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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1-7 로마서 강해 2

롬1:1-7 로마서 강해 2

 

 

바울이 로마교회에 가서 전하고 싶었던 복음은 사실 로마교회는 누군가로부터 이미 듣고 예수님을 믿은 공동체였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복음이 식어져 가는 심령에 복음을 전하여, 성도는 전하는 그 복음을 들음으로 복음의 감격이 살아나고 복음에 뿌리 내리는 견고한 신앙인으로 세우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복음을 듣고 또 듣고 또 들음으로 복음의 뜨거운 불이 우리 안에 항상 타올라 천하 만민에게 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복음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2-4절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한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2-4)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오래전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약속한 것입니다. 인간이 고안한 작품,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약속하신 것인데 그 약속대로 다윗의 혈통을 통해 나셨습니다. 설명을 더 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씨를 약속하셨습니다.

“또 네 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22:18)

 

약속한 이 씨가 누구일까요?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자손들이라 아니 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약속한 씨, 약속한 자손이 탄생하실 때, 오실 때의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렀습니다. 헤롯왕에게 나아가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성경을 모르는 헤롯왕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불러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었습니다. 말씀을 잘 알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은 미가서 5장 2절을 인용하여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2:5,6)

 

약속한 자손, 약속한 씨는 유대 베들레혬에서 탄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한편 다른 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눅2:1-6)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의 몸이 만삭일 때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호적 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셉도 만삭인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왜 베들레헴일까요?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눅2:1-7)

 

약속한 씨, 약속한 자손 예수님은 이렇게 육신으로 다윗의 혈통을 따라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적 족보는 마태복음 1장을 통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만들어진 신화가 아닌 분명하고 확실한 역사적 사실인 것입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고 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4)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전하셨고 기적과 표적을 통해서도 보여주셨습니다. 물로 포도주, 고기 두 배 사건, 오병이어의 기적 등을 통해 보여줌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이적과 표적을 보여줌으로 믿게 하신 것입니다. 믿지 못한 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그 십자가에서 자신을 구원하는 능력으로 하나님 아들 됨을 한 번 보여 달라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여주시지 않고 그냥 죽으셨습니다. 이는 죄의 값이 사망이니 그 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죽으셔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혼자 살겠다고,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내려오시면 인류는 자기 죄 값을 각자 치루기 위해 지옥 불에 모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죽으시고 삼일 만에 끝이라고 생각한 죽음,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능력이 크겠습니까? 죽은 뒤 살아난 능력이 크겠습니까?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복음을 주시고 들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한 것은 믿음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성도 여러분, 이 복음을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이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천하보다 비싼 한 영혼이라도 살려야 합니다. 이게 전도인 것입니다.

 

외견상 복음은 자랑스러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닙니다. 수치스럽고 저주스런 십자가 형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 입장에서는 십자가의 도, 즉 복음이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믿어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고전1:18, 고전1:23,24) 병든 자가 고침 받은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요, 바다를 잠잠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지옥 갈 자 천국으로, 마귀의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죄인들을 구원시켜주는 복음이야말로 능력 중에 능력이며 하나님의 최고의 능력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도바울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

 

에스겔 3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에스겔을 어느 골짜기로 데려 가십니다. 황량한 골짜기에는 생명의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뼈들만이 가득했습니다. 아주 많은 양의 뼈들은 오랜 기간 그곳에 방치돼 있어서 매우 말라 있었습니다. 그 모든 광경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생명력이 없는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겠냐는 하나님의 물으심입니다. 에스겔은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이 에스겔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시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가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4-10)

 

하나님의 말씀을 에스겔 선지자가 그대로 대신 전하니 마른 뼈들이 살아나 움직이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2:1) 자들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처럼 능히 살아나고 구원 받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그러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살리는 복음을 담대히 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의 명함

 

바울은 자신이 누구인가, 복음이 무엇인가를 소개한 후 이제 본문 6, 7절을 통해 성도는 누구인가? 성도의 명함을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➀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

 

6절입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6)

 

성도는 누구의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구주이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예수님의 피 값, 생명으로 산 것이 성도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믿고 구원 받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값을 생명으로 치루셨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가 되려 하심이라”(롬14:8,9)

 

성도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마땅할 줄 믿습니다.

 

➁성도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

 

7절입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7)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고 하십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였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사46:3,4)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49:14-16)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신앙시로 정리했습니다.

 

너는 아느냐 / 神前 박영일 목사

 

너는 아느냐

너를 기뻐 선택하시고

너를 지으시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런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을

 

너는 아느냐

너와 함께 함이라

너의 하나님이 됨이라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너를 붙들리라

이런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을

 

너를 버리지 않으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시며

너를 잊지 아니하시며

너를 손바닥에 새긴

이런 특별한 사랑을

너는 아느냐

 

너를 위해 영광 버리시고

너를 위해 낮아져 오시고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너를 위해 천국을 준비하신

이런 특별한 사랑을

너는 아느냐

 

➂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7)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이라는 뜻입니다. 개인적으로 적용하면 '성자', '성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거룩하여서 거룩하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죄악 된 세상에서 하나님이 불러 내셔서, 하나님을 위한 사람들로 구별해 내셨기에 '성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천국백성답게, 성도답게 구별되게,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주님께 감사하시고 잘 섬기시고 이 복된 소식을 입을 벌려 힘써 전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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