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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박봉수목사

부흥이여 다시 한번/대하 7:14

부흥이여 다시 한번/대하 7:14

 

 

                                                                                                  출 처| 박봉수목사

 

 

오늘 2007년 1월 14일은 저 “평양대부흥운동”의 뜨거운 성령 강림이 일어났던 1907년 1월 14일 바로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영적으로 메마른 이 땅에 다시 한번 부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날을 기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세기 부흥운동

지난 100년 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한반도에는 세 차례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그리고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입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은 이 땅의 부흥운동의 서곡이었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 한국의 오순절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부흥운동의 하이라이트였고,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은 부흥운동의 메아리라 할 수 있습니다.

 

 

1903 원산부흥운동

1903년 8월 원산에 놀라운 부흥운동이 발흥했습니다. 1903년 원산지역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1주일 동안 집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때 의료선교사 하디(Robert Hardie)가 강사로 나섰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강원도에서 3년 동안 선교사역을 해왔지만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집회를 준비하면서 이미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람들은 안된다. 한국 땅에는 복음이 전파될 수 없다”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준비하면서 문제가 바로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깨달음을 전했고 뜨겁게 회개했습니다. 울음으로 설교를 시작해서 울음으로 집회를 마쳤습니다. 참석한 선교사들에게도 회개의 운동이 일어면서 성령의 뜨거운 강림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원산감리교회에서 이 부흥의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하디는 설교도중에 한국인 신자들 앞에서 자신의 교만을 적나라하게 고백했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한국 신자들도 선교사를 미워했었다고 죄를 고백하면서 피차 용서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몰랐던 한국 사람들이 드디어 성경이 말씀하는 죄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원산부흥운동은 서서히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아갔습니다. 하디가 선교해 오던 강원도로 10월에는 서울, 평양, 제물포로 확산되어갔습니다. 이 부흥의 불길은 1906년까지 이어져 갔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안남도 겨울 남자도사경회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렸습니다. 평양에서 열리는 도사경회는 약 1000명 정도의 각 교회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새벽 기도회와 낮 성경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전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전도한 이들을 대상으로 저녁에 전도집회가 열리는 형식의 사경회였습니다.

 

본격적인 저녁 집회는 6일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약 1500명이 저녁집회에 참석했습니다. 14일 오전까지 별다른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던 중에 선교사들이 정오 기도회에서 이렇게 끝나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눈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날 저녁 아직 목사 안수 받기 전이었던 길선주 장로가 강사로 나섰습니다. 그가 설교 도중 자기의 죄를 낱낱이 공개적으로 고백하면서 통회했습니다. 이 설교가 끝나고 통성기도를 하는 도중 하나님께서 성령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이때 참석한 한 선교사는 “저들의 기도 소리가 마치 하늘 보좌를 향해 포효하는 것 같았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앞을 다투어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중간 중간 울음을 멈추고 통회의 기도를 드릴 때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저들을 휘감았습니다.

 

당시 장대현 교회 담임목사였던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는 선교 본부에 이날 밤의 집회를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어떤 말로도 어제 있었던 그 집회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제까지 결코 목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의 현시였습니다.”

 

노블(W. A. Noble)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자신이 지금까지 목격하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어 주심의 현시가 한국교회에 있었는데 아마도 사도시대 이후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현시는 없었을 것이다.”

 

이 1907년 1월 14일의 성령강림 사건은 다음날 마지막 집회에도 재현되었는데 이것은 평양대부흥운동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우선 평양 전역으로 확산되어나갔습니다. 평양에 있는 대부분의 교회에 이 부흥의 불길이 번져갔습니다. 교파를 초월해서 교회마다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평양에 있던 여러 미션스쿨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특히 숭실대학에 개학 후 2주간이나 부흥의 불길이 강력하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부흥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이 부흥의 불길은 전국으로 번져갔습니다. 한달도 되지 않아서 서울로 선천으로 청주로 광주로 대구로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갔습니다. 그래서 이 성령의 역사는 한 반도 전역에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909 백만인 구령운동

1908년 잠시 부흥의 열기가 식어가는 도중 1909년 7월 선교사들이 기도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15명의 선교사들이 일주일간 기도회를 가지면서 영적 능력 회복을 기도했습니다. 저들의 성령의 능력을 받고 구령운동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운동으로 번져가면서 100만인 구령운동 곧 민족복음화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민족복음화를 위해 1910년부터 세계적인 부흥사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집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위 “날연보”라하여 은혜 받은 사람들이 1주일, 10일, 혹은 2주일 날을 하나님께 바치고 오직 이 날 동안에는 전도만 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쪽 복음을 100만부 제작하여 배포했습니다.

 

이 때 민족복음화를 위한 대대적인 전도의 역사가 이 강산을 뒤흔들었습니다. 그 현장을 목격한 조지 데이비스 선교사는 “내가 가는 곳마다 나는 백만인구령운동에 대한 열렬한 관심을 발견했습니다. 선교사들은 이 운동을 이끌었고 한국인들은 날연보를 드리며 헌신했고, 무한한 열심과 열정으로 복음서를 전했습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이런 20세기 초 이 땅에 일어난 부흥운동은 우선 놀라운 교회성장을 이루었습니다. 1884년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한 뒤 미미하던 교세는 원산부흥운동을 지나면서 5만명으로 급증했습니다. 그리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거치면서 약 20만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제 백만인구령운동에 힘입어 한국교회는 더욱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사회 개혁운동도 함께 일어났습니다. 당시 한국사회의 악습이었던 노름, 일부다처제, 조상숭배는 점차 사라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의 윤리 도덕성 회복운동이 이 땅의 사회 개혁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부흥의 갈망

