 52일 만에 공사도 끝을 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게 됩니다.

 

그러면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이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신앙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적들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4:1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대적들이 찾아와서 비웃었다는 것입니다.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저들이 쓴 첫 번째 전술은 심리전입니다. 이 심리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특히 신앙이 흔들립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 다 버리고 결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리고 이토록 힘겹게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은 왜 적들의 공격을 보고만 계시는가?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는 한 것인가? 아니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기는 한 것인가?

 

이 때 느헤미야가 곧바로 대응합니다.

4:4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한 마디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 지금 겪고 있는 위기를 있는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심을 더욱 굳게 믿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해 주실 것이고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게 됐습니다.

 

4: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적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다시금 힘을 내서 성벽 공사를 진행해서 상당한 진척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찾아오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먼저 신앙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믿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는가?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가? 아니 하나님이 있기는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때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십니다. 이 때 하나님께 등을 돌리면 안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안됩니다. 사탄이 더욱 심하게 우리의 믿음을 흔듭니다.

 

프랑스의 시인 길라움 아폴리네어(Guillaume Apollinaire)는 인간이 벼랑 끝에서 날 수 있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벼랑 끝으로 오세요. 싫어요, 떨어질 거예요.

벼랑 끝으로 오세요. 싫어요, 떨어질 거예요.

그들은 벼랑 끝까지 갔다. 그가 밀었고, 그들은 날았다.

 

그렇습니다. 때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십니다. 우리 안에 담아 두신 하나님의 날개를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 날개로 평소에 날 수 없는 저 창공을 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기가 찾아오면 더욱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이를 악물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이 말씀대로 주께서 여러분을 그 위기 가운데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실 것입니다.

 

 

2. 존재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육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적들이 기습을 해 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을 쌓기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을 때 쳐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없다고 주저앉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할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느헤미야가 나섰습니다. 13-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격려했다는 것입니다. 힘을 내라고 용기를 가지라고 다독거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고 함께 대처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일어섰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존재의 위기를 느낍니다. 우선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래서 체념해 버리고 맙니다. 포기해 버리고 맙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더 심하면 그 두려움에 삼켜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생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취하기까지 합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상원 의원에 출마했을 때 일입니다. 쉽게 당선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크게 낙심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두문불출하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서 벽돌공이 담장을 쌓고 있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벽돌공은 벽돌 한 장 놓고, 그 위에 세면을 발랐습니다. 그리고는 또 벽돌 한 장을 그 위에 올려놓고는 또 그 위에 세면을 발랐습니다. 다시 그 위에 벽돌 한 장을 올려놓고는 다시 그 위에 세면을 발랐습니다. 이런 같은 동작을 쉬지 않고 반복했습니다. 한 참이 지난 뒤에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덧 담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처칠이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인생은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리는 것과 같구나. 그래 내 인생을 여기서 포기할 수 없지”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벽돌 한 장을 쌓는 자세로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영국의 수상이 됐고,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그가 정계를 은퇴한 후 다음 세대를 대상으로 한 연설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Never give up! Never give up! Never, never, never.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위기가 다가올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때로 실패해서 넘어졌을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도무지 길이 없다고 생각될 때 포기하지 마십시오.

 

시 37:2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 분이 손을 잡아주십니다. 그분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3.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본문 16절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을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요약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위기에 대처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위기가 다가오면 공동체의 마음 흩어집니다.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서로 책임 전가하고 추궁합니다. 그리고 저마다 자기 살 길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다 다투고 분열이 됩니다.

 

창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들이 뱀에게 속아서 하나님 말씀을 어겼습니다.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추궁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들에게 큰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이 때 아담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저 하와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을 뿐입니다. 한 몸되라고 세워주신 공동체가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공동체의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찾아오면 대부분의 공동체는 갈등과 다툼이 일어납니다. 부부가 서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동업자가 서로 의심합니다. 동기간이 서로 책임을 떠넘깁니다. 공동체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더욱 그 위기가 깊어집니다.

 

오래 전에 단기 선교차 괌을 가본 일이 있습니다. 해변에서 청년들과 야영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해변에 야자나무 숲이 길게 형성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나무들 크기가 거의 비슷합니다. 튀어나오게 큰 나무나 또 지나치게 작은 나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야자나무 아닌 다른 나무도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나무들이 서로 엉켜있다는 것입니다. 뿌리가 서로 엉켜있고 줄기들도 많은 부분 엉켜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일부러 야자나무만 이곳에 심어 놓은 것이냐고? 크고 작은 나무들은 다 베어버렸냐고?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워낙 태풍이 많은 지역입니다. 나무들이 서로 기대고 있어야 버틸 수 있습니다. 너무 큰 나무들이나 작은 나무들, 다른 종류의 나무들은 서로 기댈 수 없어서 견디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 위기가 다가오면 서로 기대야 합니다.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야 합니다. 그러면 위기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전 4:1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위기가 올수록 더욱 그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지 못했던 때 인생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때 신앙의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존재의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