우리는 이 땅의 부흥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이렇게 사랑하셨던가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그 어떤 교회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도행전 오순절 사건 이후 강력한 성령의 강림을 체험했습니다. 그 여파로 교회가 교회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역사의 그 모진 시련을 뚫고 나라가 부강한 나라로 도약하게 됐습니다. 사회의 악습들이 타파되고 선진국가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선교사 파송 2위국으로 선계 선교를 주도하는 선교한국이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부흥운동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앞으로 우리 민족이 살 길도 바로 부흥에 있다는 사실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부흥하고 교회가 부흥해야 우리 사회가 부흥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이 일어나려면 다시 한번 이 땅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려면, 이 땅에 부흥의 불길이 다시 한번 일어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부흥을 갈망해야 합니다.

100년 전 이 땅에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선교사들은 19세기 미국의 대부흥운동 때 은혜를 체험하고 선교사로 헌신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대부흥사 무디가 주도하는 부흥의 역사를 직접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무디의 기도를 받고 선교사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들은 이 한국 땅에도 부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1906년 하반기에 당시 유명한 미국 부흥사 존스톤 목사가 한국에 와서 집회를 했습니다. 이 때 영국 웨일즈와 인도에서 일어난 대부흥운동을 소개했습니다. 당시 말씀을 듣던 선교사들 마음에 부흥에 대한 간절한 갈망이 불처럼 일어났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존스톤 목사가 집회를 하면서 영국 웨일즈 부흥운동의 주역인 젊은 청년 이반 로버츠를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설교 말미에 집회 참석한 교인들에게 도전했습니다.

 

“누가 이반 로버츠처럼 성령의 놀라운 은혜를 받겠는가? 누가 이반 로버츠처럼 이 조선에서 크게 쓰임을 받겠는가?” 손을 들고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이 때 신학생이자 조사로 장대현 교회를 섬기고 있던 길선주 장로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손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그 마음에 간절한 갈망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이 땅에 선교하러 왔던 선교사들 그들의 마음에 부흥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특히 부흥의 주역으로 크게 쓰임 받았던 길선주 목사는 그 누구보다도 이 땅의 부흥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들을 들어 쓰셨습니다. 이들을 통해 이 땅에 큰 부흥을 일으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선 우리 심령의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믿어서는 안되겠다는 새로운 각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가정의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말씀 앞에 서야 하겠습니다.

저 원산부흥운동으로 이 땅의 부흥의 불길을 당긴 하디 선교사는 강원도 지경대 지역에서 3년간 참담한 실패를 겪으며 크게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찾지 못하던 그의 마음에 말씀 한 구절이 비수처럼 꽂히게 되었습니다.

 

바로 눅 11:13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디는 이 말씀 속에서 자기의 선교 사역의 실패는 바로 자기에게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성령충만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령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실력과 자기의 이력을 다 내려놓고 성령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부흥이 시작된 것입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시작된 장대현 교회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1866년 8월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에 들어왔다가 불에 타 좌초하고 맙니다. 이 때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그가 순교하면서 중국어 성경 3권을 전했습니다. 이 성경이 박영식이라는 사람에게 전해졌습니다. 이 사람이 이 질 좋은 중국성경을 낱장으로 뜯어서 자기 방을 도배했습니다.

 

하루는 물끄러미 벽을 쳐다보는데 요 5:24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심판이 있다는 말에 마음에 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고민하던 중 어느 날 천장을 보니 또 한 구절이 들어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박영식이라는 사람이 드디어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집이 평양에서의 최초교회 “널다리골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가 부흥운동의 센터인 장대현교회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입니다. 말씀 앞에 설 때에 부흥이 일어납니다.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와 역사할 때 구체적으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더욱 말씀 읽는 일, 말씀 듣는 일, 말씀 묵상하는 일에 열심을 더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부흥이 일어납니다.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장대현 교회의 뜨거운 성령 강림은 말씀을 전하던 길선주 장로의 회개로부터 촉발되었습니다.

길 장로는 1년 전 세상 떠난 친구가 죽기 전 아내 대신 재산을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을 처리하다가 아무도 몰래 상당한 돈을 사취했습니다. 이것을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 상세하게 밝히고 통회했습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참석한 교인들이 땅을 치며 통회 자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찬성이라는 한 젊은이가 15살 때 결혼해서 3개월 만에 아내와 다투다 아내를 죽이고 집을 도망쳐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 집회에 전도를 받고 나왔습니다. 자신의 죄를 통회했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그 사실을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집회 후 16일 수요기도회 때 다시 한번 통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 사람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집회에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그 통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가정이 모두 다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회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이 땅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의 아내인 릴리아스는 이렇게 술회했습니다. “성령께서 죄인의 마음에 임하시자 아무리 작은 죄라도 다 토로하게 되었고 온 교인들이 통성으로 기도드리며 함께 울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의 통회 자복이 부흥의 불길을 일으킵니다. 죄는 우리의 부흥을 가로막는 가장 강력한 적이기 때문입니다. 물고를 트면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이 죄를 회개하면 부흥의 역사는 놀랍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샅샅히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발견되는 죄는 낱낱이 다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자랑스런 부흥의 후예들입니다.

그 어느 민족 그 어느 교회도 이와 같은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이 민족을 사랑하시고 한국교회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부흥을 다시 한번 재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부흥에 대한 갈망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말씀 앞에 서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는 적극적인 실천이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